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s
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5 KiB
Raw Permalink Blame History

명전의 손에 팔랑거리고 있는 것은 3장의 종이. 그곳에는 각자 제출한 정규 앨범의 컨셉안이 기입되어 있었다. 현아는 저걸 굳이 A4로 출력해서 읽고 있는 게 참으로 늙은이같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입으로 내지는 않았다.

“응?”

“아니, 뭐 그렇게까지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말을 꺼낸 서하. 하지만 명전은 그 말을 듣고 격분한 기색이었다.

“뭐가 그렇게까지는이야, 뭐가. 앨범 컨셉을 생각하려면 예를 들어서 장르. 음악의 컨셉. 전체적인 컨셉. 이 정도는 나와야 하는데…”

명전은 서하의 A4 용지를 내려놓았다. 그녀의 구상이 잔뜩 담긴 종이. 장르는 그루브 메탈. 서하의 소망과 취향이 듬뿍 담긴, 일종의 모독적인 서류.

“우리 밴드 이야기 하랬더니 자기 하고 싶은 거나 써 놓은 서하거는 그렇다 치자. 너희들은 뭐냐 이게? 한 명은 그냥 [신나는 노래]를 적어오질 않나, 한 명은 [아니메 락]이라는데, 아니메 락이 뭔데?”

‘수연’의 질타를 피해간 것에 안심하며 혼자 킥킥대고 있는 서하를 내버려둔 채, 명전은 다른 아이들을 거세게 몰아쳤다.

“대학교 들어가서 조별과제 할 때 이러면 너희들 진짜 욕먹어.”

“…수연님도, 대학… 안 들어가보셨잖아요…”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여튼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명전은 자신의 나이를 까먹고 젊은 꼰대 짓을 하다가, 그 점을 지적하는 현아의 말에 당황해 말을 돌렸다. 아무튼 그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컨셉 가지고는 정규앨범을 제작할 수가 없었다.

“그냥 내가 기준을 하나 마련해줄게. 장르를 구분하지 말고, 어떤 컨셉을 정해와.”

“그렇게 말해도 컨셉이 뭔지 잘 모르겠는데. 뭐 어떻게 잡으라는 거야?”

이서의 불만섞인 목소리에 명전은 앨범 하나를 꺼내들었다. 한국 인디 록에 길이 남을 명반.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 소프트하고 미니멀한 사운드와, 심도깊은 가사.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선이 흐르는 동안, 명전은 음악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이런 곡을 쓰자는 게 아니라, 컨셉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은 거야.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컨셉을 유지하고 있지. 아니면 예를 들어…”

명전은 또 한장을 꺼내들었다. 흑인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는 취향은 아니지만, 가끔 생각이 나는 음반. Kendrick Lamar의 To Pimp A Butterfly.

“이런 음반이라던가. 흑인에 대한 폭력과 착취. 그 외 기타 등등… 그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앨범. 아니 뭐 이정도까지 나갈 필요도 없고, 우리 저번 EP를 생각해봐. 그때 내가 어떤 느낌으로 곡을 썼는지.”

명전이 첫 Ep, [Plastic Nostalgia]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것은 ‘겪어본 적 없는 환상향’이었다. 경험한 적 한번 없으나, 미디어에서 수도 없이 주입되어온. 그런 무의식적 이미지들을 음악을 통해서 기억의 전면으로 부상시키고, 겪어보지 못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겪었던 것 처럼’느끼게 만드는. 그럼으로서 Plastic Nostalgia.

“거창할 필요는 없어. 거창하지 않을 필요도 없어. 너희들이 그냥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 예를 들어 미래에 대한 두려움? 좋아. 갑자기 우주에서 외계인이 침공한다면? 좋아. 뭐 그런 것들. 생각을 엮어 노래로 만들 수 있을 만한 것들. 그런 것들을 제시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해도, 잘 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에 명전은 딱히 실망하지 않았다. 당장 앨범 제작 지휘자인 본인도 뭔가 잘 안 나오는 상황인데, 그와 다르게 수십년의 경험도 없는 다른 아이들은 어떨까.

‘누가 2500석 올해 안에 달성하라고 칼 들고 쫒아오는 것도 아니니까…’

명전의 원래 계획은 15000석 콘서트였다. 그것을 위한 첫 번째 걸음이 2500석 콘서트인 것이고. 15000석이라는 게 무슨 장난감 놀음도 아니고, 속되게 말해 1티어급 아이돌’ 정도는 되어야 채울 수 있는 수치이니… 그렇게 급하게 갈 필요는 없었다.

“뭘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어.”

“아, 죄송합니다.”

그러던 와중 날아온 말 소리는, 이유나의 것이었다. 일전에 유튜브 촬영때 만난 뒤로 명전에게 계속해서 같이 곡 작업을 하자고 이야기하던 사람. 전직 여자 아이돌.

명전은 어쿠스틱 음반을 내고 싶다는 그녀의 요청에 따라 세션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일단은 싱글을 해 보고, 꽤 호응이 좋다면 앨범을 기획해보자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게 그렇게 안 될 것 같은데.”

