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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4 KiB

윈터홈, 온실.

(딱히 신경은 안 쓰지만) 온실 바깥으로 출입이 금지된 코르부스는 온실에서 할 일이 무척 많았다.

일반인의 선에서 끝낼 수 있는 온실 내부 시설 관리.

온실에서 자라는 각종 동식물 관리 및 개체 수 조절.

식물의 수분과 잡초 뽑기 등등등.

누가 그 많은 일을 혼자 시킨다면 설령 아이스랜드 공작조차 들고일어난다고 해도 딱히 할 말이 없었지만, 그런데도 코르부스는 불만은 전혀 없었다.

야생에서처럼 끼니 걱정을 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야 재깍재깍 질 좋은 식료품이 공급되고 있었으니까.

하물며 몬스터답게 넘쳐나는 체력 때문에 오히려 이 정도의 일이 없다면 밤에 잠을 자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거기에 온실에 종일 틀어박혀 있으니 시간은 넘쳤다.

코르부스는 윈터홈에서 그 누구보다도 만족스러운 일상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개 팔자가 상팔자.

물론 개가 아니라 몬스터였지만.

그 외엔 주군인 알프레드가 부여한 업무를 해치우고, 가끔 온실에 출입하는 손님들을 응대하면 끝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우당탕탕!

"음, 이건 알리시아님이로군."

잡초를 뽑던 코르부스는 멀리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곧바로 손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그래도 붉은 마녀의 손가락이 탐스럽게 자란 텃밭의 잡초를 절반 정도 뽑았으니, 슬슬 쉬어도 되겠거니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정리를 마친 코르부스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걸어가자 질주하던 알리시아가 제자리에 멈춰섰다.

"코르부스! 알리시아가 왔다!"

"안녕하십니까. 알리시아님. 그리고 또 뵙는군요. 카렘 씨."

코르부스는 부리를 긁적였다.

허겁지겁 달려온 게 뻔한 알리시아의 흐트러진 모습.

난처해 하는 카렘의 얼굴과 알리시아의 손에 꽉 잡힌 손까지.

말할 것도 없었다.

"알리시아 아가씨. 이번에도 땡땡이입니까?"

"헉! 어떻게 알았지?"

"뭐, 너무 늦게만 돌아가지 마십쇼. 포핀스 부인이 걱정하실 겁니다."

아무렴 코르부스 그는 알리시아의 교육 담당도 아니었으니 딱히 신경 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두 사람을 자신의 둥지로 안내하고 테이블에 앉기를 권유했다.

과연 알리시아의 말대로 코르부스는 카렘이 용건을 꺼내기 무섭게 전문적인 분위기를 뽐내며 이리저리 관찰하기 시작했다.

"흐음, 음. 호오. 이 줄무늬는..."

그저 보기 드문 밝은 녹색에 검은 테두리가 인상적인 콩.

하지만 카렘의 생각과는 달리 코르부스는 뭔가 아는 것이 있는지 시종일관 흥미로운 감탄사를 내뱉었다.

코르부스는 발톱으로 콩을 데굴데굴 굴리며 새카만 눈을 번뜩였다.

"이걸 어떻게 구하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알리시아 때와 같이 당연히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야 사실상 반쯤 신이 건넨 물건이나 다름없는데, 그걸 대놓고 말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카렘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마 대부분 머리 이상한 사람으로 보겠지. 카렘은 알아.

그래도 재촉하는 눈빛에 입을 다물고 있을 순 없었다.

"이번에 아타니타스님을 따라 장원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얻게 된 물건입니다. 일단 생김새부터 뭔가 척 봐도 범상치 않아 보여서."

"호오, 역시 요리사라서 그런지 눈썰미가 범상치 않으시군요."

다행히 코르부스는 자세한 사정은 별로 궁금하지 않은 듯 대충 얼버무린 말을 알아서 이해하고 넘어갔다.

"이걸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뭔가 대단한 콩이라는 말인가?"

"대단하다면 확실히. 대단한 물건이 맞습니다."

"그런데 콩이 대단해봤자 얼마나 대단하다는 것이지?"

"오, 그야 마왕군이 고대 팔라티노 제국을 멸망시키고, 전 에우로파를 불태우며 극소수의 기록만 남기고 완전히 멸종한 작물이니까 말이죠."

난데없이 스케일이 확장되었다.

카렘은 현실감이 들지 않아 눈만 깜빡이며 코르부스의 말을 재촉했다.

"기록이 남을 정도면 뭔가 대단했던 물건인가 봅니다?"

