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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를 만드는 것은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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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만들어야 될까? 가 현재 명전이 가진 최대의 고민이었다. 물론 써놓은 곡은 많다. 그동안 공연하고, 지원사업에 나가고 등등 하면서 쓴 곡들은 충분히 EP를 낼 수 있는 수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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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명전은 이전의 곡을 재활용하기보다는 새로운 곡을 쓰고 싶었다. 밴드의 시작을 알린다는 느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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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래서 어떤 곡을 써야 할지 감이 안 온다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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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것은 많다. 블루스, 하드락, 사이케델릭, 얼터, 프록, 그 외 기타 등등… ‘서명전’이었다면 모르겠으나 ‘하수연’으로는 어떤 것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것을 할 수 없느냐고 묻는 것이 더 빠른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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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하고 싶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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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그 지점에서 애매함을 느꼈다. 나는 이제 뭘 하고 싶은 걸까? ‘서명전’의 연주력과, ‘하수연’의 천재성을 가진 ‘나’는… 이제 어떤 곡을 써야 할까? 어떤 연주를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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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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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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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먹고 올래? 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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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그런 제안을 하는 다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세상이 도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그 뭐야, 어? 라떼인가? 아무튼 말이야, 나 어릴 적에는 점심시간에 밖에 나간다? 상상도 못할 일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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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도 맛있는데 왜 나가? 오늘 돈까스잖아. 굳이 나갈 필요 없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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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언니가 사줄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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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의 반문에, 수현이 치근덕거리며 명전에게 달라붙었다. 거기에 또 달라붙는 채린. 명전은 손을 휘둘러 떼어내고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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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지도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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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안에서 먹으면 될 텐데. 학교 급식이 뭐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양념코다리강정 - 명전은 코다리를 좋아했지만, 도저히 이 학교 급식으로 나온 코다리는 좋아할 수가 없었다 - 같은 게 나온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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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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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물러설 것 같지 않은 아이들을 보며, 명전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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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예의상 가디건은 걸친 채로, 뒷문으로 은근슬쩍 나간다. 하지만 다인과 아이들은 학교 마크가 찍힌 교복을 당당하게 내세운 채로, ‘숨어야지!’ 같은 과장된 움직임과 시시덕거림을 앞세운 채 슬쩍슬쩍 밖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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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연수때문에 늦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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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가게에 도착하자, 꽤나 많이 와 있는 아이들. 다인은 그런 외침을 한번 터트리더니, 나 화났다 식의 과장된 움직임으로 테이블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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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이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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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싸이버거~ 감자 추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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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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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게. 연수 너는 뭐 먹을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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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키오스크 앞에 가서 선 채린의 말. 명전은 자신도 싸이버거를 먹겠다고 하고는, 다인과 마주앉았다. 테이블에 엎드려 있다 프흐흫흫 웃는 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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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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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재밌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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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을 게 뭐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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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의 감성은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고 명전은 생각했다. 허락되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것? 그런 것에서 오는 배덕감? 그렇다고 하기에는 뭔가 좀 시원찮은 행위인데. 점심시간에 바깥에 나와서 햄버거 먹는 게 그렇게 재미있는 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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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권지! 오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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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이 어린 아이들의 감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팔짱을 끼고 고민하던 사이, 근처로 온 누군가에게 건네지는 인사. 퉁명스럽게 시비를 걸던 권지혜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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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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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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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 다인과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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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명전은, 얘가 왜 또 이러나 싶은 심정이었다. 오며가며 만날때마다 뭐라뭐라 시비 걸고 핀잔 주고 그러는 것 같은데. 무슨 옛날 만화영화에 나오는 악역 같은 포지션인가? 그런 쪽을 노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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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음악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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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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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분위기가 될 줄 알았던 아이들의 생각과 달리, 살짝 감도는 긴장감. 권지혜는 음식을 받아오기 위해 카운터를 맴도는 채린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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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할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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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뭐 한때 하고 안 할까? 내가 음악을 그만두길 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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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답에, 지혜는 피식 웃고는 일어났다. 명전은 도대체 얘가 뭘 원하는가 싶었지만, 지혜는 뭔가 말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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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 나중에 연락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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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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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사라져버리는 권지혜. 명전은 영문을 알 수 없어 다인을 쳐다보았지만, 다인은 다시금 프흐흐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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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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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말해줄게~ 햄버거나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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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은 대답 대신 그렇게 얼버무리고는, 채린이 가져온 햄버거를 한입 물었다.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 감자튀김을 트레이에 쏟아놓고, 케찹을 찍어 먹으며 연신 별 거 아닌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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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이야기에 참여하지 않은 채, 잠시 턱을 괴고 매장 내를 둘러보았다. 학교 근처에 있어서인가, 어딜 봐도 학생들 뿐. 다들 뭔가 즐거운 표정으로 같이 온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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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아. 안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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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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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때 힘들지 않게 햄버거를 꾹 누른다. 그 다음 살짝 짓눌린 햄버거를 베어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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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이었다면 질색할 인스턴트 소스와, 부담스러울 정도로 튀긴 치킨 커틀렛과 빵, 그리고 그 외 기타 등등의 조화. ‘하수연’이 되었을 초기에도 마찬가지로 싫어했던 것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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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는 막힘 없이 입 안으로 들어간다. 도리어 예전처럼 슴슴한 곰탕이라던지 죽이라던지 하는 것들보다는, 이런 강하고 자극적인 음식들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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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뺨에 소스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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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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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를 세번째 쯤 베어먹었을 때, 수현이 그렇게 말하며 티슈로 명전의 뺨을 닦아주었다. 괜히 싱글거리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명전은 묘한 감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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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언제 연습했는지 모를 안무를 열심히 추고 있는 세 명. 명전은 아이폰 카메라를 든 채로 아이들이 추는 춤을 녹화하고 있었다. 열심히 춤을 추다가 갑자기 삐끗하는 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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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아 채린~! 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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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자꾸 틀리네. 왜 이렇게 어렵지? 