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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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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로파는 지역에 따라 환경이 다르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

가을은 크든 작든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한 해의 농사가 끝나는 수확의 계절.

다음 해를 대비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

겨울을 날 준비가 충분한지 스스로 점검할 시간.

그리고, 축제의 계절.

작은 마을이든 큰 도시든 수확을 마치고 신에게 감사하며 만찬을 즐기는 축제가 개최되는 것은 거의 대동소이했다.

일반적으로 바다와 가까운 어촌과 항구에선 풍어제.

산과 숲 혹은 던전을 낀 도시와 마을이라면 수렵제.

농사를 짓는다면 수확제를 개최했다.

어쨌든 전부 다 비슷한 축제라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장소에 따라 축제의 물산이 다르고, 감사를 바치며 기도를 올리는 신의 주체가 다르다는 것 정도가 전부.

이는 세오폰 왕국의 변방에 자리 잡은 아이스랜드.

문명의 최전선 또한 같았다.

아무렴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다만, 아이스랜드의 정기적인 가을 축제는 수렵제가 아니었다.

메모리얼 데이

다른 말로는, 위령제.

지금은 형편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아이스랜드의 역사는 삶보다 죽음이 가까웠던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었다.

그 때문에 문명의 최전선에선 겨울을 준비하며 죽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옛날부터 매년 초가을 메모리얼 데이를 보냈다.

먼저 간 이들이 미련 없이 안전하게 저승으로 여행할 수 있도록 거나하게 술판을 벌이는 건 빈번하고, 아직 활동하는 언데드를 토벌한 증거를 신전에서 보상으로 교환하는 등.

호탕하고 거칠게 진행되는 축제는 끝은 보통 난장판으로 끝났지만, 이래 보여도 메모리얼 데이는 위령제였다.

예로부터 먼저 간 이들도 우울하게 기도를 드리기보단 유쾌한 술판을 벌여 모두 함께 즐기는 것을 더 좋아하리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작년엔 윈터센드 때문에 무산되었다.

하지만 올해의 메모리얼 데이는 정상적으로 개최됐다.

펠윈터 가문에서도 당연히 선조들을 기리기 위해 손님들을 초대해 조촐(하다고는 해도 공작의 축제라 규모는 상당)한 잔치를 대접했다.

그리고 당연히 축제라면 먹고 마시는 음식이 끊임없이 공급돼야 하는 법이며 카렘 또한 축제 음식을 준비하는데-동원될 리가 있나.

애초에 지금 윈터홈은커녕 콜던에 있지도 않았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아이스랜드 북쪽으로 뻗어진 가도의 초입.

일행은 제법 단출했다.

행렬을 이끄는 캐서린을 따라온 카렘과 메리. 알프레드의 명령으로 합류한 실무진과 이를 수행할 시종들과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고든에 호위병들까지.

(한창 (임시)취업에 흥겨워하던 고든은 하루 만에 해고당하고 강제로 끌려왔다.)

목적지는 아이스랜드 최북단의 애프터글로우 요새.

하드리아누스 변경백 리처드 펠윈터의 본거지.

지금 행렬은 식사를 겸한 휴식을 위해 갓길에 정차했다.

메리는 시종들을 지휘해 호위병들이 먹을 식재료를 손질하고 있었다.

카렘도 원래는 캐서린의 식사를 준비하려 했다.

겸사겸사 메리와 고든 그리고 자기가 먹을 것도.

하지만 고든은 그 전에 굳은 몸을 풀어야 한다고 카렘을 재촉했다.

원래라면 이 시간에 축제를 돕느라 거품기와 식칼을 손에 쥐었을 카렘은 그 대신 작은 히터 실드와 곤봉을 고쳐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짜 한 번이라도 맞추지를 못하냐.'

"에라이, 못 해 먹겠네."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잘 따르고 있으면서 엄살?"

"고든. 저 팔이 저릿저릿한데요."

"그래서 최대한 힘을 빼고 상대해주고 있잖아. 심지어 네 상황을 봐서 무기를 들고 있지도 않은데?"

"이런 미친."

속에서 욱한 나머지 쌍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간신히 분노를 조절했다.

덕분에 욕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지금 고든이 들고 있는 것은 무기가 아니었다.

아니, 요리사로서 저걸 흉기라 이해하기 싫었다.

스푼.

고작 한 뼘 길이도 안 되는 스푼.

국물을 떠 마시는, 손으로 쥐면 손잡이가 조금 튀어나오고, 끝부분이 살짝 뾰족한 타원형에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은제 식기를 말하는 것이 맞았다.

카렘은 이를 박박 갈았다.

스푼을 빙글빙글 돌리는 고든은 도리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이거 다른 마력 사용자라면 크라운을 궤짝으로 줘서라도 얻고 싶은 기회인 건 알고서 그렇게 투덜거리는 거지?"

