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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동안 뭔 일이 있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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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아이스랜드 교역을 주업으로 삼은 토르첼로의 소포로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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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고향은 이름에서 알듯이 세르비아누스 왕국의 토르첼로 자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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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포로스에게 있어 아이스랜드란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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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발을 디딘 시간을 생각하면 오히려 태어난 곳보다도 이곳이 더욱 익숙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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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로 뛰어다니는 행상인으로 시작해 전국구 상인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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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상인들에게 질투와 존경을 받는 거상인 그에게 성공의 비결을 묻는다면 바로 행동과 실천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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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의자에 앉아 깃펜만 굴리려는 이들과는 달리 그와 같은 성공한 상인들은 하나같이 몸소 움직여 시장과 유행을 조사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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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사업장과 거대한 상단의 주인이 몸소 그렇게 움직이는 게 속된 말로 자존심 떨어지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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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 물론 귀족과의 거래를 위해서라도 상인에게 자존심, 명예는 중요하지만, 자존심과 명예는 돈과 저울질했을 때 얼마든지 내려놓을 수 있는 무형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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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에게 누구보다 빠르게 하는 시장 조사와 유행의 선점은 명예와 자존심을 잠시 내려놓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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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했기에 그는 언제나 날씨가 풀린 직후 가장 먼저 아이스랜드로 향했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정보를 위해 콜던의 여러 술집을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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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도시의 모든 정보는 술집에 모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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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포로스는 입장하자마자 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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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아이스랜드는 다른건 다 좋은데, 봄철의 이 습기만 좀 어떻게 할 수 없나? 여긴 날이 덥기는커녕 추운데도 땀이 나는 지경이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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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자. 그렇게 투덜거리지 말고 여기 스튜에 불마손 가루를 조금 넣어서 먹어보게! 이런 봄 날씨도 추운 대륙 사람들에겐 제격이야. 몸에서 습기도 빼줘서 효과가 탁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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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마손? 뭐, 붉은 마녀의 손가락? 미쳤어!? 이 새끼가 지금 독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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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겨울 동안 잔뜩 퍼먹었는데 뭐. 자네 혹시, 겁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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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잇! 이리 내놔! 맛도 없고 혀가 따갑기만 한데 뭐어어? 어?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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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흐! 무슨 말인지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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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마녀의 손가락? 저거 독초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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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던의 어느 술집을 가더라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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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정겹기만 하지만) 봄인데도 춥고 습한 날씨에 고통받는 노동자와 모험가들에게 현지인들이 독초 가루를 넣은 음식을 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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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권유받은 이들은 거부하거나, 심하면 폭력을 행사하며 저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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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단 맛을 보면 눈빛부터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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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만 콜던을 배회하던 소포로스 또한 시장 조사를 위해서라도 한 그릇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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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왜 그런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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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숟가락 들어가자마자 후추보다도 강렬하게 혀를 자극하는 매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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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바로 몸속에서 훅 달아오르듯이 솟구치는 뜨거운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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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씨인데도 몸이 후끈해지다 못해 소포로스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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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그저 연료처럼 목구멍으로 때려 넣던 스튜가 불마손을 넣고 끓이니 그럭저럭 먹을 만한 수준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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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포로스는 왜 이렇게 현지인들이 붉은 마녀의 손가락에 환호하는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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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지방의 사람들이 물처럼 술을 퍼마시는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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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이유가 있긴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추위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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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자신의 남자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맨몸으로 엄동설한을 배회한다고 해도 잠깐이지 평소에는 추위를 피하고자 털가죽으로 몸을 둘둘 싸매는 이유가 바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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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문화가 뒤틀려 레체루스 공국 같은 곳은 누구 하나 기절할 때까지 술을 퍼마신다고 하지만 아이스랜드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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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되었든 요는 추위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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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불마손 가루를 넣은 음식, 혹은 가루는 먹은 즉시 바로 그 효과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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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 뒤로 넘어간 그 순간부터 몸속 깊은 곳에서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며 체온이 올라가 소포로스는 평소와 달리 봄인데도 두툼한 외투를 벗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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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포로스는 붉은 마녀의 손가락이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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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발적인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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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은 즉시 효과가 나타나는 포션은 값이 비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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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노동자가 가볍게 살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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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마손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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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마손이 들어간 음식은 일반 음식보다 가격 면에서 그렇게 큰 차이가 없었다. 해봤자 펜스 한, 두 장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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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로스는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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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마녀의 손가락은 일부 마법사나 가끔 찾는 마법 독초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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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향신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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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매콤함은 후추보다 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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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면 즉시 방한 효과가 올라오는 향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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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폰 경. 지난 겨울 동안 콜던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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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역시 소포로스 자네도 알 수밖에 없군. 하긴 지금 콜던의 귀족부터 평민을 가릴 것 없이 붉은 마녀의 손가락이 유행하고 있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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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하이폰 경 같은 콜던의 귀족분들도 붉은 마녀의 손가락을 찾으신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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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극히 소수의 귀족은 어떻게 평민이 먹는 것과 같은 것을 먹겠냐며 대신 후추를 잔뜩 친다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불마손의 풍미와 후추의 풍미는 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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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는 은은하다면, 붉은 마녀의 손가락은 화끈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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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맛과 가격, 그리고 비교적 구하기 쉬운 덕분에 날씨가 풀리자마자 아이스랜드 전역으로 유행이 번져나가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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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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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건너 들은 사실인데, 주군께서도 이를 이용해 대규모 경작지를 꾸리실 계획이라고 하시더군. 