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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학교 정문에 등장한 검은색 개인 택시. 학교에 무슨 택시를 타고 오는 애가 있나. 지각할 타이밍도 아닌데… 하며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사이, 한 소녀가 내려 트렁크에서 길쭉한 무엇인가를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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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은근슬쩍 훔쳐본 얼굴은, 어디서 많이 보던 형태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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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인상에 살짝 눈꼬리가 올라간. 전혀 순하지 않아보이는, 무표정으로 상대를 응시하면 뭔가 굳어질 것만 같은… 하수연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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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보고 몇몇은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최근 많이 바뀌었다고 하나 악명은 쉽게 사라지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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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타 하드케이스와 캐리어를 각각 한 손에 든 수연은, 아이들을 보고 손을 흔들려다… 두 손이 봉쇄되었음을 눈치채고 멋쩍은 듯이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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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연~ 그거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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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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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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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인이 뭐 수행평가때 치는 거 안 보여주면 옥상에서 뛰어내릴거라고 무슨 소리를 창문 깨지도록 질러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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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념을 내뱉은 수연이었지만, 딱히 적대적이라거나 진심으로 귀찮다던가 하는 분위기는 따로 없었다. 그저 친구를 가볍게 타박하는 듯한 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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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대답에, 아이들 사이에서 저도 모르게 살짝 긴장되었던 분위기가 풀어진다. 하지만 수연은 그에 대해서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학교 안으로 캐리어를 끌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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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악기를 마음대로 가지고 오라고 이야기는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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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감해 하는 음악 선생의 눈치. 명전은 그에 대해서 대답을 하기보다는, 눈을 연신 빛내고 있는 옆의 다인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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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냥 리코더로 보고 싶었는데, 얘가 자꾸 기타를 가져오라고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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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수행평가에 진심인 건 좋은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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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아니면 또 어디서 나 기타 잘 친다~ 이러면서 자랑을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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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데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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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다인의 이야기에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살짝 치워진 음악실 중간에 의자를 놓고 앰프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무선 앰프라, 앰프 세팅을 하는 지랄이 필요없어 다행이라고 명전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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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은 어떤 거 할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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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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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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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를 듣고 당황하는 음악 선생. 사실 명단에 반쯤 장난으로 넣어놓은 곡이고, 요 몇년 동안 시도하려는 아이 조차 한명도 없었던 곡. 아이들에게 괜찮은 곡 하나 들려주자는 느낌으로 넣어놓았던 곡인데, 왜 갑자기 이 애가 하겠다고 나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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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좀 친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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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일렉 기타로 치는 곡도 아니다.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árrega)가 살아있던 시절에는 일렉기타라는 것 자체가 없었으니까. 단 한번도 멈추지 않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트레몰로 주법이 인상적인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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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칠 거야? 그 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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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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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의 단호한 말에, 선생은 가방 안에 넣어놓았던 야마하의 사일런트 기타를 꺼냈다. 통기타를 휴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조립식 기타. 아이들의 수행평가에 반주를 하기 위해서 가져온 도구. 그 신기한 외관에 아이들은 두번째로 오~ 하는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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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먼저 반주 시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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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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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반주를 떠올렸다. 어떤 음으로 시작하더라? 그녀도 쳐 본지는 한참 된 곡이라, 떠올리기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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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가민가하면서 치기 시작한 반주에 이내 메인 기타가 따라붙는다. 클래식 기타 특유의 따뜻한 소리가, 톤 조절을 통해 약간이나마 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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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미친 하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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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왤케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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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쟤가 저러면 우리 전부 다 빵점 아님? 상대평가 아냐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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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평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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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찬사와 한심한 대화가 이어지는 와중에, 수연의 트레몰로가 계속 이어진다. 클래식 기타를 계속 쳐온 사람 만큼의 탄현 실력은 아니나, 고등학생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는 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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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들을 것도 없이 만점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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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 정도의 연주한 시점에서, 음악 선생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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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주는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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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에는 듣기 힘든, 공을 들인 라이브 연주. 