"예. 예. 아무렴 소드마스터의 1대1 검술 특강인걸요."

"뭐야. 잘 알고 있네!"

"그걸 제가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서 그렇죠! 전부터 생각했는데. 이거 난데없이 끌려온 데다 취업이 하루 만에 날아가 버려서 그 울분을 풀려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오, 아주 정확해."

"제기랄!"

하고 싶은 일도 남이 시키면 하기 싫어지는 것이 사람일진데 안 그래도 하기 싫은 것을 남이 시켜서 해야 한다고?

싫은데 에베벱이 저절로 입에서 나왔다.

하지만, 카렘은 빈정거리면서도 이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콜던을 나선 이후로 쭉.

카렘은 전생에도 운동과 관련된 것은 생존과 건강에 필요한 최저한의 운동을 제외하면 게임일지라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생각은 에우로파에 환생했어도 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막상 시작하면 또 잘 따라오면서 투덜거리기는."

"그야 아타니타스님의 명령이니까요!"

"싫으면 싫다고 말하던가. 아니, 애초에 명령도 아니었잖아."

"생각해보니까 그렇네요."

"그냥 권유하셨던 거 아니었어?"

"조금 생각해보니까 저한테 필요할 것 같아서요."

카렘은 방패와 곤봉을 고쳐 쥐었다.

그의 이런 생각은 지난 타의적인 마도구 쇼핑 때문에 굳어졌다.

'호신용 마도구가 왜 필요하겠어. 아무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겠다는 뜻이시겠지.'

물론, 카렘이 위험에 빠지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애초에 대마법사 캐서린의 곁에 찰싹 달라붙어 있을뿐더러, 그런 그녀 자신도 전투의 현장에서는 엄중한 보호를 받으며 마법을 뿜뿜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세상에는 만약이라는 말이 있었다.

만에 하나 캐서린이 위험에 빠지거나, 어쩌다가 적이 숨어들었다면 최소한의 호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이 하기 싫은 노동을 순순히 따르고 있는 것이고.

"자, 휴식은 충분하겠지?"

"애초에 지금 휴식하려고 멈춰 섰던 거 아니었어요?"

"그래그래. 이번 판을 끝으로 지금 훈련은 마치자고."

"그러고 저녁에 또 하시겠다고요?"

"그야 당연하-"

"망하아아아아아아알!!!"

"엄살은."

지! 키기기긱- 고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렘은 튀어나갔다.

그야말로 그림에 그린 듯한 기습.

허나 고든은 카렘이 다리에 힘을 주는 순간부터 짐작했다.

애초에 소드마스터인 그에겐 카렘이 뭘 하든 귀여울 뿐이다.

아무렴 고작 그걸 짐작 못 하면 소드마스터 직함은 갖다 버려야지.

하지만, 불과 며칠 만에 카렘의 실력은 그야말로 일취월장.

물론 아직은 어림도 없었다.

숟가락 등으로 곤봉을 가볍게 걷어낸 고든은 가볍게 종아리를 휘저어 카렘의 다리를 걸었다.

휙!

카렘은 한순간에 중심을 잃었다.

그리고 바닥에 쿠당탕! 하고 구르기는 무슨.

이 짓도 벌써 몇 번째인데.

히터실드와 양다리로 몸을 지탱해 반쯤 구르는 반동을 실어 억지로 일어났다.

'검에는 재능이 없지만, 싸움 자체에 나름 재능 있는 편인가?'

물론 처음 고든은 카렘이 그닥 특출난 재능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무기를 쥐어본 적 없는, 어디에서나 보이는 평범한 애.

하지만 무기를 이것저것 가르치며 그 생각은 달라졌다.

연습용 롱소드와 숏소드, 단검, 둔기 같은 단병기와 창을 비롯한 장병기.

방패 등 어린 종자를 가르치기 위해 제작한 물건들을 빌려와 들려줬다.

당연히 처음에는 무게중심을 잡는 것도 어려워했다.

제풀에 못 이겨 넘어지는 것은 물론 뼈를 삐끗할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카렘은 금세 적응했다.

적응하고 그 모든 무기를 일정 수준으로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훈련을 거듭할수록 그 수준은 높아지고 있었다.

그와 같이 대성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디 가서 누구한테 무시당하지는 않을 정도로 재능은 있는 편이었다.

종자를 구인 중인 일반 기사가 보면 혹하는 정도?

카렘은 바닥을 구르며 한주먹 들이킨 먼지를 뱉어냈다.

"에퉤퉤푸르르륵! 한대만! 한 대만 맞아라!"

"어어, 욕 나오겠다? 연장자에 대한 대우는 어디 갔어?"

"썩을 지금 간신히 참고 있거든요!"

"어이쿠!"

