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4 KiB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았던 아이스랜드의 겨울 하늘이 뱉어내는 눈은 점차 줄어들고 있었고 이를 아이스랜드의 토박이들은 경험을 통해 체감할 수 있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고 있다는 징조였다.
물론 콜던의 봄은 겨울에 비한다면 춥기보다는 서늘했지만 앞서 말했듯 겨울에 비하면 따뜻한 계절이 맞았다.
물론 척박하기로 유명한 아이스랜드답게 계절에 사소한 문제가 없으면 또 그게 이상하지만, 아직 카렘은 그 사실을 모르고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카렘은 원래는 양념치킨을 만들려고 했었다.
그러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재료는 두 가지.
고추장, 그리고 케첩.
아니지, 케첩의 기원은 직접 발음하기 어려운 생선젓이었으니 지그메서에게 부탁해 가룸을 받아와 온몸을 비틀면 가능할 각이 보였다. 대가가 좀 필요하겠지만.
하지만 무슨 짓을 해서라도 고추장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랄까, 대체할 방법도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일단 뭐라도 해보겠다며 카렘은 다양한 실험을 했다.
대부분은 실패였고, 그나마 쓸만한 결과가 몇 있었지만, 그마저도 고추장은커녕 완전히 다른 물건이 만들어졌으니 실패라면 실패였다.
새로운 소스를 찾아보자며 지그메서까지 끌어들인 결과가 이렇다면 카렘도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그렇게 나온 소스는 제법 걸출이었다.
아니 설마 거기서 구운 치킨으로 유명한 프랜차이즈의 매콤한 마요네즈 소스를 만들어낼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그냥 프라이드치킨으로 만족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양념치킨을 떠올리는 순간 다른 치킨을 먼저 먹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추장에 집중하던 카렘은 결국 본래 목적인 양념치킨을 잊어버린 채 고추장의 대체품을 연구했다.
다만 지금까지의 결과물은 전부 실패작.
그래도 카렘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캐서린과 메리가 원하는 대로 라드를 폐기할 때까지 도넛이나 튀기며 실험을 거듭했었다.
물론 나쁜 소식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카렘은 대가로 받은 두둑한 돈 주머니를 떠올리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당연히 돈은 알프레드의 제안에 따른 대가로 받은 것이었다.
전생 현생에도 체험하기 힘들었던 정신줄을 놓아버렸던 순간에는 정말 후회했었지만, 보너스를 생각하면 그리 나쁜 경험도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길을 걷다가 난데없이 웃자 동행인들, 캐서린과 메리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캐서린은 이유를 물었다.
"뭘 그렇게 실실 웃고 있는 거냐?"
"보너스를 받은 게 너무 좋아서 말이죠."
카렘의 단호한 대답에 그녀는 묘한 심정이 들었다.
내가 봉급을 적게 주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좋아하면 나라도 좀 그런데?
이어지는 카렘의 질문에 상념은 거기서 끝났다.
"그런데, 대장간은 윈터홈 안에도 있지 않습니까?"
"그야 저만한 성인데 상주하는 대장장이도 상당하지. 실력도 콜던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일걸."
"그러면 굳이 밖으로 나올 이유가 없지 않나요?"
"성에서 쏟아지는 일거리에 아이스웜 부산물을 처리하느라 발 디딜 틈도 없을 테니까. 마침 나도 주문받은 일을 하려면 필요한 것들이 있었으니 겸사겸사."
즉, 일감이 밀려 있고 자기도 급하니 어쩔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 사정이라면 카렘도 이해할 수 있었다. 원리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아이스랜드 공작의 영역에서 먼저 일을 부탁하는 것도 통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서 카렘 후배. 구매할 것은 정했습니까?"
"음, 일단 가서 정하려고요. 당장 주방에 부족한 건...없, 아니지. 있나?"
메리의 질문에 대답하려던 카렘은 순간 머리 안쪽에서 그동안 은연중에 겪었던 불편함이 우수수 쏟아졌다.
예를 들어 거품기라던가, 뜰채라던가, 석쇠라던가.
만들 수 없을 리는 없겠지. 못 만든다고? 내 한 달 치 봉급보다 조금 더 많은 보너스를 전부 받아도 그런 말이 나올까? 그런데 설마 진짜로 그걸 다 쓰지는 않겠지?
그런 마음가짐으로 한참을 고민하고 있던 카렘의 정신을 메리가 일깨웠다.
"카렘 후배. 정신을 어디다 놓고 있는 겁니까?"
"음? 네?"
"도착했습니다."
대장간은 간판조차 없었던데다 척 보기에도 낡은 건물이었다.
