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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299 l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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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down

캐서린의 확대된 동공에는 잼 도넛을 반으로 뜯는 메리의 손이 담겼다.
바삭하게 뜯어진 도넛은 아직 뜨거워 하얀 김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열기 덕분에 속에 가득 든 차가운 잼이 자극받아 달콤한 냄새가 금세 주방에 가득한 기름 냄새를 밀어냈다.
라드에 갓 튀긴 도넛은 갓 구운 빵 같은 거부할 수 없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 유혹적인 향기를 정면에서 맡은 메리의 눈은 힘이 풀렸는지 동공이 파도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꿀꺽-다행히 그녀는 어찌어찌 이겨낸 듯.
캐서린에게 반으로 잘린 도넛을 가까이 내밀었다.
우선 은은한 노란색을 띄는 뚜렷한 하얀 경계가 일자로 도넛의 표면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한쪽 면은 눈보다 하얀 슈가파우더가 듬뿍 뿌려져 지금도 설탕으로 된 눈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 반대쪽은 절묘한 밝은 갈색으로 잘 튀겨져 자신은 잘 튀겨졌다며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잼.
주먹만 했던 도넛이 기름에 의해 튀겨지면서 팽창.
어느덧 그 1.5배만큼 부풀어 생긴 빈 공간에 가득 채워진 잼.
깔때기를 꽂고 마구 듬뿍 넣은 잼이 우유를 가득 빨아들인 빵처럼 잼 도넛의 내부에 가득 차 있었다.
갓 튀겨진 도넛에 달궈진 잼의 상큼한 냄새.
"이건 마멀레이드로군. 그러고 보니 잼은 전에 다 먹지 않았었나?"
"새벽에 잔뜩 받아왔거든요."
"음.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캐서린은 군침을 삼켰다.
불과 아침 식사가 끝난 지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원래부터 아침, 점심은 가볍게 먹었던 터라 진작에 소화된 지 오래.
뱃속은 머리로부터 시각 정보와 후각 정보를 받아들이고는 어서 입을 움직이라는 듯이 요동쳤다.
캐서린은 본능의 기대에 기꺼이 응했다.
혀에 닿는 순간 느껴지는 강렬한 단맛의 정체는 슈가파우더.
물에 녹아내리듯이 단맛이 사라진 후에 고소하고 바삭한 도넛의 표면을 뚫자 촉촉한 속과 사라졌던 달콤함이 다시 나타났다.
코를 자극하는 감귤류 과일의 향과 단맛 사이로 느껴지는 상큼함.
분명 무거운 디저트일 도넛의 맛을 한결 가볍게 만드는 맛과 향이 입안 가득 점령했다.
"꿀과 계피를 넣고 데운 우유와 멀드 와인. 어느 쪽이 좋으십니까?"
"음, 지금 당장은 우유가 좋겠군."
도넛을 뜯는 순간부터 위의 과정을 반복하고 있던 메리는 곧바로 주전자를 기울여 은잔을 가득 채워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본래 디저트용 빵을 가장 맛있게 먹는 법 중 하나가 바로 우유와 함께 먹는 것.
부드러운 우유에 섞인 꿀의 은은한 단맛, 강렬한 계피의 향이 캐서린의 입안을 휘몰아쳐 시트러스 향으로 가득했던 속을 말끔하게 씻겨냈다.
문득 캐서린은 고개를 돌렸다.
메리가 온 세상의 고난을 겪는 것처럼 힘겨워하고 있었다.
"그렇게나 힘들면 너도 같이 먹어도 된다만?"
"하, 하지만 명색이 브라우니가 계약자의 간식 시간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메리는 매 순간 유혹 주사위를 굴려 아슬아슬하게 저항을 성공시키고 있었다.
집요정 브라우니로서 주인의 식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내가 다 죄를 짓는 기분이니까 그냥 먹어라."
"감사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거부하지는 않았다.
아무렴 이건 전부 선량한 계약자가 허락해서 겸상하는 것.
재빠른 태세전환에 카렘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메리는 한 손으로 캐서린의 수발은 모두 들고 있었다.
명색이 집요정 브라우니인데 이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다만 그저 하지 않았을 뿐.
그리고 고삐가 풀린 브라우니는 잼 도넛을 집어 물고기를 집어삼키는 펠리컨처럼 한입에 물었다.
입을 다물자마자 도넛 속에 있던 잼이 한계에 다다라 무너지는 댐처럼 폭발하듯이 메리의 입안에 범람했다.
그 강렬한 포도 향과 도넛의 바삭함, 촉촉함.
메리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촉에 정신이 다 혼미해질 것 같았다.