"얼른 끝내고 우리 아타니타스님 밥 차려야 한다고요!"

어라? 제법? 생각 이상으로 위력이 실린 곤봉.

물론 통하지는 않았지만, 방심하고 있던 고든이 슬쩍 발을 움직여 피할 정도는 되었다.

고든은 확신했다.

어느 하나에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싸움, 아니. 생존에 특출난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싸움은 생존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다.

'그런데 얘는 딱 봐도 요리 말고는 관심이 없는 것 같고.'

당장 눈이 뒤집혀서 소리 지르는 내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자기 고용주 배고플 테니까 얼른 밥 먹여야 한다고 저러고 있다.

하다못해 고용주보다는 보호자에 가까운 것 같은 캐서린이 원한다면 모를까, 그에게 카렘의 훈련을 요청한 캐서린이 원하는 수준은 딱 호신할 수 있는 정도까지가 끝이었다.

아무렴 그 이상의 경지를 원한다면 업무에 지장이 갈 정도로 훈련을 해야 할 테니까. 게다가 그녀가 거기까지 위험한 순간이 찾아오게 두지도 않을 테고.

뭐 호신술을 좀 강하게 가르치면 되겠지.

고든은 그렇게 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제 훈련을 마치자며 입을 벌리려다가, 어느새 카렘의 손에 잡힌 흉험한 마법 식칼. 펠윈터의 거짓말이 잡힌 것을 보았다.

"잠, 어이. 카렘?"

"소드마스터 아닙니까. 한 방은 버티실 수 있겠지요!"

"어, 장난이지?"

철컥- 화르르륵!

불타오르기 시작한 마법 식칼을 양손으로 쥔 카렘은 냅다 고든을 향해 돌진했다.

"한 방 만! 제발 한 방 만!"

"저런. 눈 돌아갔네."

당연하지만.

"대가리!"

"악!"

어림도 없다.

"흠,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요리로 단련 안 됐으면 진작에 쓰러졌겠는데요."

"흠, 전에도 말했지만, 힘들면 저한테 맡겨도 됩니다."

"그 정도는 아니니까 간 보지 마시죠?"

"쯧."

뻔한 제안을 뿌리친 카렘은 단번에 몸을 일으켰다.

그나마 날이 추워서 땀이 나진 않아 따로 씻을 필요가 없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라고나 할까.

"그나저나 뭘 만들어야 할까..."

그때.

치지지지지지지익-

격정적인 소리가 카렘의 귀를 자극했다.

정체는 스테이크.

콜던에서부터 따라온 보급 수레에 실려있던 마지막 스테이크 더미가 시종들의 손에 의해 차례차례 구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 스테이크인가."

도구 정리를 마친 고든이 다가오며 카렘의 시선을 따라 세찬 연기를 뿜어내는 스테이크를 응시했다.

"오늘 점심은 스테이크?"

"뭐 땡기시는 게 없으시면?"

"땡기는 거라."

턱을 매만지는 고든의 시선이 시종에 의해 뒤집힌 스테이크를 따라 움직였다.

"스테이크도 먹고 싶기는 한데. 산뜻하고 새콤한 것도 먹고 싶고."

"욕심이 많으시네요. 산뜻하고 새콤하다니."

"거기에 국물도 가능하면 먹고 싶은데."

"산뜻하고 새콤한...국물?"

새콤 산뜻한 국물이라니.

물론 그런 국물 요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떠오른 것만 하더라도 두 가지.

중독된 사람은 비행기를 타서라도 먹으러 간다는 똠양꿍.

그리고 슬라브의 영원한 소울푸드 보르시.

그렇지만 스테이크도 먹고 싶다니.

후자라면 지금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냅다 구운 스테이크를 넣어서 끓일 수는 없었다.

“혹시 소스도 괜찮나요?”

“국물처럼 양이 좀 된다면야.”

메리가 보급 수레의 문을 열자 머리는 더욱 복잡해졌다.

안그래도 고민하는 중이었는데.

잔뜩 쌓인 각종 식재료를 보자 머릿속에 정리하던 레시피는 더욱 헝클어졌다.

"흠, 채소 중에선 의외로 토마토만, 아니. 피망도 이만큼 남아있네? 나름 유행인 거 아니었나? 윈터홈에서."

"전문 요리사가 아닌 이들이 사용하기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물건이라 남아도는 걸 겁니다."

"아, 그러고 보니 사용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했던가."

"채 몇 달도 안 됐습니다."

"흠, 역사가 생각보다 더 짧네."

"요 1년 사이에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메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든에게 답했다.

그 순간 한 메뉴가 카렘의 뇌리를 스쳤다.

스테이크의 맛과 새콤하고 산뜻한 국물.

국물보다는 소스로 사용하는 메뉴지만, 두 가지를 양립할 수 있는 메뉴가 하나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