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83 lines
12 KiB
Markdown
183 lines
12 KiB
Markdown
|
||
서늘하고 막막한. 음 하나하나가 검은 안개 속에서 나타났다가, 적막 속으로 떨어지는 듯한 그런 피아노 소리. 느리게 울리던 선율은 어느 순간 멈춘다.
|
||
|
||
다른 악기도, 공연장의 조명도. 마치 한 순간 세상이 정지한 것 같은 그런 공백. 그런 어둠 속에서 수연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
||
|
||
이뤄져 가던 일들도
|
||
|
||
붙잡아 왔던 세월도
|
||
|
||
미련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저 목소리에 진득하게 묻어있으리라. 흘러내리는 그 감정은, 침잠하는 본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강렬하다.
|
||
|
||
다시 오래 전
|
||
|
||
마치 없었던 일처럼
|
||
|
||
막막한 바다로 흘러 가
|
||
|
||
다시금 시작되는 멜로디는 기타의 것이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가느다랗게 흐르는 단 하나의 선율. 하나 켜진 스포트라이트 밑에는 수연이 서 있다. 검은 기타를 들고,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마이크만을 바라보며.
|
||
|
||
저기 수많은 별들도
|
||
|
||
매일 봐왔던 지평선도
|
||
|
||
슬피 우는 목소리는 혼자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리라. 같이 들려오는 기타 소리는, 울린다기보다는 걷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마치 힘겹게 하나씩 계단을 오르듯. 하나의 음, 그리고 또 하나의 음.
|
||
|
||
잊혀진 시간 속
|
||
|
||
울리는 고함처럼
|
||
|
||
덧없는 것일 뿐이었어
|
||
|
||
그렇게 가느다랗게 속삭이던 기타는, 보컬이 끝난 후 갑자기 튀어오르며 사람들을 깨운다. 희미하게 조명이 들어오고, 내리쬐는 두 번째 스포트라이트는, 이서를 비추고 있다.
|
||
|
||
기타의 스트로크를 배경으로 한 채, 처음에는 단순하게. 낮게 울리던 저음은 어느새 리듬감 있는 비트로 발전하고, 통통 튀기 시작한다. 정박, 다시 또 엇박, 그리고 또 정박. 복잡하게 교차해가며 울리던 베이스.
|
||
|
||
그리고 세 번째 스포트라이트. 서하와 드럼이 그 아래에 있다. 크게 휘두르는 드럼 스틱에 의해 내려쳐지는 4번의 온음. 그 다음에는 16박의 연타. 마지막 한 번의 끝맺음과 함께,
|
||
|
||
확 밝아지는 공연장.
|
||
|
||
어두웠던 때 스태프들이 빠르게 장식을 해 놓은 것인지, 텅텅 비어있었던 무대는 화려한 꽃들과 싱그러운 식물들로 가득하다.
|
||
|
||
아까 전까지 우울하게 울려퍼지던 멜로디는, 분명 비슷하지만 다른 느낌으로. 엄청난 쾌활함으로 변해 현아의 손끝에서 태어나고 있다. 다른 3개의 악기를 배경으로 뛰어노는 피아노의 음율은 마치 댄스홀에서 흥에 겨워 제멋대로 춤추면서도, 그 움직임과 춤선이 모두 다 아름다워 찬사를 보내게 하는 한명의 무용수를 보는 듯 했다.
|
||
|
||
이뤄져 가던 일들도
|
||
|
||
붙잡아 왔던 세월도
|
||
|
||
그리고 아까 전의 음색과는 판이하게 들리는 수연의 목소리. 덕지덕지 묻어 있던 검정색 감정을 씻어버린 것 같은 울림.
|
||
|
||
다시 오래 전
|
||
|
||
마치 없었던 일처럼
|
||
|
||
막막한 바다로 흘러 가
|
||
|
||
가사도, 리듬도 아까 전과 같은데, 쭉 뻗어나가는 고음과 거기에서 느껴지는 청량함은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가운데.
|
||
|
||
다시 시작할 이야기
|
||
|
||
새로운 책의 한 장을
|
||
|
||
바뀐 가사는… 약간 의미를 알 수 없었던 지난날의 Group Sound가 만들어냈던 가사와는 다르게, 직접적으로.
|
||
|
||
나는 이렇게
|
||
|
||
펜 한자루를 잡고
|
||
|
||
하나의 글귀를 써내려 가
|
||
|
||
어떠한 하나의 이야기를 암시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현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Group Sound의 노래 가사는 전부 다 이서가 쓰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것은 분명, 수연이 썼을 것이라고.
|
||
|
||
‘그럴 수 밖에 없을 것 같아…’
|
||
|
||
어쩌면 뻔뻔할지도 모른다. 동정을 받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솔직하게 느껴지는 감정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
||
|
||
그렇게 보컬이 끝난 후, 마무리될 것 같았던 분위기의 곡. 하지만 그러면서도 연주를 멈추지 않는 악기들.
