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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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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를 만드는 것은 좋은데.

뭘 만들어야 될까? 가 현재 명전이 가진 최대의 고민이었다. 물론 써놓은 곡은 많다. 그동안 공연하고, 지원사업에 나가고 등등 하면서 쓴 곡들은 충분히 EP를 낼 수 있는 수량.

그러나 명전은 이전의 곡을 재활용하기보다는 새로운 곡을 쓰고 싶었다. 밴드의 시작을 알린다는 느낌으로.

문제는, 그래서 어떤 곡을 써야 할지 감이 안 온다는 거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많다. 블루스, 하드락, 사이케델릭, 얼터, 프록, 그 외 기타 등등… ‘서명전’이었다면 모르겠으나 ‘하수연’으로는 어떤 것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것을 할 수 없느냐고 묻는 것이 더 빠른 상태.

하지만 정작 하고 싶은 것은?

명전은 그 지점에서 애매함을 느꼈다. 나는 이제 뭘 하고 싶은 걸까? ‘서명전’의 연주력과, ‘하수연’의 천재성을 가진 ‘나’는… 이제 어떤 곡을 써야 할까? 어떤 연주를 해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할까?


점심 시간.

“밖에서 먹고 올래? 맘터.”

명전은 그런 제안을 하는 다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세상이 도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그 뭐야, 어? 라떼인가? 아무튼 말이야, 나 어릴 적에는 점심시간에 밖에 나간다? 상상도 못할 일이었는데.

“급식도 맛있는데 왜 나가? 오늘 돈까스잖아. 굳이 나갈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왜 그래~ 언니가 사줄게. 응?”

명전의 반문에, 수현이 치근덕거리며 명전에게 달라붙었다. 거기에 또 달라붙는 채린. 명전은 손을 휘둘러 떼어내고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귀찮지도 않나?

그냥 안에서 먹으면 될 텐데. 학교 급식이 뭐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양념코다리강정 - 명전은 코다리를 좋아했지만, 도저히 이 학교 급식으로 나온 코다리는 좋아할 수가 없었다 - 같은 게 나온 것도 아닌데.

“그러자.”

하지만 물러설 것 같지 않은 아이들을 보며, 명전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예의상 가디건은 걸친 채로, 뒷문으로 은근슬쩍 나간다. 하지만 다인과 아이들은 학교 마크가 찍힌 교복을 당당하게 내세운 채로, ‘숨어야지! 같은 과장된 움직임과 시시덕거림을 앞세운 채 슬쩍슬쩍 밖으로 향했다.

“아! 연수때문에 늦었음!”

햄버거 가게에 도착하자, 꽤나 많이 와 있는 아이들. 다인은 그런 외침을 한번 터트리더니, 나 화났다 식의 과장된 움직임으로 테이블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주문이나 해.”

“나는 싸이버거~ 감자 추가용.”

“사달라고?”

“내가 할게. 연수 너는 뭐 먹을 건데?”

이미 키오스크 앞에 가서 선 채린의 말. 명전은 자신도 싸이버거를 먹겠다고 하고는, 다인과 마주앉았다. 테이블에 엎드려 있다 프흐흫흫 웃는 다인.

“왜?”

“그냥, 재밌어서.”

“재밌을 게 뭐가 있는데?”

여고생의 감성은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고 명전은 생각했다. 허락되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것? 그런 것에서 오는 배덕감? 그렇다고 하기에는 뭔가 좀 시원찮은 행위인데. 점심시간에 바깥에 나와서 햄버거 먹는 게 그렇게 재미있는 일이란 말인가?

“어 권지! 오랜만~”

명전이 어린 아이들의 감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팔짱을 끼고 고민하던 사이, 근처로 온 누군가에게 건네지는 인사. 퉁명스럽게 시비를 걸던 권지혜가 그곳에 있었다.

“연수.”

“왜?”

아무 생각 없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 다인과 아이들.

하지만 명전은, 얘가 왜 또 이러나 싶은 심정이었다. 오며가며 만날때마다 뭐라뭐라 시비 걸고 핀잔 주고 그러는 것 같은데. 무슨 옛날 만화영화에 나오는 악역 같은 포지션인가? 그런 쪽을 노리는 걸까?

“아직도 음악 하냐?”

“하지.”

