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s
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375 lines
15 KiB
Markdown

누가 오더라도 당황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화구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던 그 짧은 시간 사이에 누가 와서 자리에 앉아있다니.
심지어 그 '누군가'는 검은 로브와 가죽 장갑을 꼈는데도 불구하고 경건함, 공손함이 느껴질 만큼 고풍스럽고 매너 있는 움직임.
그런 거로 닭 뼈나 집어 먹고 있다는 것이 무척 신경 쓰이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카렘은 무심코 웃음이 나올만한 광경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보자마자 카렘은 기시감을 느꼈다.
공허한 바람을 타고 느껴지는 차가우면서 따뜻한 상반된 미풍.
왠지 모르게 섬뜩한 설명하기 힘든 냄새와 까마귀의 울음소리.
슬픔이 가득한 흐느낌과 무언가를 축하하고 환호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외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지만 카렘은 마음속으로 누군가가 작게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카렘은 곧바로 기시감을 느꼈다.
이와 비슷한 느낌을 겪었던 일이 불과 몇 달 전에 있었으니까.
머리가 복잡해진 카렘이 생각의 늪에 잠겨있거나 말거나.
갑자기 등장한 상대는 열심히 손을 움직여 닭 뼈를 후드의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다리뼈가 사라졌다.
상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카렘은 그가 작게 낙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묻는 건 좀 이상하지만, 혹시 신이십니까?"
카렘의 물음에 상대가 고개를 돌렸다.
후드가 작게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리고 카렘이 원래 앉아있던 자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전에 여기 멀쩡한 것도 있는데 굳이 뼈를...?"
.....
"아니, 뼈와 내장, 가죽도 취향이시라면 뭐..."
소의 골수는 맛있고, 돼지국밥은 진국이며 압력솥에 튀긴 할배치킨은 뼈가 맛있다는 건 카렘도 알았다.
가죽은 비상시에 식량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까놓고 말해서 바삭한 닭 껍질 튀김과 치차론(돼지 껍데기 튀김)은 맛있으니까.
아니 그렇지만 그걸 그냥 통으로 씹어먹는 건 좀.
떨떠름했지만, 카렘은 어쨌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뼈가 제일 좋다고 하니까.
취향은 존중해야 하는 법.
카렘은 치킨이 담긴 그릇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 상대를 좀 더 자세하게 살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변하는 것은 없었다.
햇빛이 비치는데도 후드의 어둠 속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정도?
장갑에 묻은 가루를 털고 손을 공손하게 모은 신은 치킨이 수북하게 담긴 그릇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카렘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아, 역시 그래도 손님? 한테 뼈만 드리는 것도 좀 그러니..."
......
"아, 프라이드 치킨이라고 합니다."
혼자 말하고 혼자 알아듣는 이 상황이 카렘은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상대는, 신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이상한 소리만 들리는데 의미는 전달되는 상황.
그런데도 카렘은 공손함과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고 재빨리 비어 있던 접시로 한 마리 분량의 치킨을 덜어 신 쪽으로 공손하게 내밀었다.
신은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함을 표시하며 후드를 끄덕였다.
이내 치킨을 후드의 머리 부분으로 밀어 넣으며 맛을 천천히 음미하기 시작했다.
바사삭-지이이직, 오도독, 오도독!
뼈를 집어 먹었던 조금 전과 똑같이 신이 프라이드 치킨을 뼈째로 먹어치우는 사이, 카렘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잠깐 뜨거워졌던 머리가 식으니 카렘의 머릿속에 불쑥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상황.
멀쩡하게 움직이던 캐서린과 나르케는 멈춰있고,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조차 정지해있는 상황에 카렘은 정말정말로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식사 중이신데 실례지만 하나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
"혹시 대피소, 아니 스카디님의 신전에서 바구니에 있던 양념치킨-"
그 말에 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금 전과 같은 소리 사이로 살이 애는 듯한 냉기와 함께 상반된 함박눈의 포근함과 함께 카렘은 세찬 겨울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어, 스카디님?"
신이 후드를 끄덕이는 순간.
퍼억!
.....!?
창밖에서 날아온 야구공만 한 우박이 신의 후드를 후려쳤다.
"괘, 괜찮으십니까?"
.....
"아니, 그렇지만 후드에 구멍이 뚫렸는데. 예? 신경 쓰지 말라고요?"
크게 휘청였던 신은 후드에 뚫린 구멍을 조금 만지작거리다가 잠시 중지했던 식사를 마저 이었다.
노골적으로 방금 일은 잊어줬으면 한다는 의미가 전해졌다.
카렘 또한 수긍할 수밖에 없었지만, 시선이 주방 한쪽에 구르는 새하얀 얼음 덩어리에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만 카렘의 마음속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그냥 모른 척을 좀 해달라고.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카렘이 돌리고 나서야 신은 그제야 안심하고 다시 식사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귀하신 분이 어째 이런 누추한 곳에 직접..."
