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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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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회의인가.

이서는 연습실의 계단을 걸어올라가며, 조금 피곤하다는 생각을 했다. 수연의 제안에 따라 시작된 컨셉 회의. 세 번이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회의에, 이서는 점점 피로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뭔가 그래도 좀 눈에 보이는 거라던가… 그런 게 있으면 그나마 좀 나을 텐데.

그런 것 하나 없이 서로가 하고 싶다는 것만 들이밀고 있는 상황. 이서는 살짝 고개를 흔들어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버린 후, 연습실에 입장했다. 이미 기다리고 있는 세 사람.

“왤케 빨리 다녀 다들. 약속시간 철저하게 지키는 거 보니까 완전 모범시민이네.”

“약속시간은 원래 철저하게 지키는 거… 아닌가요…”

“그런 고정관념! 깨버려야 한다니까. 21세기가 뭐야? 그 뭐냐, 자기 PR의 시대라잖아. 시간을 따라가지 말고, 시간이 따라오게 만들어야지. ‘시간이 따라오는 여자’ 얼마나 간지나냐고.”

“그냥 미친 사람 같은데…”

그렇게 시덥잖은 잡담을 나누며, 이서는 연습실에서 커피를 한 잔 내렸다. 점점 떨어져가는 캡슐의 양을 보면 이번에 한번 사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냥 내버려둬도 누군가가 채워놓긴 하겠지만, 연습실도 공짜로 이용하는데 이런 것 쯤은 충분히 해줘야 하지 않을까.

“자, 그럼 이제 지겹고 귀찮은 회의를…”

“그 전에 잠시만.”

너스레를 떨며 앉으려 하는 이서를 제지한 것은, 수연의 말이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이서와 다른 아이들을 남겨둔 채, 수연은 연습실의 컴퓨터로 걸어가 조작을 하며 등을 돌리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4번째 회의를 하는데.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이 그냥 이야기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일단 그냥 내가 뭔가를 만들어 봤어.”

“뭘? 곡을?”

“응. 어떤 컨셉을 정하고 만든 건 아닌데… 일단 들어봐.”

수연은 그렇게 말하고 음악을 틀었다. 이서는 가만히 눈을 감고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었다. 명확하게 어떤 장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노래. 하지만 어렴풋이 머릿속에서 간질거리는, 그 어떤 느낌이… 그런 이미지가 마치 안개 낀 저 너머에서 손짓하는 듯한.

그런 느낌의 음악.

“어때?”

3분 정도의 곡이 끝나고, 잠시 찾아온 정적. 그 속에서 수연이 그렇게 물었다.

“이게 끝이야?”

“아니.”

서하의 질문에 수연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다. 살짝 식어버린 머그컵 안 한쪽 구석에는, 수증기에 맺혀버린 물방울들이 서려 있었다.

“지금은 기타로 라인만 잡았고. 멜로디는… 확정은 아니라고 해야 하나. 초안이지.”

현재로서는 기타 라인 한 줄과, 허밍으로 잡은 멜로디. 그리고 DAW로 찍은 것이 분명해보이는 간단한 4박자 드럼 비트 하나. 그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곡.

하지만 이서는, 그리고 현아와 서하는… 곡에 잠재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킬만한 힘을.

“곡명은… 글쎄, 뭐라고 해야 할까. 아직 짓지는 않았는데, 일단은 ‘얽매임’이라고 지어놓는 게 낫겠네.”

그렇게 말하며 머리칼을 살짝 꼬는 수연. 그 모습을 보며 이서는 생각했다.

‘얽매임’이라.

어떤 것에 얽매인다는 것일까. 하지만 구속받지 않기를 원하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조금 더 쾌활한. 부정적이라기보다는 긍정적인 느낌. ‘얽매임’을 탈출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있다는 그런.

다소 개인적인 감정의 노래.

‘확실히, Ep는 좀 우리가 겪었던 일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지.

곡을 작곡했던 수연이나, 작사를 했던 이서나. 편곡과 연주에 참여했던 다른 아이들이나. 1집의 이야기는, 그녀들의 일상과는 좀 떨어진 이야기였다. 사춘기(라고 하기엔 좀 험했지만)를 겪었던 수연에게나 해당할 노래가 있었을까. 최소한 작사를 했던 이서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단지 제목만 들었을 뿐이지만, 이서는 이것이 분명 수연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뭐, 이런 느낌이야.”

수연의 말에 생각에 빠진 듯한 나머지 둘. 이서는 세 명을 잠시 쳐다보다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이 컨셉으로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떤?”

“우리 이야기를 하는 거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멜로디로 만들어서, 그 다음 완성은 전체가 다 같이 하는. 그런 형식.”

그렇게 말하며 이서는 생각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장르니 뭐니 그런 것들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했어야 됐을지도 모른다고.


“이번주 주말에 출연자 진짜 없어?”

“네. 부를만한 사람이 없네요.”

“부를만한 사람 말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라고.”

“아니! 그래서 부를 수 있는 사람 찾아오면 성혁 피디님이 자르잖아요. 그러면서 왜 자꾸 사람 찾아보라고 하는 거야.”

발끈해서 그에게 삿대질을 하는 작가. 성혁은 민망한 목소리로 “아니 영 아닌 애들만 데려오니까 그렇지…” 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더 분개해서 “전에 그 데려온 애들도!” 라며 말을 이어가는 메인 작가.

성혁은 딴청을 피우는 척 하며 창문 바깥을 바라보았다. 사람 속도 모르고 불어대는 바람아. 너 어디 가려는 그 길 멈추고 나에게 출연자를 데려다 주렴. 물론 그 출연자는 꽤나 화제성도 되면서도, 노래도 괜찮으면서도, 말솜씨도 좋으면서도…

“아무튼 저는 이제 더 데려올 사람이 없어요. 인맥 다 끌어다 썼고.”

