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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311 lines
13 KiB
Markdown

기대를 품게 만드는 냄새
캐서린은 눈을 빛냈다.
묵직하기는 했지만, 이 풍부함이 느껴지는 산미.
분명 토마토인 것이 분명했다.
톡 쏘는 향이 강한 식초로는 이런 신선함을 만들 수 없었다.
그렇다면 스튜를 끓인 건가 싶었다.
아니라고 부정하기 힘든 게, 요즘 들어 토마토가 들어가지 않은 경우가 드물 지경이었으니까.
날 것이라면 날 것 대로의 감칠맛을, 익혔다면 익힌 대로 그야말로 무지개와 같은 다채로운 특유의 감칠맛 때문에라도 활용도는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었다.
귀족들의 소화용이나 입가심으로 먹는 샐러드는 기본.
스톡, 스튜나 그레이비를 만들 때는 거의 반 필수.
설마 이런 거에까지 토마토를 넣었겠어? 싶은 요리에는 어김없이 토마토가 미량이라도 들어가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꿈틀-
돌연 메리의 미간이 사납게 일그러지며 매우 불편하다는 기운을 사방으로 뿜어냈다.
"응? 갑자기 왜? 아, 설마 또?"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휙휙! 재빨리 손에 집고 있던 물건들을 정리한 그녀는 척척척척 강하고 절도있게 걸어가 벌컥 하고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역시나."
집무실의 앞에는 카렘과 캐서린의 손님인 고든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대로, 카렘의 손에는 국자를 끼워둔 채로 뚜껑이 닫힌 큼지막한 구리 냄비가 쥐여 있었다.
그리고 고든.
큼지막한 포크 두 개를 쥔 손으로 큼직한 치즈 토막과 강판이 얹어진 냄비를 양손으로 들고 있었다.
"제가 그렇게나 말했건만 이번엔 탑의 손님을 꼬셔서-"
"접시랑식기는들고오지않았으니까걱정하지마세요아무렴여기서보낸시간이얼만데제가그런걸잊고있겠습니까.게다가다른마법사님들이먹을건그대로있으니마음껏가져다주시고오시면될껄요?"
"흐음, 그렇다면야."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정도면 용인할 수 있는 수준.
메리는 매서운 눈빛으로 카렘을 슬쩍 보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든에게 공손하게 목례하고는 집무실을 나와 잠시 걸어가다가 뿅 하고 사라졌다.
"그으래서."
눈만 깜빡이다가 카렘을 따라 집무실로 들어가던 고든은 어리둥절했다.
"방금 저쪽은 왜 저렇게 날카로운 반응이었던 거야?"
"순간이지만 제가 점심을 들고 와서 자기가 할 일이 없어져서 그랬을걸요?"
"일이 줄어들면 보통 좋아해야 하지 않나?"
"집요정인데다가 일중독이라서 그렇다던데요."
"집요정 평균?"
그 말에 기대감을 품고 두 냄비를 번갈아 보던 캐서린은 단호하게 손을 내저었다.
"아니아니, 아무리 보통 집요정이 일에 미쳤다고 해도 일을 빼앗겼다고 눈이 뒤집히지는 않는다. 그냥 저 녀석은 예외라고 생각해라."
"뭐, 집요정을 본 적이 있어야 말이죠."
"네놈 정도의 경력이면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텐데?"
"뭐, 그냥 고용된 엘프로 착각했을 수도 있겠군요."
고든은 접객용 테이블에 냄비를 올려놓고 캐서린의 옆에 앉고는 살짝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넓은 에우로파 대륙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형태의 복식을 입은 다양한 종족으로 구성된 하녀 혹은 시녀들을 볼 수 있었다.
인간, 드워프, 노움은 기본에 드물게 소수 민족도 있었고 심하면 마족도 있었으며 당연하게도 엘프 또한 있었다.
"지나가다 본 엘프 중에 집요정이 한, 둘 정도 있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일단 두 종족은 겉보기로는 분간하기 힘드니까요."
"뭐, 일단 엘프랑 비슷하니까 말이지."
"그런데 오늘 점심은 웬일로 집무실에서-아."
캐서린은 주먹에서 엄지만 피고 뒤편을 가리켰다.
다양한 재질의 정리된 서류가 조금 전까지 캐서린이 앉아있던 집무용 테이블에 작은 탑과 산,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겨울이 되기 전에 여기저기서 별의별 서류가 다 올라올 시기다."
"전처럼 한 번에 끝내기엔 양이 많나 보죠?"
"뭐, 기존의 일만 있다면 모를까. 사업을 벌이는 게 좀 있으니까 말이다."
"사업?"
"방한 포션, 바닐라, 영지의 기름 사업 등등."
뿅-
집무실 밖에서 메리가 등장하는 소리가 들렸다.
쟁반에 접시와 식기, 분홍색 순무 피클이 담은 메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메리가 식기 세팅을 시작하자 카렘은 곧바로 뚜껑을 열었다.
냄비에서 버섯과 토마토, 소고기의 향미가 응축된 뜨거운 수증기가 뿜어져 올라 천장에 닿기 전에 사라지며 널리 퍼졌다.
그리고 캐서린은 조금 당황했다.
한쪽은 파스타. 가장 넓은 파파델레(pappardelle).
덤으로 기름에 비볐는지 윤기가 흘렀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다른 한쪽은 소스..일...텐데?