반가운 분위기가 될 줄 알았던 아이들의 생각과 달리, 살짝 감도는 긴장감. 권지혜는 음식을 받아오기 위해 카운터를 맴도는 채린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계속 할 생각이야?”

“그럼 뭐 한때 하고 안 할까? 내가 음악을 그만두길 원하는 거야?”

그 대답에, 지혜는 피식 웃고는 일어났다. 명전은 도대체 얘가 뭘 원하는가 싶었지만, 지혜는 뭔가 말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박다. 나중에 연락할게.”

“응 그래~”

그러고는 사라져버리는 권지혜. 명전은 영문을 알 수 없어 다인을 쳐다보았지만, 다인은 다시금 프흐흐 웃을 뿐이었다.

“뭔데?”

“나중에 말해줄게~ 햄버거나 먹자.”

다인은 대답 대신 그렇게 얼버무리고는, 채린이 가져온 햄버거를 한입 물었다.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 감자튀김을 트레이에 쏟아놓고, 케찹을 찍어 먹으며 연신 별 거 아닌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

명전은 이야기에 참여하지 않은 채, 잠시 턱을 괴고 매장 내를 둘러보았다. 학교 근처에 있어서인가, 어딜 봐도 학생들 뿐. 다들 뭔가 즐거운 표정으로 같이 온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다.

“수연아. 안 먹어?”

“먹어야지.”

먹을 때 힘들지 않게 햄버거를 꾹 누른다. 그 다음 살짝 짓눌린 햄버거를 베어 문다.

예전이었다면 질색할 인스턴트 소스와, 부담스러울 정도로 튀긴 치킨 커틀렛과 빵, 그리고 그 외 기타 등등의 조화. ‘하수연’이 되었을 초기에도 마찬가지로 싫어했던 것들인데.

하지만 이제는 막힘 없이 입 안으로 들어간다. 도리어 예전처럼 슴슴한 곰탕이라던지 죽이라던지 하는 것들보다는, 이런 강하고 자극적인 음식들이 더 좋았다.

“너 뺨에 소스 묻었다.”

“응?”

햄버거를 세번째 쯤 베어먹었을 때, 수현이 그렇게 말하며 티슈로 명전의 뺨을 닦아주었다. 괜히 싱글거리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명전은 묘한 감정이 들었다.


도대체 언제 연습했는지 모를 안무를 열심히 추고 있는 세 명. 명전은 아이폰 카메라를 든 채로 아이들이 추는 춤을 녹화하고 있었다. 열심히 춤을 추다가 갑자기 삐끗하는 채린.

“아씨! 아 채린~! 뭐여~!”

“아 이거 자꾸 틀리네. 왜 이렇게 어렵지? 이 부분 막 어렵진 않던데.”

“연습을 해 와야 될 거 아냐 이년아.”

동작을 틀린 채린에게 마구마구 핀잔을 주고 있는 아이들을 두고 명전은 촬영을 종료했다. 촬영을 해 달라고 해서 해 주고 있긴 하다만 도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건지.

“이거 하고 있는 이유가 뭔데?”

“응?”

“틱톡에 올리려고?”

명전은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생각에 잠기는 듯한 표정이 된 3인방.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수현이었다.

“그것도 있고, 이번에 축제 할때 이걸로 나가려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솔직히 말해서 이때 아니면 못 하잖아. 그렇지 않나?”

“응?”

다인의 말에, 명전은 무의식적으로 반문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서. 그리고 그것은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동일하게 반문하는 느낌.

“뭐, 사실 언제 해도 상관은 없긴 하지. 하지만 이런 건 지금 아니면 못하잖아. 우리도 대학교 가고, 취업시장 가고, 그러면 뭐 할 시간도 없고 할 나이도 아니고…”

“그런가?”

명전은 마음속으로 그 이야기를 굴려보았다. 지금 아니면 못 한다. 진짜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진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니거든. 맞거든.”

서로 맞다 아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3인방을 내버려두고, 명전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어린 시절의 일들은, 확실히 그 이후의 일들보다… ‘밀도’가 다르다.

딱 지금 이때. 별 것 아닌데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같이 하면 뭔가 재미있고 행복한. 인생 전체로 보면 별 것 아닌 몇년에 불과하지만… 인생 전체를 살아가면서 다시금 추억하고 추억하는 시기.

