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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주가 시작되었는데, 들려오는 소리는 익숙하지만 생소하다. 익히 들어본 멜로디가 전혀 들어보지 못한 느낌으로 연주되고 있다. 분명 [어느 그늘진 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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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이 아니라 밴드로 연주되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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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하기에는 사운드의 느낌이 다르다고 세윤은 생각했다. 아예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느낌은 아니지만 흔하게 들어본 것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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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그늘진 날] 또한 슬픈 느낌을 내는 발라드다. ‘락발라드’라고 하던가? 아픈 사랑과 이별에 대한 가사와 주현의 특기인 파워풀하고 호소력있는 고음이 잔뜩 들어가 있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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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연주되고 있는 [어느 그늘진 날]의 간주는 조금 달랐다. 이전의 [그늘진 날]이 여자친구랑 깨진 20대 남자애가 술 먹고 청승부리며 노래방에서 부를 것 같은 노래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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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그늘진 날]은 진짜 인생에서 크나큰 아픔을 겪은 사람이 그를 잊어버리기 위해 절규하며 부를 것 같은 노래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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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그늘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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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만나러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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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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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점을 가지던 와중 들려오는 보컬에, 세윤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는 천둥같은 함성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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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대 스크린으로 주현의 모습이 띄워지자, 다시 한번 또 크게 함성이 내질러진다. 세윤은 있는 힘껏 비명을 내지르다가, 귀를 막고 있는 세현의 등짝을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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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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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길을 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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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이 가라앉고 난 후 팬들이 처음 느낀 감정은 기분 좋은 당혹감이었다. 곡이 왜 이러지? 이런 곡을 낸 적은 없었는데. 특별히 콘서트판으로 편곡을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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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당혹해하면서도 ‘특별 콘서트 버전 편곡’을 듣는다는 것에 행운을 느꼈다. [어느 그늘진 날]은 주현의 대표곡 중 하나이지만, 뭔가 특색있는 곡이라고 하긴 힘든 평범한 이지리스닝 락발라드 곡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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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그늘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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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디에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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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요동치는 멜로디. 몸서리쳐지는 상실감. 울부짖어지는 슬픔.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은 수면 아래로 꼭꼭 눌러담아져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을 보면 수면 아래의 거대함을 짐작할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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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누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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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길을 걸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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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더 몰입되는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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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윤은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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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없이 많은 주현의 콘서트를 참석하면서 이렇게 초반부터 관객을 휘어잡고 몰입시킨 콘서트는 없었다. 초반부터 감정적인 노래를 불러서라기에는 이전에도 이런 구성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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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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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윤은 실없이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바로 이유가 덮쳐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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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찾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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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곡대로라면 끝도 없이 내질러져야 할 클라이막스. 하지만 들리는 것은 절제된 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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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관객석의 고조된 감정들이 식어버리기 직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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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소리가 폭발했다. 살짝 거칠고 중후한 톤을 가지고 하늘 끝까지 올라가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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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스크린에는 세션 밴드의 화면이 띄워진다. 시선을 살짝 내리깐 상태로 보컬의 감정을 그대로 이어받아 내지르는 기타 솔로. 직선으로 쭉 뻗어나가면서도 유려하게 굽이치는 그 연주를… 가느다란 두 손으로 구현해내는 여자아이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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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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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인물이 띄워짐으로 인해 생겨난 웅성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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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은 한순간이다. 관객들은 금새 연주에 몰입했다… 정확히 말하면 기타 연주가 관객들로 하여금 몰입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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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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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석에서 네-! 라는 소리가 쏟아진다. 세윤 또한 대답을 내지르며 세현이 뭘 하고 있는지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대답 대신 고개를 연신 흔들며 감동의 박수를 치고 있는 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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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익숙한 곡인데 전혀 다른 연주가 나와서 놀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콘서트를 위해 특별히! 준비된 곡이에요. 우선 그 전에, 세션 밴드분들부터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스트링 파트 박지환 님! 김혁수 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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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이 한명한명을 호명할 때마다, 스크린에 세션의 모습이 띄워진다. 저마다의 포즈를 하며 인사를 하는 세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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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세션 밴드의 메인! 이 곡의 편곡을 맡아주신! 밴드 ‘그룹 사운드’ 의 메인 베이스 최이서 님! 키보드 정현아 님! 드럼 유서하 님! 마지막으로… 밴드 마스터 하수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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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레와도 같은 박수가 쏟아지는 가운데, 밴드 멤버들의 반응은 각자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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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웃으며 손을 흔드는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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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지 키보드 뒤로 숨는 정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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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 연주를 짤막하게 보여주는 유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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엷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이는 하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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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밴드 세션들, 연습하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 하수연 님은 그야말로 천재 그 자체입니다. 방금 들으셨던 곡은, 하수연 님이 혼자서 [어느 그늘진 날]을 며칠만에 편곡해서 만드신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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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일화를 설명하다가 하수연의 천재성을 찬양하기 시작한 주현. 꽤나 감명이 깊었는지, 주현의 ‘하수연’ 찬양 토크는 스태프가 다음 곡을 시작하라는 신호를 보낼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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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인, 드라마 OST [만남이 끝나기 전에] 를 연주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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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곡보다 더 큰 박수와 함성을 뒤로한 채, 명전은 빠르게 스태프에게 손짓을 하며 장비 세팅에 들어갔다. 콘서트의 클라이막스가 되는 부분을 준비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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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곡, 블루스 곡을 부르기로 됐잖아요? 