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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살아있을 수 없는 도적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행렬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겁먹어도 무방한 상황이었지만, 카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스랜드의 자연산 언데드는 계절을 탄다고 하지 않았나요?"
스카디 여신께서 보우하사.
아이스랜드의 자연산 언데드는 봄, 여름에만 발생한다.
그리고 가을에 활동이 줄어들고 겨울이 되면 모습을 감춘다.
일단 카렘도 몇 번인가 들었던 아이스랜드의 상식 중 하나였다.
“...자연산 언데드라고 하니까 조금 느낌이 이상한데.”
“뭐, 자연에서 발생하니까 자연산이 맞죠. 뭐, 설마 지금이 초가을이 아니라 늦여름인 건-"
"아니. 명백히 이상 상황이다."
캐서린은 턱을 짚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시선은 전방에서 천천히 행렬을 향해 다가오는 도적이었던 좀비 무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뭐, 느리긴 해도 숫자가 많아 그냥 지나칠 수는 없겠군요."
"조금 더 깔끔하게 처리하지 그랬냐."
"제가 저렇게 일어날 줄 알았겠습니까? 아니, 여름은 진작에 지났는데 일어나는 건 대체 아이스랜드 어느 지역의 좀비인 건데?"
"농담이다. 받아넘겨. 네가 나설 것도 없다."
캐서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휘휘 저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튕기며 웅성거리는 시종과 병사들을 진정시키는 지휘관을 불렀다.
"아쿠스. 놈들을 처리하는 데 문제는 없겠지?"
"물론입니다. 아타니타스 고문님. 병사들이 지금 상황에 불안해하고 있긴 하지만, 팔다리가 부족한 반시체들을 상대하기엔 충분합니다."
"좋아. 그러면, 아니지. 불안해한다니 혹시 모르겠군. 용기의 주문이 필요하겠어. 호위들을 한 곳에 모아라."
"예? 아, 알겠습니다."
눈을 끔뻑이던 지휘관은 행렬을 호위하느라 흩어져있던 병사들을 한데 모았다. 빠짐없이 다 모인 것을 확인한 캐서린은 곧바로 그들을 향해 손을 그었다.
사방에 널린 얼음의 마력이 손가락 끝에 맺힌 마력으로 구축된 술식을 따라 휘몰아치며 응집했다. 그리고 그녀의 지휘를 따라 사방에서 병사들을 향해 모여들었다.
머리, 팔, 몸통, 다리, 발, 손.
불규칙하게 병사들을 뒤덮기 시작하던 방어 마법은 이내 단단히 굳혀져 반투명하게 변하며 모습을 감추었다.
병사들은 경험에 상관없이 모두 감탄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방어구 위로 전신을 한 겹 감싼 '보호막'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보호 마법 겨울의 갑주. 아직 겨울은 아니지만 말이다."
병사들이 품고 있던 일말의 불안함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그 후 병사들은 문자 의미 그대로 도적이었던 좀비 무리를 짓밟았다.
안 그래도 움직임이 느린 좀비들이다.
하물며 겨울이나 다름없는 아이스랜드 북부의 추위에 몸이 굳어 더더욱 느려져 병사들이 조를 짤 것도 없이 부서지고, 으깨지고, 박살이 났다.
다만 고든이 처리한 도적들의 숫자가 숫자다 보니 비교적 일반인인 호위들이 처리하는 시간 자체가 오래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병사들이 언데드를 사냥하기보다는 무참히 추수하는 모습을 보던 카렘은 캐서린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용기의 주문이라고요?"
"그럼 용기의 주문이지."
"보호 마법이라고 하셨잖아요."
"저건 정면에서 버그베어한테 얻어맞아도 한 방까지는 아무 피해도 없을 보호 마법이다."
캐서린의 당당한 선포에 고든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흥미롭다는 듯이 이 감탄했다.
"호오. 저게 그 정도라는 겁니까?"
버그베어.
원한을 품은 채 죽은 곰의 사체에 악령이 깃들어 발생하는 트롤만큼 끈질기고 교활하기는 그보다 더한 언데드 몬스터.
캐서린이 가볍게 손가락으로 펼친 보호 마법은 바위를 일격에 박살 내는 공격을 한 번이지만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하지만 무식하기 짝이 없는 성능이군요."
"뭐, 대마법사 쯤은 되어야 주문을 파기하고 무언으로 펼치지. 아니라면 지팡이를 붙들고 한참은 주문을 외워야 하는 주문이다."
