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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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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까지 펼쳐진 메탈 밴드의 공연. 그는 깃발을 어깨에 걸친 채로, 만족스럽게 스테이지를 벗어났다. 아직 공연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땀에 온통 젖어버려 불쾌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제대로 된 슬램을 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이 정도는 놀아줘야 락페지.

‘다음 공연이 누구더라. 메인 서브가…’

걸어가며 생각해보니, 요즘 인기가 많은 애들인 Group Sound였다. 메인에 서브로 설만한 자격은 있고 사람들도 좋아할 것 같긴 하지만, 그가 놀기에는 조금 미묘한. 왜냐하면 뭔가 방방 뛰거나 슬램을 치거나 모싱을 추거나… 그런 과격한 놀이를 하기에는 조금 심심한 노래들이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메인 스테이지에 진입했다. 사람들이 다 여기 몰렸는지 빼곡하게 서 있는 가운데, 거대한 깃발을 휘날리는 채로. 조금씩 비켜주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다른 깃발들이 모여 있는 슬램존 쪽으로 향했다. 그러는 사이 공연이 시작되려는지, 기타가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하수연입니다.”

‘복장이 좀…’

테크웨어에 프릴, 사이하이 삭스라니. 걸그룹인지 아니면 락밴드인지. 두개의 정체성이 혼재된 듯한 복장을 한 그녀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느긋하게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신 분도 있을 것 같고, 저희를 처음 보는 분도 있을 것 같고. 저희의 음악을 들어본 분도, 아닌 분도 계실 것 같구요. 하지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락밴드보다는 가요무대에서 인사를 하는 노년 가수의 느낌이 나는 인사.

“들어주세요, [공중정원].”

하지만 그 감상은, 와아아아-! 하는 소리에 묻힌다. 경쾌하게 튀기는 베이스 슬랩. 그도 많이 들어봤던 노래, [공중정원]의 시작.

‘얘들 대표곡이 이거일텐데, 이걸 첫 번째로 시작해버린다고?

느지막히 일어나 창밖을 보면

저멀리 하늘에 뭔가 떠 있네

아무리 쳐다봐도 알 수가 없는

“종이학, 원형도넛, 그리고 공중정원!”

첫곡부터 터져나오는 떼창. 기타가 손을 저으며 떼창을 유도하는 동안, 베이스는 열심히 피킹을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살짝 어려운 리듬에도 불구하고, 단 한 파트도 놓치지 않고 따라 부르는 관객들. 그는 그 모습을 보며 인기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이거 말고도 많다, 그런 자신감인가.

동시에 그렇게도 생각했다. 보통 히트곡은 공연의 하이라이트 부분에 넣어놓기 마련이다. 하지만 Group Sound는 그와 달리 히트곡을 맨 처음으로 배치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그저 떠 있기만 한

공중정원에 나는 끝없이 올라만 가

“너를 향한 내 마음도! 흘러가는 세월도! 전부 모래 위에 휘청이며 넘어질테니!”

귀를 먹먹하게 할 정도의 떼창. 그는 생각했다. 이렇게 초반부에 기대감을 높여 놓으면, 후반부에는 도대체 어떤 것을 보여주려는 걸까. 보통은 별 거 없지만, 이 애들이라면…

세면대의 칫솔

말라붙은 비누

물때가 낀 거울

그 속에서

“우리느으으은!! 별이 되어어어 갈 지도 몰라!!”

두 번째는, [공중정원] 만은 못하지만 버금가게 히트했다고 볼 수 있는 [별이 되어가는 것]. 만만찮게 터져나오는 떼창에 모여있던 팬들과 아윤은 행복해했다. ‘나만의 작은 밴드’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락페에서도 떼창이 터져나올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템포를 가져가도 되는 건가?

아윤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락페는 잘 모르지만, Group Sound의 곡이 몇개 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 있는 곡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들어 봤지만, 70분짜리 공연인데. 후반부에는 무슨 없는 곡이라도 만들어 부르겠다는 걸까.

“별이 되어가는 것일지도! 몰! 라!”

그러는 가운데 [별이 되어가는 것]이 끝나고, 빠른 템포로 시작되는 다음 곡. 휘몰아치는 곡의 향연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아윤은 생각했다. 집에서 듣던 것과 곡이 다르다고. 현장감의 문제가 아니라, 템포나 음정, 리듬… 아무튼 뭔가 달랐다.

슬슬 중반부로 접어드는 공연. 그는 조금씩 리듬을 타며 무대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진짜 모르겠다.

[공중정원], [별이 되어가는 것], [벨몬트 유리병], [그 거리를 뛰어넘어], [잿빛의 나날들]. Group Sound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곡들이 초반부터 줄줄히 쏟아진 후.