이 부분 막 어렵진 않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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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을 해 와야 될 거 아냐 이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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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을 틀린 채린에게 마구마구 핀잔을 주고 있는 아이들을 두고 명전은 촬영을 종료했다. 촬영을 해 달라고 해서 해 주고 있긴 하다만 도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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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하고 있는 이유가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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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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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에 올리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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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생각에 잠기는 듯한 표정이 된 3인방.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수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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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있고, 이번에 축제 할때 이걸로 나가려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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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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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이때 아니면 못 하잖아. 그렇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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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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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의 말에, 명전은 무의식적으로 반문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서. 그리고 그것은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동일하게 반문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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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사실 언제 해도 상관은 없긴 하지. 하지만 이런 건 지금 아니면 못하잖아. 우리도 대학교 가고, 취업시장 가고, 그러면 뭐 할 시간도 없고 할 나이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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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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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마음속으로 그 이야기를 굴려보았다. 지금 아니면 못 한다. 진짜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진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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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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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거든. 맞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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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맞다 아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3인방을 내버려두고, 명전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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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일들은, 확실히 그 이후의 일들보다… ‘밀도’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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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지금 이때. 별 것 아닌데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같이 하면 뭔가 재미있고 행복한. 인생 전체로 보면 별 것 아닌 몇년에 불과하지만… 인생 전체를 살아가면서 다시금 추억하고 추억하는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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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최대한 즐겁게 보내야 하는 시기다. 이후의 인생이 힘들다면, 추억삼아 버텨나갈 수 있도록. 이후의 인생이 즐겁다면, 원동력으로 한발 더 뻗어나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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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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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빨리 시작해봐. 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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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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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아이들의 쓰잘데기 없는 말다툼을 끊었다. 명전의 말에, 뜬금없이 뭐냐고 물어보면서도 아이들은 다시 자리를 잡고, 노래를 틀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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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에 따라 춤을 추는 아이들. 어설프게 틀리는 부분도 있고, 혹은 잘 해석한 부분도 있다. 제멋대로 하는 부분도 있고, 제대로 잘 따라한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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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아이들의 연습 페이스대로라면… 절대 원곡과 흡사한 퍼포먼스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건 충분한 시간을 들여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 나올 수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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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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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닌 과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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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와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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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핵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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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연습은 캔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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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슨 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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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잠시 중요한 게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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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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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따로 말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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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다는 대답을 들은 후, 명전은 카카오톡을 껐다. 그는 이런 식으로 일정을 급하게 변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부모님 상 같은 거라도 나는 게 아니라면, 웬만하면 일정을 다 소화하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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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뭐 부모님 상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 정도로 급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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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안 먹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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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슨 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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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뭔가 떠오르는 게 있어서요. 방문은 열지 말아주세요. 집중이 깨질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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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인 씨에게도 미리 말해둔 후 명전은 방문을 닫았다. 딱 뭔가 떠오를 것처럼 머릿속이 간질간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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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은… 그걸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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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을 따라간다고 욕을 먹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서명전’을 아는 사람이거나, ‘서명전’의 제자로 ‘하수연’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양반이 왜 이상한 거 하고 있는지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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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래도 괜찮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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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어려본 시절 없이 늙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모두가 겪어본 시절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두에게 공감대를 살 수 밖에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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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난하다못해 진부하지만… 그렇기에 다시금 호명한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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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나이대라면,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그런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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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EP를 제작하기에 적당한 레퍼런스도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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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밴드… 사일런트 사이렌(Silent Siren). 연령대가 살짝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구성 자체는 적절하다. 키보드를 포함한 4인 여성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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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는, 글쎄. 이서에게 맡길까. 멜로디와 편곡은 명전 본인이 하면 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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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디를 만들어본다. 어떤 느낌으로 가야 할까. 청춘이라고 하면 느껴지는, 푸른 하늘에 떠 있는 구름 한점과 같은 그런 싱그러운 멜로디? 너무 단순한 해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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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의 하늘을 생각해본다. 살짝 우중충했고, 비는 내리지 않지만… 흘러가는 구름은 꽤나 많았던 하늘. 그런 어둑어둑한 분위기 속에서도 아이들은 꽤나 쾌활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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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식으로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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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쾌활한 느낌을 주고 싶지는 않다. 그러므로 단조로. 템포는 살짝 느릿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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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는 메인 멜로디를 연주하고. 베이스는 J-Rock식의 리드미컬한 라인을, 사운드를 줄여서 연주시키고. 드럼은 통통 튀는 사운드를 준다. 키보드는 약간 멀리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아련한 느낌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과거의 자신을 추억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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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춤을 추던 아이들의 영상을 틀어본다. 춤을 추다 실패할때마다 중간중간에, 서로 장난식으로 다투면서 이야기를 하던 그 대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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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화들을 배경 화이트노이즈로 만들어 넣는다. 어느 고등학교 하교길을 걷는 것처럼. 들려오는 아이들의 이야기 소리를 배경으로, 청춘의 한 페이지를 써내려가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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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글쎄. 어떤 것으로 지을까 하다가, 명전은 문장 하나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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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라, 잿빛의 나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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