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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명절이란 무엇일까.
누구에겐 가족들과 함께하는 날.
누구에겐 밀린 피로를 푸는 날.
누구에겐 초과근무를 강요당하는 날.
각자의 성격과 사정이 다를 텐데 명절이라고 해도 다 같은 날을 보낼 리는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명절의 의미가 조금씩 퇴색하는 현대와는 달리, 이전 시대에 명절은 사람 대부분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
종교적으로, 누군가를 숭배하는 마음으로, 마을의 특산물을 널리 알리기 위함이라는 등 이유를 대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부차적인 것을 다 잘라내고 남으면 간단했다.
심심하니까.
중세는 기본적으로 놀 거리가 없는 노잼의 시대.
평민들이 즐길 거리라고는 술, 도박, 매춘, 싸움에 주기적으로 하는 연극과 축제가 전부.
빈도의 차이가 있을 뿐 도시고 마을이고 다 비슷했다.
다만 아이스랜드는 그나마 덜 심심하다고 해야 할까.
즐길 거리가 있어서 심심한 것이 아니었다.
집 무너지는 꼴을 보기 싫다면 새벽같이 일어나 지붕에 쌓인 눈부터 치워야 했고, 난데없이 굶주리거나 미친 몬스터와 짐승, 도적이 습격하면 방어를 해야 했다.
이를 제외한다면 아이스랜드에서 겨울이란 집 안에 틀어박혀 지루함을 달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그랬기에 계급을 가릴 것 없이 명절/축제는 소중했다.
그래선지 윈터홈은 지금 분주했다.
건물처럼 쌓인 눈을 치우고, 옮기는 수레와 장식을 가져오고, 만들고, 매다는 수많은 시종과 일꾼들까지.
평소에도 분주했던 윈터홈은 이전보다 더 분주하고 복작거렸다.
엄숙한 분위기에 생기가 감돌아 활기차 보였다.
"그래서 아침부터 이렇게 소란스러운 겁니다. 윈터센드에 추천받아 출입할 사람들에 대비해 성의 곳곳을 정비하고, 축제를 기념하는 장식들을 달고, 요리를 준비할 준비를 하는 등 일거리가 넘치죠. 덕분에 저에게도 협력 요청이 들어옵니다."
"그렇군요."
카렘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높이 쌓인 눈더미를 치우고 창문 밑을 화려한 겨우살이 묶음과 비단으로 장식하는 시종들을 보았다.
윈터홈은 면적만 작은 마을 혹은 그 이상일 만큼 거대했다.
하물며 그 안엔 각종 시설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평소라면 그렇다고 쳐도 지금 같은 축제일 땐 인력이 얼마나 필요할지 카렘은 감이 안 잡혔다.
"왜 전 이것들을 몰랐죠?"
"카렘 후배. 1주일에 탑 밖으로 나오는 횟수가 몇 번입니까?"
"한 손에 꼽을 수 있죠?"
"그렇다면 달걀과 기름이 부족하지만 않았어도 나올 일은 없었겠군요."
"네. 정기 발주일은 아직 남았고. 손님분들이 그렇게 마요네즈를 잘 먹을 줄은 저도 몰랐으니까요."
결국 고드윈과 빅토르 때문이었다.
아무리 고급지고 전생엔 없던 재료들이라고 해도 그들이 아는 소스라고 해봐야 과일과 육즙, 꿀과 허브 기반의 소스가 전부.
고소하고 짭짤하며 산미 때문에 질리지 않는 데다가 혀에 맛이 오래 남는 기름진 마요네즈를 접한 그들은 나중 가서는 음식을 먹는 건지 마요네즈를 먹는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먹어치운 마요네즈에 들어간 달걀만 한 판 이상.
그날 오후, 저녁에 간식과 식사를 만들자 완전히 동이 나버리는 것이 당연했다.
"아무튼, 탑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 바깥에 좀 돌아다니고 관계를 좀 쌓으십쇼."
"...지금 절 걱정해주시는 겁니까?"
"좋습니다. 카렘 후배. 그 말로 절 어떤 눈으로 쳐다봤는지 알 수 있겠군요."
"아뇨 그게 아니라. 흠."
카렘은 머쓱한 나머지 목덜미를 쓸었다.
목깃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가 소름이 돋았다.