“아씨, 그러면 진짜 없는데.”

그는 라디오 피디였다. 매일 22시부터 24시. 그다지 인기가 많지는 않은, 오히려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시간. 아주 심야는 아니지만 그래서 더욱 더 인기가 없는… 그런 라디오를 책임지는 피디.

“수경씨는 뭐래.”

“그쪽도 뭐 없다고 하죠.”

“아오. 그냥 불렀던 사람 부를까?”

그런 성혁의 혼잣말에 “제발 좀 그렇게 좀 하세요!”를 외치는 작가. 하지만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기색에, 메인 작가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런 그들의 대화를 방해한 것은, 보조 작가의 말이었다.

“어… 저 괜찮은 사람 한명 알긴 하는데요.”

“뭐? 누구?”

“혹시, ‘하수연’이라고 들어보셨어요?”

“괜찮네.”

성혁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앞에는 ‘하수연’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인베이전 2024에서의 콘서트, ‘버스킹 버스킹’에서의 노래, ‘김지연의 음악편지’에서 나왔던 세션 연주.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충분했다. 보컬 실력이라던지, 외모라던지, 화제성이라던지, 기타 실력이라던지. 그런 전반적인 것들이 전부 다.

“괜찮죠? 완전 블루칩이라니까요. 노래도 잘 부르고. 얼굴도 완전 이쁘고. 기타 실력도 진짜 장난 아니고. 거기에다가 이런 영상 보면 엄청 귀엽기까지…”

“그렇긴 하네. 어디서 이런 애를 찾았어?”

“요즘 유명해요. 뭐 엄청은 아니고.”

왠지 모르게 정보의 습득 경로를 얼버무리는 듯한 보조 작가. 성혁은 잠시 이상하다는 듯 작가를 쳐다보고는, 다시 영상을 보았다.

“성희야. 이 애, 연락처는 알아?”

“이메일은 있긴 한데, 정확하게는 좀 더 연락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럼 시간안에 못 맞추지 않나? 괜찮긴 한데,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게…”

“아니아니아니! 제가 꼭 연락해볼게요. 충분히 시간안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요.”

살짝 자신감을 잃은 말투로 대답하던 보조작가. 하지만 다른 사람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는 메인 작가의 말에, 보조 작가는 마치 그 사람 아니면 안 된다는 듯 화들짝 놀라며 근로의욕을 불태웠다.

“연락되면 나한테 바로 말해주고. 수경씨한테는 확정되면 말해주는 걸로 하고.”


“일단 제가 어머니한테 말씀을 드려 보겠습니다. 따로 전화 안 드리면 허가 됐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출연해주시는 건가요?!?!”]

“네, 그럼 그 날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날 뵙겠습니다! 통화해주시고 출연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날 꼭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뇨, 제가 더 감사합니다. 아무튼 그날 뵙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왜 감사합니다를 계속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끊긴 전화. 명전은 잠시 핸드폰을 쳐다보다가 탁자에 내려놓았다.

‘라디오인가…’

걸려온 전화는, 라디오 출연 섭외 전화였다. 매일 저녁 22시부터 24시까지 하는 ‘최수경의 늦은 밤 콘서트’. 몇년동안 이어왔던 프로그램.

‘수경이인가. 꽤 오랜만에 보게 되겠구만.

포크가수 최수경.

이제는 어엿한 중견가수가 되어버린 그녀였지만, 첫 시작은 그의 제자로서였다. 기타를 멘 채로 “기타 배우러 왔는데요. 아저씨가 제일 잘 한다면서요.”라고 말하던 수경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거의 몇십년이 지난 뒤의 일이라, 이제는 수경도 제대로 기억 못하겠지만.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예전에는 라디오 DJ다 하면 진짜 무슨 날아다니는 사람들만 그런 거 하는 시대였는데.

그는 옛날을 떠올려보았다. 즐길 거리가 텔레비전과 라디오밖에 없던 시절에는, 정말로 라디오 DJ의 권력이 강하던 때였다. DJ니 PD니 하던 놈들이 부르면 와서 술값 내고 곡 하나 틀어주겠다 하는 말 하나만 듣고 돌아가던 게 비일비재하던 시대였는데.

이제는 라디오를 듣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게, 그로서는 너무나도 어색했다. 세상이 언제 이렇게 바뀌어버렸는지. 더이상 청취자 여러분 운운하면서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디제이들은 보지 못하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 ‘실시간 소통’ 같은 건, 요즘 사람들이 유튜브를 통해서 훨씬 진화된 방식으로 이미 다 하고 있다는 걸 까먹은 것이 실로 꼰대다웠다.

‘그보다 이거부터 해야 하려나.

명전은 그렇게 생각하며 방을 나섰다. 바깥에는 엄마가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엄마. 부탁 하나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응? 어떤 거니?”

“저 심야 라디오 나가야 돼서 근로 허가 필요할 것 같은데, 허가 좀 해주세요.”

“뭐?! 진짜니?? 라디오를??”

별 생각 없이 말한 이야기에 갑자기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진작 말을 해야지!”라며 갑자기 연락을 돌리려 시도하는 혜인.

명전은 그런 혜인을 말리려 하다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저런 상태로 들어간 혜인은 말리기 대단히 피곤했으므로.

‘그보다 뭔가 준비를 해야 되겠지. 좀 충격적인 걸 해야 할까, 아니면 뭔가 임팩트에 남을 만한 그런 걸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