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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과 고든이 식사를 시작하기 무섭게 카렘은 슬쩍 빈 접시 중 하나를 자기 앞으로 끌어와 파스타를 담고 미트 소스를 끼얹었다.
평소였다면 캐서린과 손님의 식사가 끝난 뒤.
카렘은 메리와 함께 식사했을 것이다.
메리 외에 캐서린과 함께 식사할 때는 종종 그녀가 주방에 방문했거나, 외출하느라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뿐.
즉, 평소 같았으면 어김없이 캐서린과 고든의 식사를 직관하며 요리사의 마음을 충족시켰을 것이다.
카렘은 경건한 움직임으로 미트 소스를 한가득 퍼 올려 파스타가 담긴 그릇에 남들한테 준 것처럼 세 국자. 보다 한 번 더 많은 네 국자.
파스타를 꾹 눌러 공간을 만들고 네 번 퍼 담았다.
이번만큼은 카렘도 참기 힘들었다.
소스보다 고기가 많은 고기 죽에 가까운 소스.
시간과 각오가 필요한 노력의 상징.
남자의 심금을 울리는 진정한 미트 소스.
라구는 카렘에게도 로망이었다.
전생에 물론 먹어보기는 했으나, 그 횟수는 딱 한 번.
자주 먹고 싶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그마저도 파스타에 올려진 라구의 양은 딱 한 국자.
아니, 카렘도 왜 라구를 한 국자밖에 안 주는진 알았다.
수분을 한계까지 날려 보낸 탓에 자연스럽게 소금기가 응축되었으니 그 이상이면 맛은커녕 짠맛밖에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애초에 소스의 일종이니 마구 퍼먹는 물건이 아니었다.
애초에 케첩이나 마요네즈 같은 소스를 마구 퍼먹는 게 이상한 일이다.
그 이외엔 단가니, 채산성이니, 인건비니 뭐니 하는 현실적인 이야기.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하더라도 가슴으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만들었다.
소스보다 고기가 많은 라구.
간을 조절해 마구 퍼먹어도 되도록.
덤으로 곱게 간 치즈를 수북하게 얹어서.
마음 같아서 카렘은 칠리를 퍼먹는 것처럼 소스만 이따만큼 퍼먹어버리고 싶었지만, 가장 맛있는 것은 나중에 먹어야 하는 법이다.
그나마 남들보다 한 번 더 많이 소스를 퍼담은 것이 카렘의 하찮기 짝이 없는 음습한 욕망이었다.
덕분에 놓아버릴 뻔한 이성의 끈을 붙잡았다.
우선 맛을 음미하는 캐서린과 고든에게 해줬던 것처럼 파스타를 먹는 것이 우선이니까. 아무래도 눈치가 보인단 말이지.
"후우우우. 심장이 다 떨리는데."
입안에서 우물거렸을 뿐이기에 카렘의 감격하는 모습은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 아니, 신경 쓰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더 옳았다.
캐서린은 훌륭한 맛과 그렇지 못한 비주얼의 경계를 극복하고 음미하고 있었고, 메리는 캐서린을 수행하는 중이며, 고든은 카렘과 같은 마음으로 음, 오, 아, 오 감탄하며 파스타를 먹고 있었다.
시선을 다시 돌린 카렘은 기대감을 품고 부들부들 떠는 포크를 움직여 수북하게 쌓인 눈꽃 치즈의 산을 반으로 갈랐다.
새하얀 설산을 가르자 드러난 용암같이 붉은 라구 소스는 화산 지대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녹지 않은 설산처럼 보였다.
하지만 설산은 곧 식욕 앞에서 무참히 무너졌다.
넘치도록 담은 치즈와 소스가 주변에 넘치지 않도록 주의하며 뒤섞었다.
지층 사이로 보이는 마그마와도 같았던 라구 소스가 파스타, 치즈와 엉기면서 급격하게 수분을 잃어가기 시작하며, 동시에 치즈는 붉게 물들기 시작.
샛노란 파스타는 치즈를 통해 소스를 머금어 저녁의 황혼이 생각나는 주황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처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무참한 모습.
