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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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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센드의 본 행사는 카렘에게도 익숙한 순서로 시작했다.

행사가 시작할 때는 행사에 찾아온 사람 중 가장 지위와 인망이 높은 사람이 연단에서 짧게 한다면서 끝없이 늘어지는 연설을 늘어놓는 것이 보통.

이지만 다행히 알프레드는 신에게 올리는 의례적인 감사의 인사와 함께 흔한 지배자로서 말하는 덕담을 짧게 말했다.

전생이나 현생이나 행사가 열렸을 때 짧게 말한다며 말꼬리를 한도 끝도 없이 늘이던데, 이렇게 짧게 하고 끝낸다고?

"-. 더는 할 말이 없군. 이만 말을 마치도록 하지."

설마설마했지만, 알프레드는 정말로 단상에서 내려왔다.

진짜로 짧게 말하고 나갈 줄이야.

카렘은 작게 감탄했다.

그리고 곧바로 풍성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아이오나가 뚱뚱한 몸과는 달리 날렵하게 단상에 올라섰다.

처음에는 엄숙했지만, 이내 행사가 시작되자 분위기는 반전했다.

조금이나마 음량이 줄었던 광장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하게 변했다.

일방적으로 엄숙한 분위기 같은 것을 생각하던 카렘에게는 조금 놀라운 상황이었다.

길들인 몬스터와 짐승을 부려 묘기를 부리는 테이머

빠르게 장비를 설치해 공연을 선보이는 서커스단.

도끼를 든 두 야만 전사들의 험악한 대결.

거대한 멧돼지 통구이를 혼자서 먹어치우는 미모의 여성.

엘프와 드워프로 이루어진 음유시인 콤비의 노래.

그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닥불을 돌며 나름의 공연을 벌였다.

카렘은 문득 아쉬움을 느꼈다.

모스톤 마을에서 가끔 벌어졌던 축제도 저랬으려나?

그리고 스스로 부정했다.

여긴 윈터홈. 공작성이었다.

귀족이 주관하는 대연회니까 볼거리도 대단한 것이겠지.

구석진 깡촌 모스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였다.

하물며 거긴 축제를 벌여도 방랑 서커스단이나 극단은 무슨 음유시인도 잘 들르는 일이 없는 곳이었는데.

어쨌거나 전생과는 다른 색다르게 보는 맛이 있었다.

과연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축제에 열광하는 이유가 있었다며 구경하던 카렘은 문득 뒤통수에서 무언가가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엉킨 머리카락이 두피를 찌르는 듯한 짜증 나는 감각.

무시하라면 무시할 수 있겠지만, 계속해서 느껴지자 신경이 쓰였다.

양손에 쥔 용기를 고쳐 쥔 카렘은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광장의 통로와 외곽에 자리한 다양한 인파는 모닥불을 빙 돌며 선보이는 공연에 시선과 정신을 기울이고 있으니 제외.

혹시나 해 슬쩍 뒤돌아 상석을 바라보았다.

"우리 귀여운 투실이. 뭐가 그리 불만이야?"

"윌리엄. 조금 전에 몬스터 공연 또 보면 안 되겠지?"

"그게 되겠냐. 다른 공연할 사람이 잔뜩 있을 텐데."

공연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 투덜거리는 알리시아.

그 옆에 앉아 소금 대응하는 윌리엄, 펠윈터의 차남.

알프레드와 공작부인은 그런 알리시아를 꿀 떨어지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삼남 로빈을 툭툭 건들며 장난을 치던 고드윈이 카렘과 눈이 마주치자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눈으로 자신의 오른편을 가리켰다.

카렘의 얼굴은 짜게 식었다.

설마 마요네즈를 받아갔더니 여기까지 들고 오다니. 어지간히도 단단히 마요네즈에 중독이 된 것이 분명했다.

저러다가 분명 살이 찔 텐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카렘은 상석의 다른 이들을 보았다.

도시의 유력자, 귀족, 부족장 등 상석의 가장 바깥쪽에 앉은 귀빈들이 앉아 요리를 먹으며 수다를 떨고 공연을 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뒤통수를 찌르는 시선의 주인은 상석에 없었다.

상석의 귀빈석에 앉은 캐서린은 공연에 딱히 관심이 없는지 메리가 내미는 과일을 먹고 있었다.

메리는 카렘의 시선이 닿자 눈만 슬쩍 움직여 번제자 무리의 한쪽을 가리켰다.

메리의 시선은 단상의 뒤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더 정확히는 카렘이 자리한 번제자 무리의 오른편.

하지만 카렘이 보기에 번제자들은 그냥 평범했다.

대부분은 수다를 떨며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딱히 긴장한 기색도 없는 것이 번제자로 여러 번 나온 것 같은 분위기.

그리고 수염이 없는데 나이 든 드워프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카렘은 잠깐 자기가 꿈을 꾸나 싶었지만, 그를 노려보는 드워프는 정말로 단 요만큼의 수염도 없이 반들반들했다.

