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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285 lines
13 KiB
Markdown

모든 요리사가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주방은 전장이다.
물론 당연하지만 진짜 전장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시끄럽고 복잡하며 위험하다는 의미였다.
특히 점심, 저녁, 혹은 심야 같은 러시아워는 요리사들을 웃프게 만든다.
주문은 끊임없이 들어와 불은 꺼질 새가 없으며 앞서 준비했던 재료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기 마련.
각자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다 보면 동선은 겹치기 마련이고 이로 인해 안 그래도 비좁은 주방에서 서로 부닥치고 시끄러운 금속음에 서로 말을 전하기 위해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건 당연했다.
그래도 가장 바쁜 피크타임이 지나면 브레이크.
휴식을 갖는다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 잠깐일 뿐.
곧바로 다음 시간대 장사를 준비하기 위해 요리사들은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사람이 쉬지 않고 움직이고, 주방의 불은 꺼질 새가 없으니 한겨울에도 폭염이 내리쬐듯이 더운 것이 바로 주방이라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카렘이 있는 공간은 해당하지 않았다.
덥기보다는 시원, 아니 추울 지경이었다.
카렘은 잔뜩 쌓인 달걀 껍데기를 치우고 주방을 둘러보았다.
한창 바쁘게 조리기구를 놀리고 재료를 손질하는 다양한 요리사들 사이로 주방 곳곳에는 어른 머리만 한 크기로 잘린 통 원목이 놓여 있었다.
마침 카렘의 뒤에도 하나 있었다.
실시간으로 냉기를 풀풀 뿜어내는 중이었다.
이래서 사막 국가 아도비스에서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눈이 뒤집혔다는 것이었군.
더울수록 냉기를 강하게 내뿜는다더니 카렘은 정확히 그게 무슨 말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습하기 짝이 없는 봄의 밀폐된 주방.
당연하지만 답답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었다.
거기에 요리사들이 하나둘 불을 쓰기 시작하자 습기 찬 주방은 금세 달아올랐고, 배치된 원목은 곧바로 냉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후끈 달아오르던 주방은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제습 효과도 있는 것인지 시설과 도구, 공기에서도 뽀송뽀송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거 돌아가면 좀 갖춰놓는 게 좋을지도?
잡생각은 거기까지 한 카렘은 우선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재의 주방을 지휘하는 총지휘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정해진 테마가 없는 듯 요리사들이 가장 자신이 있는 메뉴를 요리하는지 메뉴에는 통일성이 없었다.
주방의 본래 주인인 요리사들은 고기와 파이 요리를 위주로 하고 있었다.
아도비스 요리사들은 그네들 방식의 중동의 여러 지역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요리들을 준비하는 중.
윈터홈에서 파견 온 요리사들.
카렘이 알게 모르게 은혜를 내리고 상관에게 채찍질 당한 이들은 자신들의 손에 공작의 위신이 달렸다는 것에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빠르게 움직였다.
"이러면 디저트만 몇 가지 만들면 되겠네."
주방에서 조리되는 요리의 비중은 일단 식사 쪽에 기울어져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면 디저트를 준비하는 이들의 곁엔 모두 공통적인 재료들이 눈에 들어왔으니까.
과일은 그렇다고 쳐도 설탕과 버터, 달걀이 같이 있으면 빼도 박도 못하는 디저트일 수밖에 없었다.
마침 디저트를 포함한 요리 몇 가지를 부탁한다는 말도 있었는데, 그러면 전부 디저트를 만들어도 상관은 없는단 말이겠지?
사실 재료를 준비하면서 이미 만들 것은 다 생각해놓고 있었다.
물론 지금 캐서린의 곁에 있을 메리가 들었다면 제과제빵에 자신이 없다는 사람이 무슨 자신감이냐는 말을 하겠지만, 꼼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석이조(一石二鳥), 아니 삼조(三鳥).
단 하나로 세 종류의 디저트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딱히 발효도 필요 없었다.
다만 노동력이 상당히 필요한 일이었다.
이럴 때 메리가 있어야 딱 좋은데.
카렘은 혹시나 해 아쉬움이 물씬 풍기는 시선으로 주변을 다시 둘러봤지만 당장 그녀가 어디에 있을지는 뻔했지만, 그 자신이 잘 알았다.
