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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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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충분히 기다려줬다는 듯 하늘은 새하얀 폭설을 흩뿌렸다.
거기까지라면 별달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아이스랜드의 겨울에 눈은 일상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런데 일주일 넘게 눈이 쏟아지는 건 좀 심각한 거 아닌가? 카렘은 며칠 동안 고민했지만, 캐서린은 괜한 걱정하지 말라고 타박했고 메리는 오히려 좋은 게 아니냐며 헛소리를 내뱉었다.
아니, 집요정 브라우니의 기준에선 헛소리는 아니겠지.
폭설이 내리면 제설을 해야 하고, 그건 일거리가 늘어난다는 소리니 일 중독인 메리에게는 하늘에 감사의 기도를 올려도 모자랐다.
"그래도 진짜로 괜찮은 게 맞나...?"
"괜한 걱정이다. 척 보면 모르겠냐? 저건 밤낮으로 일거리가 쏟아져서 희열이 넘치는 것이니까."
"아니 그건 보면 알겠습니다마는."
미니 블리자드가 칼춤 추듯이 부는 바깥과는 달리 훈훈함으로 가득한 마법사의 탑의 휴게실에서 카렘은 캐서린의 타박을 들으며 창밖의 메리를 바라보았다.
방한복에 털가죽을 둘둘 싸맨 인영이 하나.
브라우니도 추위는 어쩔 수 없는 듯했다.
이른 새벽부터 그녀는 지금까지 마법사의 탑 주변에 눈으로 성벽을 쌓고 있었다.
아니, 비단 마법사의 탑 주변에만이 아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성의 다른 시설 주변으로도 속속들이 눈 성벽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거 눈이 이렇게나 쌓이는데...?"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구나. 그나저나 당과(Candied fruit)라니. 오랜만인데."
"기사분들이 선물로 설탕을 보내주셔서 한번 만들어봤습니다."
"쫀득하고 바삭거리는 게 딱이군."
사과 정과를 물고 꿀과 계피를 넣고 끓인 우유를 머금은 캐서린은 배부른 고양이처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토벌의 공적을 넘겼다는 기사들이 그에 대한 보답이라는 듯 설탕을 조금씩 사 보낸 덕분이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전부 모아보니 그 양이 상당했다.
덕분에 카렘은 대량의 설탕으로 중세 평민은 꿈도 꾸기 힘든 사치를 부렸다.
보관이 열악했는지 일부 빛이 바랜 것이 섞여 있었지만 딱히 티가 나는 수준은 아니었다.
아무튼, 오늘의 간식은 꿀과 계피를 탄 우유와 사과, 서양배, 복숭아로 만든 새콤달콤 쫄깃한 정과와 호두, 아몬드, 헤이즐넛으로 만든 달콤하고 바삭한 견과류 정과.
카렘은 잔뜩 준비한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바삭-바삭바삭-
"음, 견과류를 설탕에 졸이길래 잼이라도 만드는가 했더니 이런 거였군?"
"발상의 전환이랄까요. 그런데 너무 많이 드시는 거 아닙니까?"
"음? 뭐가 말이냐?"
카렘의 말에 캐서린은 도통 모르겠다는 듯 수북하게 담겨있다가 바닥만 보이는 그릇을 내밀었다. 더 내놓으라는 무언의 요구였다.
"이따 점심은 대체 어떻게 드시려고요."
"아아, 모르는 거냐?"
"예?"
"여자에겐 간식 배가 따로 있다."
그러니까 문제없으니 어서 더 내놔라.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된 멍청한 싸움이었던지라 카렘은 금방 포기했다.
하다못해 간식 때문에 밥을 못 먹기라도 하면 모를까.
그렇게 먹고 밥은 또 잘 먹는단 말이지.
카렘이 정과를 그릇에 추가로 담아왔다.
그러는 사이 창밖의 메리는 조금 쉬려는 듯 삽을 놓고 이리저리 몸을 풀고 있었다.
좋다 못해 누가 도와주려고 하면 적대감을 내뿜는다고는 하지만 이대로 보고 있기엔 카렘의 마음은 그렇게 염치없지 않았다.