"확실히 팔라티노 황립도서관의 잔해에서 발견된 일부 기록이 남아있었으니 확실히 범상치 않은 물건인 것은 확실할 겁니다."

어, 뭔가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물건인가? 카렘은 더더욱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코르부스. 그 이상한 콩의 효과는 무엇이지?"

범상치 않은 역사와 기록물에 알리시아는 기대감을 잔뜩 품은 표정으로 코르부스의 발톱 끝에 잡힌 콩을 응시했다.

"저도 모릅니다."

코르부스는 당당하게 부리를 열었다.

원래 기대를 품으면 품을수록 실망으로 인한 낙차가 큰 법.

잔뜩 분위기를 높였으면서 단번에 고꾸라트린 코르부스를 카렘과 알리시아는 짜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진짜로 전 모릅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기대하게 했으면서요?"

"저뿐만이 아니라 에우로파의 그 누구를 데려온다고 해도 모를 겁니다."

"그건 좀 과장인 것 같은데요."

"정말입니다. 애초에 남은 기록물도 이름도 없이 외형만 남아있었으니까요. 그마저도 이렇게 실물과 정말 똑같이 남아있어서 알아볼 수 있었죠."

"그러면 그것부터 말하지 그랬나."

왜 이렇게까지 말을 질질 끌었다는 말인가.

카렘은 격하게 알리시아의 말에 동의했다.

"그야 여기는 만족스럽지만, 자극이 부족하단 말이죠. 까아아악! 까아아악! 까아아악!"

코르부스는 배꼽 빠지게 재밌다는 듯이 우렁차게 울부짖었다.

카렘과 알리시아의 시선은 짜다 못해 완전히 식어버렸지만, 그 반응이 더욱 만족스러운 듯 코르부스는 한참을 울부짖었다.

이내 거짓말같이 울음소리를 그친 코르부스는 표정을 알아보기 어려운 거대 까마귀 얼굴인데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간식을 가져왔다.

이전과 같은 대추야자 호두말이였다.

"하지만 이건 진지한 말입니다. 다른 마법사 중 연구해보려는 이들이 없진 않았지만, 금방 포기했으니까요."

알리시아가 분노의 폭식을 하는 동안 코르부스는 변명하듯이 말을 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식물을 연구하려면 결국 해당하는 실제 식물이 필요한 법인데, 이미 완전히 멸종해서 에우로파에서 찾아볼 수조차 없던 물건을 어떻게 연구하겠습니까?"

"그런 것 치고는 뭔가 구체적으로 말하셨잖습니까?"

"앞서서 언급했지만, 정말 실물과 똑같이 묘사된 그림이 없었다면 저도 알아보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게까지 똑같았다고요?"

"궁금하시면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부디."

그리고 코르부스는 바로 테이블에서 일어나 둥지의 한쪽에 있는 창고-오두막에 들어갔다가 금방 나와 크고 두꺼운 양장본을 한 권 내려놓았다.

에우로파 식물도감(가제), 세오폰 어

라고 멋들어진 필기체가 새겨진 표지를 넘긴 코르부스는 말없이 페이지를 팔락팔락 넘기다가 반 정도 넘기고 나서 발톱으로 쿡 눌렀다.

그리고 직접 보라는 듯 카렘과 알리시아를 향해 책을 돌려 내밀었다.

"....허어? 이게 그림이란 말이냐?"

알리시아는 그림과 코르부스를 번갈아 보았다.

카렘 또한 그녀와 같은 마음이었다.

코르부스가 보라는 듯이 발톱으로 찍은 그림은 큼지막한 페이지에 1/4를 차지한 확대된 콩의 그림이었다.

다만 그게 사진으로 찍은 것보다 더욱 현실감있는 그림이라면 말이 달랐다.

당장이라도 손으로 집어 들 수 있을 만큼 진짜보다도 진짜 같은 그림이라니.

이거라면 오히려 몰라보는 것이 더욱 이상했다.

심지어 그림의 한쪽 구석에 실물을 확대했다는 듯이 크기 비교로 본래의 콩 그림도 같이 그려져 있다면 더더욱.

다만 자료가 없다는 것은 사실인지 각종 짧게라도 주석이 달린 다른 식물 그림과는 달리 콩 그림에는 이름도 불명, 내용칸도 공란이었다.

"확실히 단순히 그림이라고 하기엔 믿기 힘들 정돈데요."

"대대로 이 도감을 편찬하는 드루이드 학파의 본산에서 개정판을 낼 때마다 이 콩과 같은 미발견 혹은 멸종된 식물을 목이 메도록 찾고 있으니 당연합니다. 듣자 하니 원본의 그림을 복제 마법으로 복제한다고 하더군요."