"좋아, 이번에는 반으로 자른 도넛을 우유에 한 번 찍어서 부탁하지."
"맙소사. 계약자! 당신은 정녕 현자의 경지에 허투루 다다른 것이 아니었군요."
메리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탄식을 내뱉었다.
카렘은 그 정도로 놀랄 일인가 싶었다.
그야 우유에 빵을 찍어 먹는 것 정도니까.
윈터홈에서 그 누구보다 빵과 버터, 우유에 진심인 그녀에게 있어서 그 정도로 감탄할 일이었다.
메리는 재빨리 도넛의 잼이 흐르지 않도록 주의하며 뜯었다.
맑은 하늘의 햇빛을 받아 붉은색으로 빛나는 자두잼.
그리고 반으로 자른 잼 도넛을 그대로 캐서린의 잔에 한 번 퐁당.
자고로 같은 음식에 질리지 않는 방법은 어떻게든 변화를 주는 것.
그리고 촉촉한 도넛이 한껏 머금은 우유는 훌륭한 변화였다.
절묘하게 우유에 적셔진 도넛은 스펀지처럼 부드러워졌다.
안 그래도 자기주장이 강한 자두로 만든 잼은 더더욱 맛이 진했다.
그런 자기주장이 강한 잼도 우유와 계피를 만나 한 꺼풀 꺾였다.
맛이 한결 연해진 자두는 그렇게 나머지 재료들과 조화를 이루었다.
"음 신이시여. 우유에 적신 카스텔란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군."
"맙소사. 그 정도란 말입니까!"
"그래. 메리. 그러니까 너도 어서 시도해봐라."
"그렇다면. 으, 으흠!"
메리의 탄식은 당연했다.
안 그래도 빵과 우유에 환장하고, 잼도 그만큼 좋아하는 그녀였다.
그런데 그 세 가지가 모두 한꺼번에 입안에서 느껴지는데.
원수처럼 맛이 이리저리 튄다면 모를까.
서로의 장점을 보완하며 맛을 한층 더 높이 끌어올리는데 안 좋아하면 그건 브라우니가 아니었다.
"카렘 후배. 인정하겠습니다."
"네? 이렇게 갑자기요?"
"정말 분하지만. 정말 분하지만, 저의 일거리를 하나 뺏어갈 정도가 맞군요."
인정받았지만, 카렘의 심정은 묘했다.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하필 지금? 이걸로?
자랑은 아니지만 카렘은 그동안 다양한 요리를 선보였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의 기준엔 별거 아닌 요리들도 있었지만, 최소한 대충 만든 적은 없었다.
최선을 다했던 포르게타 때도 보인 적 없는 반응을 이런 도넛에서 보인다니. 하물며 그가 한 것이라고는 비계를 정제해 라드를 만들고, 튀긴 다음 잼을 넣은 것이 전부.
정작 잼 도넛의 '도넛'은 메리가 만든 것이었다.
자기가 하지도 않은 것에 칭찬을 받는 이 미묘한 감각.
이 빵귀신이....라고 무심코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저렇게 좋아하는데.
다만 카렘은 그저 좀 아쉬울 따름이었다.
도넛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한번 볶은 밀가루를 넣은 터라 슈가 파우더는 이전보다 더욱 부드러웠다.
집요정답게 제빵에도 일가견이 있는 메리의 도넛은 무척 폭신한 데다 그가 직접 튀겼던 터라 겉은 먹음직스럽게 바삭거렸다.
일반 공산품 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풍부한 잼들은 또 어떤가.
한 병에 몇천 원짜리 잼과는 맛을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잼 도넛에는 역시 딸기잼인데."
"음? 방금 산딸기라고 했나?"
"어, 네. 산딸기 잼은 또 어떠려나 싶어서요."
"그것도 훌륭하겠는데."
"다음에 잼 받으러 갈 때 받아야겠어요."
카렘은 캐서린의 말에 적당히 얼버무렸다.
무심코 입 밖으로 나왔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야 카렘에게 도넛이라 하면 잼 도넛이었고, 그중에서도 딸기잼이 든 잼 도넛을 제일 좋아했으니까. 아니면 크리스피 크림 도넛이라던가
산딸기 잼이라면 대용품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이번에 카렘이 받아온 잼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물론 산딸기도 충분히 맛은 있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대용품이지 딸기를 대체할 수는 없었다.
여태까지 식료품 창고에서 딸기는 본 적이 없었는데. 이세계판 고추처럼 이세계판 딸기는 없으려나.