|
||
|
||
수면 아래에서 공기방울을 올려보내며 조금씩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것 같던 분위기는, 단계적으로 가열되다 이내 수증기를 확 하고 뿜어냈다. 일정한 궤도를 맴돌며 연주되던 3개의 악기는 어느새 탈선한다. 키즈 카페에 아이들을 풀어놓은 것처럼 마구 파바박 튀며 제멋대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세 명.
|
||
|
||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어울리지 않는 음, 분위기를 망치는 음은 단 한번도 연주되지 않았다. 조금씩 변화하는 멜로디, 모티프, 하모니. 그러나 주변의 흐르는 물길들을 받아들이면서도 변화 없이 흘러가는 거대한 강물처럼, 곡의 거대한 테마는 변하지 않고 계속된다.
|
||
|
||
그 중심에는 기타가 있다. 3개의 악기를 보조하는 듯한 역할을 하면서도, 세 아이들이 키즈카페를 뛰어나가지 않도록 보호하는 보호자처럼. 몸짓으로서, 음으로서, 신호로서. 지휘자처럼 세 명을 조율하는 기타.
|
||
|
||
그 역할만을 맡고 있던 기타가 전면에 나서자, 사람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조금씩 빨라지는 템포. 그에 맞춰 수연이 무대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 무대를 내려왔다.
|
||
|
||
“와아아!!”
|
||
|
||
제지하려던 스태프의 몸짓도 허망하게, 수연은 마치 사람들이 비킬 것을 안다는 듯 태연하게 한발짝씩 걸음을 옮겨가며 사람들을 가로질렀다. 평소처럼 무감정하지는 않은, 마치 자신이 있는 이 공간을 실감하고자 하는 듯한. 그런 눈빛이 사람들을 훑고 지나간다.
|
||
|
||
그리고 그녀는 피크에서 손을 떼고, 왼손만으로 기타를 연주하며…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보이다가, 눈 앞의 사람 한명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라도 하자는 듯.
|
||
|
||
“와! 개부럽다!”
|
||
|
||
친구가 흘리는 탄식. 현지도 동감이었다. 조금 안 좋은 자리였더라도 자신이 저기 있었다면! 그러나 어쩌면, 다른 사람들과도 다 악수를 해 줄지도? 하지만 수연은 악수를 한 후, 뭔가를 털어내기라도 한 듯 후련하다는 표정을 하며 무대 위로 다시 올라갔다.
|
||
|
||
다시금 울려퍼지는 메인 멜로디. 이제는 아예 두배 정도로 빨라진 템포. 길었던 연주의 끝을 실감하는 듯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가운데, 기타가 메인 리프를 연주한 후… 일시에 멈추는 연주와 그로 인해 생기는 공백.
|
||
|
||
그 공백은, 관객들의 우레와도 같은 박수가 메꾸어 주었다.
|
||
|
||
* * *
|
||
|
||
돌아가는 날의 공항.
|
||
|
||
그는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에어팟을 꽂은 채로, 유튜브 화면을 쳐다보았다. 불과 어제의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떠 있는 공연 직캠. 어떤 것으로 녹화했는지는 몰라도 꽤나 화질과 음질이 좋아서, 사람들의 댓글이 많이 달려 있었다.
|
||
|
||
[와 두번째 곡 미쳤다]
|
||
|
||
[ㅠㅠㅠㅠ 개부럽 나는 왜 못가지…]
|
||
|
||
[서울공연 기대됨 ㅠㅠㅠㅠㅠ]
|
||
|
||
[아 방학인데 그냥 이거 투어나 따라다니면서 전국여행할걸]
|
||
|
||
[그룹사운드 폼 미쳤다]
|
||
|
||
[극락도 락이라는 걸 오늘 알았습니다]
|
||
|
||
[더 풀어주세요 ㅠㅠㅠ 더보고싶어어어]
|
||
|
||
[왜 매 공연마다 레전드를 찍는건지]
|
||
|
||
주접을 떠는 댓글들. 처음에는 소름이 돋았던 그런, 요새말로 하면 ‘억빠’하는 댓글들이었지만 이제는 많이 적응되었다. 그냥 뭐 그를 그만큼 좋아하는 거겠지… 하고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로. 간혹 ‘오늘은 또 어떤 참신한 내용으로 나를 웃겨줄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
||
|
||
“수연쓰.”
|
||
|
||
상념에 빠져있던 그를 깨운 건, 이서의 손길이었다. 어깨를 툭툭 친 후 그를 부르는 이서. 아까 면세점 구경 간다면서 세 명이서 활기차게 달려가더니, 어느새 혼자 여기 와 있네… 하고 생각하며 그는 에어팟을 귀에서 뺐다.
