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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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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학교 정문에 등장한 검은색 개인 택시. 학교에 무슨 택시를 타고 오는 애가 있나. 지각할 타이밍도 아닌데… 하며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사이, 한 소녀가 내려 트렁크에서 길쭉한 무엇인가를 꺼낸다.
아이들이 은근슬쩍 훔쳐본 얼굴은, 어디서 많이 보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차가운 인상에 살짝 눈꼬리가 올라간. 전혀 순하지 않아보이는, 무표정으로 상대를 응시하면 뭔가 굳어질 것만 같은… 하수연의 얼굴.
그 모습을 보고 몇몇은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최근 많이 바뀌었다고 하나 악명은 쉽게 사라지지 않기에.
하지만 기타 하드케이스와 캐리어를 각각 한 손에 든 수연은, 아이들을 보고 손을 흔들려다… 두 손이 봉쇄되었음을 눈치채고 멋쩍은 듯이 웃음을 흘렸다.
“하수연~ 그거 뭔데?”
“기타.”
“웬 기타?”
“박다인이 뭐 수행평가때 치는 거 안 보여주면 옥상에서 뛰어내릴거라고 무슨 소리를 창문 깨지도록 질러대서.”
푸념을 내뱉은 수연이었지만, 딱히 적대적이라거나 진심으로 귀찮다던가 하는 분위기는 따로 없었다. 그저 친구를 가볍게 타박하는 듯한 말투.
그런 대답에, 아이들 사이에서 저도 모르게 살짝 긴장되었던 분위기가 풀어진다. 하지만 수연은 그에 대해서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학교 안으로 캐리어를 끌고 들어갔다.
“어, 악기를 마음대로 가지고 오라고 이야기는 했는데…”
난감해 하는 음악 선생의 눈치. 명전은 그에 대해서 대답을 하기보다는, 눈을 연신 빛내고 있는 옆의 다인을 가리켰다.
“저는 그냥 리코더로 보고 싶었는데, 얘가 자꾸 기타를 가져오라고 해서요.”
“아니 뭐! 수행평가에 진심인 건 좋은 일이니까.”
“그래. 내가 아니면 또 어디서 나 기타 잘 친다~ 이러면서 자랑을 하겠어?”
“할 데 많아.”
명전은 다인의 이야기에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살짝 치워진 음악실 중간에 의자를 놓고 앰프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무선 앰프라, 앰프 세팅을 하는 지랄이 필요없어 다행이라고 명전은 생각했다.
“곡은 어떤 거 할 거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요.”
“뭐?”
그 이야기를 듣고 당황하는 음악 선생. 사실 명단에 반쯤 장난으로 넣어놓은 곡이고, 요 몇년 동안 시도하려는 아이 조차 한명도 없었던 곡. 아이들에게 괜찮은 곡 하나 들려주자는 느낌으로 넣어놓았던 곡인데, 왜 갑자기 이 애가 하겠다고 나서는가.
‘기타를 좀 친다는 건가?”
애초에 일렉 기타로 치는 곡도 아니다.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árrega)가 살아있던 시절에는 일렉기타라는 것 자체가 없었으니까. 단 한번도 멈추지 않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트레몰로 주법이 인상적인 곡.
“정말 칠 거야? 그 곡으로?”
“네.”
수연의 단호한 말에, 선생은 가방 안에 넣어놓았던 야마하의 사일런트 기타를 꺼냈다. 통기타를 휴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조립식 기타. 아이들의 수행평가에 반주를 하기 위해서 가져온 도구. 그 신기한 외관에 아이들은 두번째로 오~ 하는 찬사를 보냈다.
“선생님이 먼저 반주 시작할게.”
“네.”
그녀는 반주를 떠올렸다. 어떤 음으로 시작하더라? 그녀도 쳐 본지는 한참 된 곡이라, 떠올리기 쉽지 않았다.
긴가민가하면서 치기 시작한 반주에 이내 메인 기타가 따라붙는다. 클래식 기타 특유의 따뜻한 소리가, 톤 조절을 통해 약간이나마 재현된다.
“와 미친 하수연…”
“왤케 잘함?”
“아니 쟤가 저러면 우리 전부 다 빵점 아님? 상대평가 아냐 이거?”
“절대평가야…”
아이들의 찬사와 한심한 대화가 이어지는 와중에, 수연의 트레몰로가 계속 이어진다. 클래식 기타를 계속 쳐온 사람 만큼의 탄현 실력은 아니나, 고등학생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는 수연.
‘더 들을 것도 없이 만점이겠네.
30초 정도의 연주한 시점에서, 음악 선생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연주는 멈추지 않았다.