환생 후 걱정의 ㄱ자도 받아본 적이 없는 데다가 전생에도 나이가 차고 나서는 별로 받을 일이 없었는데. 카렘은 뭔가 설명하기 힘든 생각과 마음이 들었다.
메리의 뒷말이 이어지기 전까지.
"절 집안일과 뒷바라지에 집착하는 머리 이상한 브라우니로 생각했다.라...과연 잘 알겠습니다. 기대하십시오."
"아니, 거기까지 생각한 적도 없고 말 한 적도 없습니다만."
"걱정하지 마시죠. 농담입니다."
"확대 해석으로 의견을 왜곡하는 건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탑을 나가라는 말은 빈말이 아닙니다. 맨날 주방과 자기 방, 휴게실만 오가니 우중충하다 못해 버섯이 다 자라게 생겼군요."
“그래도 식료품 발주받으러 갈 때는 나오는데요.”
“하.”
카렘 후배가 오가는 동선에 벌써 흔적이 생기기 시작한 건 알고 있습니까? 라는 눈빛에 카렘은 바로 격침당했다.
이렇게 지적받을 만큼 틀어박혀 있었던가.
식료품 창고도 윈터센드를 대비하는 중인지라 무척 분주했다.
평소보다 두, 세 배는 더 바쁘게 일꾼들이 수레와 창고를 오가고 있었다.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이리저리 돌아서 창고에 들어선 카렘은 곧바로 뾰족한 귀가 달린 익숙한 뒷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아우게르(Augher)씨!"
식료품 창고지기 아우게르가 고개를 돌렸다.
다양한 사람이 일하는 윈터홈에는 인간이 제일 많긴 했지만, 드워프도 있고 엘프도 있다.
그렇지만 단연코 아우게르는 엘프 중 눈에 띄는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녹색 눈동자를 빼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 물감보다도 더 창백한 피부가 돋보이는 현실감이 들지 않는 모습이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온몸을 방한복으로 똘똘 둘러싼 다른 사람들과는 차림부터 달랐다.
달리 추위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반소매 셔츠와 긴바지만을 입고 있다니.
카렘은 그를 처음 봤을 땐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줄로만 알았지만 스노우 엘프라는 엘프의 친척 격인 종족이고 원체 추위를 안 탄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간신히 이해했다.
다만 과연 창고지기답게 단단한 몸과 일반 성인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가 맞물려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꼬마 카렘? 그리고 메리라니-"
"네. 평소보다 바빠 보이네요?"
"말도 마라. 겨울은 빨리 왔지, 수레는 막혔지, 윈터센드는 코앞이지."
"안 그래도 그래 보여요."
"그래서 무슨 일이지? 메리까지 같이 와서."
아우게르의 말에 메리가 눈인사로 답했다.
그의 사정도 있으니 카렘은 바로 본론부터 꺼냈다.
"달걀 남는 거 있죠?"
"응? 달걀? 갑자기?"
"네. 손님 대접하느라 완전히 동 나버렸거든요."
"응? 손님?"
“설마 달걀이 없지는 않겠죠?”
카렘은 걱정하지 않았다.
달걀이 나름 비싼 식료품이라고 해도, 부족할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렴 윈터홈은 공작성이었다.
아우게르는 잠시 호기심을 보였지만 이내 자기가 딱히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흠 그나저나 달걀이라니."
그리고 답변은 그리 시원하지 않았다.
"설마 달걀이 없어요?"
"달걀만 없는 게 아니야. 지금 알이란 알은 싹 다 없어."
카렘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눈만 깜빡였다.
듣고만 있던 메리도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라 무심코 아우게르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아우게르. 여긴 콜던이고, 윈터홈입니다. 공작성에 알이 없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농담 같지? 나도 그래. 주군의 가족들 식사랑 연회에 내보낼 물량 말고 여유분은 완전히 동이 나버렸어."
"하다못해 이유라도 알려주시죠."
"총주방장 때문이지."
"총주방장?"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총주방장이 어떤 직책인지는 카렘도 알고 있었다.
윈터홈에 직접 고용된 요리사들을 총괄하고 윈터홈의 주방과 연회를 책임지는 늙은 드워프라고 들었는데.
그런 사람이 대체 왜?
아우게르가 말했다.
"나도 몰라."
"모른다고요?"
“묻지 말라고 하던데.”
아우게르는 어깨를 으쓱했다.
말도 안 되는 민폐였다.
