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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은 물만 마셔도 그림이 된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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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막에 사는 엘프인 다크엘프는 엘프답게 남녀 가릴것 없이 미인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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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비스는 다크엘프의 비중이 매우 높은 다종족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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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사절단에도 다크엘프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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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엘프답게 하나같이 선남선녀였고 그 정점에는 네파네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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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모래를 질주하는 소녀의 생명력 넘치는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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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활발함과는 달리 세월에서 풍기는 나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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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로파에서는 보기 힘든 빛을 발하는 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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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볼을 부풀릴 뿐인, 얼핏 천진난만함까지 깃든 조금의 꾸밈도 없는 네파네크의 불만 표현은 그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을 돌아보게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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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림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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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의 심장 박동은 미동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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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돌부처처럼 제 자리에 굳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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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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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매일같이 보는 사람이 캐서린이고 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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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영역(일)을 침범당하면 살기를 내뿜는 건 당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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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우유, 버터와 잼에 환장하며 환장하는 밀가루의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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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무표정한 메리조차 아름다움을 수치로 따지자면 네파네크와 비슷한 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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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계약자인 캐서린은 네파네크보다 한 단계 위에 자리한 미인으로 단순한 표정과 행동만으로 아직 카렘의 심장을 종종 과부하 시키는 미모와 순진함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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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진대 네파네크의 외모에 눈이 팔리기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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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의 눈은 좀 많이 지나치게 높아진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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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지 않는 모아이 석상과도 같은 부동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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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뒤통수를 찌르는 듯한 시선을 무시하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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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카렘은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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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가에 크림을 묻혀가며 천진난만하게 케이크를 받아먹는 캐서린을 보고 소년은 잠시 소수를 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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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은 끝난 모양인데 눈은 왜 감고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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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잠깐 흔들린 마음의 균형을 되찾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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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네가 흔들릴게 뭐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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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고용 제안을 받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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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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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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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뭘 먹을까 고민하며 주변의 경쟁자들을 돌아보던 캐서린의 고개가 갑작스러운 소음에 놀란 고양이처럼 획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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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가 되기 전부터 이름 높았던 모험가였던 캐서린도 당연하겠지만 여타 귀족들로부터 고용 제안을 받은 적은 종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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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건 고용 제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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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된 말로 하자면 빼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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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나는 인재에게 압도적인 금력을 퍼부어 빼내는 고용 계약에 있어서 가장 비열하지만 막을 수 없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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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손짓한 캐서린은 메리가 손수건을 들고 다가오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년의 양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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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하니 사악한 사막 귀쟁이의 빛나는 유혹에 넘어가 버린 것은 아니겠지? 대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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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여태까지 귀빈이라고 하셨으면서? 주변 사람들이 다 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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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들이 이걸 신경 쓸 틈이 있다고 생각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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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의 말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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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중에서 청력이 좋다는 엘프라지만 그것도 상황이 뒤따라줄 때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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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에 앉은 이들은 아도비스, 윈터홈에 가릴 것 없이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감촉에 넋이 나가 있거나 이에 감탄하며 이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느라 바쁜 와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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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성을 높이지 않은 강한 어조로 나누는 캐서린과 카렘의 대화는 왁자지껄한 테이블의 배경음으로라도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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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파네크가 여전히 카렘을 뚱한 시선과 표정으로 보고 있지만, 그녀도 캐서린과 카렘이 뭐라 이야기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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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직감적으로 그녀가 건넨 제안과 연관된 일이라고 느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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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와 동업자가 그러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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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는 그 상황을 잠시 보고 있다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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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 볼에 크림이 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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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아. 어쩐지 묘한 감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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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하게 진심과 진실로 왜 하는지 모를 변명을 늘어놓던 카렘은 캐서린이 잠시 진정한 것 같아 무심코 한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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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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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발. 안 간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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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캐서린은 연회가 끝날 때까지 카렘에게 상황을 꼬치꼬치 캐묻고 소년이 계약서를 상기시키며 세 번이나 말하고 나서야 진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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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과 설탕, 그리고 적절한 노동력이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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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으로 크림이 이런 질감으로 변한다는 건가? 아니,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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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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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카렘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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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비스와 윈터홈의 요리사들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서 휘핑크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관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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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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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비전(祕傳)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귀중하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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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를 가공하는 방법부터 시작해 조합법과 배합 비율은 당연하고 고작 손놀림조차 비전이 될 수 있었다. 요리의 레시피도 비전인 것은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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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비전이라는 것은 그걸 가진 자의 전부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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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카렘의 휘핑크림은 주변의 요리사들이 보기에 충분히 비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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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칼질하는 방법조차 비전이라고 돈을 받는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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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료가 지닌 형태와 질감 자체가 변해버리는 휘핑크림은 그들의 시선에서 오히려 원천 기술이 아닌 것이 더욱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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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시선에 휘핑크림은 요리계의 역사에 기록될만한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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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카렘은 지금 이 자리에서 카렘이 선보일 수 있는 각종 요리를 선보이며 레시피까지 같이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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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익숙해진 윈터홈의 요리사들은 적응하고 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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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 주방장. 당신은 신입니다! 조금 불경한 거 아니냐고? 알게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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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비스의 요리사들은 어리둥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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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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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그냥 이렇게 쉽게 알려줘도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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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애초에 거래 아니었나요? 