평상시에는 듣기 힘든, 공을 들인 라이브 연주. 지금 연주하고 있는 학생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런 곡은 꼭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에… 그녀는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 * *
학교가 끝난 후. 한 곡만 더 연주해달라는 아이들에게 붙잡혀, 명전은 필립 세이스(Philip Sayce)의 Alchemy를 연주해주었다. 그러자 무슨 썰물처럼 우루루 도망가버리는 아이들.
그나마 들어주던 다인도, 곡이 끝난 다음 “너무 잘하는데… 내 취향은 아닌 것 같아. 너무 늙은 분들 취향 아냐?” 라는 말을 남겼다.
‘그 정돈가…’
그래도 필립 세이스 정도면 나름대로 젊은 음악가 아닌가 하고 명전은 생각했다. 당장 Alchemy는 2012년 곡이고… 라고 생각해보니, 2012년이 벌써 10년 전이었다. 세월은 왜 이리도 빨리 가는지.
명전은 그렇게 푸념하며, 짐을 들고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중앙 계단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왠지 어린 시절에 각인된 DNA가 그로 하여금 중앙 계단을 못 쓰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들려오는 베이스 소리와 환호 소리. 가감없이 뿜어지는 저음은, 바닥을 진동시키며 그의 발로 이어지는 듯 했다. 저도 모르게 가 본 다른 반에는, 이리저리 기웃대는 고등학생들에 묻힌 누군가가 있었다.
“어! 수연쓰!”
고개를 내민 것은, 최이서였다.
“뭐 해?”
“애들이 베이스 좀 쳐봐달라고 해서. 최근에 혼자 연습한 곡 몇개 쳐주고 있었지.”
반주는 유튜브에 맡긴 채, 베이스와 보컬만을 부르고 있던 최이서. 그런 아이들에게 환호하던 와중, 갑자기 난입한 하수연에 의해 삽시간에 조용해지는 교실.
수연이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년 동안 종로 지역에서 살면서 봤던 모습이 워낙 뇌리에 남았기에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었다.
“수연… 언니도 기타 쳤었어요?”
이서와의 친분으로 2학년 교실에서 음악을 듣고 있던 1학년 아이. 살짝 주눅이 든 기세로 물어보는 질문에, 수연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지 모르나보네.
대부분의 상황에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기억을 잃은) 수연. 하지만 이서는 이제 조금이나마 수연의 표정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수연에게 말을 건넸다.
“너 이 곡 알아?”
“음… 대충은 알지.”
“어떻게?”
자신이 물어보고도 돌아온 대답에 경악하는 이서. 수연은 한심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너 제발 이거 좋다고 들어보라고 제발 한번 쳐보자고 맨날천날 광고해댄 그 곡 아니냐. 귀에 피가 날 지경이라 귀로 따서 한두번은 쳐 봤지. 아까 초반부도 들었기도 하고.”
“오… 그럼 같이 칠래?”
이서의 말에 눈치를 보며 조금씩 오~ 소리를 보내는 아이들. 수연은 한숨을 푹 쉬고는, 하드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냈다. 갑자기 결성된 공연과, 다시금 쏟아지는 환호.
이서는 꽤 활기차게 웃었다. 요즘 십대들 사이에서 갑자기 불기 시작한 일본 음악 열풍. 이서는 근원이 그 쪽이었기에, 남들 앞에서 보여줄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어 즐겁게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가온 음악 수행평가 시간.
이서는 못이기는 척 하며 베이스를 들고 왔고, 만점을 받았고, “베이스 들고 온 김에 몇곡 칠 수 밖에 없겠네~” 같은 태도로 아이들에게 곡을 연주해주었다. 틱톡에 나올 법한 곡 몇개를 쳐 주자 꽤나 신나하던 아이들.
방금 신청받은 곡 또한 틱톡에 꽤나 올라오던 곡이지만, 이서가 좋아하는 곡이기도 했다. 하지만 약간 아쉬운 면이 있었는데…
“잘은 모르니까, 하이라이트 부분 외에는 다 리듬만 쳐 줄게. 대충 애드립으로 때우면 되겠지.”
수연의 말에 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톤을 조절하는 수연.
이게 무슨 상황인지 하고 눈치를 보는 아이들과, 뭔가 핸드폰을 든채로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연주의 준비를 마친 수연을 보고, 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작되는 기타 소리.
‘대충 친다’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손놀림에 아이들이 놀라는 사이. 이서는 적절한 타이밍에 베이스를 넣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랩 파트를 넣으려는 찰나.
옆에서 살짝 뭉그러진 웅얼거림이 들려왔다.