싱글을 듣는다고 해서 앨범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요새는 죄다 파편화되어 있다보니 어떤 곡이 잘 된다고 해서 그 다음 곡이 무조건 잘 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 지점에서 명전은 여러모로 할 말이 있긴 했지만, 그냥 그만뒀다. 돈 주는 사람 말 잘 들으면 그걸로 끝이니까. 추가로 근무를 해 준다고 해서 보수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A/S는 요청이 들어왔을 때나 하는 거지.

“저희도 이제 정규 앨범을 내야 하는데, 그 건으로 고민이 있는 상태라서요.”

“정규 앨범? 그걸 왜 고민…”

그렇게 말하던 유나는, 잠시 후에 뭔가를 떠올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 밴드 했지.”

전직 아이돌이자 현재에도 소속사에서 프로듀싱을 해 주고 있는 유나에게는 분명 생소한 개념일 것이다. 당장 이번 싱글이 첫 셀프 프로듀싱이라고 하니까. 본인의 말로는 한번 시험삼아 해 보라고 했다던데.

“그럼 전부 다 자작곡으로 넣는 거야?”

“그렇습니다.”

“신기하네. 원래 밴드는 전부 다 자작곡 쓰는 건가?”

“뭐, 그런 건… 아니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즘에야 약간 셀프 프로듀싱을 못 하는 밴드는 이상한 놈들이다! 라고 말하는 분위기가 강해졌지만, 옛날에는 아니었다. 당장 비틀즈만 해도 2집인 With the Beatles까지는 곡을 사서 썼으니까. 물론 비틀즈의 2집은 1963년에 나오긴 했지만.

“그런데 저희는 뭐, 아마 다 자작곡 쓸 것 같습니다.”

“왜?”

“돈이 없으니까요.”

그 말에 수긍하는 듯 “아~”라고 말하는 유나. 그럴 수 밖에 없다. 작곡가들이 무슨 시장바닥에 나와서 5만원 10만원에 곡을 파는 것도 아니고. 잘 나온 곡들은 몇백 몇천만원 한다. 당장 작년을 뜨겁게 달군 fifty fifty의 Cupid의 곡 가격이 9천달러였다고 하니까.

게다가 우리의 스타일에 맞는 곡을 찾기도 힘들 것이고, 찾는다 한들 사는 가격도 비쌀 것이고. 결정적으로 몇백 주고 샀는데 그게 흥할 거라는 확신도 없다.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곡을 사서 밴드를 하니 뭐니 하겠는가? 자작곡 만드는 게 훨씬 나은 거지.

“그리고 뭐, 저희는 프로듀서도 없고. 홍보나 그런 것도 스스로 돌려야하다보니까, 이것저것 다 따지고 그러면… 곡을 사고 이러는 거 자체가 좀 시간도 없고 이리저리 힘들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 그럼 인디밴드는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아서 하는 거야? 소속사 없이?”

“그렇죠.”

연신 신기하다는 듯 탄성을 지르는 유나. “그게 가능해?”라는 물음에, 명전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그때 그 출연했던… 그거도 소속사 안 끼고 한 건가?”

“네. 그때 방송 한번 나가야되지 않나 싶어서. 물론 목적은 달성 못하긴 했습니다만.”

‘다에요 여고생’의 이미지를 갈아치우기 위해 나갔던 유튜브 방송. 하지만 성과라곤 하나도 없이 그냥 다에요 여고생의 이미지가 더 강해지고 말았다.

“소속사에 들어갈 생각은 없어?”

“글쎄요…”

소속사라. 명전은 그 단어를 입에서 되뇌어보았다. 들어가면 좋긴 하겠지. 인력지원도 잘 해주고. 홍보도 돌려주긴 할 거고.

“생각은 있긴 합니다만…”

“아 그래? 혹시 생각해놓은 소속사 있어?”

“그게 제 마음대로 됩니까.”

서울대 가고 싶다 생각한다고 해서 서울대를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으로 일이 가능했다면 명전은 이미 60, 아니 70억 인구가 모두 그의 음악을 듣는 슈퍼 아티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 혹시, 우리 소속사 한번 와볼래?”

“네?”


“여기가 소속사 본사입니까.”

“그렇지. 어때?”

“건물이 이쁘군요.”

모든 것이 화이트로 도배된 소속사의 로비. 소속사의 이름으로 만들러진 Led 등만이 색을 내비치고 있는 가운데, 유나는 안내데스크로 걸어가 직원에게 몇마디를 했다. 잠시 뒤 열리는 문.

“들어와, 들어와. 뭐 우리 집은 아니지만…”

3대, 혹은 4대 기획사에 들 정도로 거대한 회사는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유나의 회사는, 사옥을 따로 두고 연습실도 넣어놓을 수 있는 정도의 소속사였다. 그래도 어디 가서 “소속사가 어디에요?”에 대답하면, “오 거기?”라고 말은 들을 수 있는 곳.

