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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 하고 떨리는 핸드폰. 명전은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을 꺼냈다. 아무리 핸드폰을 걷지 않는다지만, 수업시간에 과감하게 핸드폰을 꺼내는 그 태연함에 다인이 질겁한 사이… 명전은 들어온 이메일을 확인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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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파이오니어 참여 확정 및 일정 지연에 대한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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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대충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는 정도였다. 밴드 파이오니어 사업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하다. 참여 확정되셨다. 그런데 뭐 사업이 뭐 아무튼 뭔가 있어서 연기가 되었다. 1개월 내지는 2개월 뒤 시작할 것 같은데 양해 부탁한다. 꼬우면 그만둬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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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항상 제때 제때 가는 법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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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쓰게 웃으며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선생이 그를 상당히 열받은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책에 고개를 박는 시늉을 하자, 넘어가는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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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이라고 다시 개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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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을 제때 확인해야 해 어쩔 수 없어. 비즈니스가 있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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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의 대답에 다인은 피식 웃었다. 밴드 활동이 잘 되어가는 것 같고, 사과를 하러 다닌다는 것도 얼추 끝나가는 것 같고. 여러모로 다행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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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선배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그건 힘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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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또한 성주희와는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니라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는 잘 몰랐지만, 권지혜의 말로는 아직도 칼을 갈고 있다고 했다. 그런 걸 보면, 어떤 식으로든 절대 곱게 넘어갈 수는 없을 듯 보이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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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본인이 생각이 있다고 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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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은 하품을 했다. 따뜻한 햇살에 잠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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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된 것 같네요. 고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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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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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녹음부스에서 걸어나와, 준홍이 건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세션때 탐앤더슨을 빌려준 댓가로, 뜨고 있는 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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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그때 기타 쓰지도 않았는데 굳이 이걸 녹음해줄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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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미 녹음도 다 뜬 상태이고 하니, 명전은 그렇게 쪼잔하게 굴지 않기로 했다. 결국 이런 유무형의 자산은 쌓아 놓으면 도움이 되는 것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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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공연 하셨던거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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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응? 그 날 오셨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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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파라독스는 유튜브로 라이브를 틀어주는 곳이라서요. 출연한다기에 보고 있었죠. Hysteria의 해석이 아주 멋졌어요. 신스 편곡도 그렇고, 특히 베이스도 정말 괜찮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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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그 말에 괜히 본인이 으쓱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초보 그 자체였던 애가 초보 티를 벗어던지고 다른 사람, 그래도 프로 세션의 칭찬까지 받을 정도가 되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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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 게 아니고, 그 친구가 했어요. 베이스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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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꽤나 재능이 있는 모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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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긴 하죠. 뭐 엄청날 정도는 아니더라도… 남들 앞에서 베이스 칠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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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준홍은 나이가 한참 든 노인을 상대하는 듯한 느낌을 잠시 받았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명전 선생님에게 배운 아이 아닌가. 제자인 만큼 그런 부분을 닮았을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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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준홍은 수연에게 전해줄 소식 2가지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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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단 제 친구가 기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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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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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인터뷰 한번 해볼 생각 있어요? ‘이것이 인디다’ 시리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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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명전은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이것이 인디다’ 인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인디 락 그룹을 소개한다고 명성이 자자했던 기사 시리즈. 명전 또한 몇개 읽어본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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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거 맛 갔다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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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샌가부터 영 기사 질이 안 좋다고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은데. 아니, 그냥 뭐 거기에 실리지 않은 밴드들의 질시였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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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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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기사를 한 줄이라도 더 받는 게 홍보에 도움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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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긴 한데, 어… 밴드원들에게 물어보긴 하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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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아해하는 준홍의 표정. ‘왜 그런 기회를 놓치는…?’ 같은 생각을 하는 듯 했다. 하지만 명전은 또 명전대로 생각이 있었기에 꺼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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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굳이 기사에 나 봐야 큰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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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의 목적은, 불특정 다수에게 밴드를 홍보하는 것이 되겠지. 하지만 명전이 생각하기에, 그룹 사운드는 최소한 현재 시점에서는 홍보가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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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공연을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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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미성년자고,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인 탓에 공연을 뛰지 못한다. 그러므로 홍보를 해 봐야? 관심을 받는 시기를 헛되이 날릴 뿐이다. 그럴 바에는 그냥 신비성을 고수하는 쪽으로 가는게 낫다.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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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두 번째, ‘하수연’의 과거 문제가 있었다. 밴드를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하수연 본인에 대해 밝혀야 할 텐데, 아무리 기사며 언론이 구세대의 것들이라 해도 파급력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면? 대비를 갖춰놓지 않은 상태에서 학폭으로 기사가 펑! 그러면 그가 세워놨던 계획이고 뭐고 다 날라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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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무튼 이유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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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시다면야… 일단 친구에게는 인터뷰를 안 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해 놓겠습니다. 