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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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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동안 뭔 일이 있었던 거지?"

대대로 아이스랜드 교역을 주업으로 삼은 토르첼로의 소포로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의 고향은 이름에서 알듯이 세르비아누스 왕국의 토르첼로 자치령.

하지만 소포로스에게 있어 아이스랜드란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발을 디딘 시간을 생각하면 오히려 태어난 곳보다도 이곳이 더욱 익숙할 지경이었다.

도보로 뛰어다니는 행상인으로 시작해 전국구 상인이 되기까지.

무릇 상인들에게 질투와 존경을 받는 거상인 그에게 성공의 비결을 묻는다면 바로 행동과 실천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깃펜만 굴리려는 이들과는 달리 그와 같은 성공한 상인들은 하나같이 몸소 움직여 시장과 유행을 조사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수 많은 사업장과 거대한 상단의 주인이 몸소 그렇게 움직이는 게 속된 말로 자존심 떨어지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헛소리! 물론 귀족과의 거래를 위해서라도 상인에게 자존심, 명예는 중요하지만, 자존심과 명예는 돈과 저울질했을 때 얼마든지 내려놓을 수 있는 무형의 가치!

그리고 그에게 누구보다 빠르게 하는 시장 조사와 유행의 선점은 명예와 자존심을 잠시 내려놓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러했기에 그는 언제나 날씨가 풀린 직후 가장 먼저 아이스랜드로 향했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정보를 위해 콜던의 여러 술집을 들렀다.

자고로 도시의 모든 정보는 술집에 모이는 법.

그리고 소포로스는 입장하자마자 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우, 아이스랜드는 다른건 다 좋은데, 봄철의 이 습기만 좀 어떻게 할 수 없나? 여긴 날이 덥기는커녕 추운데도 땀이 나는 지경이니 원."

"자아 자. 그렇게 투덜거리지 말고 여기 스튜에 불마손 가루를 조금 넣어서 먹어보게! 이런 봄 날씨도 추운 대륙 사람들에겐 제격이야. 몸에서 습기도 빼줘서 효과가 탁월하다고."

"불마손? 뭐, 붉은 마녀의 손가락? 미쳤어!? 이 새끼가 지금 독초를-"

"우리도 겨울 동안 잔뜩 퍼먹었는데 뭐. 자네 혹시, 겁나는 건가?"

"에잇! 이리 내놔! 맛도 없고 혀가 따갑기만 한데 뭐어어? 어? 어어?"

"흐흐흐! 무슨 말인지 알겠지?"

....붉은 마녀의 손가락? 저거 독초 아니었나?

콜던의 어느 술집을 가더라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에게는 정겹기만 하지만) 봄인데도 춥고 습한 날씨에 고통받는 노동자와 모험가들에게 현지인들이 독초 가루를 넣은 음식을 권하고 있었다.

당연히 권유받은 이들은 거부하거나, 심하면 폭력을 행사하며 저항했다.

하지만 일단 맛을 보면 눈빛부터가 달라졌다.

당연하지만 콜던을 배회하던 소포로스 또한 시장 조사를 위해서라도 한 그릇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왜 그런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 숟가락 들어가자마자 후추보다도 강렬하게 혀를 자극하는 매콤함.

그리고 곧바로 몸속에서 훅 달아오르듯이 솟구치는 뜨거운 열기.

추운 날씨인데도 몸이 후끈해지다 못해 소포로스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저 연료처럼 목구멍으로 때려 넣던 스튜가 불마손을 넣고 끓이니 그럭저럭 먹을 만한 수준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소포로스는 왜 이렇게 현지인들이 붉은 마녀의 손가락에 환호하는지 깨달았다.

추운 지방의 사람들이 물처럼 술을 퍼마시는 이유가 뭘까.

여러 이유가 있긴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추위 때문이었다.

아무리 자신의 남자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맨몸으로 엄동설한을 배회한다고 해도 잠깐이지 평소에는 추위를 피하고자 털가죽으로 몸을 둘둘 싸매는 이유가 바로 그것.

물론 이런 문화가 뒤틀려 레체루스 공국 같은 곳은 누구 하나 기절할 때까지 술을 퍼마신다고 하지만 아이스랜드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요는 추위 때문이었다.