"전 아타니타스 님이 매번 손가락 휙! 아니면 지팡이로 찍는 것만 봐서 영 감이 안 잡히는데요."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캐서린은 생각에 잠겼다.
잡담하다가 주제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가을. 그것도 사실상 겨울이나 다름없는 아이스랜드 북부에서 언데드가 발생했다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다.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떠오르는 경우는 세 가지.
대규모 영지전이 발발해 방치된 전장.
그런 전쟁이 벌어졌다면 공작성에 있던 그녀가 모를 리가 없다.
강력한 마도구나 유물 같은 무언가의 영향.
하지만, 나글파르의 비늘이나 나스트론드의 송곳니 같은 것이 그렇게 흔했으면 아이스랜드가 이렇게 멀쩡할 리가 있었을까?
그렇다면 가장 의심되는 건 사악한 네크로맨서의 대단위 의식인데 펑거스비의 일이 얼마 전인데 벌써?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작위적이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유물의 영향이었으면-"
"유물? "
"아무것도 아니다. 그나저나 입이 심심한데."
"육포라도 씹으시렵니까?"
“그래...오, 육포인데 제법...?”
“향신료를 듬뿍 넣고 양념을 발라 만들었거든요.”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지나갔다.
혼란스러워하던 시종과 하녀들이 진정하고, 카렘이 준비한 비장의 육포 주머니가 텅텅 비어가는 동안 병사들의 마지막으로 굴러다니던 좀비의 머리통이 박살 났다.
하지만 병사들의 일은 이제 시작했다.
병사들은 쓰러진 좀비의 시체에서 앞다투어 부산물을 거둬들였다. 특히, 지휘관은 박살 난 좀비의 시체 파편을 뒤적일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조금 전까지 사람이었지만 오히려 조금 전까지 사람이었기에 거둬들일 물건들도 많았다.
입은 옷과 몸을 제외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털린 도적이었던 좀비들은 빈 몸으로 눈 덮인 가도의 한쪽에 건조하게 잘 마른 불쏘시개, 장작과 함께 쌓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장소였다면 모를까.
굶주린 맹수와 몬스터가 꼬이기 전에 처리해야 했다.
한참 수다를 떨다 소재가 떨어져 다른 이들과 함께 노동 현장을 멍하니 보고 있던 카렘은 뒤늦게 지휘관이 다가오는 것을 봤다.
"어, 아타니타스 님? 지휘관이 오고 있는데요. 아쿠스씨라고 하셨던가요?"
"상황 보고와 전리품 배분 문제겠군."
"전리품은 따로 필요 없으시죠?"
"그야 당연하지. 그렇지만 이쪽은 모르겠군. 용병?"
고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영지가 날아가 개털이라고 해도 남작인 그가 중급도 아닌 전직 도적인 하급 언데드 좀비의 품을 뒤적거릴 마음은 없었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것도 아니고.
"아타니타스 고문님."
"그래. 상황이 슬슬 정리돼간다고 해도 끝난 게 아닌 거로 보이는데. 어떤 일이지? 전리품 배분에 문제가 생겼나?"
"분쟁 없이 관습대로 처리했습니다. 그보다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음?"
지휘관이 테이블에 주먹을 폈다.
투두둑, 달그락!
연달아 떨어지는 맑은소리가 시선을 모았다.
카렘은 눈살을 찌푸렸다.
돌 조각, 아니 보석 조각?
새끼손톱보다는 작지만 눈곱보다는 큰 속이 불투명한 검푸른 수정 조각 여럿이 후두둑하고 테이블보에 떨어졌다.
"크기는 작지만, 보석 같은데."
"보석 같지만, 보석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요?"
"제 눈이 정확하다면 이건-"
지휘관은 확신하지는 못하겠다는 듯 뜸을 들였다. 대체 저게 정체가 뭐길래? 그때 카렘의 시야 밖에서 섬섬옥수가 조각을 집어 들었다. 눈살을 찌푸린 캐서린이 조각을 이리저리 살폈다.
"마석이로군."
"그렇습니까. 예. 예? 잠깐. 마석?"
"그래. 언데드의 것이라 혼탁하고, 품질도 형편없으며 크기도 이 꼴이긴 하지만, 엄연히 마석이다."
카렘도 마석이 무엇인지는 알았다.
강력한 몬스터의 체내에서 만들어지거나, 가지고 태어나는 마력의 결정.
전자의 경우는 카렘도 잘 몰랐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카렘도 딱 하나는 알았다.
전생에서도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무수한 작품에서 묘사된 마력의 결정체.
주로 강한 몬스터에게서 발견되는 부산물이지만, 가장 유명한 마석이라면 따로 있었다.