그런데 좋은 기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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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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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얼버무리는 수연을 보고, 준홍은 ‘과도한 관심을 받고 싶지 않다는 건가?’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소식은, 분명 그녀에게 관심을 어느정도 가져다 줄 수 밖에 없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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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나 더 전해드려야 할 소식이 있는데. 이건 수연 양에게도 좋은 소식일 수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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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야기인지 몰라 가만히 그를 쳐다보는 명전에게, 리플렛 한장을 건네오는 준홍. 어떤 공연의 정보가 담겨 있는 리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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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명전은 그 리플렛를 본 뒤… 문자 그대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서 리플렛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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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게 진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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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을 받은 수연의 표정을 보고, 준홍은 아차 싶었다. 아직 회복도 안 되었을 수 있는데 너무한가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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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좀 민감한 부분이긴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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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더이상 미룰 수도, 멈출 수도 없다고 준홍은 생각했다. 일종의 정신적 지주이신 분 아닌가. 더이상 미루었다가는 남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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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될 수 있는 한 꼭 참석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의발전인(衣鉢傳人)이시잖아요. 마음이 안 좋으시더라도 방문이라도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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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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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그 말을 듣긴 했으나, 그 이야기가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충격에 휩싸여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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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그가 본 문구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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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전 추모 콘서트] 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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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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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리플렛을 앞에 놔두고 고민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애초에 자신의 추모 콘서트 같은 걸 하는게 말이 되냐 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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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말이 되긴 했다. 왜냐하면 음악인이라는 놈들은, 원래가 아무튼 ‘~ 기념 콘서트!’ 같은 것을 벌이기 좋아하는 부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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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벌어진 일이겠지. 콘서트는 하고 싶고, 해야 할 것 같고… 뭐 할 만한 거 없나? 아 얼마 전에 서명전이가 죽었었지. 그거 추모한답시고 콘서트 하면 안 되나? 올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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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추모 콘서트라고 하면 내 곡을 불러야 하는데, 내 곡을 부를 만한 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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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다른 건 몰라도 이전의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화는 확실히 잘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기타 실력은 엄청나지만, 작곡 같은 것에는 전혀 재능이 없는 기타리스트. 솔로 앨범 몇개를 냈지만 다 말아먹고, 세션계에서나 이름을 떨쳤던 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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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명전을 기념할만한 곡이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뭐, ‘서명전 씨가 이 곡 세션에 참여했으니 이 곡을 부르죠!’ 라고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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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을 법 하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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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빠져야 하나, 말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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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빠지고 싶은 게 그의 솔직한 소감이긴 했다. 애초에 본인이 살아있는데 - 물론 뭐 사회적으로는 죽었다만 - 죽었다고 추모 콘서트를 하고, 그 콘서트에 본인을 불러다가 ‘흑흑흑 서명전 선생님 왜 돌아가셨나요’ 라고 울기를 바라는 게 지금 상황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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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대외적으로 '하수연'이 '서명전'의 제자인 것을 내세우며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거였다. 이 상황에서, '아 추모 콘서트는 좀' 이러면 완전 호로자식으로 보일테지. 슬픔을 이겨내지 못했다 같은 소리를 하려고 해도, 아주 신나게 잘 살아가고 있는데 뭐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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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세상은 서명전이 하수연이라는 것을 몰랐으니, 그냥 안면몰수하고 참석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세상이 아니라 명전의 수치심이었다. 명전은 자기 자신을 추모하는 상황을 버틸 수 있을 만한 인내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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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아, 잠시 들어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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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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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의자에 몸을 맡긴 채로 힘 없이 대답했다. 들어오는 이혜인 씨. 그녀는 뭔가 말할 듯이 슬금슬금 들어오더니, 명전의 앞에 놓인 리플렛을 보고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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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전 추모 콘서트…? 그, 기타 선생님이라고 한 그 분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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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뭐… 어… 허…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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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콘서트까지 하나보네. 진짜 엄청난 사람이었는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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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이 차마 대답을 못 하는 사이, 리플렛을 집어 든 이혜인 씨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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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 혹시 이 분이 어떤 곡 내셨는지 수연이 너는 아니? 그래도 가르쳐주신 분인데, 한번 들어봐야 할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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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번지 가로등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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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열심히 굴리다, 생각나는 곡 하나를 말했다. 그래도 그 곡은 꽤나 괜찮게 작곡을 했던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다 안 좋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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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유튜브에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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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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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래도 어… 다른 곡은 있을 텐데. '푸른 밤 저 편에' 같은 곡도 불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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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들어본 것 같은데, 음… 그거 변주희 선생님 곡 아니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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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도 불렀어요… 커버곡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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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그렇게 대답했다. 1집 이후 도통 안 되는 작곡에 분개해, 한국의 에릭 클랩튼이 되겠답시고 내놓았던 커버곡. 성적이 꽤나 좋기는 했는데… 정확히 말하면, 그 곡만 좋았다. 그 외에는 영 60년대를 답습했다는 이야기들만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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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좋네~” 라며 유튜브에서 그의 곡을 듣는 이혜인 씨를 보며, 명전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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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일까, 왜 ‘서명전’의 곡이 없는데 왜 ‘하수연’이 정신적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왜 ‘하수연’은 여기 이 자리에서 ‘스승’의 안타까운 역사를 말하고 있어야 되는 것일까. 왜 ‘하수연’이 ‘서명전’의 부끄러운 역사에 고통받아야 하는 것인가. 명전은 그냥 갑자기 기절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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