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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회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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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는 연습실의 계단을 걸어올라가며, 조금 피곤하다는 생각을 했다. 수연의 제안에 따라 시작된 컨셉 회의. 세 번이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회의에, 이서는 점점 피로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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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그래도 좀 눈에 보이는 거라던가… 그런 게 있으면 그나마 좀 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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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 하나 없이 서로가 하고 싶다는 것만 들이밀고 있는 상황. 이서는 살짝 고개를 흔들어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버린 후, 연습실에 입장했다. 이미 기다리고 있는 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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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왤케 빨리 다녀 다들. 약속시간 철저하게 지키는 거 보니까 완전 모범시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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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시간은 원래 철저하게 지키는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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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고정관념! 깨버려야 한다니까. 21세기가 뭐야? 그 뭐냐, 자기 PR의 시대라잖아. 시간을 따라가지 말고, 시간이 따라오게 만들어야지. ‘시간이 따라오는 여자’ 얼마나 간지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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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미친 사람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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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덥잖은 잡담을 나누며, 이서는 연습실에서 커피를 한 잔 내렸다. 점점 떨어져가는 캡슐의 양을 보면 이번에 한번 사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냥 내버려둬도 누군가가 채워놓긴 하겠지만, 연습실도 공짜로 이용하는데 이런 것 쯤은 충분히 해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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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이제 지겹고 귀찮은 회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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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잠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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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스레를 떨며 앉으려 하는 이서를 제지한 것은, 수연의 말이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이서와 다른 아이들을 남겨둔 채, 수연은 연습실의 컴퓨터로 걸어가 조작을 하며 등을 돌리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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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4번째 회의를 하는데.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이 그냥 이야기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일단 그냥 내가 뭔가를 만들어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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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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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어떤 컨셉을 정하고 만든 건 아닌데… 일단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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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은 그렇게 말하고 음악을 틀었다. 이서는 가만히 눈을 감고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었다. 명확하게 어떤 장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노래. 하지만 어렴풋이 머릿속에서 간질거리는, 그 어떤 느낌이… 그런 이미지가 마치 안개 낀 저 너머에서 손짓하는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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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느낌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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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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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정도의 곡이 끝나고, 잠시 찾아온 정적. 그 속에서 수연이 그렇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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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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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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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의 질문에 수연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다. 살짝 식어버린 머그컵 안 한쪽 구석에는, 수증기에 맺혀버린 물방울들이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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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기타로 라인만 잡았고. 멜로디는… 확정은 아니라고 해야 하나. 초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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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서는 기타 라인 한 줄과, 허밍으로 잡은 멜로디. 그리고 DAW로 찍은 것이 분명해보이는 간단한 4박자 드럼 비트 하나. 그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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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서는, 그리고 현아와 서하는… 곡에 잠재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킬만한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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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명은… 글쎄, 뭐라고 해야 할까. 아직 짓지는 않았는데, 일단은 ‘얽매임’이라고 지어놓는 게 낫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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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며 머리칼을 살짝 꼬는 수연. 그 모습을 보며 이서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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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매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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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에 얽매인다는 것일까. 하지만 구속받지 않기를 원하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조금 더 쾌활한. 부정적이라기보다는 긍정적인 느낌. ‘얽매임’을 탈출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있다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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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개인적인 감정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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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Ep는 좀 우리가 겪었던 일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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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을 작곡했던 수연이나, 작사를 했던 이서나. 편곡과 연주에 참여했던 다른 아이들이나. 1집의 이야기는, 그녀들의 일상과는 좀 떨어진 이야기였다. 사춘기(라고 하기엔 좀 험했지만)를 겪었던 수연에게나 해당할 노래가 있었을까. 최소한 작사를 했던 이서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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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단지 제목만 들었을 뿐이지만, 이서는 이것이 분명 수연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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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뭐, 이런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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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의 말에 생각에 빠진 듯한 나머지 둘. 이서는 세 명을 잠시 쳐다보다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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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컨셉으로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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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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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야기를 하는 거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멜로디로 만들어서, 그 다음 완성은 전체가 다 같이 하는. 그런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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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며 이서는 생각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장르니 뭐니 그런 것들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했어야 됐을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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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말에 출연자 진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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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를만한 사람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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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를만한 사람 말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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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래서 부를 수 있는 사람 찾아오면 성혁 피디님이 자르잖아요. 그러면서 왜 자꾸 사람 찾아보라고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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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끈해서 그에게 삿대질을 하는 작가. 성혁은 민망한 목소리로 “아니 영 아닌 애들만 데려오니까 그렇지…” 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더 분개해서 “전에 그 데려온 애들도!” 라며 말을 이어가는 메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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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혁은 딴청을 피우는 척 하며 창문 바깥을 바라보았다. 사람 속도 모르고 불어대는 바람아. 너 어디 가려는 그 길 멈추고 나에게 출연자를 데려다 주렴. 물론 그 출연자는 꽤나 화제성도 되면서도, 노래도 괜찮으면서도, 말솜씨도 좋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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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저는 이제 더 데려올 사람이 없어요. 