사람들의 반응이 줄어든 것을 보면, 이제부터는 명백히 팬들만 아는… 잘 모르는 곡의 시간이 될 것이 분명했다. 락페에서 극도로 꺼린다는, ‘자기들만 아는 노래’가 나오는 시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리듬을 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그것은 왜일까. 이들의 노래가 신나거나, 댄서블하거나, 다때려부수거나… 아무튼 그런 노는 데에 적합한 그런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속 머무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뭔가 온다.

머리로는 알 수 없지만, 몸으로는 느껴진다. 확연히 빨라진 템포. 살짝 식어든 분위기는, 마치 들끓는 용암의 표면만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얇디 얇은 거죽 아래에는 저 깊은 땅 속 아래에서부터 끓어올라가는 열기가 존재한다. 지금 그가 느끼는 현장의 분위기가 딱 그러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깃발을 들어올렸다. 아무런 맥락없이 휘날리던 깃발들이 조금씩 그에게로 모인다. 아는 깃발도 있고, 모르는 깃발도 있다. 자주 보는 얼굴들에게 인사를 하며, 그는 공간을 넓혀 슬램핏(Slam fit. 슬램을 하기 위해서 만드는 임의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들려온 것은, 그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베이스 리프였다.

분명 처음만 해도 쫀득하게 슬랩을 치던 톤의 베이스였는데. 지금은 육중하게 무거워진 그런 느낌. 저음이 뭔가 물리적으로 무대 아래로 밀고 내려와 그들을 밀어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때, 무대에서 곡명이 외쳐졌다.

“Sternstunde!!”

어느새 다가온 드럼의 굉음과 함께 그들을 덮친 디스토션 톤. 머릿속으로는 아까전과 별반 다른 것이 없다고 느끼면서도, 몸은 다르게 반응한다. 이것은 분위기 자체가 바뀌었다. 마치 냄비 안에서 물이 끓어오르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개구리처럼, 어느새 스테이지는 송두리째 변화해있던 것이다.

‘이런 곡이 아닌데?

아윤은 생각했다.

훨씬 느린 템포와 침체되는 분위기. Group Sound의 첫 EP, [Plastic Nostalgia]에 수록되었던 그녀의 최애곡 중 하나. 잔잔하게 우울에 잠기고 싶을 때 듣는 곡이었던 [Sternstunde]는, 어느새 굉음을 내는 기타와 거의 두 배는 빨라진 템포로 그녀를 맞이하고 있었다. 강력하게 울리는 드럼과 웅웅대는 저음, 강력한 효과음. 그리고 그 위에 올라간 카랑카랑한 보컬과 기타.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걸까.

“뛰어! 뛰어! 뛰어!”

몇십분 전, 시작때만 해도 얌전히 노래를 부르던 ‘도넛단’은 어느새 락페의 광신도가 되어 쉼없이 점프를 하고 있었다. 체력이 바닥나는 것도 모르는 채로. 그녀는 이어지던 생각을 포기하고, 분위기에 합류해 점프를 했다.

기분이 좋았다.

“여러분! 잠시 숨을 골라주세요. 이제 시간상으로 거의 마지막인데!”

“안돼!!” 라는 고함소리. 하지만 베이스는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못들어보신 분도 있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앨범을 사셔야 들을 수 있는 곡이지만! 무대에서 한번 불러보고 싶었던 곡이에요!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일모도원(日暮途遠).”

그는 숨을 고르다가 고개를 번쩍 쳐 들었다. 들어보고 싶었지만, 오프라인 앨범 한정이라는 이야기에 들어보지 못했던 바로 곡. 기타 솔로가 그야말로 환상적이라는 그 곡.

날은 저물고

가는 길은 멀어

나는 거꾸로 걸으며

해야할 일들을 했네

일시에 잠잠해지는 스테이지. 얕게 깔리는 애트모스피어. 숨을 몰아쉬며 잠시 멈추는 관객들과, 시그니쳐 손동작을 선보이는 몇몇 팬들. 잠잠히 연주되는 기타. 그 위에 덮어지는 보컬.

이 손이 힘을 잃어도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돼도

저기 저 너머

수많은 시간에

찬란히 빛날 때까지

“나나나, 나나, 나나나…”

들려온 것은 허밍. 베이스가 아니라 기타의 마이크에서. 따라부르라는 신호인지, 두어번 반복되던 허밍은 곧 관객들의 목소리에 묻힌다. 박자에 맞춰 손을 오르고 내리며 조금씩, 또 조금씩.

“나나나, 나나, 나나나.”

어느새 기타는 멈췄다.

키보드도 멈췄다.

스테이지에 들리는 것은, 박자를 알리는 드럼과 베이스. 관객들의 떼창. 의문을 표할새도 없이 무대에서 던져진 질문.

“여러분, 준비 되셨나요?!”

“네!!”

“목소리가 작아!! 뭐라고요!!”

“네!!!!!”

“한번 더!!! 뭐라고요!!!”

“네!!!!!!!!”

“좋습니다!! 그러면 이제, 하수연 지휘자님의 지휘를 따라서…”

강력한 스트로크가 울려퍼진다.