그리고 불마손 가루를 넣은 음식, 혹은 가루는 먹은 즉시 바로 그 효과가 나타났다.

목구멍 뒤로 넘어간 그 순간부터 몸속 깊은 곳에서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며 체온이 올라가 소포로스는 평소와 달리 봄인데도 두툼한 외투를 벗어야만 했다.

그리고 소포로스는 붉은 마녀의 손가락이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지 알 수 있었다.

즉발적인 효과.

먹은 즉시 효과가 나타나는 포션은 값이 비쌌다.

적어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노동자가 가볍게 살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불마손은 달랐다.

불마손이 들어간 음식은 일반 음식보다 가격 면에서 그렇게 큰 차이가 없었다. 해봤자 펜스 한, 두 장 차이.

소포로스는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붉은 마녀의 손가락은 일부 마법사나 가끔 찾는 마법 독초가 아니었다.

이건 향신료였다.

그것도 매콤함은 후추보다 더한.

먹으면 즉시 방한 효과가 올라오는 향신료.

"하이폰 경. 지난 겨울 동안 콜던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군요."

"아아, 역시 소포로스 자네도 알 수밖에 없군. 하긴 지금 콜던의 귀족부터 평민을 가릴 것 없이 붉은 마녀의 손가락이 유행하고 있긴 하지."

"허어, 하이폰 경 같은 콜던의 귀족분들도 붉은 마녀의 손가락을 찾으신단 말입니까?"

"뭐, 극히 소수의 귀족은 어떻게 평민이 먹는 것과 같은 것을 먹겠냐며 대신 후추를 잔뜩 친다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불마손의 풍미와 후추의 풍미는 다르지."

"후추는 은은하다면, 붉은 마녀의 손가락은 화끈하니까요?"

"그래. 맛과 가격, 그리고 비교적 구하기 쉬운 덕분에 날씨가 풀리자마자 아이스랜드 전역으로 유행이 번져나가고 있지."

"호오."

"건너건너 들은 사실인데, 주군께서도 이를 이용해 대규모 경작지를 꾸리실 계획이라고 하시더군. 소문으론 마법사의 탑에서 벌써 방한 포션으로도 연구 중이라더군."

"허어..."

그리고 소포로스가 가진 아이스랜드의 정보통.

베어폰드의 하이폰 경과의 만남은 그 생각에 쐐기를 박았다.

향신료, 포션, 대규모 경작지.

무려 아이스랜드 공작이 친히 나선다고 했다.

영지에서 왕이나 다름없는 최고위 귀족이 행동한다?

콜던의 현황.

아이스랜드로 번지는 유행.

품귀 현상으로 값이 오르기 시작한 붉은 마녀의 손가락.

그리고 확신했다.

이거는 분명 돈이 된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아이스랜드 공작이 빠르게 대규모 경작지를 준비한다고 해도 한계는 분명했다.

작물이 자라고, 품귀 현상을 해결하고, 시장을 장악하는데 필요한 물량을 확보한다 하더라도 물리적인 시간은 설령 마법을 동원할지라도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해결할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 전까지.

품귀 현상과 준비 완료 사이의 미묘한 공백.

큰 손이 준비를 끝마치기 전에 이 파도의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

"분명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매년 성의의 표시를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성의를 보였습니다."

"하! 소포로스 자네와 나 사이 아닌가. 다음 겨울에도 무사히 보도록 하지."

그야 이번에 얻은 가치는 고작 금화 주머니는 따위로 할 만큼 중요한 가치였으니까 당연하지!

하이폰 경에게 두둑한 마음을 표시한 소포로스는 무례란 것을 알면서도 급하게 만남을 끝냈다.

"아, 회장님. 오셨습니까? 이제 막 거래는 끝났고 이제 구매할 품목을 산-"

"전부 다 취소해! 우리는 귀환한다!"

"예!? 그렇게 되면 배가 전부 텅텅 빌 텐데 말입니까?"

"적자 나는 부분은 내 재산으로 채워 넣을 테니 얼른 베르생제토 지부로 향한다!"

추운 에우로파 북부 지방에서 붉은 마녀의 손가락은 마법 재료기는 했지만, 매우 흔한 독초.