소문으론 마법사의 탑에서 벌써 방한 포션으로도 연구 중이라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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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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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포로스가 가진 아이스랜드의 정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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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폰드의 하이폰 경과의 만남은 그 생각에 쐐기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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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 포션, 대규모 경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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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아이스랜드 공작이 친히 나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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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에서 왕이나 다름없는 최고위 귀족이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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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던의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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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랜드로 번지는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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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귀 현상으로 값이 오르기 시작한 붉은 마녀의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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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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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는 분명 돈이 된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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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랜드 공작이 빠르게 대규모 경작지를 준비한다고 해도 한계는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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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물이 자라고, 품귀 현상을 해결하고, 시장을 장악하는데 필요한 물량을 확보한다 하더라도 물리적인 시간은 설령 마법을 동원할지라도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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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해결할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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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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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귀 현상과 준비 완료 사이의 미묘한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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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손이 준비를 끝마치기 전에 이 파도의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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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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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매년 성의의 표시를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성의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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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소포로스 자네와 나 사이 아닌가. 다음 겨울에도 무사히 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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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이번에 얻은 가치는 고작 금화 주머니는 따위로 할 만큼 중요한 가치였으니까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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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폰 경에게 두둑한 마음을 표시한 소포로스는 무례란 것을 알면서도 급하게 만남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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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회장님. 오셨습니까? 이제 막 거래는 끝났고 이제 구매할 품목을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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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다 취소해! 우리는 귀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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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렇게 되면 배가 전부 텅텅 빌 텐데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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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나는 부분은 내 재산으로 채워 넣을 테니 얼른 베르생제토 지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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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에우로파 북부 지방에서 붉은 마녀의 손가락은 마법 재료기는 했지만, 매우 흔한 독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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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이스랜드 외에도 레체루스 공국, 아스카 정착지, 스발바르 연맹 및 기타 등등 추운 북부의 국가는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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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로스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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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수레와 수레를 끄는 짐승의 배설물 냄새가 그의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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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포로스는 그 사이로 찬란한 금화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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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한 대회관의 한쪽에서 매콤달콤한 돼지갈비를 손질하던 아이오나는 무심코 속마음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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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정말이지 이렇게 보니 감회가 새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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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시간이 지나 세대가 바뀌면서 과거를 기억하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이오나는 아직도 수십 년 전의 과거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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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아이스랜드의 사람들은 평민과 귀족 가릴 것 없이 생존하기에 급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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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복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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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을 위협하는 맹수, 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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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은 단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는 척박한 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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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랜드의 문명을 수호하는 북쪽의 최전선조차 막지 못하는 혹독한 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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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과 목책 너머는 평민들은 당연하고 무려 그 귀족들조차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야만의 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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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불과 며칠 전이었던 것 같지만 벌써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대회관에 앉은 아이오나의 눈앞에는 풍요로운 식탁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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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의 아이스랜드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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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펠윈터의 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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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상인의 말을 귀담아듣고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아도비스 신왕국의 시장을 개척하고, 유지하고, 사업을 확장하고, 노동자와 모험가를 끌어들이기 시작하자 해를 거듭할수록 아이스랜드는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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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이오나의 주군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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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에 새롭게 재발견된 붉은 마녀의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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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독성과 놀라운 효과를 파악하자마자 이를 활용하기 위해 알프레드는 곧바로 행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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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대회관 저녁에 붉은 마녀의 손가락을 쓴 요리가 나오는 한편, 지속적인 소문을 일으켜 콜던을 시작으로 아이스랜드 전역으로 유행을 퍼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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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배만 채우는 게 아니라 맛있는 것도 먹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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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에 외국 요리사를 초빙해 어떻게든 맛있는 요리를 먹었던 권력자들과는 달리 지난 수천 년 동안 아이스랜드에서 미식이란 사치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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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생존하기에 급급하고, 고기 말고 그 어떤 작물을 길러도 맛이 없는 땅에서 평민이 매 끼니를 맛있게 먹는 것은 알프레드 이전의 역대 아이스랜드 공작 그 누구도 바꿀 엄두 이전에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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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나는 수염에 묻지 않도록 요령껏 돼지갈비를 뜯으며 그 시발점이 된 소년을 흘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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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꼬마야. 그 큼직한 고깃덩어리를 혼자서 다 먹을 수 있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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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요. 전 이제 11살 성장기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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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막내 공녀도 만만찮게 먹으니 너도 먹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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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리시아님만큼은 무리죠. 공녀님의 식사량은 규격 외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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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으로 내용을 전부 파악한 아이오나는 소년의 입에서 언급된 불경한 말을 넘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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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윈터홈에서 알리시아의 식사량은 비밀 아닌 비밀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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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소문을 어떻게 해보련 이들 (예를 들어 펠윈터 공작 부부라던가, 가정교사인 포핀스 남작부인이라던가 기타 등등)도 있었지만 포기한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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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오히려 소문이란 억제하면 더욱 퍼지는 법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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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에게 있어서 폭식이란 힘과 권력의 상징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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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어린 공녀한테 득일지 실일지는 차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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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새끼 곰도 알리시아님만큼 먹진 않을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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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엄하기 그지없는 말이었지만 아이오나는 말 없이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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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여신께 맹세코 그가 친손녀처럼 사랑하는 공녀의 먹성은 성별과 나이를 생각하면 놀라운 수준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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