그 일에 이서는 노래를 부르는 것 조차 잊을 뻔 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 하수연이 랩이라니. 게다가 이런 노래를.
‘아니, 랩이 아니잖아 저거.
자세히 들어보니, 랩처럼 들어보는 웅얼거림이었다. 그럼 그렇지. 수연이가 저런 걸 다 외우고 있을 리가 없지.
이서는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해서 슬랩을 쳤다. 들리는 것은, 기타와 베이스. 그리고 리듬을 맞춰주는 아이들의 박수 소리와 발구름 소리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밴드가 이곳에서 공연을 하는 듯 꽉 찬 사운드. 그 사운드의 근원은, 이번에는 꽤나 정확하게 랩을 읊은 수연의 손에서 나오고 있었다. 마치 손이 4개라도 되는 듯 끊임없이 왔다갔다 하며 소리를 비우지 않는 기타.
“와… 실화야?”
계속되는 연주에, 귀가 예민한 아이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저렇게 바삐 움직이면서도, 베이스를 전혀 묻어버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살짝 미숙한 베이스의 장점만 살려주거나, 부족한 점은 슬그머니 덮는 듯한 연주가 지속되고 있다.
마치 돋보일 수 있던, 멋지거나 이뻐보일 수 있던 모든 기회를 독식하던… 이전의 자신과는 이별한 지 오래라고 말하는 듯.
그리고 곡의 중반을 장식하는 파트에서.
이서는 무의식적으로 노래를 부르지 않은 채 수연을 쳐다보았다.
수연 또한 이서를 쳐다보았다. 노래를 부르지 않고 뭐하냐는 눈빛으로, 기타를 계속 치면서.
아주 찰나였지만 순간적으로 묘해진 분위기. 이서는 뻘쭘하다는 듯 노래를 다시 부르며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 * *
“재밌었다.”
“글쎄…”
앵겨오는 이서를 명전은 떼어냈다. 긱백을 멘 채라면 그냥 손으로 밀어냈겠으나, 괜히 하드케이스를 가져온 탓에 그럴 수도 없었다.
“무거워! 좀 떨어져라. 지금 안 그래도 이거 두개때문에 진짜 죽을 것 같다고.”
“들어줄까?”
그 말에, 명전의 어깨에 턱을 괴고 있던 이서가 명전의 캐리어를 낚아챘다.
“아니, 그냥 줘. 어차피 택시 불러 놨으니까. 몇분 기다리면 올 거야.”
“오~ 역시 부잣집 아가씨. 저는 걸어가야겠네요.”
“태워줄까?”
“아니, 운동하는 셈 치고 걸어가지 뭐. 그렇게 무거운 것도 아니고…”
그 말에 명전은 이서를 바라보았다. ‘하수연’ 또한 여자로써는 큰 키긴 했지만, 얘는 무슨 볼때마다 쭉쭉 자라는 느낌이었다. 키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부분에서도…
괜히 명전은 헛기침을 했고, 이서는 얘가 왜 이러나 하는 눈길로 명전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살짝 조용해진 분위기 사이에서, 울려오는 벨소리.
“너… 그런 거 좀 바꿔… 벨소리 좀…”
“불편하지도 않은데 바꿔야 하나?”
아이폰 기본 벨소리가 울리는 와중에, 명전은 하드케이스를 잠시 내려놓고 전화를 받았다. 들려온 목소리는 익숙한 남자의 것.
“수연 학생! 저 임준홍입니다. 통화 괜찮으세요?”
“네. 뭐 지금 집에 가는 중이라.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시나요?”
“그 어, 얼마전에 저희 추모공연 했었잖아요? 수연씨가 기억할라는지 모르겠는데 그때 누가 오셨어요. 인사를 하셨던가? 여튼 그분이 수연씨 공연 너무 잘 봤다고 선물 주고싶다고 하시다가…”
“네?”
무슨 뜬금없는 선물 타령인가 싶어, 명전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순식간에 환희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빈슨 에코렉(Binson Echorec), 그것도 서명전 선생님이 사용하시던 거를 구했다고 하시는데… 이거 관련해서 이야기를 하시고 싶다고 하시는데요. 오늘 방문 가능하시겠습니까?”
“갈게요!! 감사합니다!! 지금 가겠습니다!!”
좀처럼 듣지 못하는 환희에 찬 명전의 목소리에, 이서는 깜짝 놀라 물러섰다. 하지만 명전은 그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당장 그의 장비를 찾으러 가야 했기에.
“어, 어디 가?”
“장비! 장비 찾으러.”
“나도 가면 안 되나?”
이서의 말에, 명전은 이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뭔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 뭐, 안 될 것은 없긴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