드래곤의 힘과 생명력 그리고 마법의 원천.
드래곤의 심장에서 발견된다는 시간과 세월의 흔적.
개체의 강함과 나이에 따라 크기와 질이 차원이 다르다는 전설 속의 산물 드래곤 하트.
카렘은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테이블보의 마석 더미를 다시 봤다.
하지만 기대감은 순식간에 도로 사그라들었다.
아무리 봐도 이걸 전설의 드래곤 하트와 비교하기엔 그랬다.
그런데 이 마석 부스러기가 어디에서 나왔단-
카렘은 어느새 활활 불타고 있는 좀비 무더기로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뭔가 싶었던 고든의 시선도 그쪽으로 움직였다.
"이게 저기서 나왔다는 거 같은데..."
"뭐? 에이. 장비만 갖추면 너조차 사냥할 수 있는 좀비한테서?"
"아니, 그렇지만. 그 외에 다른 뭔가가 없잖아요? 아니 그 전에 그렇게 말하니까 조금 불쾌한데요."
"인정할 건 인정해라. 그 전에 최하급 언데드. 그것도 시체나 다름없는 좀비의 마석이라니. 차라리 구울이라면 내가 이해하겠는데."
손톱만 한 검푸른 마석을 쥐고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던 캐서린은 탁하고 마석을 놓았다.
"우선, 자칫 지나칠 수 있었던 것을 보고한 것에 포상해야겠지. 복귀하면 주군한테 이 점을 분명히 보고드리겠다."
그리고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건네며 손을 까딱였다.
생각 이상으로 묵직한 주머니와 출세 보장.
지휘관이 연신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며 정리를 마무리하기 위해 잘 불타오르는 언데드 더미로 달려갔다.
"갑작스럽지만 흥미로운 상황에 시간이 너무 지체됐군. 메리."
"미리 짐을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넋을 놓고 있는 시종과 하녀들한테도 말하도록. 병사들이 복귀하는 대로 이동을 재개한다."
그 말에 메리는 치맛자락을 잡고 살짝 무릎을 굽히는 것으로 대답을 마치고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슬슬 움직이려는 느낌에 카렘은 눈치껏 텅 빈 육포 주머니에 지휘관이 놓고 간 마석 더미를 주섬주섬 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짐작 가는 거라도 있나 봅니다?"
"조금 전 만져보면서 마력을 살폈다."
"어, 그러면 계속 쥐고 계셨던 게?"
"그래. 싸구려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이상한 점이 있다."
마석은 품질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크기와 용량은 결국 품은 마력에 비례했다.
"품은 마력에 비해서 지나치게 커. 이 정도면 마석이 형성된 게 이상할 정도일텐데..."
진지하기 짝이 없는 소리지만 대체 뭔...
카렘은 눈만 끔뻑이다 고개를 돌렸다.
맹하니 캐서린을 보던 고든과 눈이 마주쳤다.
"뭐, 속 빈 강정이라는 뜻일까요?"
"글쎄다. 강정은 먹을 거라도 있지. 튀김도 고소하던데."
"그럼 겉만 그럴듯한 풋사과?"
적절하네. 곰도 그런 건 안 먹으니까요. 합의점에 이르러 고개를 끄덕이는 두 남자를 캐서린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시답잖은 소리는 그만. 결국, 사령술을 사용하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이 짓거리를 벌였다는 뜻이다. 펑거스비에서처럼."
"오,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또 뭔가 부산물을 획득하실 기회시네요?"
"바로 그거지. 아니 잠깐."
"네? 뭔가 또 이상한-"
"아니, 네 반응이 미적지근한데."
"...어, 그거야?"
그걸 나한테 묻는 거냐는 듯이 카렘은 캐서린을 눈으로 가리켰다가 옆으로 굴려 태연하게 입을 쩍 벌리며 하품하는 고든을 보았다.
행렬의 최고 무력이란 사람들의 상태가?
그 노골적인 의미에 캐서린도 뜻을 금세 알아차렸다.
생각해보니 행렬에는 대마법사와 소드마스터가.
그리고 공작 직속의 정예 병력이 호위하는 중이다.
이건 안전불감증이 생겨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 테이블이랑 의자를 정리할까요?"
"음, 응? 그래라. 씁."
이게 아닌데...캐서린이 생각에 잠기건 말건 카렘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접이식 테이블과 테이블보, 의자를 접어 마차에 실었다.
병사들이 복귀할 때쯤 정리되어 행렬은 불타는 언데드 더미를 뒤로한 채 다시 북쪽을 향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