하지만 대장간의 주인인 대장장이가 실력자임은 틀림없었다.
일단 콜던의 내성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실력이 범상치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카렘을 신경 쓰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저 간판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음? 간판이라니. 무슨 간판."
"저기, 저 대장간의 위에 달린 저거요."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큰 대장간과는 달리 세월의 흔적은 요만큼도 없는, 바로 어제 만든 것처럼 보이는 간판은 글자가 하나도 없었다.
이마에서 하늘을 향해 자란 뿔 투구와 그 밑으로 쇠사슬에 수평으로 매달린 교차한 두 자루의 외날 도끼 형상의 간판이 전부.
다만 특이한 점은 분명하게 있었다.
뿔 투구 간판과 외날 도끼 모두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는 것.
그것도 금박으로 덩굴을 형상화했다던가, 아무리 봐도 룬문자처럼 생긴 은은하게 빛나는 문자가 군데군데 새겨져 있었다.
"좀 과하게 화려한 것 같은데요."
"그야 당연하지. 저번 윈터센드에 제물이 선택받은 사람에게 몇 년 동안 걸 권리가 주어지는 기념패를 겸하는 광고판이니까. 고파인이라고 했던가."
"굉장히 구체적으로 아십니다?"
"아무렴 내가 마무리 작업을 한 물건인데 알아보는 게 당연하지.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확실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카렘이 캐서린을 따라 대장간의 안으로 들어가자 메리가 곧바로 문을 닫았다.
"무기, 보다는 다른 게 더 많군요."
카렘은 메리의 평가에 동의했다.
공간의 중앙에 설치된 커다란 화로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설치된 십 수 개의 모루와 깔끔하게 정리된 대장장이 도구들.
대장간의 곳곳에는 각종 재료나 무기들이 종류별로 묶여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다만 걸리는 점이 있다면.
"장사를 쉬는 걸까요? 사람이 하나도 없네."
"단순히 휴식하는 게 아닙니다. 최소 이틀, 아니 사흘 동안은 사람들이 자리를 비웠군요."
그렇구나...아니 잠깐. 지금 그걸 어떻게 안 거지?
카렘의 황당한 눈빛을 느낀 메리는 질문하지 않았는데도 자랑스럽다는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했다.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했다지만, 이 프로 브라우니 메리의 감각은 속일 수는 없습니다. 카렘 후배."
"그래. 무엇보다 단순하게 며칠 쉬는 거라면 이만한 크기의 화로를 꺼트릴 이유는 없지. 뭔가 사정이 있나 본데..."
두 사람과 한 집요정이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대장간의 안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작은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분명히 고파인의 영혼은 좋은 곳으로 갔을 게 분명하니 그만 슬퍼하게."
"크흠. 맞는 말씀입니다. 화로를 이 이상 더 꺼트린다면 유골 단지에서 뛰쳐나와 저한테 망치를 휘두르실 테니까요."
"그래. 그러면 내일부터 바로 작업에 복귀할 텐가?"
"오늘부터 바로 복귀하죠."
"좋아. 그러면 바로 도제들을 불러 모으도록 하게. 밀린 일이 제법 있어."
잠자코 그 말을 듣고 있던 카렘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말을 못 들었을 리 없는 캐서린은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그 고파인이라는 분이 그렇게 됐다는데. 이러면 곤란하시지 않을까요?"
"끄응. 골치 아픈데. 사람을 보내서 미리 알아볼 걸 그랬군. 그동안 너무 여유를 부렸나?"
메리가 캐서린에게 물었다.
"계약자. 다른 대장간을 찾아볼까요?"
"아니. 일단 견적만 알아보러 온 것이니 상황을 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대장간의 안쪽에서 더벅머리의 거한과 노인이 걸어 나왔다.
영혼 운운하는 소리는 그들의 예상대로였다.
제물을 만드느라 온 기력을 쏟아부었던 고파인은 윈터센드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침대 위에서 그대로 눈을 감았다고 고파인의 아들 고바니오가 설명했다.
화로를 꺼트린 이유는 대장간의 주인인 마스터 장인이 부재했기 때문.
설명하던 고바니오는 대장장이 길드의 길드장인 노인이 나가자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길드장을 배웅했다.
"흠. 시간은 아낄 수 있겠어."
"잘 됐습니다. 아타니타스님. 여기서 바로 알아보면 되겠네요."
배웅을 끝마치고 늦게나마 방문객을 맞이하려던 고바니오는 걸어오던 도중 카렘이 말한 문장에서 지나칠 수 없는 단어를 듣고는 재빨리 세 사람을 살폈다.