"아무래도 메리한테 조금 챙겨줘야겠는데요."
"뭐, 적당히 챙겨주면 좋아하겠지."
"그러는 의미에서 조금 챙겨가겠습니다."
"어이!"
이미 내 몫이라는 듯 항의하는 캐서린의 반응을 넘겨버린 카렘은 정과를 조금 소분하고 잔에 꿀, 계피를 탄 우유를 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손에 메리의 몫을 들고 카렘이 나가려던 찰나.
무표정으로 부루퉁한 기색을 뿜던 캐서린이 카렘을 불렀다.
"아 맞다. 점심 식사 때 손님이 방문하기로 했으니 적당히 준비해놓거라."
"아니, 그걸 먼저 말씀하셨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참고로 첫째 공자인 고드윈 펠윈터가 손님이다."
"....실례하겠습니다!"
*
*
*
고생을 기쁘게 자처하는 메리에게 간식을 떠넘기며 소식을 전하자 메리는 진작 알고 있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건가?
하지만 항의할 시간이 없었다.
점심에 방문하는 손님의 이름이 고드윈 펠윈터.
카렘 자신이 기억하는 게 정확하다면 다름 아닌 알프레드 펠윈터의 많은 자녀 중 장남, 즉 후계자였다.
저녁을 푸짐하게 먹고 아침, 점심을 비교적 가볍게 먹는다고는 하지만, 저정도나 되는 사람을 대접하는데 대충 준비할 수는 없었다.
자고로 식탁이 풍성해야 주인과 자존심이 바로 서는 법.
요리사의 자존심은 덤으로.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카렘은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렴 상대는 까마득하게 높으신 분이었다.
"카렘 후배. 긴장하지 마십쇼."
"아니 이게 어떻게 긴장이 안 돼요. 무려 공작가의 장남이신데."
"알리시아님도 보셨으면서 말입니까?"
"아니, 알리시아님은 뭐랄까. 그렇잖아요?"
"음, 확실히."
듣자 하니 알리시아는 초대도 없이 침입한 죄로 외출금지를 당해 본성에서 병사들과 신나는 추격전을 벌인다고 하던가.
과연 활발한 첫 만남에 걸맞은 천방지축 같은 행동이었다.
"아무래도 불안해서 안 되겠습니다."
"예?"
"그거 전부 내놓으십쇼."
어, 어어. 하는 사이 메리는 카렘이 들고 있던 쟁반을 뺏어 양손에 들었다.
카렘은 뭐라 항의하려던 찰나 스스로 수긍했다.
아무렴 귀하신 분이고 자시고 손님 앞에서 긴장한 나머지 혹시라도 실수해서 엎어버리는 꼴에 비하면 그냥 천직인 사람, 아니 요정한테 맡기는 게 더 낫겠지 싶었다.
식당문을 열자마자 카렘은 뭔가 잘못된 분위기를 느꼈다.
감이 좋은 사람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순간.
그 불안한 공기를 감지할 수 있다고 했다.
호르몬 감지 능력인지 그냥 감이 좋다든지.
카렘은 훈훈해야 할 공기가 누가 창문이라도 내려놓은 듯 싸늘하게 가라앉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카렘 후배. 무슨 이오읍"
'쉿. 쉿!'
그리고 메리도 카렘과 같은 공기를 읽었는지 말꼬리를 잽싸게 끊었지만 이미 늦었다.
"꼬마, 메리. 안에 들어오지 않고서 무얼 하느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메리. 가죠."
"흠, 흠흠."
싸늘하게 내려앉은 공기를 뚫고 들려오는 질책에 카렘이 안으로 들어가자 메리가 뒤따랐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카렘은 손님과 그 수행원을 볼 수 있었다.
각지도록 짧은 머리를 한 고드윈은 구레나룻부터 턱과 입술까지 이어지도록 짧게 기른 수염과 맞물려 젊은 나이에도 차갑고 단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일단 카렘의 생각보다는 나이가 들어 보였다. 아마 중세 시대 특유의 노안과 수염이 어우러진 결과인 것이 분명했다.
