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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걸 나한테 가져왔단 거냐?"
"네. 제 입맛엔 괜찮은데. 아타니타스님이랑 메리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시다고"
"그거야 당연하겠지."
"넵. 지금은 샐러드에 가까운 피클이고. 이대로 숙성, 발효시키면 피클이 될 겁니다."
이놈, 날 맥이려는 것인가? 설마 내가 가졌던 악감정과 분노를 눈치채고? 낮말은 요정이 듣고 밤말은 슬라임이 듣는다지만 그럴 리가.
그야 지그메서가 아무한테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으니까.
계단식 받침대에 올라선 지그메서는 테이블을 떨떠름하게 내려다봤다.
난처한 속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선의 끝엔 카렘이 들고 온 깍두기가 담겨 있었다.
작은 나무 그릇에 담긴 육면체로 잘린 순무가 얼핏 보이는 석류, 와인 소스와는 결을 달리하는 살아 숨 쉬는 생물의 피보다도 새빨간 양념에 버무려져 있었다.
카렘은 당연히 그 눈치를 모른 척 넘겼다.
"그런데, 이 시뻘건 순무 피클에 붉은 마녀의 손가락이 들어갔다고?"
"네. 마침 바싹 말려진 상태라서 곧바로 이걸 만들었습니다."
"그거 독초이지 않나? 대체 그걸 어디서..."
"아타니타스님이 축제에 사용하고 남은 물건을 어찌어찌 허락받아서."
지그메서는 속으로 한탄했다.
아타니타스 공. 대체 부하 관리를 어떻게 하는 겁니까.
물론 요리사에게 탐구심과 실험은 무척이나 중요했다.
사람의 미각이란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익숙해지기 마련이었다.
평소에도 평민은 꿈에도 꾸지 못할 품질은 당연하고 희귀한 식재료를 입에 대는 귀족 같은 유력자는 더더욱.
당장 지그메서도 왕년에 새로운 맛을 찾겠다고 돈을 뿌려 사람을 고용했던 전적이 있었고, 아직도 신메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렘같이 광기에 찬 것은 아니었다.
설마 독초를 식용으로 요리를 만들 줄이야.
그리고 지그메서가 망설이고 있다는 것을 카렘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야 캐서린과 메리도 같은 반응이었으니.
비록 두 사람은 시간이 없어 설득하지 못했지만, 카렘은 뉴비 예정자에게 게임을 권하는 고인물의 심정으로 마음을 다잡고 설득에 나섰다.
"총주방장님. 붉은 마녀의 손가락이 독초라는 건 오해입니다."
"카렘. 오해라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인 게냐."
"당장 후추나 겨자씨 같은 향신료까지 갈 것도 없이 양파랑 마늘만 해도 알싸하고 매운맛이 있잖습니까? 붉은 마녀의 손가락도 같은 결입니다."
"너무 확대해서 해석하는 게 아니고?"
"독초고 향신료고 향신채고 다 치운 다음 공통점만 생각해보시죠. 이것들의 공통점이 보이지 않습니까?"
"공통점이라니. 그야-"
지그메서는 어라?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후추, 겨자, 양파, 마늘.
각기 다른 식물들이지만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같이 향이 강하고 매운 향신료와 채소들이로군."
"네. 그리고 덜 익히거나 많이 먹으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혀가 아프잖아요?"
"설마 이 빨간 독초의 고통의 근원이..."
"매콤함 때문이겠죠."
근원은 다 다르지만, 하나같이 매운 결과를 내보인다는 것.
너무나도 당연해 무심코 지나쳤던 사실을 속으로 곱씹으니 과연 그럴 듯 했-
"아니지. 그렇다면 만지기만 해도 화끈거리면서 고통스러운 감각은 설명이 되지 않는데?"
"겨자는 혀가 톡 쏘고, 마늘은 혀 뒤쪽을 은은하게 자극하고, 생양파의 냄새만으로 눈물이 나오고 아린 맛이 있잖습니까. 비슷하지만 다른 맛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거 말이 되는군."
그러고 보니까 그렇네.
지그메서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자 카렘은 들뜬 마음을 가라앉혔다.
중요한 건 한 명이라도 더 설득해 오해를 푸는 것.
아무렴 카렘 그가 마음껏 고춧가루를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대중화나 그런 건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모름지기 식문화란 일반적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르기 마련.
귀족들이 먹기 시작하면 점차 유행이 퍼져나갈 것은 당연했다.
물론 그 시간이 오래 걸릴 테지만, 그것까지는 알 바 아니었다.
아무렴 그런 귀찮은 짓을 내가 직접 할 필요는 없겠지.
고심하던 지그메서는 마음을 다잡았는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좋아. 한 번 먹어보도록 하지. 식기가-"
"그러실 줄 알고 미리 준비했습니다."