넓은 파파델레 파스타 사이로 보이는 한가득한 고기.
카렘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파스타가 꽉 차도록 라구를 감싸 단번에 먹었다.
처음으로 느낀 것은 수분을 날린 고소하고 진한 소고기의 맛이 느껴지는 짭짤한 라구 소스의 산미와 단맛.
단순하게 꿀과 설탕을 넣어 만든 노골적인 단맛이 아니었다.
당근과 양파를 볶고 형체가 남지 않을 정도로 소스에 끓여냈다.
덕분에 아무리 먹어도 질리기는커녕 오히려 소스의 맛과 향을 부각하는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맛이 혀 위에서 춤췄다.
신맛, 단맛, 짠맛.
세 가지 기둥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채소의 맛과 함께 어우러진 은은하고 따뜻한 밀 냄새를 감싼 은은한 버섯의 향이 입안을 흥건하게 적셨다.
자연스럽게 이빨을 움직이자 파스타 안에 갇혀있던 강렬한 밀 냄새가 은은한 장막을 뿌리치고 소스와 한데 어우러지며 가장 중요한 라구 소스의 고기가 자연스럽게 씹혔다.
당연하지만 고기에 육즙은 없었다.
볶으면서 한 차례 한계까지 수분을 날렸다.
그나마 남은 육즙과 수분도 모두 소스에 녹아내린 지 오래였다.
하지만,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 법.
비록 육즙은 없을지언정 고기는 고기.
씹어서 부서질 때마다 입자 하나하나에서 잘 그을린 소고기가 은은하게 깔린 아쿠사레 버섯의 향을 타고 끊임없이 육향과 풍미, 감칠맛을 뿜어냈다.
틈틈이 스며드는 파르마 치즈의 독특한 향취와 은은하게 깔리는 기분 좋은 쓴맛은 혀를 씻어내려 파스타와 소스의 가장 맛있는 순간을 반복시켰다.
그야말로 영원히 씹고 싶은 맛.
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언젠가 끝이 나야 하는 법.
카렘은 진한 아쉬움을 느꼈지만, 홀가분하게 삼켰다.
번뜩- 와구와구 우물우물!
"워우. 대체 얼마나 씹냐 했더니."
파스타를 몇 가닥 남기고 정신 차린 고든은 돌연 눈이 뒤집혀서 퍼먹기 시작한 카렘을 보고 걱정했다. 그만큼 카렘은 열정적으로 먹고 있었다.
"야, 야야. 그러다가 숨넘어가겠다."
"아무래도 과하게 집중한 나머지 주변 소리가 안 들리는 모양입니다."
"카렘이 전에도 자주 이랬었어?"
"저도 저렇게 열정적으로 먹는 모습은 처음 보는군요. 어휴. 좀 깔끔하게 천천히 먹지. 뭐가 저렇게 급하실까."
파스타를 받아먹던 캐서린은 지금 그게 네가 할 소리냐는 듯이 메리를 쳐다보았다. 우유, 크림, 버터, 빵 등등만 보면 눈이 뒤집힐 네가 할 소린 아닌 것 같은데?
메리는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언제나 같은 무표정으로 흘려 넘기며 아무도 손대지 않은 순무 피클이 담긴 그릇을 당겨왔다.
"피클 드실 분 계십니까?"
그 말에 캐서린은 기다렸다는 듯이 검지를 들어 올렸다.
"마침 입안이 느끼하고 텁텁했는데. 잘 됐다. 맛은 있다만, 고기가 너무 과한 거 같단 말이지. 게다가 수분도 없어서 조금 뻑뻑하군."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고든은 대경실색하며 캐서린을 쳐다봤다.
"마법사님. 지금 제가 먹은 이 수 없이 작은 스테이크를 뭉쳐놓은 것 같은 완벽에 가까운 파스타를 느끼하고 텁텁하다고 하셨습니까?"
"아니, 맛은 있다. 분명히 맛은 있어. 어이! 너는 뭔데 날 그렇게 쳐다보는 거냐!?"