드루이드.

고대와는 달리 자연의 동식물과 교감하면서 자연을 가꾸고 그것들의 힘을 빌리는 이들을 총칭하는 마법사의 하위분류.

그런 이들이라면 확실히 이런 식물에 목이 멜 만했다.

하지만.

"음, 역시 넘기는 건 별로 마음에 안 드네요."

"까아악? 학파의 본산에서 지급하는 보상금이 상당할 텐데요."

"저는 딱히 돈이 아쉽지 않으니까요."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책임질 수 없는 부는 재앙을 부를 뿐.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카렘은 돈이 전혀 아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쌓이는 것이 돈이었다.

그것보다는 신에게서 받은 콩을 어떻게 요리에 써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앞섰다.

혹시 몰라. 메주라도 쑬 수 있을지.

"아, 카렘. 그 표정."

"제 표정이 어디 이상합니까?"

"지금 카렘의 표정이 수상한 생각 할 때 표정이랑 똑같구나."

"수상하다니요."

"그 엄청 맵고 신데 묘하게 감칠맛 나는 양배추 피클을 만들 때랑 비슷한 표정인데. 보여줄 수도 있다."

알리시아는 곧바로 드레스의 주머니를 뒤지더니 매끈하고 깔끔한 손거울을 꺼내서 카렘을 향해 내밀었다.

과연 공녀의 말대로.

카렘은 거울 속 소년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그나저나 매콤한 양배추 피클이 아니라 김치라는 겁니다."

"키므치. 음 어감이 별로구나. 그냥 양배추 피클이다."

"김치."

"자우어크라우트쪽이 좀 더 익숙하긴 한데."

"끙. 어쨌든 코르부스 씨."

저러다 매콤한 피클이나 자우어크라우트로 고정되어 버리면 매번 들을 때마다 신경 쓰일 것은 당연했지만 오늘 방문의 목적은 이게 아니었다.

이건 나중으로 미루기로 한 카렘은 고개를 저었다.

"이 콩을 키워주실 수 있을까요?"

"흠, 어떤 계절에 씨앗을 피우는지도 모르고, 어느 토양이 적절한지도 알 수 없는 외형 말고는 알려진 것이 전혀 없는 이 콩을 말입니까?"

부리를 따닥따닥 부닥치던 코르부스는 발톱을 튕겼다.

"안될 거 뭐 있겠습니까. 맡겨만 주십쇼."

"와, 이걸 받아주시네."

"안 그래도 슬슬 붉은 마녀의 손가락 교배 작업에서 손이 덜 가던 참이었는데, 빈 시간에 키워보기 딱 좋군요."

"아, 불마손 교배가 벌써?"

그때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결실이 나온다는 말인가.

"일단 어느 정도까지만 자라면 꽃이 피기 전까지는 잡초와 해충을 제거하는 일이 전부이니 아직은 바쁘진 않습니다. 작물이 자라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말이죠."

코르부스는 앞서나가려는 카렘을 진정시켰다.

"틀린 말은 아니로군요. 코르부스 씨. 마치 알리시아님이 오늘 할 공부를 끝내는데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죠."

"원래 공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인데...? 응?"

고압적이고 엄격한 여인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렘은 알리시아가 호랑이를 본 토끼처럼 화들짝 놀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포, 포핀스 부인!"

"그렇습니다. 공녀님. 제가 할 행동이 무엇인지는 공녀님도 아시겠죠?"

"그, 그러면 이것만 먹고!"

알리시아가 접시 위에 있던 간식을 다람쥐처럼 볼 안에 쓸어 담기 무섭게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중년의 여부인이 카렘의 등 뒤에서 나와 단번에 알리시아를 안아들고는 카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혹시 그쪽이 최고 마법 고문의 전속 요리사이신 카렘 경이 되시겠습니까?"

"경이라니. 너무 과분한데요."

"그러면 카렘 씨. 코르부스 씨. 실례 많았습니다."

반론을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분위기.

살짝 고개를 숙인 포핀스는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며 절도있는 움직임으로 코르부스의 둥지를 빠져나갔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포핀스를 보던 코르부스는 이내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카렘 쪽으로 부리를 숙였다.

"일반 붉은 마녀의 손가락과 변종을 수확하고 조금 남았는데. 필요하십니까?"

"오, 주시면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그 감칠맛만 따로 뽑아내는 데는 아직 실패했습니다. 조금 까다롭더군요."

"급할 거 없으니 천천히 하시죠. 천천히."

카렘은 기쁘게 코르부스의 선물을 받아들였다.

그나저나 토마토는 아직인가. 카렘은 조금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