....
카렘은 돌아가려는 고개를 억지로 고정하고 물었다.
그러자 신은 (문자 의미 그대로) 반만 남은 닭다리를 내려놓고 테이블의 나무 상자를 가리켰다.
"사룡 나글파르의 비늘?"
....
"이걸 회수해가시기 위해서 직접 강림하셨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신은 이내 먹던 닭다리를 마저 후드 안으로 밀어 넣었다.
....
"하, 하지만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인데요."
....?
"그야, 이 물건에 대한 소유권은 괴물을 처치하신 아타니타스님이랑 에스카르나님한테 있습니다. 아니, 에스카르나님한테도 있는 게 맞나?"
고개를 주억거린 신은 잠시 나르케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응시했다.
하지만 당장 신경 쓸 일은 아니라는 듯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판토마임처럼 멈춰있던 캐서린과 나르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르에 대한 설화와 자료를 더 찾아봐야겠,응?"
"-아타니타스님? 갑자기 왜에에에..."
한창 대화를 나누던 캐서린과 나르케는 마법사답게 곧바로 작금의 이변을 눈치챘다.
"...이름 없는 여행자?"
캐서린의 확신하는 물음에 로브, 이름 없는 여행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캐서린 메리골드 아타니타스, 그녀는 현자에 다다른 대마법사였다.
그녀가 아는 지식을 글자로 옮겨도 성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랐으며 그 범위 안에는 에우로파 사람들이 믿는 신들과 그들의 모임인 만신전에 대한 지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름 없는 여행자.
아이스랜드에서 스카디, 투타티스와 함께 믿어지는 삼신교의 한 축.
세상을 떠도는 방랑자와 여행자, 도망자들의 신이자 추운 동토에서 죽은 자들이 마지막에 맞이하는 손님.
팔라티노 제국의 멸망 후 드넓은 에우로파에 얼마 남지 않은 죽음의 신 중 하나.
오도독- 우물우물우물- 오도독-
그런 존재가 지금 태평하게 테이블에 앉아, 프라이드 치킨을 뜯어먹고 있었다.
그리고 프라이드 치킨이 제법 마음에 드는지 쉴 틈 없이 프라이드 치킨을 후드에 밀어 넣는 이름없는 여행자의 오른손은 쉴 틈이 없었다.
"이름 없는 여행자시여. 대체 어떻게?"
캐서린은 미약한 경계심의 끊을 놓치지 않고 많은 의미를 담아 물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신의 깊은 관심은 필멸자에게 그다지 좋은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으니까.
....-?
콰아앙!
갑작스러운 굉음.
태연한 이름 없는 여행자와는 달리 캐서린과 카렘의 고개는 획 돌았다.
나르케의 정신은 이미 죽음의 신을 보고 졸도하기 직전.
하지만 그녀의 몸은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감에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머리를 테이블에 처박고 기절했다.
"...생각보다 심약하구먼."
"그러게요. 네크로맨서라 그런가?"
"그냥 성격 때문일지도."
하지만 그 덕분에 긴장이 탁 풀려버렸다.
이름 없는 여행자는 나르케를 못마땅하게 응시했다.
이내 카렘에게 그랬던 것처럼 캐서린을 보며 나무 상자를 가리켰다.
그리고 캐서린의 비상한 머리는 그 간단한 제스쳐 하나만으로 모든 내용을 파악했다.
에우로파의 중심이던 팔라티노 제국의 멸망 이후.
세상에 직접 간섭하기 어려워진 신들이 필멸자와 접촉하는 방법은 몇 가지로 제한되었다.
꿈을 통해 의지를 전하거나, 계시를 내리거나, 혹은 드물게나마 의식을 통해 직접 강림하거나 등등.
'펑거스비 인근 숲을 뒤덮었던 짙은 사기.'
괴물이 죽으며 짙은 사기는 통제에서 벗어나 숲과 마을을 뒤덮었다.
더는 일반인에게 직접 위협을 끼칠 만큼 짙은 것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유형화될 만큼 짙은 사기.
그런 완전히 사라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반대로 그 사기를 통해 죽음의 신이 강림할 수도 있다는 뜻.
마치 자신을 위하는 축제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전사신 투타티스처럼.
하물며 이름 없는 여행자는 이름에서 알듯 여행자의 신.
죽음은 모든 생명이 끝에 맞이할 마지막 여행이었다.
"신화에 따르면 투타티스가 아직 필멸자일 때, 여신이 내린 과업으로 죽음의 신이 되고자 한 드래곤을 처단했다고 하지."
"죽음의 신, 드래곤. 그러면 이 비늘이?"