지금 연주하고 있는 학생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런 곡은 꼭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에… 그녀는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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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끝난 후. 한 곡만 더 연주해달라는 아이들에게 붙잡혀, 명전은 필립 세이스(Philip Sayce)의 Alchemy를 연주해주었다. 그러자 무슨 썰물처럼 우루루 도망가버리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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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들어주던 다인도, 곡이 끝난 다음 “너무 잘하는데… 내 취향은 아닌 것 같아. 너무 늙은 분들 취향 아냐?” 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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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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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필립 세이스 정도면 나름대로 젊은 음악가 아닌가 하고 명전은 생각했다. 당장 Alchemy는 2012년 곡이고… 라고 생각해보니, 2012년이 벌써 10년 전이었다. 세월은 왜 이리도 빨리 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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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그렇게 푸념하며, 짐을 들고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중앙 계단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왠지 어린 시절에 각인된 DNA가 그로 하여금 중앙 계단을 못 쓰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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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와중, 들려오는 베이스 소리와 환호 소리. 가감없이 뿜어지는 저음은, 바닥을 진동시키며 그의 발로 이어지는 듯 했다. 저도 모르게 가 본 다른 반에는, 이리저리 기웃대는 고등학생들에 묻힌 누군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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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수연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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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내민 것은, 최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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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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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베이스 좀 쳐봐달라고 해서. 최근에 혼자 연습한 곡 몇개 쳐주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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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주는 유튜브에 맡긴 채, 베이스와 보컬만을 부르고 있던 최이서. 그런 아이들에게 환호하던 와중, 갑자기 난입한 하수연에 의해 삽시간에 조용해지는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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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이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년 동안 종로 지역에서 살면서 봤던 모습이 워낙 뇌리에 남았기에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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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언니도 기타 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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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와의 친분으로 2학년 교실에서 음악을 듣고 있던 1학년 아이. 살짝 주눅이 든 기세로 물어보는 질문에, 수연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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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지 모르나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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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상황에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기억을 잃은) 수연. 하지만 이서는 이제 조금이나마 수연의 표정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수연에게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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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 곡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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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대충은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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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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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물어보고도 돌아온 대답에 경악하는 이서. 수연은 한심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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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제발 이거 좋다고 들어보라고 제발 한번 쳐보자고 맨날천날 광고해댄 그 곡 아니냐. 귀에 피가 날 지경이라 귀로 따서 한두번은 쳐 봤지. 아까 초반부도 들었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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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럼 같이 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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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의 말에 눈치를 보며 조금씩 오~ 소리를 보내는 아이들. 수연은 한숨을 푹 쉬고는, 하드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냈다. 갑자기 결성된 공연과, 다시금 쏟아지는 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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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는 꽤 활기차게 웃었다. 요즘 십대들 사이에서 갑자기 불기 시작한 일본 음악 열풍. 이서는 근원이 그 쪽이었기에, 남들 앞에서 보여줄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어 즐겁게 연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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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가온 음악 수행평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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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는 못이기는 척 하며 베이스를 들고 왔고, 만점을 받았고, “베이스 들고 온 김에 몇곡 칠 수 밖에 없겠네~” 같은 태도로 아이들에게 곡을 연주해주었다. 틱톡에 나올 법한 곡 몇개를 쳐 주자 꽤나 신나하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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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신청받은 곡 또한 틱톡에 꽤나 올라오던 곡이지만, 이서가 좋아하는 곡이기도 했다. 하지만 약간 아쉬운 면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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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은 모르니까, 하이라이트 부분 외에는 다 리듬만 쳐 줄게. 대충 애드립으로 때우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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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의 말에 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톤을 조절하는 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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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상황인지 하고 눈치를 보는 아이들과, 뭔가 핸드폰을 든채로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연주의 준비를 마친 수연을 보고, 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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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작되는 기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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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친다’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손놀림에 아이들이 놀라는 사이. 이서는 적절한 타이밍에 베이스를 넣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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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랩 파트를 넣으려는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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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살짝 뭉그러진 웅얼거림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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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에 이서는 노래를 부르는 것 조차 잊을 뻔 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 하수연이 랩이라니. 