그쪽들도 레시피에 향신료랑 이것저것 얹어서 줬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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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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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비스에서 찾아온 다크엘프 요리사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서로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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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비전은 거래가 가능하냐 불가능하냐 따지면 가능한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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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신의 비전을 호락호락하게 대가를 받고 넘기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넘긴다고 해도 최대한 장황하고 알아듣기 어렵게 넘기는 것이 보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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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받는 사람도 어지간하면 불만을 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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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비전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대가를 받는다 해도 누가 자신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는 것을 순수하게 넘기겠나? 사기나 안 치면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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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카렘은 다른 종족보다 오래 산 다크엘프의 눈으로 보기에 별종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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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생에 처음 겪는 경험에 다크엘프들은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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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정신이 투철한 건가? 아직 어리니 순수한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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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눈빛을 잠시 주고받은 아도비스의 다크엘프 요리사들은 고향의 궁전에서 단련된 정치질을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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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아도비스말고 다른 지역의 요리도 관심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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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다른 지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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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르카디아 황무지의 부족민들의 요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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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대국이 대국인 이유는 모름지기 배포가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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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아도비스의 다크엘프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들이 이렇게 어린 나이인데도 재능을 힘껏 발휘하고, 그걸 또 거짓 없이 나누려고 하니 기특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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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들은 오랜만에 대국의 배포를 보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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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은 있는데. 우선 휘핑크림을 직접 만들어보고 이것저것 시험해보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요? 알려주시는 건 그다음에 하죠? 주고받는 게 보기에도 좋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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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생각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구나. 이 감각이 사라지기 전에 몇 가지 시험해보고 싶은 것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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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케이크랑 시럽 남는 거 있나? 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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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습니다. 시럽은 지금 만들어야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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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비스와 윈터홈의 요리사들이 각자 삼삼오오 흩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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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숨 돌릴 시간이 생긴 카렘은 한숨을 깊게 내뱉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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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앉아 그를 유심히 지켜보는 다크엘프 소녀, 네파네크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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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지만 네파네크님. 아도비스 신왕국의 사절이신 만큼 바쁘신 게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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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진 아이스랜드에서 저를 직접 만날 자격이 되는 이가 몇이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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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으로 돌아오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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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인즉슨 급이 안되는 이들은 밑에 부하들 선에서 끝난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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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래도 일이 상당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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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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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이 눈에 불을 켜고 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그 빈틈마다 찾아와 네파네크는 제안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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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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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요? 어린 나이에 그만한 재능이라면 미래를 생각해봐요. 이런 에우로파 촌구석보단 더 큰물이 어울리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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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큰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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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라고 부처마냥 해탈한 것이 아니니 당연히 욕심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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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돈과 더 좋은 조리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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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식재료와 향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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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주방과 밑에서 부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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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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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돈이라고 해봐야 지금 당장 그가 쓸 곳은 딱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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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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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에 주문했던 구리 석쇠 및 기타 등등을 받으러 갔을 때 캐서린이 지급했다며 선금까지 되돌려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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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료와 향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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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홈에 들어오는 것 중에 수입품이 아닌 것이 더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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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현대의 마트 공산품에 비견될 상태가 좋은 물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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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귀족의 주방에 품질 가지고 장난 칠 간 큰 도둑놈이 있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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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있다고 해도 빠른 목뎅겅 후 흩뿌려진 피에 시민들이 빵을 찍어 먹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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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주방? 밑에 부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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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집요정 메리가 있는데 더 좋은 시설과 부릴 사람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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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 이전에 메리가 마법사의 탑에 다른 시종이나 일꾼이 들어오는 것을 호락호락 지켜보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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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혹했던 카렘의 표정이 점점 부정적이라는 요상한 표정으로 변해가자 네파네크는 반대로 당황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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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직 꿈이 넘칠 어린 나이에 조금의 야망도 없는 건가요? 원한다면 입지 좋은 곳에 오아시스를 붙여줄 수도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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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오아시스가 딸린 영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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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신 보우하사 소벡 강의 은혜로 아도비스 신왕국은 영토 대다수가 사막일진데도 물이 부족한 적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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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데도 아도비스의 영토는 대부분이 사막이었기에 더더욱 물이 귀했고, 오아시스는 더더욱 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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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란 생명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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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있는 곳에 식물이 자라고, 동물이 모이며, 사람이 모이고, 마을이 만들어지기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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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를 준다는 것은 오아시스 주변의 영지에 대한 지배권을 선사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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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끌리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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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대체 어째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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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부동산이라는 것은 죽었던 사람도 깨울 만큼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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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이었다면 카렘은 기꺼이 무릎을 꿇고 네파네크의 발에서 민트향 클렌징 냄새가 날 정도로 핥을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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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환생한 지금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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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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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라는 사막 최고의 꿀땅 중 하나를 영지로 이 나이에 가지게 된다면 질시하는 사람이 안 생길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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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수락해도 오아시스보다 네파네크의 주방, 혹은 왕실의 주방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걸 가지고 있어봤자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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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네파네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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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쌓았고 계속 쌓이는 중인 기반을 버리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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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은 지금의 결과를 재현할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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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이득을 다 치우더라도 여기서 만난 사람들, 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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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양을 건너기엔 그동안 쌓인 인연이 눈에 계속 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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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제안 감사하지만 역시 거절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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