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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보이지 못했다는 쪽에 가깝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딱히 할 말도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아니 사실, 뭐라 할 말이 있는 것이 이상하다. ‘야 그거 니 기타 아니고 니 기타인 거 같은데, 그걸 니가 왜 들고 있냐?’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게 도대체 무슨 미친 소리지…’ 하고 생각한 후 상대를 안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물론 그것이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명전 밖에 없다. 나머지 둘은 명전이 곧 수연이요 수연이 곧 명전이라는 것을 몰랐기에.
“네?”
수연 대신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반문하는 혜인. 준홍은 그에 대답하기보다는 잠시 침묵하며 기타를 다시 바라보았다.
‘블랙 스트랫. 원본 블랙 스트랫과는 완전 상이한, 그냥 자연스럽게 낡은 형태. 트레몰로 암의 고무 손잡이는 금속으로 교체되어 있고, 노브는 크롬 도색. 전반적으로 볼 때, 이건 명전 선생님의 기타가 맞다.’
준홍은 몇년 전 서명전의 집에 묵으면서 그의 기타를 몇번 만져본 적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봤던 기타는, 지금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기타와 완전 똑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왜 이 기타가 여기에 있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맞았다.
“제가 지금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혜인은 침묵하고 있는 준홍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건 명전 선생님의 기타’이며, ‘학생이 어떻게 이걸?’ 이라는 말 뜻이 무엇이겠는가. 저 기타의 소유주는 네가 아닌데, 이걸 왜 들고 있냐.
즉 왜 남의 것을 네가 들고 있느냐는 뜻 아니겠는가. 그 말인 즉슨, 수연이 남의 것을 훔쳤다는 것인데… 혜인은 수연을 의심하기보다는, 수연의 달라진 모습을 믿기로 했다.
“저희 애가 그 기타를 훔치기라도 했단 건가요? 제가 듣기에는 그런 식으로밖에 안 들리는데요.”
“아니, 아니 그런 말은 아니고요…”
혜인의 가시돋힌 말에 준홍은 순간 정신을 차렸다. 그는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 전혀 아니었기에, 손을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어, 이 기타는… 어… 아니 일단 설명부터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준홍은 기타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는 수연을 보았다. 표정을 읽기 힘든 얼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이 기타는, 뭐 모델명이라던지 이런 것들이 있긴 한데… 그보다도… 제가 존경하던 기타리스트, 서명전 선생님의 기타입니다.”
“아니, 그건 알겠는데요. 그럼 저희 아이가 그 분에게 기타를 훔쳤다는…”
“그리고, 그 분은 얼마전에 돌아가셨어요.”
준홍의 말에 혜인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왠지 모르게 고인이라도 모독한 느낌. 하지만 준홍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이 기타를 들고 계셨구요. 경찰이 이 기타를 습득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따님 분이 이 기타를 훔쳤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했던 건 전혀 아닙니다.”
그 말에 혜인은 마음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수연이가 훔친 게 아니구나. 확실히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었구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바라본 수연은, 왠지 모르게 살짝 굳은 표정으로 준홍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건, 장례식이 끝난 뒤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워낙 요즘 두문불출 하시던 분이라서요.
가까스로 소식이 닿아 찾아뵈었을 때는 이미 집주인 분께서 시체 인수하셔서 장례식을 간략하게 치르시고, 자택을 정리하셨더군요. 그래서 장례식장에 찾아뵙지도 못했고, 선생님의 유품 정리 같은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그래서 그 일이랑, 이 기타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가요?”
“약간 속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혜인의 질문에 준홍은 살짝 망설임이 느껴지는 대답을 했다.
“이 기타의 행방은… 요즘 한국 기타리스트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였습니다.”
“왜죠?”
“… 왜냐하면 ‘서명전’의 기타였으니까요.”
준홍은 잠깐 침묵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저희 기타리스트들 사이에서, ‘서명전’이라고 하면… 반쯤 신으로 추앙받는 분이었습니다. 세션 기타리스트 중에서는 첫 번째라고 부를만한 실력이시고, 한국 기타리스트를 통틀어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실 분이시니까요. 대한민국에서 2번째로 펜더의 엔도서(각주 1)가 되실 뻔 하기도 하셨고… 본인께서 거절하셨지만요. 저도 상당히 존경하는 분이었구요.