이 김에 뭔가 발라드 가수로만 되어있는 제 이미지를 바꾸고 싶은데. 콘서트에서 부를만한 곡이 없을까요? 유명하면서도 안 유명하고, 뭐 그런 락 관련 곡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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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당시 주현이 명전에게 던졌던 질문. 명전은 ‘아니 왜 세션한테 이런 질문을 하고 앉아있나’ 싶었지만, 주현으로써는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딱 봐도 천재같아 보이는 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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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 또한 자신을 재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짜 천재가 있다면 나이고 경력이고 간에 그런 사람에게 의견을 듣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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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하면서도 안 유명한 곡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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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좀 알려져서 노래 좀 파는 사람은 들어봤지만, 약간 좀 색다르고 신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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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곤란한 질문이었지만 명전은 몇초 정도 고민하다가 대답을 해 주었다. 주현은 그 곡에 대해서 “너바나 곡 아니에요?” 라고 말했지만, “데이비드 보위 곡이에요.” 라는 수연의 말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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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세션 밴드 구역은, 작은 라이브클럽처럼 꾸며져 있다. 옹기종기 세션 밴드들이 모여 앉은 가운데 주현은 작은 의자에 앉아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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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곡은, 제가 좋아하는 곡 중 하나를 커버하려고 합니다. 커버곡은 꽤나 오랜만이고, 단콘에서는 완전 처음이네요. 오늘 처음으로 시도하는 게 뭔가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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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 하며 웃는 주현과, 괜찮다, 좋다 등을 연발하며 박수를 치는 관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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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들어가겠습니다.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The Man who sold the world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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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적으로 터져나온 박수와 함께 곡이 연주되기 시작한다. 데이비드 보위의 심정을 그대로 나타낸 듯한 사이케델릭하면서도 불안한 느낌의 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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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들려온 나지막히 읇조리는 듯한 주현의 목소리는 관객들에게 작은 충격을 주었다. 항상 발라드만 불러오던 주현이 이런 곡도 시도할 수 있구나. 확실히 바뀔때도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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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기타, 하수연이 더블링을 시작했을 때… 관객들은 두번째 충격을 받았다. 이것은 그냥 순수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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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 어울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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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윤은 정신이 번뜩 들었다. 주현의 유도에 따라 관객석에서 울려퍼지는 천둥과도 같은 박수 소리. 그녀 또한 무의식적으로 치고 있던 박수를 이어나가며… 정신을 잃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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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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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이 넘게 주현을 덕질해오면서, 그리고 단콘을 다니면서, 음방을 사수하고 앨범을 들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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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윤은 한번도 주현에게 이런 면모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영원히 감미롭거나 슬픈 발라드를 불러줄 것이며, 그녀 또한 영원히 그런 곡을 들으며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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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각의 담장은 오늘부로 허물어져버렸다. 바로 무대 중앙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 여고생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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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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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Who Sold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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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이 나는지 연신 2절을 반복하며 관객들에게 떼창을 유도하고 있는 주현. 스크린은 빠르게 글자를 띄우며 관객들에게 어떤 부분을 불러야 할지 보여주었으며, 관객들은 떠듬떠듬이나마 리듬을 따라가며 난생 처음 듣는 노래를 떼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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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과정은, 저 여고생에 의해서 매끄럽게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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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윤은 볼 수 있었다. 기타를 연주하며 연신 눈짓과 몸짓으로 밴드를 지휘하는 ‘하수연’을. 발구름과 고개, 그리고 세윤으로써는 알 수 없는 비언어적 동작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주현의 애드립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도록 밴드를 유도하는 ‘하수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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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애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아까 주현 오빠가 뭐라고 소개를 해 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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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윤은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떠오르는 게 없어, 그녀는 콘서트가 끝난 후 팬카페에 질문글을 올리기로 결심했다. 그녀와 같은 결심을 하고 있는 사람의 수가 상당히 많을 줄은 꿈에도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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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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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가 끝나자, 스태프들과 세션 밴드가 모여서 서로 우렁차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쏟아지는 박수. 주현은 박수를 치다 바로 명전에게 걸어와 악수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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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씨,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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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뭘… 저는 별로 한 게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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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돈 받고 이정도 일 해 줬으면 세상 사람들 다 굶어죽겠다’ 라고 명전은 생각했지만, 그런 말은 꺼내면 안 된다. 원래 신인은 손해봐가면서 일을 해 줘야 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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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진짜 고생 많으셨어요. 수연씨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만족스러운 콘서트는 못 했을 겁니다. 혹시 서울콘 말고 지방콘에 합류하실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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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학교를 가야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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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죠! 학생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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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연쩍은 듯 웃는 주현. 머리를 살짝 꼬는 명전을 두고, 주현은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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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이전부터 뭔가 이제는 좀 다른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있었는데… 수연 님과 우리 ‘그룹 사운드’ 밴드 여러분들 덕에, 동기부여를 받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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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주현이 꺼낸 것은, 명함 두장이었다. 주현의 연락처와 이메일이 적혀 있는 명함과, 뭔지 모를 명함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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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음반이라거나 음원 발매하실 생각 있으시다면, 그리고 뭐 남자 보컬이 필요하시다면… 한번 연락주세요. 꼭 피쳐링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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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쪽은 음반 관련해서 제가 잘 아는 분들인데요. 믹싱 마스터링 관련해서는 국내에서 3대 기획사 포함하고도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갈만한 분들입니다. 스케줄이 꽉차계시긴 한데, 저랑 친하셔서 제가 소개했다고 하면 작업 해주실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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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두 명함을 받아들고는 주현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멀어지는 주현의 모습을 보며, 이서와 아이들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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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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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싱 스튜디오 명함. 그리고 연락 주면 피쳐링 해준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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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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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호하는 아이들을 두고 명전은 생각했다. 이런 것도 생겼으니 확실히 Ep 제작에 들어가기엔 적절한 시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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