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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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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은 물만 마셔도 그림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사막에 사는 엘프인 다크엘프는 엘프답게 남녀 가릴것 없이 미인이 많았다.

아도비스는 다크엘프의 비중이 매우 높은 다종족 국가.

자연스럽게 사절단에도 다크엘프가 많았다.

그리고 엘프답게 하나같이 선남선녀였고 그 정점에는 네파네크가 있었다.

사막의 모래를 질주하는 소녀의 생명력 넘치는 매력.

하지만 그런 활발함과는 달리 세월에서 풍기는 나른함.

에우로파에서는 보기 힘든 빛을 발하는 피부.

그저 볼을 부풀릴 뿐인, 얼핏 천진난만함까지 깃든 조금의 꾸밈도 없는 네파네크의 불만 표현은 그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을 돌아보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카렘의 심장 박동은 미동조차 없었다.

마음은 돌부처처럼 제 자리에 굳건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아무렴 매일같이 보는 사람이 캐서린이고 메리였다.

자기 영역(일)을 침범당하면 살기를 내뿜는 건 당연지사.

빵과 우유, 버터와 잼에 환장하며 환장하는 밀가루의 수호자.

그런 무표정한 메리조차 아름다움을 수치로 따지자면 네파네크와 비슷한 급이었다.

그 계약자인 캐서린은 네파네크보다 한 단계 위에 자리한 미인으로 단순한 표정과 행동만으로 아직 카렘의 심장을 종종 과부하 시키는 미모와 순진함을 지니고 있었다.

이럴진대 네파네크의 외모에 눈이 팔리기엔 좀.

카렘의 눈은 좀 많이 지나치게 높아진 상황이었다.

무너지지 않는 모아이 석상과도 같은 부동심.

카렘은 뒤통수를 찌르는 듯한 시선을 무시하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카렘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입가에 크림을 묻혀가며 천진난만하게 케이크를 받아먹는 캐서린을 보고 소년은 잠시 소수를 세었다.

"설명은 끝난 모양인데 눈은 왜 감고 있냐?"

"아뇨. 잠깐 흔들린 마음의 균형을 되찾고 있었어요."

"응? 네가 흔들릴게 뭐가 있다고?"

"조금 전에 고용 제안을 받았거든요."

"뭐?"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이번엔 뭘 먹을까 고민하며 주변의 경쟁자들을 돌아보던 캐서린의 고개가 갑작스러운 소음에 놀란 고양이처럼 획 돌았다.

대마법사가 되기 전부터 이름 높았던 모험가였던 캐서린도 당연하겠지만 여타 귀족들로부터 고용 제안을 받은 적은 종종 있었다.

아니, 이건 고용 제안이 아니었다.

속된 말로 하자면 빼내기!

탐나는 인재에게 압도적인 금력을 퍼부어 빼내는 고용 계약에 있어서 가장 비열하지만 막을 수 없는 행위!

허공에 손짓한 캐서린은 메리가 손수건을 들고 다가오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년의 양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설마하니 사악한 사막 귀쟁이의 빛나는 유혹에 넘어가 버린 것은 아니겠지? 대답해라."

"아니, 여태까지 귀빈이라고 하셨으면서? 주변 사람들이 다 보겠어요!"

"지금 저들이 이걸 신경 쓸 틈이 있다고 생각하냐?"

캐서린의 말대로였다.

사람 중에서 청력이 좋다는 엘프라지만 그것도 상황이 뒤따라줄 때의 일.

테이블에 앉은 이들은 아도비스, 윈터홈에 가릴 것 없이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감촉에 넋이 나가 있거나 이에 감탄하며 이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느라 바쁜 와중이었다.

언성을 높이지 않은 강한 어조로 나누는 캐서린과 카렘의 대화는 왁자지껄한 테이블의 배경음으로라도 들리지 않았다.

네파네크가 여전히 카렘을 뚱한 시선과 표정으로 보고 있지만, 그녀도 캐서린과 카렘이 뭐라 이야기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직감적으로 그녀가 건넨 제안과 연관된 일이라고 느낄 뿐이었다.

계약자와 동업자가 그러거나 말거나.

메리는 그 상황을 잠시 보고 있다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계약자. 볼에 크림이 묻었습니다."

"응? 아아. 어쩐지 묘한 감촉이."

