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6 KiB
“그렇게 할 거야.”
아늑한 한옥에 자리잡은 카페. 백열등 불빛이 부드럽게 빛나며 사람들의 등을 쓸어주는 분위기 속에서, 그 말은 수연의 입에서 나지막하게 흘러나왔다. 아무런 일도 아닌 것 같지만, 아무런 일이 아닐 수가 없는 이야기.
“어… 그러니까 정리를 해 보자면.”
이서는 잠시 손을 들어 시선을 주목시킨 후, 하나씩 손가락을 꼽아가며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김지연의 음악편지인가, 거길 나가는데.”
“응.”
“그런데 같이 출연하는 게스트가 그 누구야, 아무튼 그 탑급 그런 사람들이고.”
“응.”
“그래서 저쪽에서 다른 날짜에 나오라고 이야기를 해 줬는데, 너는 지금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는 거지? 그 날짜에 들어가겠다고?”
“그렇지.”
“어… 그거 맞아?”
이서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녀 또한 그들의 음악에 자부심이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 봐야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 길 밖에 없다면 험난한 길이라도 가야겠지만, 햇살이 쨍쨍하게 비치는 기분 좋은 산책로가 있는데 굳이 용암에 몸을 던질 이유가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좀… 힘들 것, 같은데요…”
“아니, 나는 수연이가 맞는 거 같은데.”
하지만 멤버들 사이에서도 갈리는 의견. 이서가 잠시 고민하는 동안, 수연이 대답을 내어놓았다.
“확실히 그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 출연을 하게 되면, 묻힐 가능성도 있겠지. 우리가 공연을 괜찮게 한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건 우리가 아니니까 편집이 될 수도 있겠고, 실수라도 하면 바로 잘릴 거고.”
“그래.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하지만 말이지.”
이어지려던 이서의 말을, 수연은 한 손을 들어 끊었다. 반론을 허락하지 않는 단호함.
“역으로 생각해보면 어때. 그 사람들 사이에서 묻히지 않는다면? 오히려 우리가 더 공연을 잘 해버린다면? 그러면 엄청난 관심을 끌게 되는 거야. 아무리 팬심이 있다 한들 객관적으로 뛰어난 공연이 있으면 그 쪽으로 관심이 돌아갈 수 밖에 없단 말이지. 그렇게 되면 어떨 것 같아?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홍보가 될 수도 있는 거라고. 예를 들어 무슨 유튜브 동영상처럼, ‘탑급 아이돌 씹어먹은 여고생 밴드 덜덜덜’ 이런 식으로.”
“아니 그래도 좀 그렇지 않나…”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어조에 분명한 감정을 담고 이어지는 수연의 말. 이서는 수연을 쳐다보았다. 평소처럼 무표정 같아 보이지만, 조금 달랐다. 눈동자에 맺힌 불길은 마치 용광로처럼 불타오르고 있다. 휘몰아치는 감정의 격류가 그녀에게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나는 솔직히… 열받아. 그렇지 않나?”
“열받는다고?”
“열받는다… 분하다. 뭐 어떤 느낌인지 정확히 설명하긴 힘든데. 아무튼 그냥 화가 나.”
“화가… 왜…”
현아는 그야말로 ‘그정돈가’ 하는 표정으로 수연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서가 보기엔 수연은 정말로 진지했다. 이전에는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표정. 밴드를 하기 전에도, 한 다음에도.
항상 무표정으로 있던 그 시선 속에는 약간의 지루함이 섞여 있었다. 마치 모든 일을 관조하는 듯.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매사를 진지하게 대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은… 감정 없이 바라보던 아이가 바로 수연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가 포기한 것도 아니고, 저쪽에서 포기를 시켰잖아.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은 채로. 단지 그 사람이 생각하기에 ‘너희는 급이 안 된다’라는 이유로. 물론 그쪽에서는 우리를 생각해준 거긴 해. 하지만 나는 이대로는 못 받아들이겠어.”