"아무래도 여기 신화와 나르케가 말한 학파의 전설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캐서린은 나무 상자를 툭툭 건들다 뚜껑을 벌컥 열었다.
옅은 사기와 함께 죽은 남성의 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나글파르의 비늘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 괴물에 매달려있던 마법사는 역시 나글파르의 마법을 노렸던 겁니까?"
....
어느새 텅 빈 접시를 아쉬운 눈치로 응시하던 이름 없는 여행자는 캐서린의 말에 고개를 돌리고 주억거렸다.
그리고 허공에서 캐서린의 앞으로 뭔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얼핏 단검만큼이나 기다란 송곳니.
"아니, 송곳니라고 하기엔 좀 너무 긴 거 아닌가요?"
"하, 하하하! 이런 걸 받아버리면 거부할 수도 없잖습니까."
"오, 뭔지 아시나요?"
"아니! 모른다!"
캐서린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냉큼 상자를 반대편으로 밀었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 그녀는 수많은 것을 보았지만, 그런데도 모르는 것은 무척이나 많았다.
비록 신이 대가로 내민 물건의 정체 또한 몰랐다.
하지만 단검에 가까운 기다란 송곳니에서 느껴지는 기운만으로 사룡의 비늘에 필적하는 물건인 것은 분명했다.
천천히 상자를 품속으로 집어넣은 이름 없는 여행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렘에게 고개를 돌렸다.
......
"맛있게 드셨으면 저야 기쁠 따름입니다."
......
"네? 손을?"
카렘은 공손하게 손을 내밀었고, 그 위로 아까처럼 뭔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어, 어엇!?"
상상 이상의 작은 크기와 가벼움에 물건을 놓칠 뻔한 카렘은 헛손질을 몇 번 하다 간신히 받아들고, 확인했다.
"이건...콩?"
콩.
콩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자연계에서 찾아보기 드문 밝은 연녹색에 검은 테두리가 인상적인, 얼핏 강낭콩처럼 생긴 콩이었다.
"거 참 조심 좀 하지 그랬냐."
"아니, 갑자기 이런 가벼운 게 떨어져서요. 아니 그전에. 손님은?"
"잠깐 고개를 돌린 사이 사라졌다."
캐서린의 말대로 이름 없는 여행자가 있던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튀김가루 하나 남지 않은 말끔한 접시만이 좀 전의 일이 꿈이 아님을 증명했다.
"후, 설마하니 윈터센드 이후로 이렇게나 빨리 또 다른 신의 화신을 볼 수 있을 줄이야."
"으, 으으음. 대, 대체 무슨 일이...역시 꿈이었나-"
캐서린은 어이없다는 듯이 콧웃음을 쳤다.
"꿈은 무슨 꿈. 이름 없는 여행자를 목도하고 네놈이 졸도해버린 사이에 다 끝났다."
"네!? 그, 그럼 그게, 아니 그분이 꿈이 아니라, 아니 대체 상황이 어, 어떻게 돌아간 거죠!?"
"평소보다 말을 더 더듬는군. 아니, 그럴 만도 한가."
나르케는 가슴과는 달리 머리는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카렘을 응시했지만, 카렘이 그녀에게 해줄 말은 하나 뿐이었다.
"뭐, 좋게 생각하시죠.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거 아닙니까?"
"아, 그, 그그그그그렇지!? 나 죽을 뻔했었지!?"
안 그래도 처졌던 나르케의 귀는 저승의 끄트머리를 밟았다가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젖은 미역처럼 더더욱 쳐졌다.
"일단 배부터 채우시죠. 치킨은, 음. 식었네."
"음? 그렇게나 시간이 오래 지났냐?"
"그런 것 같은데요. 튀겨서 데워오겠습니다."
카렘은 곧바로 양이 좀 줄어든 치킨 그릇을 집어 들고 화구로 돌아갔다.
꺼졌던 불을 다시 피우고, 기름 냄비를 다시 얹으려는데, 발치에 뭔가가 걸렸다.
데구르르르-
"응? 이건."
울퉁불퉁한 주먹만 한 우박.
한참 전에 창밖에서 무려 신의 머리를 뚫고 떨어졌던 물건이었다.
우박을 집어 든 카렘이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고 보니 이름 없는 여행자는 자기가 먹은 것이 아니라고 했었지. 그렇다면 그 양념치킨은.... 상념은 캐서린의 말에 잘려나갔다.
"꼬마야. 시간은 얼마나 걸리지?"
"얼마 안 걸립니다."
카렘은 콩이든 우박이든 나중에 알아보기로 했다.
당장 신경 쓸 것은, 눈앞의 끓어오르기 시작한 기름과 반쯤 식은 치킨.
솨아아아아아- 바글바글바글!
카렘은 식은 치킨을 기름에 쏟아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