복도를 걷는 동안 흥미 없는 척 가만히 걸어가면서도, 은근슬쩍 고개를 돌려 시설을 확인하는 수연. 그 모습을 보고 유나는 수연 모르게 웃었다. 그 모양이 너무 귀여워서.

‘저러는 게 더 귀엽다는 걸 모르는 걸까?

얼마전 일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여고생 치고는 너무도 딱딱한 말투를 사용하기에 물어봤더니, ‘다에요 여고생’의 이미지를 타파하기 위해서 그러고 있다는 대답을 했던 수연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발버둥칠수록 더 귀여워질 뿐이다. 갭이 생기지 않는가. 안 그러는 척 하면서 은근슬쩍 쳐다보는 행동이라던가. 괜히 위엄있는 척, 어른스러운 척 하면서 방송 나가서는 여고생처럼 말투 쓰겠다고 ~요’를 하다가 ‘다에요’가 되어버린다던가.

그런 모든 노력 자체가, 성인이 된 입장에서는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마치 성인이 되기 위해서 까치발을 들고 어떻게든 발돋음을 하려는 초등학생을 본 것 처럼.

“왜 그러십니까?”

“아니에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유나는 능숙하게 마음 속 깊은 저 멀리로 보내버렸다. 프로이니만큼 능숙하게 대항하는 것도 있지만…

“무슨 일 있는 것 아닙니까?”

“아뇨, 전혀.”

의심스러운 눈길로 유나를 몇초동안 바라보던 수연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유나는 생각했다.

그런 걸 지적해주면, 이런 귀여운 모습을 보기 힘들 것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별 말 하지 않는 것이라고.

수연의 유나 소속사 방문이 뜬금없이 결정된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수연 자신은 ‘그냥 아는 사람이 오라고 하는 가보다~ 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다. 이를테면 ‘크게 될 슈퍼스타의 재목에 미리 투자하는 것’으로.

유나 또한 그러했다. 그리고 그렇기에, 소속사의 내부가 아닌 외부인이 소속사에 아무런 제지 없이 들어올 수 있던 것이다. 유나가 “얘는 진짜 우리 쪽에 끌어들일 수 있으면 대박 난다니까요.”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이쪽은 연습실이고. 여기는 녹음실.”

“연습실이랑 녹음실이 나뉘어 있는 겁니까?”

“응. 연습실은 기본적으로 아이돌 분들이 퍼포먼스 연습할 때 쓰고. 녹음실은 녹음 할 때. 뭐 이정도는 기본 아닐까?”

‘다에요 여고생’이라는 훌륭한 셀링포인트에, 부족하지 않은… 오히려 넘치는 실력. 그리고 뒤에 따라올 3명의 여고생 밴드원까지. 모든 것이 다 완벽한 인재. 그 결과 경영진 또한 ‘하수연’을 영입하는데 동의했다.

“그 정도라고? 걔가 그 정도야?”

단지 단 한명, 최근 영입된 사외이사를 제외하고는.

태클을 건 사람은, 유나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회사의 남돌을 프로듀스하기 위해서 영입된 외부 프로듀서이자 사외이사. 락에 대한 신념을 계속 가지고 있는 사람. 회식때마다 “락 네버 다이!”를 외치면서 윤도현 밴드의 곡이나 김경호의 곡을 매일 불러제낀다는 그런 사람. 흘러간 80년대 90년대 락만을 이야기하면서 “대중음악은 죽었다!”를 외치는 사람.

“아니 들어본 적은 있긴 한데.”

“들어본 적 있다고요?”

“들어봤지. 나는 락덕후니까.”

유나는 스스로 ‘나는 어떤 분야의 덕후다’ 라고 지칭하는 것이 상당히 미묘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관두었다. 본인이 뭐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상대가 마블 폰케이스를 쓰고 어울리지도 않는 스냅백을 가끔 쓰고 다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그때 유나 씨랑 같이 나왔던 방송 봤어요. 그 방송 볼때는 잘 치긴 하던데…”

“하던데?”

“그 정도인가 싶은 거죠. 즉시적으로 영입할, 뭐 그 정도는 아니니까.”

“아니…!”

유나는 즉시 반박을 하려다가 이내 말을 끊었다. 생각해보니 그럴 만 했다. 김광석의 노래 이후 수연이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주었던 부분은, 방송에 나오지 않은 부분이었다. 방송만 보았다면 저렇게 반응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도 수연이는 엄청 잘한다고…!

방송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유나는 속으로 분노했다. 이사 정도의 레벨에게 불만을 표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번 볼 수 있을까요?”

“네?”

별 생각 없이 서 있던 수연에게 날아든 질문. 유나는 잠시 경직되었다가, 외부 프로듀서의 말이 ‘영입할 의사가 있다’임을 깨달았다.

“한번 보여주세요.”

“…제가 말입니까? 어떤 것을요?”

살짝 황당한 듯이 되묻는 수연.

“재미있는 곡 하나.”

그런 수연에게 날아든 것은 사외이사의 당돌한 한마디였다. 수연은 잠시 황당하다는 듯 사외이사를 쳐다보다, 기타를 끌러메고 열려 있는 연습실의 앰프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