다급하게 진심과 진실로 왜 하는지 모를 변명을 늘어놓던 카렘은 캐서린이 잠시 진정한 것 같아 무심코 한숨을 내뱉었다.

"아직 안 끝났다."

"아. 제발. 안 간다니까요?"

그리고 캐서린은 연회가 끝날 때까지 카렘에게 상황을 꼬치꼬치 캐묻고 소년이 계약서를 상기시키며 세 번이나 말하고 나서야 진정할 수 있었다.

"크림과 설탕, 그리고 적절한 노동력이 전부?"

"그것만으로 크림이 이런 질감으로 변한다는 건가? 아니, 겁니까?"

"물론입니다."

소년, 카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도비스와 윈터홈의 요리사들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서 휘핑크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관했으니까.

원천 기술.

이른바 비전(祕傳)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귀중하기 마련이었다.

재료를 가공하는 방법부터 시작해 조합법과 배합 비율은 당연하고 고작 손놀림조차 비전이 될 수 있었다. 요리의 레시피도 비전인 것은 마찬가지.

결국, 비전이라는 것은 그걸 가진 자의 전부라는 의미.

그런 의미에서 카렘의 휘핑크림은 주변의 요리사들이 보기에 충분히 비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고작 칼질하는 방법조차 비전이라고 돈을 받는 시대였다.

원재료가 지닌 형태와 질감 자체가 변해버리는 휘핑크림은 그들의 시선에서 오히려 원천 기술이 아닌 것이 더욱 이상했다.

이들의 시선에 휘핑크림은 요리계의 역사에 기록될만한 기술이었다.

거기에 카렘은 지금 이 자리에서 카렘이 선보일 수 있는 각종 요리를 선보이며 레시피까지 같이 제공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익숙해진 윈터홈의 요리사들은 적응하고 찬양했다.

카렘 주방장. 당신은 신입니다! 조금 불경한 거 아니냐고? 알게 뭐냐!

아도비스의 요리사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래서 물었다.

"이걸 그냥 이렇게 쉽게 알려줘도 되는 건가?"

"네? 애초에 거래 아니었나요? 그쪽들도 레시피에 향신료랑 이것저것 얹어서 줬잖습니까."

"아니, 음."

아도비스에서 찾아온 다크엘프 요리사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서로를 돌아보았다.

물론 비전은 거래가 가능하냐 불가능하냐 따지면 가능한 쪽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비전을 호락호락하게 대가를 받고 넘기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넘긴다고 해도 최대한 장황하고 알아듣기 어렵게 넘기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받는 사람도 어지간하면 불만을 품지 않았다.

그야, 비전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대가를 받는다 해도 누가 자신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는 것을 순수하게 넘기겠나? 사기나 안 치면 다행이지.

그런 의미에서 카렘은 다른 종족보다 오래 산 다크엘프의 눈으로 보기에 별종이나 다름없었다.

긴 생에 처음 겪는 경험에 다크엘프들은 혼란스러웠다.

거래 정신이 투철한 건가? 아직 어리니 순수한 걸지도.

서로 눈빛을 잠시 주고받은 아도비스의 다크엘프 요리사들은 고향의 궁전에서 단련된 정치질을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혹시 아도비스말고 다른 지역의 요리도 관심 있나?"

"오, 다른 지역이요?"

"그래. 아르카디아 황무지의 부족민들의 요리인데-"

자고로 대국이 대국인 이유는 모름지기 배포가 크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도비스의 다크엘프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들이 이렇게 어린 나이인데도 재능을 힘껏 발휘하고, 그걸 또 거짓 없이 나누려고 하니 기특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다크엘프들은 오랜만에 대국의 배포를 보이기로 했다.

"관심은 있는데. 우선 휘핑크림을 직접 만들어보고 이것저것 시험해보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요? 알려주시는 건 그다음에 하죠? 주고받는 게 보기에도 좋으니까요."

"-흠, 생각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구나. 이 감각이 사라지기 전에 몇 가지 시험해보고 싶은 것도 있는데."

"버터케이크랑 시럽 남는 거 있나? 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여기 있습니다. 시럽은 지금 만들어야겠는데요."

아도비스와 윈터홈의 요리사들이 각자 삼삼오오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숨 돌릴 시간이 생긴 카렘은 한숨을 깊게 내뱉고.