하지만 그 시선에 카렘에게 주방에서 처음 말을 건 요리사.
알베르토가 슬쩍 다가왔다.
"혹시 손이 부족하시다면 제가 도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마침 제 일은 진작에 다 끝났습니다."
"벌써 요리를 다 끝마쳤다고요?"
"그야 돼지 통구이니까요. 새벽부터 잔불에 구워 조금 전에 끝나 다른 방에서 대기 중입니다."
요리는 대형일수록 조리 시간이 늘어나니 돼지 통구이쯤이면 몇 시간은 가볍게 걸리는 것이 당연.
그렇다니 카렘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흔쾌히 요리사의 도움을 받아든 카렘은 달걀 물과 우유를 미리 계량해 두었던 밀가루, 설탕, 소금을 넣고 반죽 물을 만들고는 녹인 버터를 천천히 넣어가며 조심스럽게 저었다.
"식사용 팬케이크라고 해도. 많이 묽은 것 같군요?"
"그야 팬케이크가 아니니까요."
"예?"
묽은 반죽 물을 지단 부치듯 예열된 팬에 얇고 넓게 펼쳐 순식간에 구운 카렘은 그 일을 곧바로 알베르토에게 맡겼다.
처음 하는 일에 조금 실수를 하긴 했지만 빠르게 익숙해진 알베르토가 팬에 새로 반죽 물을 부으며 물었다.
"그러면 이름이 무엇입니까? 팬케이크랑 만드는 방법은 똑같군요."
"이것 자체는 크레페라고 합니다."
"흠, 베르생제토식 이름이로군요."
실력 있는 요리사는 재료와 조리 과정, 결과물을 눈으로만 보아도 어느 정도 맛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공작을 따라 임시 주방장으로 파견된 알베르토도 가능했다.
그런 그의 눈에 처음 보는 크레페도 가늠할 수 있었지만, 그동안 소년이 보였던 모습에 비하면 조금 실망스럽기는 했다.
그건 은근슬쩍 카렘의 행동을 다양한 감정을 담아 지켜보던 이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들의 시선에 담긴 의미가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
*
*
주방의 원래 주인이던 여관의 요리사들이 조소를 보내는 가운데, 아도비스에서 온 요리사들은 이내 하나둘 시선을 거두고 있었다.
어쩌면 너무 기대한 것일지도 몰랐다.
성인식도 치르지 않았다는 어린 몸과 작은 손으로 펼치는 움직임은 확실히 매우 능숙하다고 할 수 있었다.
다크엘프의 긴 생에 있어서 그들이 저만한 나이일 때는 주방 근처에 가기는커녕 부모의 품속에서 응석을 부렸던 것이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공작 가문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천재 요리사라더니, 척박한 에우로파 촌구석 기준으로 말했던 것이었던가 싶었다.
사절 함대와 함께 파견된 그/그녀들은 신왕이 총애하는 금고지기를 위해 신왕의 명령으로 왕실 주방에서 파견된 이들이었다.
아도비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
수천 년 동안 수많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국가 자신도 위기는 있었지만 약간의 도움과 함께 훌륭하게 극복하고 아직도 성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그들의 왕국은 사막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세상 그 어느 국가보다 풍요롭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매년 범람하는 소벡 강의 은혜는 그들에게 흉작을 허락하지 않았다.
서쪽과 동쪽의 중간이라는 위치로 동서양의 물산이 모두 모였기에 문화 또한 그 어느 나라보다 발전했다고 믿으며 이는 요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요리는 누구보다도 정교하며, 화려하며, 사치스러운 것이 당연했다.
감히 사막의 지배자가 입에 대는 물건인데 보잘것없는 것을 대접할 수는 없었다.
그런 만큼 어지간한 에우로파의 국가들은 하나같이 근본 없는 것투성이.
세오폰 왕국의 역사는 아도비스의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펠윈터 가문의 역사는 그들 기준에서도 나름 길었다.
그래 봤자 에우로파 촌구석의 척박한 얼음 동네였지만.
그래도 그만한 역사가 있으니 조금은 기대를 했지만, 결과물은 기대 미만이었다.
그때, 한 다크엘프 요리사가 중얼거렸다.