아르페지오 위에 얹힌 그 소리는, 사람들의 자세를 자연스럽게 낮춰버렸다.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숙이고. 조금씩 리듬을 타며, 다가올 미래를 대비한다. 넓어지는 슬램 핏들. 뒤로 물러난 관객. 충격에 대비하는, 핏 안의 사람들.

어느 순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박자 다음이다. 이제 올 것이 온다. 종아리가 자연스럽게 부풀고, 발끝에 힘이 들어간다. 고개를 슬쩍 들어보니,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제 진짜다. 곧 온다, 다 왔다…

그리고 그들에게 온 것은, 폭풍과도 같은 드럼의 몰아침.

“우와옹아앙아아아악!!”

스피커를 찢어버릴 정도로 울리는 기타. 그를 압도해버리는 관객들의 함성. 앉아 있던 사람은 사력을 다해 점프하고, 슬램 핏 내의 사람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서로와 부딪쳤다.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듯한 에너지가 스테이지에 감돌았다. 모든 힘을 다 쏟아낸 후, 만족감을 느끼는 관객들. 메인 헤드라이너는 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까지.

하지만 끝나지 않은 기타의 소리가, 그들을 다시 한번 자연스럽게 일으켜 세웠다. 좀비처럼 함성에 스러지며 거대한 서클핏을 형성하는 사람들.

“하나! 둘! 셋! 넷! 뛰어! 뛰어! 멈추지 말고!”

베이스의 육성과 기타의 선율은, 모든 힘을 쏟아낸 메인 스테이지의 사람들을 마치 항아리 속 코브라를 다루는 것마냥 자신들의 의도대로 이끌고 있었다.


Group Sound의 연주가 끝난 후.

[고양락페 실시간 후기]

그룹사운드가 걍 다 개찢음

나 그냥 집에갈라다가 지금 지쳐서 쉬는중

서브스테 헤드 못보겠음

ㅅㅂ존나힘들다

  • 뭔일임?

  • ???

  • 헤드 안보고 간다고?

  • 걔들 노래 좋긴한데 찢을 게 있음? 왜 지침? 뭐 억슬램이라도 했냐

ㄴ 걔들 자체가 ㅅㅂ 슬램 서클핏 이런거 존나 유도하면서 사람들 실신시킴 지금 메인 난장판임 쓰러져서 쉬는사람 천지

[오늘 그룹사운드 안보고 좀 밥먹고 헤드 보러 갈라고했는데]

안봤으면 진짜 피눈물나게 후회했을뻔

웨이브랭스 좋은밴드인건 아는데 솔직히 이거만큼 할거라고 생각안됨…

메인은 걍 맨뒤에서 들어야겠음

  • ㅅㅂ 뭔일났나

  • 아 나도 갈걸

  • 이새끼들 낚시하는 거 같지가 않은데 ㅋㅋ 후기가 다 이런 거 보면 ㅋㅋ

[지금 서브스테이지 대참사임]

서브 헤드 올라왔는데 사람들이 스테이지 반도 안채움 ㅋㅋㅋㅋ

그룹사운드 애들이 메인에서 다찢어가지고 그냥 존나 지쳐서 다 쉬는중 ㅋㅋ

나도 솔직히 지금 집에가고싶다

  • 그정도라고??

  • 아 진짜존나부럽다

  • 공연 실황 빨리 안올라오나??

분위기는 너무나도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무대가 망했다거나, 참사가 났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다. 단지 방금 펼쳐진 무대가 너무 좋았을 뿐. 그 때문에, 마치 마약이라도 맞은 듯 도파민을 끊임없이 분출하며 날뛰어대던 관객들이…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을 뿐.

게다가 한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여러분!! 저희 라이브 투어 곧 할 예정이에요!!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너무 즐거웠습니다!!”

관객들이 차마 자신들의 다리로 서지 못할 정도로 뛰어놀게 한 다음, 공연을 마치면서 했던 말. ‘곧 Group Sound의 콘서트가 있을 예정이다’ 라는 이야기. 그 이야기는, 사람들의 머리에 어떤 생각을 심어주었다. ‘곧 라이브 투어가 있을 예정이라는 것은, 지금쯤 예매를 한다는 거겠지? 라는 생각.

그로 인해 사람들은 불쌍한 서브 스테이지 헤드라이너를 찾아가기보다는, 주저앉아 “야 얘들 라이브 투어 어디서 예매하는데?” 를 외쳐대었다.

그리고 딱 이 시점에 맞춰 올라간 라이브 투어 예매 일정 안내 게시물은, 음악 커뮤니티에서 ‘짤’로 공유되며 사람들의 뇌리에 Group Sound Nationwide Live Tour를 각인시켰다. 전국 각지를 돌며 작은 도시든 큰 도시든, 대부분의 시도에 방문한다는 컨셉의 투어를.

고경민이 생각하던 시나리오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