그리고 빠르게 태도를 정리했다.
"흠, 흠흠! 실례했습니다. 혹시 성함이-"
"캐서린 메리골드 아타니타스. 주문하러 왔는데. 상황이 상황이더군. 상심이 크겠어."
"하하하. 죽기 전의 소원을 이루셨을 테니 오히려 호상입니다. 주문하실 물건이 있으십니까?"
"일단 견적을 보려고 했는데. 어때. 만들 수 있겠나?"
캐서린이 내민 도안을 받아든 고바니오는 곧바로 도안을 살피며 캐서린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과정에 잠자코 차례를 기다리던 카렘은 심심한 나머지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 방향으로 고개가 고정되었다.
온갖 대장간답게 각종 가죽과 철물이 잔뜩 쌓여 있었다.
못부터 롱소드, 방패와 방어구, 철퇴와 화살촉.
하지만 카렘의 시선을 끄는 것은 바로 식칼이었다.
딱히 도구를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역시 좋은 조리기구에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단 말이지.
하지만 이내 카렘은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주방에 있는 식칼을 포함한 식기들도 하나같이 상태와 품질이 짱짱했다.
하지만 오늘 목표는 다른 게 아니라...
"카렘 후배. 그래서 구매할 것은 정했습니까?"
"구리로 만든 거품기나 핸드 그릴(석쇠), 뜰채 같은 걸 생각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주문제작을 해야겠는데."
"재료도 재료거니와 그러면 값이 좀 나가겠습니다."
"그래도 보너스를 받았으니 괜찮을 것 같은데요."
카렘은 어느새 다가온 메리에게 답했다.
주문 제작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는 해도 그래 봤자 식기였다.
"식기가 비싸 봤자 얼마나 비싸겠어요?"
"음, 상당히 값이 나가겠는데."
"어, 예상이랑 다른데요."
그리고 카렘의 이런저런 설명과 구상, 그림을 본 대장장이의 답은 그의 예상 밖이었다.
고바니오는 틀림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구리로 만든 조리기구는 물론 비싼 편이지만, 이것들은 특히나 더 신경 쓸 부분들이 많겠어."
그러면서 고바니오는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설명했지만,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구리는 특성상 철보다 부드러운 재료라 카렘의 구상은 가능은 했다.
문제는 손이 너무 많이 간다는 것.
즉 비싼 값은 인건비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특히 그릴은 그렇다고 쳐도, 이 거품기와 뜰채를 네가 원하는 수준으로 만들 수는 있는데. 이렇게까지 구리를 가늘게 만들면 조리기구가 아니라 장신구에 쓸 물건을 써야겠는데? 게다가 얇은데 열에 변형되지 않게 하려면 품이 더 많이 들 테고."
"끄응. 이거 진작에 마음은 다지고 있었는데..."
거기에 장신구와 영역이 겹쳐 값이 뻥튀기.
생각해보니 전생에도 메이커 조리 기구는 값이 장난 아니었지.
그래도 최소가 보너스의 절반이라니.
값이 상당할 거라고 미리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직접 들으니 카렘은 가슴이 절로 철렁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무리 비싸도 받은 보너스 수준에서 끝날 것이라는 점.
공수래공수거라더니 돈이 있다가도 없어지는 허무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나.
환생하고 하도 없이 살았던 터라 소년은 더욱 실감했다.
"카렘 후배. 그렇게 떨리면 나중에 주문하는 것이?"
"당장 주문하겠습니다!"
저런 말을 들었는데 뒤로 뺄 수는 없지.
우물쭈물하다 언제까지고 일을 미룰 수도 있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카렘은 떨리는 손으로 선금을 건네며 마음을 넓게 가지기로 했다.
아무렴 어쨌든 존 더 편한 요리를 하는 데 필요한 지출이라고 생각하면-
"큼! 고파인 안에 있나? 아니, 근데 화로는 왜 꺼졌어?"
깊은 상념에 빠졌던 카렘의 정신을 일깨우듯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노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두터운 털 망토 위로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수염이 성성한 노인은 자신의 키보다 긴 지팡이를 짚으며 대장간의 안으로 들어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영감탱이? 댁이 왜 여기에 있어?"
"아타니타스님. 아시는 분입니까?"
"그래. 너무 잘 알지."
그리고 노인도 캐서린의 목소리를 들은 듯 모자챙을 들어 캐서린을 보았다.
"영감탱이라니. 여전히 싸가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단어 선택은 키티가 분명한데."
"키티라고 부르지 말랬지!"
주름이 지극한 눈으로 노인은 씩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