메리는 캐서린의 날카로운 지적에 얼른 고개를 돌렸지만, 무표정으로도 그녀의 당황한 기색은 숨길 수 없었다.
아니, 그도 그럴게. 계약자가 후배의 요리를 뭐? 느끼하고 텁텁해?
뭔가 하지도 않은 메리는 해냈다는 듯이 주먹을 꽉 쥐고 중얼거렸다.
"반드시 조금 이따가 카렘 후배가 정신을 차리면 꼭...!"
"어이! 네놈은 나의 종자다! 종자라면 말을 들어!"
"죄송합니다. 무심코 너무 기쁘으으으지 않은 소식을 들은 나머지 흥분하지 않았습니다. 예. 아무렴 전 완벽한 집요정이니까 말이지요."
"대체 주인의 말꼬투리를 잡아 끄는 건 어느 나라 집요정인거냐!"
"피클을 덜어드리겠습니다."
"어이, 말을 넘기는 거냐!"
"피클을 덜어드리겠습니다."
주종의 말꼬투리 다툼은 이내 피클을 물고 격분한 캐서린이 가서 와인이나 가져오라며 메리를 쫓아내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런데 진짜로 별로라고 하는 건 아니시겠지요?"
"아니, 맛은 분명히 있다. 다채로운 재료의 조화와 잘 그을린 고기의 풍미와 파스타의 조화. 그런데 고기가 너무 과해. 그리고 느끼해."
"오히려 전 이게 딱 좋았는데. 흠."
"버섯의 향은 나는데 맛이 안 나는 것과 면이 불지 않고 윤기 나던 것을 생각하면 분명 아쿠사레 버섯 기름으로 버무린 것이겠지."
"마법사님네 장원에서 난다는 그거지요?"
"뭐, 정확히는 내 것이 아니라 탑에 속한 장원이다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며 캐서린은 손을 내저었다.
"요는 안 그래도 진하고 느끼한 소스에 기름까지 들어가서 더 느끼해."
그 말을 들은 고든은 이번에야말로 무심코 진지하게 코웃음을 쳐 버렸다.
"앉은 자리에서 밀가루와 같은 무게의 버터가 들어간 케이크를 한 판 다 먹고 에그 타르트를 몇 개나 먹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엄연히 말하면 주식의 느끼함과 식사 후 먹는 디저트의 느끼함은 다른 법이다."
"둘 다 마찬가지로 느끼하잖습니까."
"남자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든은 어이없었지만, 캐서린은 반론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렸다.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손님인 고든은 더 집주인을 곤란하게 만들지 않기로 했다. 그 증거로 캐서린을 향해 알겠다는 듯이 양손을 펴 보였다.
똑똑똑-
“들어가겠습니다.”
집무실의 문을 열고 돌아온 메리의 손에는 와인병과 잔이 세 개 들려있었다.
"강렬한 맛과 고기의 풍미에 어울리는 레드 와인을 들고 왔습니다."
"어느 동네 물건이야?"
"베르생제토 산입니다."
뽕-
파스타에 영혼을 빼앗겼던 카렘은 씁쓸하고 포도향이 강한 톡 쏘는 냄새에 정신을 차렸다.
"오, 정신 차렸어?"
"네? 정신이요?"
"대체 얼마나 마음에 들었으면 옆에서 더 달라고 하기 무서울 정도로 집중한 상태로 퍼먹었던 거야?"
고든은 메리가 건넨 컵에 와인을 받으며 물었다.
"심지어 주인이 같이 먹자거나, 다 먹은 후에 먹는 것도 무시할 정도로 말입니다."
"아니, 눈앞에 휘핑크림을 끼워 넣은 산딸기 잼 도넛이 있으면 어떠실 것 같아요?"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당연히 계약자한테 애원해서라도 먹게 해달라 하겠지요."
"애원하는 거냐?"
고든이 황당해하건 말건 메리는 진지했다.
캐서린은 원래 저런 놈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 애원할 정도로 참지 못하고 유혹에 굴해버린 경우죠."
"참을성이 부족한 거 아닙니까?"
"그렇지만 저 이제 11살인걸요."