한순간 근육질 노인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통나무같이 굵고 짧은 팔, 다리와 떡 벌어진 어깨, 다부진 몸.

전체적인 비율을 보자 드워프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워프 노인의 눈빛에 깃든 감정의 정체는 질투와 분노.

난생처음 보는 드워프 할아버지의 열렬한 눈길에 카렘은 당혹스러웠다.

'오면서 내가 뭐 실수라도 저질렀나? 그럴 리가.'

물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카렘이 분노의 대상이 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드워프, 총주방장 지그메서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그의 분노는 매우 정당했다.

지그메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왼쪽 대각선 전방에 있는 꼬마가 바로 그 카렘이었다.

그야 번제자들 중에 카렘보다 어린 사람은 없었으니 알아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저 버르장머리 없는 어린 것이 감히 내 기쁨을 빼앗아가다니...!'

자식과 손주를 배부르게 먹이고 맛있다는 말을 듣는 것.

나이 든 노인에게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행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카렘이 그 행복을 일부나마 뺏어갔다는 사실에 지그메서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지그메서는 카렘이 보거나 말거나 일방적인 분노를 담아 불타는 시선을 보냈다.

카렘이 결국 시선에 못 이겨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런데도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카렘에겐 다행히도 엘프 궁수의 곡사 공연이 끝났다.

기다란 두루마리를 든 아이오나가 단상에 다시 올랐다.

번제자들 앞에서 기다리던 사제들도 걸어 나와 장작불을 둘러싼 테이블 주변을 둘러섰다.

자연스러운 엄숙한 분위기에 시끄럽던 사람들이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뒤통수를 찌르는 시선은 여전했다.

하지만 카렘은 괜히 긴장된 나머지 고개만 돌려 몸을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농노 시절의 거적때기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인 고급 가죽 바지와 양모 셔츠 위에 착용한 가죽조끼와 추위를 대비해 입은 두툼한 털망토.

마법사의 탑에 마련된 시종 숙직실에서 발견한 옷들이었다.

메리가 말하기를 귀족님들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돈깨나 버는 사람이 특별한 날에 입는 외출복 정도는 된다고 했던가.

과연 그 말이 틀리지는 않은 듯했다.

전생의 셔츠만큼은 아니더라도 평소에 입던 활동복과는 비교하기 힘든 부드러움과 단열 성능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털망토도.

무슨 짐승의 털가죽인지는 몰라도 겉의 펑퍼짐한 털은 푹신했다.

안쪽도 마감 처리를 잘 했는지 요만큼도 거칠 거리지 않았다.

그사이 아이오나는 양피지에 적힌 번제자의 이름을 불렀다.

절차는 카렘의 생각보다 간단했다.

  1. 아이오나가 이름을 부른 번제자가 제물을 들고 테이블까지 이동.

  2. 사제들에게 제물을 건네고 가볍게 장작불을 향해 인사.

  3. 번제자가 원래 있던 위치로 복귀하는 동안 사제들이 제물을 테이블에 배치.

  4. 아이오나는 다음 번제자의 이름을 호명.

절차만 따졌을 때 카렘은 이보다도 더 간단한 예식을 본 적이 없었다.

하긴 그렇게 치면 왁자지껄하게 공연과 묘기를 즐기는 것도 본 적은 없었지.

누구는 자신이 사냥한 와이번의 박제된 머리를.

누구는 자신의 마지막 삶의 불꽃을 불태워가며 제작한 도끼를.

누구는 왕국에서 제일 품질이 좋은 천으로 만든 옷을.

수많은 제물이 그렇게 테이블에 도착했다.

"총주방장! 지그메서!"

그렇게 많은 번제자가 왔다 간 사이.

카렘은 드디어 자신을 노려보던 지그메서가 걸어나가는 것을 보았다.

저 드워프가 총주방장이었다고?

카렘에게 보란 듯이 콧바람을 내뿜은 지그메서는 양손의 접시를 들고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새끼 돼지가 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커다란 접시는 커다란 양동이 같은 뚜껑이 덮여 무엇이 담겨있는지 알 수 없었다.

딱히 지그메서의 행동이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

그 말고도 제물을 가렸던 번제자는 숫자가 제법 있었으니까.

별다른 생각이 없던 카렘의 눈초리는 사제들이 뚜껑을 열자 바뀌었다.

스릉-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지그메서의 제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노란색과 은은한 붉은색이 어우러진 인상적인 원기둥은 제 무게를 못이겨 360도 회전한 등변 사다리꼴을 하고 있었다.

그 반을 덮은 것은 연갈색 빛을 띠는 윤기가 나는 조각.

자세히 보자 조각은 수없이 작은 선이 촘촘한 직물처럼 엮여 있었다.

바람은 달콤한 향기와 은은한 꽃 냄새를 품고 조각에 덮이지 않은 나머지 부분을 스치며 표면에 물결 같은 진동을 일으켰다.