|
||
|
||
“왜?”
|
||
|
||
“뭐, 하나 물어볼 게 있어서.”
|
||
|
||
“뭔데?”
|
||
|
||
물어볼 게 있다고 말해놓고는 말을 꺼내기가 힘든 건지 우물쭈물하는 그녀. 그의 한쪽 눈썹이 올라가는 것을 본 후, 이서가 말을 꺼냈다.
|
||
|
||
“그 가사 말이지… 그거, 혹시… 혹시 그거, 너 이야기야?”
|
||
|
||
“왜.”
|
||
|
||
“아니, 아니… 아니, 그냥. 그냥 뭐 궁금해서. 원래 가사 안 썼잖아. 어제 리허설때까지만 해도 허밍으로만 했고. 그런데 갑자기 가사를 썼길래, 그냥 궁금해서.”
|
||
|
||
전혀 그냥 궁금해하는 기색이 아닌 것 같은 이서의 표정. 하지만 그는 잠시 머리를 살짝 꼬다가, 어깨를 으쓱대며 이야기했다.
|
||
|
||
“글쎄… 그런 건 다, 받아들이기 나름 아닐까. 뭐라고 말하긴 힘들지. 너도 가사 만들때 이거는 이거다라고 사람들한테 알려주지 않잖아.”
|
||
|
||
“그, 뭐… 으, 어… 그렇긴 하지.”
|
||
|
||
그렇게 말을 하던 이서는, 뭔가 짐작하려는 눈빛을 그에게 보내다 “나 잠시 화장실좀 갔다 올게!” 하며 사라졌다. 전혀 화장실을 가고 싶어하는 그런 눈치는 아니었는데.
|
||
|
||
하지만 그는 그저 피식 웃었다. 이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별 상관 없다. 이제는 털어버릴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고, 기회가 왔기 때문에 쓴 것일 뿐. 그렇게 뭔가 무게를 준 것도 아니요, 그의 삶에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
||
|
||
그저 지나가는 하나의 노래일 뿐이다.
|
||
|
||
* * *
|
||
|
||
그룹 사운드 전국 투어.
|
||
|
||
정식 명칭, ‘Group Sound Nationwide Live Tour’.
|
||
|
||
전국 투어를 시도한 밴드는 많고 많았고, 성공 사례도 너무나도 많아 특별히 이야기할 것은 못 된다. 당장 올해, 그리고 작년, 그리고 재작년… 웬만한 밴드들은 대부분 해마다 혹은 2년, 3년마다 전국 투어를 한다.
|
||
|
||
하지만 인디 밴드의 전국 투어는,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지상파 방송에 몇번은 나오고 차트에 여러번 오르내린 밴드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일. 그리고 그런 밴드조차도 광역시나 큰 도시를 도는 것이 고작이다.
|
||
|
||
그렇기에, Group Sound가 벌인 일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
||
|
||
가장 작기로는 오십석, 혹은 공연장도 아닌 그런 곳. 수익이라고는 전혀 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환경.
|
||
|
||
하지만 Group Sound는 거침없이 그런 곳에 발을 들이밀며 공연을 해나갔다. 하루 걸러 하루 공연을 하는 것은 기본이요, 어느 도시에서 공연을 한 다음 날 바로 다른 도시에서 공연을 하는 일도 있었다.
|
||
|
||
그야말로 적자를 감수하는 미친 짓. 공연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저런 건 그냥 파산하려고 하는 짓이다’ 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의 무모함.
|
||
|
||
하지만 그 결과는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
||
|
||
타인에게 자신있게 들려줄만한, 그런 ‘입소문’ 조차 아주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다. 지인에게 소개한다는 것. 단지 그것뿐인 행위이지만, 현존하는 어떤 마케팅 수단보다 확실하게 신규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 ‘아는 사람’에게 신뢰도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
||
|
||
단지 소개라는 것이 그러할진데, ‘밴드가 직접 와서 음악을 들려주는 행위’는 어떠할까. 평소라면 전혀 듣지 않았을, 아니 존재조차 모를 그럴 밴드. 지상파에 나오면 채널을 돌리거나, ‘이 시끄러운 음악은 뭐냐…’ 라고 생각하며 몇초 듣다가 그칠 그런 곡들.
|
||
|
||
하지만 그 음악의 제작자가 직접 그들에게 다가와서 들려주는 것은, 피할 수도 없었고 피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논타겟 소비자’. 기존의 Group Sound를 소비하던 사람들이 아닌, 그 외 다른 연령대의 소비자들이 직접 관람을 하고. 그리고 입소문을 듣고.
|
||
|
||
그렇게 점점, 그들이 목표했던 대로 ‘바닥에서부터 인기를 다져가며’… Group Sound는 점점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
||
|
||
이번 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