윈터홈에서 하루에 다방면으로 쓰이는 달걀이 최소 수백 알은 될 텐데.
거기에 달걀이 아니라 스노우러너나 다른 대체제까지 모조리 싹 쓸어가다니.
"이거 민폐 아닙니까?"
"아무튼, 나도 그래서 골치야. 총괄 주방장한테 따지기에는 끝발이 딸리는 사람이나 그 대리인들의 항의 때문에 일도 제대로 못 할 지경이라고."
"그래 보이네요."
아우게르의 말대로 카렘은 화가 그득그득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식료품 창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카렘은 창고가 시끄러워지기 전에 재빨리 식료품 창고를 탈출했고 메리가 그 옆을 따랐다.
"결국,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군요."
"그러게요. 설마 공작성에 달걀이 없을 줄이야."
"이대로 돌아가시겠습니까?"
"뭐 없다는데 어쩌겠어요?"
카렘은 어깨를 으쓱였다.
흠, 메리도 마찬가지였다. 없다는데 뭐 어쩌겠나.
보나 마나 캐서린이 분노하고 실망할 뿐이겠지.
빈손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카렘과 메리의 뒤를 작은 인영이 몰래 뒤쫓았다.
지나가던 누구나 보면 경악할 사람이었지만.
안 그래도 바쁜데 식료품 창고가 시끄러워지자 아무도 그녀를 신경 쓰지 못했다.
그리고 과연 카렘과 메리의 예상대로였다.
"뭐? 아직 초과근무의 피로가 덜 풀렸나? 헛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정기 납품일이 되기 전까지 달걀이나 그 비슷한 건 없을 거래요."
"오우거가 살 뺀다는 헛소리하지 말라!"
캐서린이 노호성을 내지르자 카렘은 움찔거렸다.
누군가가 살심을 품으면 오싹한 기운을 느낀다던가.
겉모습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지만, 살기라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고작 디저트일 뿐인데 이만큼이나 분노한다고?
메리는 캐서린의 분노가 더 커지기 전에 얼른 그 이유를 낱낱이 고해 바쳤다.
과연 공사를 구분할 줄 아는 캐서린은 이유를 파악하자 살기를 거둬들였다.
하지만 분노한 건 여전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미간을 주물렀다.
"총주방장. 총주방장이라."
"아시는 분인가요?"
"아니 전혀."
캐서린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의 머리는 기준 미달인 사람을 기억할 정도로 값싸지 않았다.
아니, 총괄 주방장쯤 되면 기억할 정도의 가치는 있겠지만, 아무렴 직접 본 적도 없는데 알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본성의 저녁 식사 때 참여했다면 보는 것이 당연했겠지만.
도착한 첫날부터 일에 치이느라 본성에서 저녁 식사를 할 여유 따위는 없던 그녀였다.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디저트가 없다는 것.
캐서린은 여태 이만큼이나 진지한 적이 없었다는 듯이 물었다.
"정말로 오늘 간식은 없는 것이냐?"
"음."
고작 간식 때문에 저러는 것에 한탄이 나왔지만, 저만한 마스크로 저렇게 간절하게 물어보니 카렘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동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다.
카렘은 시선을 돌리고 빠르게 머릿속의 레시피를 뒤적였다.
디저트의 필수품은 달걀과 설탕, 밀가루.
물론 없다고 아주 못 만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레시피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뭐가 있으려나.'
선물 받은 덕분에 설탕은 아직 충분했지만.
견과류와 과일은 모두 정과가 되어 캐서린과 메리의 뱃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렇다고 대충 팬케이크를 빙자한 밀전병에 감미료를 끼얹는 건 캐서린을 실망하게 할 것이다.
전속 요리사나 되어서 고용주를 실망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제외.
'약과? 약과는 만들 수 있겠는데?'
라고 했으나 카렘은 스스로의 생각을 부정했다.
달걀 없이도 만들 수는 있었다.
다만 지금 시작하면 저녁은 지나야 완성이니 아웃이었다.
지금 만든다면 빨라도 늦저녁에나 끝나는 것은 확정
다른 거 뭐 없나? 고민하고 있을 때 카렘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만들 수 있겠는데요."
"팬케이크라고 하는 밀전병에 시럽을 끼얹은 물건을 말하는 거라면-"
"아니, 진짜로요. 믿음을 가지세요.“
캐서린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말할 때면 항상 결과물은 좋았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