'푸딩!? 저만한 크기에, 흔들림이 없다고? 아니, 그릇이 없어서 그렇지 저러면 크렘 브륄레나 다른 바가 없잖아?'

그 말을 속으로 생각하자마자 카렘은 스스로 반성했다.

전생의 현대 문명을 기억하는 그는 판타지라고는 하나 아직 중세에 머물러있는 이곳을 은연중에 깔보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시대와 문명이 다르다고 해도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지식이 없다고 지혜와 지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당장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현대에 데려와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다빈치라며 감탄을 할 것이 분명할 텐데.

'무엇보다 푸딩을 총주방장한테 말할 사람은 알리시아 말고는 없는데. 레시피도 없이 저걸 저렇게 재현했다고?'

카렘은 경악했다.

애초에 그가 기억하는 레시피도 대부분 전생의 타인의 것을 기억하던 것을 모방, 변형했던 터라 딱히 독점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먹어본 적도 없는 요리를 카피하다 못해 자기 것으로 어레인지하다니. 뛰어난 요리사는 몇 가지 단서만 가지고 레시피를 복사하고 향상한다던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지그메서는 상석을 한 번 보고는 만족스러운 곰처럼 미소지었다.

"푸딩! 커다란 푸딩! 오빠!"

"우리 토실아. 신기하기는 한데 그렇게-"

과연 그가 기대했던 반응이 여실히 드러났다.

거기서 고개를 내려 카렘을 본 지그메서는 만족스럽게 웃-으려다가 당황했다.

'어, 생각했던 반응이 아닌데?'

패배감. 분함. 분노.

지그메서는 이따위의 감정을 기대했지만 지그메서가 보기에 카렘의 눈엔 완전히 다른 감정, 존경심이 담겨있었다. 이러면 실패 아닌가?

잠시 고민하던 지그메서는 찜찜하지만 일단 만족하기로 했다.

아무렴 알리시아 공녀님의 반응은 이걸로 돌아올 테니.

"카렘!"

카렘은 아이오나가 몇몇을 더 호명하고 나서야 불렸다.

아직도 경악을 숨기지 못하던 그는 아이오나가 그를 부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한 박자 늦게 앞으로 나아간 카렘은 긴장을 풀기 위해 한숨을 내뱉었다.

윈터센드 이전에 당장 접시를 덮은 마법 도구를 위해서라도 실수를 할 수는 없었다.

제물을 준비하는 동안 카렘은 문득 일전에 들은 마법 도구에 대해서 떠올렸다.

빵을 최상의 상태로 보관하는 도구.

그렇다면 요리를 가장 맛있게 보관하는 도구는?

'응? 있다만?'

'오, 역시나!'

'그런데 대여비는 네 봉급에서 깔 거다.'

'에에-'

'에에 는 무슨 에에. 얼른 제물이나 준비해라.'

그래도 확실히 그 효과는 확실했다.

'미식가의 뚜껑'

일정 시간 덮은 음식을 식지 않고 맛있게 보존하는 효과.

덕분에 준비한 포르게타는 아직도 따뜻하고 바삭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카렘은 딱히 자기가 선택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렇게 제물들이 하나같이 쟁쟁했다.

사제들도 대단한 제물들을 하도 많이 봤던 터라 카렘의 포르게타를 받았을 땐 성인식도 안 치렀을 소년을 놀랜 눈으로 잠깐 쳐다본 것이 다였다.

"저, 사제님."

"무슨 일이십니까?"

"실례지만 그 뚜껑은 받아갈 수 있겠습니까?"

"예?"

"그게, 빌린 물건이라서..."

카렘이 자리로 돌아오고 남은 사람이 전부 호명되어 제물이 테이블에 놓이자 아이오나는 두루마리를 집어넣었다.

“...제물의 준비가 끝났으니, 겨울의 여주인의 종복이 감히 청합니다. 겨울을 정복한 자시여, 부족하나 그 정성을 어여삐 여겨주소서. 승천자시여. 부족하지만 그대에게 청하옵니다. 전사신이시여, 선택해 주소서.”

아이오나가 기도가 끝나자 사제들이 일제히 펑퍼짐한 옷자락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장검, 단검, 손도끼, 철퇴, 모닝스타 등 온갖 무기를 꺼낸 그들은 활활 타오르는 장작에 무기들을 모조리 집어 던졌다.

바람에 실린 장작불의 냄새에 진한 쇠 비린내가 함께 섞였다.

장작불이 더욱 높이 피어오르고 열기가 광장에 점점 퍼지자 광장은 사람들의 흥분으로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불에 닿은 무기에 불이 붙고 금속이 순식간에 검게 그을리자.

[그래! 모름지기 축제란 엄숙한 게 아니라 시끌벅적해야지!]

무기가 부닥치는 듯한 날카롭고 육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