그리고 이 기타는, 그런 명전 선생님께서 15년 넘게 사용하던 기타입니다. 특별한 일이 있는게 아니라면 항상 이 기타만 사용하셨어요. 저도 몇번 본 적 있습니다.”
그 말에 혜인은 수연을 바라보았다. 그런 기타가, 왜 수연의 손에 들려 있단 말인가? 그리고 왜 수연은 아무 말이 없는가? 뭔가 얽힌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솔직히 말해서, 기타리스트로써 이 기타에 욕심이 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분의 기타니까, 쳐 보고 싶기도 하고… 수집할 가치도 있는 거죠. 그리고 실제로 바로 행동에 들어간 사람도 있었는데…
그때 장례식 주관하신 집주인분에게 그 사람이 들은 이야기가, 선생님 돌아가시고 장례식 치른 후에, 누가 와서 기타를 가져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기타의 행방은 알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기타가 지금 제 눈 앞에 있으니, 놀랄 수 밖에 없는 거죠.”
준홍은 기타를 살짝 쓰다듬은 후 고개를 들어 수연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기타를 바라보고 있는 수연.
‘아마 그 할머니가 말했던 애는, 이 애일 확률이 높다.’
아무도 오지 않았던 장례식 이후, 느닷없이 찾아와 자신이 그 기타를 구매하기로 되어 있었다며 기타를 가져갔다는 의문의 여고생.
그리고, 한가지 더 있다. 돌아가신 뒤, 느닷없이 버스킹에 참가하겠다며 리플을 달았던 명전 선생님의 뮬 아이디. 그리고 핸드폰으로 찍힌, 해당 버스킹 영상에 나와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치던 여고생.
정황상 그 둘과 여기 있는 이 ‘하수연’은 동일인물일 것이다. 그렇게 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뭘 의미할까.
준홍은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려보았지만, 딱히 답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당사자부터가 별 말 없이 앉아있기만 하기도 했고.
“그…”
“네?”
그러던 와중, 마침내 입을 뗀 수연. 준홍은 수연의 입에서 어렵사리 나온 말이… 과연 어떤 것일까 기대했다.
“일단 방송부터 하시죠. 이미 시간이 다 된 것 같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준홍이 기대하던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는 수연과,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어버렸네.” 라고 말하는 혜인.
“아… 네. 일단 들어가… 시죠.”
정론을 말하는 수연 앞에, 준홍은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명전은 태연한 표정 안에 당황스러운 마음을 숨기며, 대충 생각나는 말을 주워섬겼다.
“자기소개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유튜브에서 White Room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하수연이라고 합니다.”
“기타를 배운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저도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얼마 안 된 것 같네요.”
으레 유튜브 인터뷰를 하면 나오는 질문들 이후, “그럼 White Room님 기타 치시는 영상 한번 보고 넘어갈까요?” 라는 준홍의 말을 들으며…
‘진짜 환장할 노릇이군. 한국 최고의 세션 기타리스트? 한국 기타리스트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 내 기타를 수집하려는 사람들이 있어?’
명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심정으로,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가 무슨 헛소리인지. 명전은 준홍이 늘어놓은 이야기가 상당히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아니 뭔 세손가락이니 세션 넘버원이니… 미친 놈들인가?
본인이 기타를 잘 친다는 것은, 명전 또한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명전 또한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고.
하지만 세 손가락이니, 최고의 세션이니 하는 이야기는… 좀 그렇지 않나. 세상에 기타를 잘 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에 비하면, 명전은 태양 앞의 반딧불에 불과했다.
물론 그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하수연’으로 되살아나기 전까지의 일.
이제는 확실히 달랐다. 현재 그에게 부족한 것은, 체력과 기타리스트로서의 명성… 그리고 작사능력 정도.
‘근데 뭐… 일단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야.’
명전이 가진 기타리스트로서의 능력을 읊어대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될 일이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하는 것.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 것인가.
“사실 저는 서명전입니다. 죽은 다음 일어나보니까 이 몸에서 일어났어요. 그래서 기타를 가지러 가서 40만원에 할매한테 뜯어왔죠. 그게 제가 이 기타를 가지게 된 이유입니다.” 라고 말할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뭐 중고 장터에서 샀다고 해야 할까? 어떤 양아치 고딩이 파는 거 사 보니까 이 기타였다! 걔가 나한테 40만원 주고 천만원 넘는 기타를 팔아치웠다! 라고 말을 해야 하나?