그리고 아이스랜드 외에도 레체루스 공국, 아스카 정착지, 스발바르 연맹 및 기타 등등 추운 북부의 국가는 넘쳐났다.

소포로스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텅 빈 수레와 수레를 끄는 짐승의 배설물 냄새가 그의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하지만 소포로스는 그 사이로 찬란한 금화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시끌벅적한 대회관의 한쪽에서 매콤달콤한 돼지갈비를 손질하던 아이오나는 무심코 속마음을 내뱉었다.

"하아, 정말이지 이렇게 보니 감회가 새롭구나."

비록 시간이 지나 세대가 바뀌면서 과거를 기억하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이오나는 아직도 수십 년 전의 과거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본래 아이스랜드의 사람들은 평민과 귀족 가릴 것 없이 생존하기에 급급했다.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문명을 위협하는 맹수, 몬스터.

풍년은 단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는 척박한 대지.

아이스랜드의 문명을 수호하는 북쪽의 최전선조차 막지 못하는 혹독한 추위.

성벽과 목책 너머는 평민들은 당연하고 무려 그 귀족들조차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야만의 대지.

눈을 감으면 불과 며칠 전이었던 것 같지만 벌써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대회관에 앉은 아이오나의 눈앞에는 풍요로운 식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번 대의 아이스랜드 공작.

알프레드 펠윈터의 공이었다.

일개 상인의 말을 귀담아듣고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아도비스 신왕국의 시장을 개척하고, 유지하고, 사업을 확장하고, 노동자와 모험가를 끌어들이기 시작하자 해를 거듭할수록 아이스랜드는 변화했다.

그리고 아이오나의 주군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지난겨울에 새롭게 재발견된 붉은 마녀의 손가락.

그 무독성과 놀라운 효과를 파악하자마자 이를 활용하기 위해 알프레드는 곧바로 행동했다.

매일 대회관 저녁에 붉은 마녀의 손가락을 쓴 요리가 나오는 한편, 지속적인 소문을 일으켜 콜던을 시작으로 아이스랜드 전역으로 유행을 퍼트리고 있었다.

"이제 배만 채우는 게 아니라 맛있는 것도 먹어야겠지."

진작에 외국 요리사를 초빙해 어떻게든 맛있는 요리를 먹었던 권력자들과는 달리 지난 수천 년 동안 아이스랜드에서 미식이란 사치나 다름없었다.

당장 생존하기에 급급하고, 고기 말고 그 어떤 작물을 길러도 맛이 없는 땅에서 평민이 매 끼니를 맛있게 먹는 것은 알프레드 이전의 역대 아이스랜드 공작 그 누구도 바꿀 엄두 이전에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아이오나는 수염에 묻지 않도록 요령껏 돼지갈비를 뜯으며 그 시발점이 된 소년을 흘겨보았다.

"허어, 꼬마야. 그 큼직한 고깃덩어리를 혼자서 다 먹을 수 있겠냐?"

"아무렴요. 전 이제 11살 성장기인걸요."

"하긴 막내 공녀도 만만찮게 먹으니 너도 먹을 수 있겠지."

"아, 알리시아님만큼은 무리죠. 공녀님의 식사량은 규격 외니까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으로 내용을 전부 파악한 아이오나는 소년의 입에서 언급된 불경한 말을 넘어가기로 했다.

이미 윈터홈에서 알리시아의 식사량은 비밀 아닌 비밀이었으니까.

처음에는 소문을 어떻게 해보련 이들 (예를 들어 펠윈터 공작 부부라던가, 가정교사인 포핀스 남작부인이라던가 기타 등등)도 있었지만 포기한 지 오래였다.

아무렴 오히려 소문이란 억제하면 더욱 퍼지는 법이기도 하고.

귀족에게 있어서 폭식이란 힘과 권력의 상징이었으니.

그게 어린 공녀한테 득일지 실일지는 차치하고.

"솔직히 새끼 곰도 알리시아님만큼 먹진 않을 걸요?"

무엄하기 그지없는 말이었지만 아이오나는 말 없이 동의했다.

겨울의 여신께 맹세코 그가 친손녀처럼 사랑하는 공녀의 먹성은 성별과 나이를 생각하면 놀라운 수준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