수연의 말을 들으며, 이서는 진심으로 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화가 나는 일이긴 하지.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거기에 도전을 할 필요가 있나.
하지만…
“그래, 뭐… 그렇게 하자.”
“소맛님…도, 그렇게 생각하신다고요…?”
“나는 뭐 그렇게 생각까진 안 하지만.”
이서는 목을 살짝 주물렀다. 뻐근했던 느낌이 살짝 사라져 기분이 좋았다.
“얘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럼 그냥 하면 되는 거니까. 뭐 그래도 정규앨범때보다 더 힘들게 연습은 안 할거 아냐. 내 말 맞지? 응?”
마지막은 농담조로 말하며 수연을 쳐다본 이서. 하지만 수연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녀는 다시 질문했다.
“응? 맞지? 그때보단 덜 연습할거지? 왜 그렇게 대답을 안해, 불길하게. 대답 좀 해 봐…”
[[단독] 김지연의 음악편지 페이블스, 씩 인디, 유영 출연… 신생 밴드 ‘Group Sound’ 도전장 내밀어]
“야 이거 씨벌 이거 어디에서 퍼진 거야.”
출근해서 일을 하는 와중, 프로그램 관련 기사가 떴다며 들고온 막내. 내용을 받아본 피디는 바로 팀원들을 소집했다. 당장 어제 결정된 내용인데 오늘 기사가 이렇게 뜰 정도면, 어디서 흘러나갔다는 거 아닌가. 물론 프로그램에 심각한 누를 끼치는 그런 일은 아니었다. 굳이 비공개로 해야 될 일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기사가 나갈 일도 아니지 않은가. 그는 인쇄한 A4를 탁탁 책상에 치며 팀원들에게 이야기했다.
“야, 얘들이 들어와 준거 엄청 고마운 거야. 솔직히 얘들 없었으면 그 자리 펑크라고. 이 새끼… 아무튼, 이 놈들 노래도 별로 안 부르려고 몇곡 제한까지 걸어놨는데. 얘네 밴드 없었으면 음악프로인데 농담따먹기나 내보낼 뻔 했잖아. 그런데 어? 이 좀 배려를 해 줘야지… 누구냐 이거?”
하지만 대답이 없는 팀원들. 서로 눈치만 보는 것이, 자진 신고는 전혀 하지 않을 듯 했다. 게다가 그도 여기서 더 밀어붙이긴 애매했고. 뭔가 심각한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진심으로 한명 두명 잡아가며 뭐라 할 수는 없는 노릇.
“하… 골때리네 이거. 일단 다 나가봐. 거, 재현아. 너는 그 기자한테 전화해서 이야기좀 해 주고.”
“네? 어떻게요?”
“아 새끼 거! 형이 말한 거 안 들었냐? 니가 퍼트렸지? 야 일로와봐. 너 좀 맞아야겠다.”
휙 도망가버리는 직원을 보며, 그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마음이 쓰이는 애들이었다. 언젠가는 공개가 될 테지만, 저렇게 악의적인 느낌으로 기사가 나가면 안 될텐데.
피디의 예상대로,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그룹사운드 얘들 누군데?]
[도전장 ㅋㅋㅋㅋㅋㅋ]
[개좆듣보새끼들이 지랄하네]
[흠… 그정돈가]
[기사 내용 가관이네 ㅋㅋ]
[기레기질 아님? 진짜 이럴 수가 있나?]