"거 준비가 빠릿빠릿한 게 마음에 드는군."
"아무렴 시식을 권하는 건데요."
포크를 집어 든 지그메서는 드워프다운 호쾌함으로 곧바로 깍두기를 찔러 들었다.
라고는 말했지만 시뻘건 색상이 영 꺼림칙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냄새는 마늘과 양파에, 생강까지 들어간 거 같은데?"
"생강과 마늘, 조금에 양파, 소금, 가룸, 사과잼에 꿀과 밀가루를 넣고 버무렸어요."
"흐음. 확실히 단맛이 매운맛을 억제하는 맛으로는 효과적-아니 잠깐."
지그메서는 뭔가 잘못 됐다는 듯이 고개를 획 돌렸다.
"무얼 넣었다고?"
"어, 밀가루요?"
"아니! 그게 아니고. 소금 다음에!"
"가룸?"
그게 여기서 왜 나와?
한순간이지만 온 얼굴의 주름이 펴진 지그메서가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뭔가 잘못됐단 것을 느낀 카렘은 곧바로 이전의 상황을 낱낱이 고했다.
"...그러니까 식료품 창고 일꾼의 운반 실수로 받았다?"
"네. 뭔가 잘못되더라도 책임은 다 그쪽에 있다고. 혹시-"
"그래. 그거 아마 내가 주문한 물건일 게다. 평가가 극과 극이라서 실험해보려고 주문했던 건데."
"네엡. 돌려드리겠습니다."
잠시 골치가 아팠던 지그메서는 안도했다.
그나마 카렘이 식재료로 인식해서 다행이었으니까.
아니었으면 이게 무슨 썩은 뭔가라고 생각하고 가져다 버렸으면 수십 실링 은화를 허공으로 뿌릴 뻔했으니 당연했다.
"아니, 잠깐. 여기에 가룸이 들어갔다고?"
"네. 스푼으로 두 숟갈 정도."
그런데도 비린내가 하나도 나지 않는단 건가?
가룸을 두 스푼이나 넣었는데?
아직도 붉은 마녀의 손가락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못했던 지그메서의 머리를 호기심이 뒤덮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크에 찍힌 붉은 양념이 묻은 육면체는 지그메서의 입으로 들어갔다.
크흡!
양파, 마늘, 겨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아니 매운맛.
지그메서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하지만 어린 카렘도 먹었는데 체통 없이 그럴 수야.
다만, 생각보다 훨씬 더 얼얼했다….
양파, 마늘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이 입안 전체를 감돌았다.
얼얼한 정도면 다행이지 전신에 열이 오르고 땀이 맺힐 정도로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마늘과 양파의 향은 붉은 마녀의 손가락에 억제된 듯했다.
언제까지고 계속될 줄 알았던 매콤함은 뒤이은 꿀의 진득하고 사과잼의 은은한 단맛에 조금씩 덮였다.
하지만 여전히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매콤한 건 그대로였다.
"크, 크흠!? 먹을 만은 하군!? 이 매운맛과 화끈거리는 느낌은 적응하기 힘들지만."
"휴, 뭐, 여기서 숙성을 시켜야 완성이겠지만요."
"커흠! 그러고 보니 피클이라고 했었던가?"
"이옙. 마법사의 탑에 있는 제 주방에서 한창 발효되고 있을 겁니다."
하루하고 반나절이 지나면 냉장고같이 서늘한 식료품 보관실에 처박아두면 알아서 잘 익을 터.
카렘은 상상만 해도 시원한 맛이 느껴져 가슴이 벅찼다.
사이다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것까지 바랄 수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붉게 달아오른 지그메서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깍두기를 한 조각 더 맛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번만 맛보고 말려고 했지만, 재료 전체를 아우르는 깊은 감칠맛과 식초의 산미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손이 움직였다.
성공했다는 카렘의 시선에 변명하듯 지그메서가 머리를 부르르 떨었다.
매콤함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개선의 여지흠!도 보이고 상당히 매콤하지만. 지금 당장은. 입가심용 샐러드로도 괜찮겠군. 크흡! 큼! 기름진 음식과 같이 먹기에도 알맞겠어."
"입에 맞으셔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 망할, 매운맛은 좀. 줄여야겠는데!"
더이상 참기 힘들었는지 지그메서는 계단식 받침대를 들고 선반의 구석에서 치즈 한 조각을 꺼내와 통째로 입에 물었다.
깍두기 덕분에 화끈거리는 체온에 반응해 금세 녹은 치즈가 얼얼한 입안을 감싸기 시작하자 지그메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맙소사 치즈를 물고 있어도 얼얼하다니."
"치즈보다는 우유가 더 좋을 겁니다."
"그래, 아니지. 우유는 금세 마시고 배가 차잖아. 별로 좋지 않군."
온몸이 뜨거운 건 그대로였다.