차가운 얼음 같은 눈빛으로 캐서린을 바라보는 고드윈의 옆자리엔 수행원으로 생각되는 남자가 앉아있었다.
겉모습만 따지면 식당에 있는 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는 수염과 머리에 회색빛으로 바래고 있었다.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던 남자가 너털하게 한숨을 뱉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고드윈을 바라보았다.
"푸흐, 공자님. 장난은 충분한 것 같으니 이만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제기랄, 빅토르. 이제 막 재밌어지려는 참이었는데."
"맙소사. 곧 성인식을 치룰 나이인데 아직도 시종과 시녀를 놀려먹는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단 말입니까?"
"어렸을 때 버릇은 죽어도 고치지 못한다니까 말이지."
차가운 얼음 같은 인상? 난 동의하지 않는데.
고드윈이 유쾌하게 웃자 빅토르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몸을 돌려 카렘을 바라보았다.
"자넨 걱정하지 말게. 도련님의 못된 버릇에 자네 주인이 어울려주고 있는 와중이었으니까."
"어, 그러면 상상하던 그런 안 좋은 분위기가 아니었습니까?"
"푸흐, 아타니타스공을 한 번 보는 게 어떤가?"
카렘은 그제야 캐서린쪽을 돌아보았다.
날카로운 분위기는 어디 갔냐는 듯 턱을 삐딱하게 괴고는 씨익 웃고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재밌군. 그래."
"그래서 아직 성인식도 안 치른 꼬마를 놀리는 것은 재밌으셨습니까."
"보면 모르냐?"
딱 봐도 재밌어 보이니까 하는 말이었다.
카렘은 못마땅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자 고드윈이 말했다.
"그냥 우리 막내 알리시아가 그렇게나 탐내는 꼬마 요리사가 누군지 궁금하다 보니 그만 장난기가 튀어 나와버렸군.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어."
"...알리시아 공녀님이 말입니까?"
"그래. 외출금지 처분을 받은 그 날부터 지금까지."
"아타니타스님? 그때 거절하신 거 아니셨습니까?"
전속 요리사의 질문에 캐서린은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는 것은 분명히 거절했는데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노린다는 뜻이 분명했다.
"대체 알리시아의 혀와 위장을 포로로 만든 주인공이 궁금해서 직접 찾아왔지."
"확실히 내 꼬마 요리사가 요리를 잘하기는 하지."
"확신에 차서 장담하시는군요."
"기대할 만하다. 적어도 꼬마가 내 기대를 저버린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하긴 우리 막내가 편식은 안 해도 입맛은 까다로운 편인데."
카렘은 슬쩍 분위기를 살폈다.
높으신 분들 사이에 오가는 당연한 돌려 말하기나 구밀복검의 공방은 아닌 듯했다.
그 말인즉슨. 고드윈이 한 말 그대로 정말로 음식이 궁금해서 찾아왔다는 것. 그렇다면 안심할 수 있을 리가 있나.
하루 전에만 들었어도 조금 더 공을 들인 요리를 할 수 있었을 터인데 고작 몇 시간 전에 들었던 터라 머리를 쥐어짜야 했었다.
평소에는 만들려는 요리가 바로바로 떠오르는데 막상 이런 순간이 닥칠 때만 되면 과부화한 나머지 머리에 열이 올라 두통이 올 지경이었다.
일단 비교적 시간이 덜 걸리는 것들 위주로 하기는 했는데.
"아타니타스님. 하루 전에라도 알려주시지 그러셨어요."
"음. 그래서 자신 없나?"
"네. 솔직히 개쫄리는데요."
"걱정하지 말고 네 실력을 믿는 나를 믿거라. 그러니까 괜한 걱정은 때려치우고 그 접시를 덮은 뚜껑이나 열도록."
메리가 테이블의 세팅을 거의 끝마친 상태였다.
무엇보다 저런 말까지 들었는데 쫄아 있을 수는 없었다.
카렘은 두 눈을 딱 감고 요리들을 덮은 뚜껑을 차례대로 열었다.
***자료첨부***
-당과
챗GPT가 그려준 그림입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