인맥 다 끌어다 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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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그러면 진짜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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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라디오 피디였다. 매일 22시부터 24시. 그다지 인기가 많지는 않은, 오히려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시간. 아주 심야는 아니지만 그래서 더욱 더 인기가 없는… 그런 라디오를 책임지는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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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씨는 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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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도 뭐 없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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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그냥 불렀던 사람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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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성혁의 혼잣말에 “제발 좀 그렇게 좀 하세요!”를 외치는 작가. 하지만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기색에, 메인 작가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런 그들의 대화를 방해한 것은, 보조 작가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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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 괜찮은 사람 한명 알긴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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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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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하수연’이라고 들어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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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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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혁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앞에는 ‘하수연’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인베이전 2024’에서의 콘서트, ‘버스킹 버스킹’에서의 노래, ‘김지연의 음악편지’에서 나왔던 세션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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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충분했다. 보컬 실력이라던지, 외모라던지, 화제성이라던지, 기타 실력이라던지. 그런 전반적인 것들이 전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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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죠? 완전 블루칩이라니까요. 노래도 잘 부르고. 얼굴도 완전 이쁘고. 기타 실력도 진짜 장난 아니고. 거기에다가 이런 영상 보면 엄청 귀엽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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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긴 하네. 어디서 이런 애를 찾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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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명해요. 뭐 엄청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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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르게 정보의 습득 경로를 얼버무리는 듯한 보조 작가. 성혁은 잠시 이상하다는 듯 작가를 쳐다보고는, 다시 영상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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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야. 이 애, 연락처는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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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은 있긴 한데, 정확하게는 좀 더 연락해봐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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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시간안에 못 맞추지 않나? 괜찮긴 한데,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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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아니아니! 제가 꼭 연락해볼게요. 충분히 시간안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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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자신감을 잃은 말투로 대답하던 보조작가. 하지만 다른 사람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는 메인 작가의 말에, 보조 작가는 마치 그 사람 아니면 안 된다는 듯 화들짝 놀라며 근로의욕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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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되면 나한테 바로 말해주고. 수경씨한테는 확정되면 말해주는 걸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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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가 어머니한테 말씀을 드려 보겠습니다. 따로 전화 안 드리면 허가 됐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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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출연해주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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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럼 그 날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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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그 날 뵙겠습니다! 통화해주시고 출연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날 꼭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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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제가 더 감사합니다. 아무튼 그날 뵙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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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감사합니다를 계속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끊긴 전화. 명전은 잠시 핸드폰을 쳐다보다가 탁자에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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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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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려온 전화는, 라디오 출연 섭외 전화였다. 매일 저녁 22시부터 24시까지 하는 ‘최수경의 늦은 밤 콘서트’. 몇년동안 이어왔던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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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이인가. 꽤 오랜만에 보게 되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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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가수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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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엿한 중견가수가 되어버린 그녀였지만, 첫 시작은 그의 제자로서였다. 기타를 멘 채로 “기타 배우러 왔는데요. 아저씨가 제일 잘 한다면서요.”라고 말하던 수경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거의 몇십년이 지난 뒤의 일이라, 이제는 수경도 제대로 기억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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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예전에는 라디오 DJ다 하면 진짜 무슨 날아다니는 사람들만 그런 거 하는 시대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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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옛날을 떠올려보았다. 즐길 거리가 텔레비전과 라디오밖에 없던 시절에는, 정말로 라디오 DJ의 권력이 강하던 때였다. DJ니 PD니 하던 놈들이 부르면 와서 술값 내고 곡 하나 틀어주겠다 하는 말 하나만 듣고 돌아가던 게 비일비재하던 시대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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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라디오를 듣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게, 그로서는 너무나도 어색했다. 세상이 언제 이렇게 바뀌어버렸는지. 더이상 청취자 여러분 운운하면서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디제이들은 보지 못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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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안타깝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 ‘실시간 소통’ 같은 건, 요즘 사람들이 유튜브를 통해서 훨씬 진화된 방식으로 이미 다 하고 있다는 걸 까먹은 것이 실로 꼰대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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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이거부터 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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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그렇게 생각하며 방을 나섰다. 바깥에는 엄마가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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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부탁 하나 해야 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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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어떤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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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심야 라디오 나가야 돼서 근로 허가 필요할 것 같은데, 허가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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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진짜니?? 라디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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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 없이 말한 이야기에 갑자기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진작 말을 해야지!”라며 갑자기 연락을 돌리려 시도하는 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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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그런 혜인을 말리려 하다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저런 상태로 들어간 혜인은 말리기 대단히 피곤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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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뭔가 준비를 해야 되겠지. 좀 충격적인 걸 해야 할까, 아니면 뭔가 임팩트에 남을 만한 그런 걸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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