게다가 이런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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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랩이 아니잖아 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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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들어보니, 랩처럼 들어보는 웅얼거림이었다. 그럼 그렇지. 수연이가 저런 걸 다 외우고 있을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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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는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해서 슬랩을 쳤다. 들리는 것은, 기타와 베이스. 그리고 리듬을 맞춰주는 아이들의 박수 소리와 발구름 소리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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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밴드가 이곳에서 공연을 하는 듯 꽉 찬 사운드. 그 사운드의 근원은, 이번에는 꽤나 정확하게 랩을 읊은 수연의 손에서 나오고 있었다. 마치 손이 4개라도 되는 듯 끊임없이 왔다갔다 하며 소리를 비우지 않는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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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실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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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연주에, 귀가 예민한 아이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저렇게 바삐 움직이면서도, 베이스를 전혀 묻어버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살짝 미숙한 베이스의 장점만 살려주거나, 부족한 점은 슬그머니 덮는 듯한 연주가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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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돋보일 수 있던, 멋지거나 이뻐보일 수 있던 모든 기회를 독식하던… 이전의 자신과는 이별한 지 오래라고 말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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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곡의 중반을 장식하는 파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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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는 무의식적으로 노래를 부르지 않은 채 수연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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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또한 이서를 쳐다보았다. 노래를 부르지 않고 뭐하냐는 눈빛으로, 기타를 계속 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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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찰나였지만 순간적으로 묘해진 분위기. 이서는 뻘쭘하다는 듯 노래를 다시 부르며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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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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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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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겨오는 이서를 명전은 떼어냈다. 긱백을 멘 채라면 그냥 손으로 밀어냈겠으나, 괜히 하드케이스를 가져온 탓에 그럴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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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워! 좀 떨어져라. 지금 안 그래도 이거 두개때문에 진짜 죽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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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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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명전의 어깨에 턱을 괴고 있던 이서가 명전의 캐리어를 낚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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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냥 줘. 어차피 택시 불러 놨으니까. 몇분 기다리면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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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역시 부잣집 아가씨. 저는 걸어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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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워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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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운동하는 셈 치고 걸어가지 뭐. 그렇게 무거운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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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명전은 이서를 바라보았다. ‘하수연’ 또한 여자로써는 큰 키긴 했지만, 얘는 무슨 볼때마다 쭉쭉 자라는 느낌이었다. 키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부분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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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명전은 헛기침을 했고, 이서는 얘가 왜 이러나 하는 눈길로 명전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살짝 조용해진 분위기 사이에서, 울려오는 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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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런 거 좀 바꿔… 벨소리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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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지도 않은데 바꿔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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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기본 벨소리가 울리는 와중에, 명전은 하드케이스를 잠시 내려놓고 전화를 받았다. 들려온 목소리는 익숙한 남자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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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학생! 저 임준홍입니다. 통화 괜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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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뭐 지금 집에 가는 중이라.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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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 얼마전에 저희 추모공연 했었잖아요? 수연씨가 기억할라는지 모르겠는데 그때 누가 오셨어요. 인사를 하셨던가? 여튼 그분이 수연씨 공연 너무 잘 봤다고 선물 주고싶다고 하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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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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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뜬금없는 선물 타령인가 싶어, 명전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순식간에 환희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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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슨 에코렉(Binson Echorec), 그것도 서명전 선생님이 사용하시던 거를 구했다고 하시는데… 이거 관련해서 이야기를 하시고 싶다고 하시는데요. 오늘 방문 가능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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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게요!! 감사합니다!! 지금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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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듣지 못하는 환희에 찬 명전의 목소리에, 이서는 깜짝 놀라 물러섰다. 하지만 명전은 그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당장 그의 장비를 찾으러 가야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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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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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장비 찾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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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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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의 말에, 명전은 이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뭔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 뭐, 안 될 것은 없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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