"아무리 생각해도 11살 아닌 것 같은데."
"고든. 한 그릇 더?"
당연하지. 말을 돌린 카렘은 고든에게 파스타를 덜고 미트 소스를 듬뿍 끼얹은 다음 마무리로 치즈 가루를 잔뜩 뿌려주면서 자기 그릇도 똑같이 덜었다.
카렘이 먹느라 바빴던 동안 왁자지껄했던 것과는 달리 와인이 돌기 시작하자 색다르게 느껴지는 파스타의 맛에 집무실은 다시금 식기 부닥치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어느 정도 배가 찬 시작한 고든은 배가 차오르자 다른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봄이 찾아오기 전까지 뭔가를 하긴 해야 할 텐데.'
캐서린에게 몸을 의탁한 지 벌써 며칠이나 지났다.
그동안 고든은 이렇게까지 몸이 편안했던 적이 없었다.
스스로 방 정리와 청소를 할 필요가 없었을뿐더러 캐서린, 카렘과의 친분 덕분에 끼니마다 입이 즐거웠다.
물론 방의 화려함과 요리의 사치스러움만 따지자면 드물지만, 대륙에서 이보다 더하게 대접받은 적도 있었다.
다만 이렇게 마음까지 온전하게 편안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정작 휴식이 이렇게 오래되자 고든은 마음속 어느 한구석에서 뭐라 설명하기 힘든 형용할 수 없는 초조함과 불안함이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고든은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을 알았다.
이는 부채감이라는 것이었다.
경지가 막혔을 때 안식년을 가진 적도 있는 마당에 고작 며칠 머무른 것 만으로 부채감을 느끼다니. 내가 이 둘을 이렇게까지 편안하게 느낀다고? 그렇지만 지금 고든의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현실이었다.
"뭐 잊어버린 거라도 있냐?"
"네? 갑자기요?"
"식사하다 말고 찜찜한 얼굴로 접시를 두드리지 말고 말해라."
아뿔싸. 무심코 생각에 빠진 나머지 실수를.
"며칠 몸을 안 움직이고 누워만 있으니 몸이 다 불편하군요."
노골적으로 말하면 부끄러우니, 고든은 대충 얼버무렸다.
캐서린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요는 좀이 쑤신다는 뜻.
"하긴, 소드마스터 쯤 되는 무골이면 쭉 얌전히 있는 것도 좀이 쑤시긴 하겠네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뭐 할 일이 있을까?"
"글쎄요. 저한테 물어보셔도...?"
카렘은 무심코 머리를 긁적였다.
당장 하는 일이라고는 요리랑 본성의 창고에서 물건 발주가 전부.
소드마스터급 남작 나리가 할 일이 뭐가 있으려나 싶었다.
"뭐, 요즘 고드윈 공자의 검술 교습이라도 해보는 건?"
캐서린은 와인으로 입안의 기름기를 씻으며 제안했다.
"살을 좀 빨리 빼서 뭘 좀 자유롭게 먹고 싶다면서 운동을 이것저것 추가로 더 알아보고 있는 모양이던데."
"검술 교습이요? 고드윈 공자라면 그?"
"그래. 주군의 장남. 공작가의 후계자."
"으음. 저쪽에서 제안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들이미는 것도 좀."
"허, 누가? 설마 네놈의 제안을?"
파하. 캐서린은 말도 안된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그냥 좀이 쑤셔서 검술을 좀 봐 드리면 어떠냐고 공자한테 솔직하게 밝혀라."
"고작 좀이 쑤셔서 그렇다고 찔러보는 것도 조금-"
"설마 소드마스터가 자청해서 해주겠다는데 공자가 거절하겠냐?"
"그렇겠죠?"
잠자코 말을 듣고 있던 카렘은 접시를 닥닥 긁으며 물었다.
"그 이전에 지금 첫째 공자님의 교습 상대가 있는지부터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
가장 중요한 사실을 깜빡한 두 사람은 작게 탄식했다.
"뭐, 일단 마저 먹고 알아보면 되겠지."
"한 그릇 더 드릴까요?"
고든은 그릇을 내미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