기자에게 알려진 내용은 별 것 없었다. Group Sound의 출연이 처음에는 고사되었다가, 밴드의 요청으로 다시 성사되었다는 것. 그냥 그러려니 할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연예부 기자들이 누군가. AI도 그들보다 어그로를 잘 끌 수는 없다. 2줄도 안 되는 ‘실제 있었던 일’은 군데군데 살을 붙여 10줄짜리 ‘실제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로 재탄생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 모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신생 밴드 Group Sound는 그들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김지연의 음악편지’에 출연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유명 아이돌 페이블스(Fables), 래퍼 씩 인디(Sick Indi), 싱어송라이터 유영이 출연하기로 확정된 것을 듣고도, ‘충분히’ 자신이 있고 그들 사이에서 경쟁할 수 있다며 강력하게 출연 의사를 밝혔다는 후문이 있다…
물론 허위사실창조율 100%에 가까운 그들의 전적과는 달리… 이번 대안현실은 놀랍게도 사실과 매우 근접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자들은 ‘사실을 때려맞추는 것’보다 ‘기존 출연진의 팬들을 화나게 만들어서 기사를 클릭하게 하는 것’을 원했고, 그게 매우 잘 먹혀들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인터넷은 아주 난리가 났다.
요즘은 좀 살짝 기세가 죽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1군급 아이돌이라고 불리며 음반을 백만장 단위로 팔아치우고 있는 남돌, 페이블스.
제발 공연좀 해 달라, 음반좀 내 달라, 믹테라도 내 달라, 아니면 그냥 돈이라도 가져가달라… 그 외 팬들의 무수한 원성을 들으면서도 꿋꿋히 자기 할 일만 하고 있기로 유명한 래퍼, 씩 인디.
이미 한국에서는 가창력으로 인정받은지 오래. 요즘에는 일본에서 투어까지 하며 무도관 공연까지 성공시킨 아이돌 출신 싱어송라이터, 유영.
그리고 그 셋을 속되게 말해 ‘따버리겠다’며(왜곡이 있지만) 도전장을 던진, 2010년 이후 최고의 데뷔를 이뤄낸 인디밴드 Group Sound까지.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 날을 기대하고, 그냥 어그로를 끌고 싶은 사람들은 팬덤들을 돌아다니면서…
[오늘 페이블스 인스타 라이브했는데 그룹사운드인가 걔들 이야기듣고 비웃더라]
[씩인디 무물하는데 페이블스 그룹사운드 그이야기 나오니까 표정 굳으면서 혀낼름거리더라 ㄷㄷㄷㄷ 씩인디가 혀낼름거리면 진짜 빡친거라던데 ㄷㄷㄷㄷ]
[유영언니 음악편지 이야기 나오니까 정색했어요 ㅠㅠㅠㅠ 부담심하신듯…]
[걔들이 그랬다더라~] 라며 말을 지어내고 라이브에 난입해서 헛소문을 퍼트린다. 그 소문은 재생산되어 팬덤에게 유입되고, 팬덤의 일부는 또 과민반응해 헛소리와 욕설을 늘어놓는다. 그럼 그것은 다시 또 재생산되고, 재생산되고, 재생산된다.
[그놈의 음악편지 씨벌거 그만좀 해라]
그렇게 분위기는 달아오르고, 시간은 점점 흘러간다. 평상시라면 별 것 아닌 스타들의 동시 출연. 하지만 왠지 모르게 대결의 장이 되어버린 ‘김지연의 음악편지’의 방영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다시 해 보자.”
그리고 다시 시작된 연주. 하지만 그는 손을 들어 연주를 멈추게 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박을 맞춘다, 합주를 한다… 그 이전의 문제.
“야, 뭐 우리 갈구는 거 아니면 좀 이야기를 해 봐. 아까부터 계속 하다가 그만두고 하다가 그만두고 그거밖에 안 하잖아.”
침묵하고 있던 그에게 말을 던진 것은 서하였다. 살짝 날이 선 것 같은 말투.
“뭔가 부족한 것 같아.”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돌아오는 의아한 표정들. 그럴 법 했다. 타이틀인 ‘별이 되어가는 것’은, 그야말로 맥시멀한 사운드를 추구한… ‘부족함’이라는 개념 자체가 부족하다고 할만한 곡이었기 때문이다.
“이해가 안 되는데. 뭔가 부족하다고? 부족한 게 있나? 지금 이 트랙에 뭔가 더 넣을 게 오히려 없어 보이는데.”
“그렇긴 해. 그리고 이 곡을 만들 때도, ‘부족함’이 없게 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고. 애초에 그런 곡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는 머리를 꼬았다. 왠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그런 이상한 느낌.