옆에 앉아 그를 유심히 지켜보는 다크엘프 소녀, 네파네크에게 물었다.

"실례지만 네파네크님. 아도비스 신왕국의 사절이신 만큼 바쁘신 게 아닙니까?"

"구석진 아이스랜드에서 저를 직접 만날 자격이 되는 이가 몇이나 될까요?"

역으로 돌아오는 질문.

그 말인즉슨 급이 안되는 이들은 밑에 부하들 선에서 끝난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래도 일이 상당하겠지만.

그래서 그런가.

캐서린이 눈에 불을 켜고 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그 빈틈마다 찾아와 네파네크는 제안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요? 어린 나이에 그만한 재능이라면 미래를 생각해봐요. 이런 에우로파 촌구석보단 더 큰물이 어울리지 않을까요?"

"흠, 큰물이라."

물론 그라고 부처마냥 해탈한 것이 아니니 당연히 욕심은 있었다.

더 많은 돈과 더 좋은 조리기구.

더 좋은 식재료와 향신료.

더 좋은 주방과 밑에서 부릴 사람들.

하지만 생각해보자.

더 많은 돈이라고 해봐야 지금 당장 그가 쓸 곳은 딱히 없었다.

조리기구?

지난겨울에 주문했던 구리 석쇠 및 기타 등등을 받으러 갔을 때 캐서린이 지급했다며 선금까지 되돌려 받았다.

식재료와 향신료?

윈터홈에 들어오는 것 중에 수입품이 아닌 것이 더 드물었다.

그것도 현대의 마트 공산품에 비견될 상태가 좋은 물건들.

대귀족의 주방에 품질 가지고 장난 칠 간 큰 도둑놈이 있을리가.

설사 있다고 해도 빠른 목뎅겅 후 흩뿌려진 피에 시민들이 빵을 찍어 먹을 텐데?

더 좋은 주방? 밑에 부릴 사람?

지금 집요정 메리가 있는데 더 좋은 시설과 부릴 사람이 필요할까?

아니, 그 이전에 메리가 마법사의 탑에 다른 시종이나 일꾼이 들어오는 것을 호락호락 지켜보지 않겠지.

처음엔 혹했던 카렘의 표정이 점점 부정적이라는 요상한 표정으로 변해가자 네파네크는 반대로 당황하며 물었다.

"아니, 아직 꿈이 넘칠 어린 나이에 조금의 야망도 없는 건가요? 원한다면 입지 좋은 곳에 오아시스를 붙여줄 수도 있다고요?"

"흐음, 오아시스가 딸린 영지라..."

태양신 보우하사 소벡 강의 은혜로 아도비스 신왕국은 영토 대다수가 사막일진데도 물이 부족한 적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드물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아도비스의 영토는 대부분이 사막이었기에 더더욱 물이 귀했고, 오아시스는 더더욱 귀했다.

물이란 생명의 근원.

물이 있는 곳에 식물이 자라고, 동물이 모이며, 사람이 모이고, 마을이 만들어지기 마련.

오아시스를 준다는 것은 오아시스 주변의 영지에 대한 지배권을 선사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역시 끌리지 않네요."

"하? 대체 어째서죠!"

물론 부동산이라는 것은 죽었던 사람도 깨울 만큼 가치가 있었다.

전생이었다면 카렘은 기꺼이 무릎을 꿇고 네파네크의 발에서 민트향 클렌징 냄새가 날 정도로 핥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환생한 지금은 어떨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이 있었다.

오아시스라는 사막 최고의 꿀땅 중 하나를 영지로 이 나이에 가지게 된다면 질시하는 사람이 안 생길 리가 없었다.

설령 수락해도 오아시스보다 네파네크의 주방, 혹은 왕실의 주방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걸 가지고 있어봤자 의미가 있을까?

무엇보다 네파네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지금까지 쌓았고 계속 쌓이는 중인 기반을 버리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뜻.

카렘은 지금의 결과를 재현할 자신이 없었다.

앞선 이득을 다 치우더라도 여기서 만난 사람들, 은인들.

대양을 건너기엔 그동안 쌓인 인연이 눈에 계속 밟혔다.

"좋은 제안 감사하지만 역시 거절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