그렇기에 최대한 즐겁게 보내야 하는 시기다. 이후의 인생이 힘들다면, 추억삼아 버텨나갈 수 있도록. 이후의 인생이 즐겁다면, 원동력으로 한발 더 뻗어나갈 수 있도록.

‘그거다.

“야, 빨리 시작해봐. 찍게.”

“갑자기 뭐임?”

명전은 아이들의 쓰잘데기 없는 말다툼을 끊었다. 명전의 말에, 뜬금없이 뭐냐고 물어보면서도 아이들은 다시 자리를 잡고, 노래를 틀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노래에 따라 춤을 추는 아이들. 어설프게 틀리는 부분도 있고, 혹은 잘 해석한 부분도 있다. 제멋대로 하는 부분도 있고, 제대로 잘 따라한 부분도 있다.

아마 이 아이들의 연습 페이스대로라면… 절대 원곡과 흡사한 퍼포먼스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건 충분한 시간을 들여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 나올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닌 과정이니까.

나와 너와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

그게 핵심이니까.


[오늘 연습은 캔슬]

[왜? 무슨 일 있어?]

[지금 잠시 중요한 게 있어서]

[나쁜 일은 아닌데]

[나중에 따로 말해줄게]

알겠다는 대답을 들은 후, 명전은 카카오톡을 껐다. 그는 이런 식으로 일정을 급하게 변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부모님 상 같은 거라도 나는 게 아니라면, 웬만하면 일정을 다 소화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뭐 부모님 상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 정도로 급한 일이니까.

“오늘 저녁은 안 먹을게요.”

“왜? 무슨 일 있어?”

“지금 뭔가 떠오르는 게 있어서요. 방문은 열지 말아주세요. 집중이 깨질 것 같아서.”

이혜인 씨에게도 미리 말해둔 후 명전은 방문을 닫았다. 딱 뭔가 떠오를 것처럼 머릿속이 간질간질하다.

‘컨셉은… 그걸로 가자.

유행을 따라간다고 욕을 먹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서명전’을 아는 사람이거나, ‘서명전’의 제자로 ‘하수연’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양반이 왜 이상한 거 하고 있는지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래도 괜찮지 않은가?

누구도 어려본 시절 없이 늙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모두가 겪어본 시절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두에게 공감대를 살 수 밖에 없는.

무난하다못해 진부하지만… 그렇기에 다시금 호명한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그리고 이 나이대라면,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그런 주제.

‘생각해보면, EP를 제작하기에 적당한 레퍼런스도 있군.

일본의 밴드… 사일런트 사이렌(Silent Siren). 연령대가 살짝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구성 자체는 적절하다. 키보드를 포함한 4인 여성 밴드.

작사는, 글쎄. 이서에게 맡길까. 멜로디와 편곡은 명전 본인이 하면 되는 일.

멜로디를 만들어본다. 어떤 느낌으로 가야 할까. 청춘이라고 하면 느껴지는, 푸른 하늘에 떠 있는 구름 한점과 같은 그런 싱그러운 멜로디? 너무 단순한 해석 아닐까.

오늘 점심의 하늘을 생각해본다. 살짝 우중충했고, 비는 내리지 않지만… 흘러가는 구름은 꽤나 많았던 하늘. 그런 어둑어둑한 분위기 속에서도 아이들은 꽤나 쾌활하게 움직였다.

그런 식으로 해보자.

너무 쾌활한 느낌을 주고 싶지는 않다. 그러므로 단조로. 템포는 살짝 느릿하게.

기타는 메인 멜로디를 연주하고. 베이스는 J-Rock식의 리드미컬한 라인을, 사운드를 줄여서 연주시키고. 드럼은 통통 튀는 사운드를 준다. 키보드는 약간 멀리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아련한 느낌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과거의 자신을 추억할 수 있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춤을 추던 아이들의 영상을 틀어본다. 춤을 추다 실패할때마다 중간중간에, 서로 장난식으로 다투면서 이야기를 하던 그 대화들.

그 대화들을 배경 화이트노이즈로 만들어 넣는다. 어느 고등학교 하교길을 걷는 것처럼. 들려오는 아이들의 이야기 소리를 배경으로, 청춘의 한 페이지를 써내려가고 있는 것처럼.

제목은, 글쎄. 어떤 것으로 지을까 하다가, 명전은 문장 하나를 떠올렸다.

돌아오라, 잿빛의 나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