방송 출연을 결정하고 나서, 그는 출연자들의 무대를 계속 돌려보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생각했다. 이 사람들을 이길만한 그런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씩 인디, 유영, 심지어 페이블스까지. 전부 다 자신들의 영역에서 ‘부족함’이라는 게 없는 가수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정상급 남돌이니 래퍼이니 가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이고, 그렇기 때문이 인기가 많은 것이다.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것이 필요할까. 아니, 이대로 가도 충분한 걸까.
“뭔가 부족한데. 뭔가가…”
그는 다시 한번 머리를 꼬았다. 임팩트를 주기 위해서. 저들을 뛰어넘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부족한 것은…
‘부족함이 부족한가?’
뜬금없게도 그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힌트를 얻은 느낌도 들었다. 부족함의 부재. 그들이 만든 곡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뭔가 부족한 것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한번쯤은 덜어낼 필요도 있지 않을까. 맥시멀한 방향에서, 미니멀한 방향으로. 그리고 그 미니멀함의 끝에는…
“저기 쟤들 아냐?”
“어, 그렇네.”
이미 남돌로서는 과장 약간 보태 ‘원로급’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아이돌, 페이블스. 리더 유혁은 복도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멤버의 말에 4명의 여자애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쟤들이 그 아이들인가. 소문의 그 밴드.
“형, 그거 알아요?”
“어떤 거.”
“쟤들, 우리 회사랑도 연관 있는 거.”
“쟤들이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
“그, 걔들 있잖아요. 밴드 하는 애들. 뭔 식스인가 하는 애.”
“야. 너는 후배들 이름도 기억 못해? Projeckt 6잖아.”
혼내는 듯한 유혁의 말에, 막내는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걔네들 중 한명이 쟤들이랑 얽힌 게 있잖아요. 뭐 바이럴 비슷하게 해줬다던데. 그리고 저 리더 애가 이뻐서, 좀 막 비벼보고 그랬대요. 바로 개같이 까이긴 했는데.”
“무슨 바이럴을 해? [공중정원]? 그거 곡 자체는 엄청 좋던데. 그건 바이럴이 필요없는 곡 아닌가?”
“그거 말고, 이전 음반이래요. 한참 전에.”
유혁은 그 말에 스포티파이를 켜 Group Sound를 검색해보았다. [별이 되어가는 것] 이전에, [Plastic Nostalgia]라는 음반이 하나 있었다. 딱히 재생수는 높지 않았다.
“그 곡 듣고 감동해서 라이브때 울고 그랬대요. 그래가지고 막 바이럴 되고 그랬다던가 뭐라던가. 암튼 그래서 뭐…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던데.”
“야. 실없게 그게 무슨 소리냐.”
피식 웃으며 유혁은 안경을 벗고 콘텍트렌즈를 꼈다. 이제 슬 공연 리허설 시간이었다. 저 아이들은… 인사는 나중에 오겠지. 그때 이야기나 좀 나눠볼까.
공연 순서는 그들이 처음이고, Group Sound가 마지막이었다. 그것이 피디의 배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공연을 다 본 다음에 펼쳐지는, 영광이 있을 수도 있고 치욕만 받을 수도 있는 순서.
유혁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잠시 바깥에 걸어나가보았다. “어디 가요?” 라는 말에 “잠시 무대좀 보러.”라고 대답하며. 왠지 모르게 궁금했다. [공중정원]은 잘 들었지만, 과연 저 애들이 진짜 ‘인디 밴드 씬을 부흥시킬 최후의 희망’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그 정도로 뛰어난 애들인지.
리허설 무대로 다가서자, 그를 알아본 스태프들이 인사를 건네왔다. 그 소리에 리허설을 준비하던 밴드 아이들도 잠시 돌아보더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마주 인사를 받아주고는 그는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 그의 등장으로 인해 잠시 멈추었던 리허설이 다시 시작되고, 드럼이 스틱으로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