둘 다 전혀 통할 것 같지 않았다.
애초에 그 기타를 위해서 집주인 할매한테까지 갔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럼 아마 ‘하수연’이 기타를 사간 것까지 알아냈을 것이다. 당시 ‘하수연’의 정확한 인상착의까지는 몰라도, 여고생이 사갔다 정도는 알아냈겠지.
‘그냥 해명을 하지 말까?’
명전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랬다.
그가 해명을 왜 해야 하는가?
누구에게 칼이라도 들이밀고 뺏은 것도 아니고, 불법적인 루트로 장물을 구매한 것도 아니다. 그는 정당하게 집주인 할매와 거래해서 기타를 받아왔다. 그게 전부다.
‘아니면 뭐, 그냥 서명전 씨랑 아는 사이였다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어차피 죽었기도 했고, 말이야 짜 맞추면 되는 거고…’
그렇게 생각하던 명전은, 좋은 생각 하나를 떠올렸다.
“그럼 선생님, 기타 연주 한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네. 혹시 뭐 원하시는 곡이…”
“따로 없습니다! 편하신 거 치시면 돼요.”
“그런가요.”
그런 말을 남기고, 수연은 이펙터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시빌워 빅모프, 부나 딜레이. 퍼즈페이스, 와우페달 등.
‘이펙터조차…’
명전 선생님이 사용하던 세팅 일부가, 저 학생의 페달보드에 들어가 있었다. 완전한 세팅본은 아니었지만, 핵심 이펙터들은 다 들어가 있는 그런 세팅.
‘진짜 명전 선생님과 뭔가 관계가 있는 건가? 그래서 저런 세팅까지 다 물려받은…?’
준홍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완료된 세팅. 수연은 기타를 든 채로 카메라 중앙에 앉았다.
“그럼 일단…”
“어떤 곡 치실 건가요?”
“그건 듣는 사람의 즐거움으로 하죠.”
그리고 갑자기 시작된 연주. 꽤나 익숙한 멜로디와 톤.
“이건… Manhattan인가요?”
“네.”
Eric Johnson의 Manhattan. Cliffs of dover에 가려지긴 하였으나, Eric Johnson이 만들어낸 최고의 곡 중 하나이며…
이 역시, 명전 선생님이 좋아하던 곡.
= 와
= 기타 진짜 잘친다
= 헉
= 미성년자분 맞나요?
= 아니 ㅠㅠㅠㅠ 이분 기타 들으니까 자괴감이 느껴지는…
= 정말 잘 치시네요. Eric Johnson은 쉽지 않은데, 톤부터 테크닉까지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준홍은 수연의 기타를 감상하며, 동시에 기시감을 느꼈다. 뭔가 익숙한 느낌. 어디에서 들은 것 같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얼마 전까지도 계속…
준홍은 눈을 크게 떴다. 익숙함의 정체는 바로… 스트러밍 패턴이었다. 기타 연주자가 가지는, 일종의 지문과도 같은 고유한 패턴.
그리고 명전 선생님의 연주에서 느껴지던 스트러밍 패턴이… 이 아이의 연주에서도 그대로 느껴지고 있었다.
준홍은 연주를 감상하는 척, 눈을 감고 깊게 고민했다. 뭔가 떠오를 것 같기도 한 느낌.
장례식 이후 갑자기 찾아온 여자아이는, 무슨 맡겨놓은 것마냥 기타를 가져갔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출현했던 명전 선생님의 뮬 아이디, 그 다음 나타난 블랙 스트랫을 사용하는 여고생 버스커. 기타를 배운지 얼마 안되었다는 이야기. 선생님의 이펙터 세팅과, 스트러밍 패턴. 비슷한, 아니 아주 흡사한 곡 취향.
그 모든 것을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나오는 결론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설마… 제자인가? 명전 선생님이 마지막에 거둔 제자? 재능을 알아보고 가르치던…?’
안타까운 것은, 준홍이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길가에서 돌연사를 한 양반이 여고생의 몸에서 성별이 바뀌어 살아났을 것이라는 상상력 같은 건, 절대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