하지만 고통이 잦아들자 지그메서의 혀는 맹렬하게 카렘이 가져온 붉은 마녀 피클을 분석하고 결론 내렸다.
"후우, 일단 매콤한 맛을 줄여야 하겠군."
"아, 붉은 마녀의 손가락은 씨앗을 좀 제거하면 매콤함이 줄어들긴 합니다."
"뭐? 그 말은 이 덜 된 피클은 안 그랬다는 거로 들린다만?"
"레시피에 눈이 뒤집혀서 미처 거기까지 생각 못 했네요."
죄송합니다. 라며 카렘이 허리를 굽히자 지그메서가 손을 내저었다.
물론 본성 주방에서 일하는 부하 중 하나였다면 불벼락을 내려쳤겠지만, 카렘한테 그럴 수는 없었다.
아무렴 캐서린의 전속 요리사 이전에 주군 가족들이 관심을 보이는 데다가 무려 전사신 투타티스의 눈길을 받았으니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물론 일방적인 분노를 불태웠던 탓에 제 발이 저린 이유도 있었고.
"그나저나. 이건 평소에 연구하고 있던 게냐?"
"어, 아뇨. 불마손 파편의 맛을 보고, 가룸의 냄새를 맡자마자 떠올렸는데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거짓말은.
하지만 그건 또 참신한 개소리구나.
라고 지그메서는 말할 뻔했지만 태연한 카렘의 모습에 진실이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허어. 카렘. 네 나이가 몇이었지?"
"저요? 아직 열 살이죠."
"내가 그 나이 때 요리는 무슨 떼쓰기 바빴던 거 같은데."
"....음. 감사합니다."
카렘은 조금 뻘쭘한 기분으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맨날 하던 노골적인 아부가 아니라 이렇게 훅 진심을 담아 칭찬하니까 좀 많이 부끄러운 것 같은데.
간지러운 기분을 몰아내기 위해서라도 카렘은 얼른 말을 돌렸다.
"아무튼! 여러 가지 레시피를 생각했어요. 설탕이나 과일에 식초와 불마손을 갈아서 발효시킨 소스라던가."
"소스라! 카렘! 또 새로운 요리인 것인가?"
"네에. 그렇습니다. 알리시아님."
"이히. 그렇다. 알리시아다."
음 잠깐. 누구라고?
카렘과 지그메서는 고개를 획 돌렸다.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알리시아가 까치발로 안간힘을 써서 테이블을 올려다보려 하고 있다.
"불마손? 불마손이 뭐지?"
"어, 붉은 마녀의 손가락이라는 열매를 제가 줄인 말입니다. 그대로 말하기엔 너무 기니까요."
"붉은 마녀의 손가락? 그거 독이 아닌가?"
"아, 그거 오햅니다. 후추나 마늘, 양파 같은 느낌이에요. 다만 불마손은 그것들보다 좀 더 심하게 매울 뿐입니다."
"흐응? 그런 것이냐?"
설마 먹어보고 싶다는 것은 아니겠지?
카렘과 지그메서에겐 다행히 그저 궁금했던 것일 뿐이었는지 알리시아의 관심은 지그메서에게로 돌아갔다.
"지그매서! 간식을 먹으면 안 되겠는가?"
"음, 물론 됩니다. 오늘은 조금 색다른 푸딩이 어떠십니까?"
"색다른 푸딩! 그걸로 좋다!"
알리시아의 주의를 끈 지그메서가 카렘과 재빨리 눈빛을 교환했다.
카렘은 재빨리 깍두기가 들었던 그릇을 입안에 털어 넣고 눈이 찢어질 것처럼 경악하는 지그메서의 눈길을 받으며 주방의 한구석으로 이동했다.
카렘과 지그메서의 교류회는 알리시아가 만족하고 떠날 때까지 잠시 중단되었다.
며칠 뒤.
콜던의 외성에 자리한 남쪽 광장.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계급과 종족의 사람들이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축제가 끝나고 미처 치우지 못한 높은 단상을 보고 있었다.
"거짓말! 사람이 어떻게 붉은 마녀의 손가락을 먹고 살아남을 리가 없잖아!"
"안 그래도 축제가 끝나고 아쉬웠는데. 잘 됐군."
"맥주! 뼈가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맥주와 안주!"
고요했을 광장은 시장바닥보다 더욱 시끄러웠다.
그리고 무대에 설치된 단상 위에는 카렘이 서 있었다.
붉은 마녀의 손가락이 가득 담긴 작은 바구니와 함께.
웅성거리는 관중에 카렘은 아득한 눈빛으로 그의 고용주를 돌아보았다.
"아타니타스님. 어쩌다가 이렇게 됐죠?"
"한창 호기심이 폭발할 어린애의 호기심을 자극한 건 너잖아."
"제길. 알리시아님! 제가 푸딩도 대접해 드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