"음? 저건 처음 보는 건데."
얘 좀 보게. 그게 대체 무슨 말이니?
세상의 모든 식재료가 모인다는 신왕의 주방에서 처음 보는 것이라니.
무심결에 원위치로 복귀하던 고개를 다시 돌린 이들은 경악했다.
그들의 시선은 발판 위에 올라선 카렘.
냉기를 풀풀 뿜어내는 원목 위에 올라간 크림이 담긴 그릇을 휘젓는 소년의 손을 집중했다.
시선을 떼기 전의 소년이 쥔 그릇엔 분명 크림이 담겨 있었다.
화가들의 백색 염료만큼이나 농도가 짙은 크림이.
하지만 잠깐 시선을 돌린 찰나.
그릇의 크림은 그들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태로 변해가고 있었다.
흰자, 납가루와 기름으로 만든 물감 같았던 하얀 액체는 빠르게 움직이는 처음 보는 형태의 거품기가 움직일 때마다 덜 녹은 치즈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릇에 담긴 크림의 변화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거품기가 그릇을 스치는 경쾌한 금속음.
그 사이에서 언덕만큼 쌓인 함박눈을 마구 뭉치는 동심 가득한 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졌다.
"이거면 충분하겠다."
"카, 카렘 주방장. 그건 대체."
"생-이 아니라. 휘핑크림(Whipped Cream)입니다."
그 말을 몰래 듣고 있던 한 다크엘프가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이름 짓는 재주는 없나 본데."
아도비스의 다크엘프 요리사들, 그리고 이를 멀리서나마 들은 소수의 윈터홈, 옵시디언베리의 요리사들은 같은 마음으로 긍정했다.
우유 눈, 하얀 비단 구름이라고 불러도 모자랄 마당에 채찍질한 크림이라니?
정신이 팔린 요리사들에게 경고하듯 주방에 시종이 들어왔다.
"귀빈들이 간식을 물리고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아차! 이럴 시간이 없는데!"
"휴, 조금만 더 멍하니 있었으면 탈 뻔했겠어."
가장 기초적인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아직 요리가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주방의 시종도 하지 않을 실수를 저지르다니.
잠시나마 조용했던 주방은 다시 전장처럼 변했다.
하지만 온전히 자신의 요리에 집중하는 이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
*
*
휘핑크림을 만드는 데는 공이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
원리는 복잡하지만, 요점만 말하면 결국 크림이 고체에 가까워질 정도로 공기를 잔뜩 먹여야 가능한 기예에 가까운 행위였으니까.
하지만 사람은 모름지기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하는 법.
비록 전동 거품기는 없었지만, 방법은 다 있었다.
"후우, 이거 감기 걸릴지도 모르겠는데."
거품기를 놓은 카렘은 잠시 배를 만졌다.
천연 에어컨을 정면에서 끌어안다시피 했으니 당연하지만, 소년의 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
"알베르토. 알베르토! 정신 차리세요!"
"네, 네! 카렘 주방장."
작은 손이 케이크 그릇에 크레페를 깔고 그 위로 레몬 시럽과 휘핑크림을 크레페만큼 얇게 바르고 이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크레페 케이크.
조합하는 과정은 간단해 보이지만, 카렘의 모든 신경은 눈과 손끝으로 쏠려있었다.
크레페의 위치가 다르면 전부 쌓았을 때 모양이 삐뚤어졌다.
시럽을 너무 많이 뿌리면 크레페가 찢어지고 맛의 균형이 무너지고 그렇다고 적으면 바르는 의미가 없다.
크림 또한 균일하게 바르지 않으면 나중엔 복구할 수조차 없었다.
재료는 있지만, 시간이 부족하니 한 번에 끝내야만 했다.
하지만 카렘은 다른 메뉴도 시작해야 했기에 곧바로 알베르토를 불렀다.
"제가 하는 걸 보셨죠? 중요한 건 크레페의 위치, 균일한 시럽과 동일한 크림 두께. 나중은 몰라도 지금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물론입니다. 카렘 주방장!"
알베르토가 주군의 명을 받은 기사처럼 굳건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카렘은 곧바로 발판을 들고 옆으로 이동했다.
연회의 규모를 생각해도 몇 개나 더 만들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