현대에서 딸기의 원산지는 남미였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고추도 원산지가 남미였고 이세계판 고추인 불마손은 아이스랜드를 포함한 추운 북부에서 자라는 작물이었다.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하자 연신 아쉬움이 몰려왔다.
이런 아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으니, 다른 방법으로 몰아내야 했다.
"이것만으로는 조금 아쉬우니까 뭐 좀 가져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보십쇼."
"응? 이것만으로도 혀가 춤을 추는데. 여기서 더 뭘...?"
그리고 메리는 카렘의 행동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듯이 입을 쩍 벌렸다. 캐서린이 간식 먹다 말고 뭐냐고 타박했지만, 그녀도 메리와 별 차이는 없었다.
카렘이 들고 온 것은 새하얀 액체 크림과 설탕.
이어진 광경은 캐서린과 메리도 종종 보았던 것이었다.
설탕을 투입하고 머랭을 치듯이 맹렬하게 거품을 치자 촥촥거리며 물장구치는 소리가 나던 그릇은 시간이 지나자 고형, 구름과도 같이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캐서린은 오랫동안 알아왔던 식재료의 새로운 모습에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했다.
"그동안 붓거나 얼려 먹기만 했던 크림이 머랭처럼 쳐질 수도 있었다니."
"휘핑크림입니다. 제가 이제 다음에 무얼 어떻게 할지도 맞혀보시겠습니까?"
"...아니, 설마!"
그리고 카렘의 다음 행동에 메리가 경악했다.
카렘은 잼 도넛을 반으로 갈랐다.
처음에는 뭔가 싶었던 두 사람은 주걱에 듬뿍 퍼 올려진 휘핑크림이 잼 도넛의 반쪽에 척! 얹어지고 나머지 반에 덮여 도넛-잼-휘핑크림-잼-도넛이 되자 뇌간에 번개가 내리꽂힌 듯이 전율했다.
카렘은 두 사람의 마음을 지극히 잘 이해했다.
그도 전생에 그렇게 해 먹었다가 살이 순식간에 불어서 다이어트를 하느라 고생했었으니까.
잼 도넛 크림 샌드위치.
라고 부를 수 있는 물건은 분쟁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카렘의 손에 의해 정확하게 삼등분이 되어 지금 부엌에 있는 모두에게 한 조각씩 돌아갔다.
외형? 이전의 잼 도넛 사이에 몽실몽실 새하얀 크림이 들어간 것이 진짜 구름을 때어다가 넣은 것 같았다. 이건 머랭보다도 더했다.
단면 사이로 보이는 손의 압력에 의해 눌려 잼과 섞여 바깥에 튀어나오는 크림은 캐서린과 메리의 마음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고작 크기도 1/3이었으니 메리는 가볍게 한 조각을 전부 입에 담았다.
"으하아아.......!"
우유를 먹기 전에는 진득하게 남아있던 잼의 단맛은 1차로 휘핑크림에 의해, 2차로 고소한 도넛에 의해 씻겨나가자 혀에 오로지 아쉬움만이 감돌았다.
그 여운을 느끼는 것은 캐서린도 마찬가지.
디저트에 환장하는 어린애/소녀 입맛인 캐서린과 빵, 버터, 우유에 환장하는 브라우니 메리가 계약자, 집요정 관계인데도 서로 긴장을 불태웠다.
두 사람이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카렘은 여유롭게 도넛을 먹었다.
막을 사람도 없으니 새콤달콤 상큼한 멀드 와인으로 입을 씻어주고 포도잼이 든 잼 도넛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어 삼키고는 휘핑크림을 듬뿍 끼얹어 다시 한 입.
그다음엔 남은 조각은 계피향이 나는 따뜻한 꿀우유에 찍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잼 도넛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은 당연했다.
애초에 오전 간식용이라 그렇게 많이 튀기지도 않았었고.
하지만 캐서린과 메리는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오는 눈빛으로 빈 접시에 잼 도넛이 흔적처럼 남긴 슈가파우더를 응시했다.
"벌써 다 먹어버렸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계약자."
"지금 생각했는데. 간식을 점심으로 먹어도 되지 않을까? 조금 전에 간식으로 먹었던 잼 도넛이라던가."
"생각해보니 계약자와 전 어른이 된 지 한참이었지요. 상관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간식은 간식.
밥은 밥.
"그게 말이나 됩니까?"
양념치킨을 만들려고 했는데!
간식으로 끼니를 때울 수는 없다는 논지로 카렘은 완강히 저항했다.
그렇지만 디저트에 눈이 돌아간 불로의 대마법사와 경력직 집요정의 거듭된 설득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자료첨부***
-생크림 잼 도넛 샌드위치-
챗GPT가 그려준 그림입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