토마토를 넣은 것이 분명한 특유의 감칠맛 가득한 새콤한 향.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다진 고기가 전부였다.
붉은색을 가득 품은 다진 고기는 도저히 소스로 보이지는 않았다.
"대체 뭘 만든 거냐."
"네? 뭐긴요. 파스타죠. 넓은 면이요. 파파델레(pappardelle)."
"아니, 소스 말이다. 이건 그냥 고기로 된 죽이잖냐. 토마토랑 향신료를 넣고 고기로 죽이라도 만든 거냐?"
"네? 라...미트 소스요. 미트 소스."
무심코 라구(ragu)라고 할 뻔했다.
소스 이름이 스튜 소스라니 그게 무슨 말이나 되는 작명이냐면서 한 소리를 들을 뻔했다.
누구 봐도 부자연스럽게 말을 돌린 것이 뻔했지만, 캐서린은 도리어 그 부자연스러운 말에 집중한 나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소스.
음식의 맛과 색을 돋구기 위해 요리에 끼얹는 액체.
아니, 그냥 액체보다는 조미료의 한 종류.
그런데 이건 아무리 봐도 조미료가 아닌데?
조미료란 기본적으로 재료와 융화되어야 했다.
그런데 이건.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나긴 했지만, 고기 죽이었다.
조미료가 아니라, 그냥 요리라는 말이다.
하물며 요리는 만들다 말았는지 면을 따로 대령한 모습.
뭐, 고기 죽에 파스타를 비벼 먹으라고?
"오허허허허. 지금 그러시면 이따가 후회하실 겁니다."
고든은 허허롭게 웃으며 그게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맛보라고 할 때 냄비를 통째로 먹어치울 뻔했다니까요?"
"붉은색 고기 죽처럼 보여서 그렇지. 냄새 하나만큼은 확실히."
"장담하는데. 이거 맛은 냄새보다 더합니다."
고든이 입맛을 다시며 캐서린에게 맛을 묘사하는 사이 카렘은 작업에 착수했다.
큼지막한 포크로 냄비를 푹.
면을 끌어 그대로 주걱으로 끌어 돌돌 휘감았다.
포크에 억지로 엉긴 윤기가 흐르는 넓은 파파델레 면은 빛을 담은 강줄기가 한 방향으로 뭉치는 것처럼 움직였다.
처음엔 포크에 엉겨 빛으로 된 용오름을 이루는 것처럼 한 곳으로 모이던 면은 요동치는 물고기 떼처럼 크기가 커졌다.
성인 주먹보다 조금 더 커지도록 말아 올린 면을 접시에 던 카렘은 곧바로 식기를 놓고 소스에 잠긴 국자를 집었다.
푸욱. 쯔버어어억-
본래라면 넘친 소스는 그대로 흘러내려야 했다.
하지만 흘러내리기는커녕 국자 위에 수북하게 남아있는 모습은 결코 소스를 퍼 올린다고 보기 힘들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중량감.
얼핏 보인 냄비 벽에 잔뜩 눌어붙은 소스였던 것의 흔적.
액체가 아니라 덩어리진 고기가 그대로 보이는 찐득한 압박.
곧바로 원상복구 되지 않고 국자가 들어간 만큼 움푹 파였다가 모래 지옥이 메꿔지듯 천천히 메워지는 냄비 속에 가득한 소스까지.
솔직하게 말해 국자와 냄비의 반-유동 상태로 다져진 고기 입자 사이사이에 붉은색 액체가 스며들다 못해 엉겨있는 모습은 빈말로도 먹음직스럽다고 하기엔 힘들었다.
하지만 냄새.
묵직한 소고기 육향 사이로 느껴지는 산뜻한 냄새.
이제 막 퍼 올렸을 뿐인데 집무실을 점령한 보이지 않는 감칠맛의 덩어리가 캐서린의 입에 침을 고이게 했다.
그리고. 철퍽!
철퍽! 철퍽!
연달아 세 번.
국자 가득 미트 소스를 퍼담자 앞서 얹어진 미트 소스가 흘러내려 접시에 담긴 면을 뒤덮어버렸다.
그 소리와 모습에 정신을 차린 캐서린은 시야에 그 자태가 담기자 자연스럽게 눈가가 떨렸다.
"흠, 그래서 이걸 어떻게 먹여드려야 합니까?"
"그냥 비벼서 먹여드리시면 돼요."
"포크와 스푼으로 말입니까? 그럼."
"아, 아아아아아아! 잠깐!"
식기를 들어 올린 메리를 제지하는 카렘.
어쩌면 가장 중요했을지도 모르는 것을 빠트린 카렘은 아차 했다.
곧바로 치즈와 강판을 집어 캐서린의 접시 위에 갈았다.
삭삭삭삭삭삭삭!
치즈는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기다란 눈송이가 라구에 잠긴 접시 위를 새하얗게 쌓이며 열기에 치즈가 조금씩 녹기 시작했지만, 금세 그 위에 추가로 내린 치즈의 눈에 뒤덮였다.
메리는 치즈와 강판을 내린 카렘과 눈을 마주쳤다.
긍정의 뜻을 읽은 메리는 곧바로 힘을 뺐던 손을 움직이기 시작.
카렘의 뜻대로 메리는 파스타를 비비기 시작했다.
순수해 보이기까지 하는 새하얀 언덕은 금세 탐욕스러운 붉은색에 뒤덮여 색을 물들였다.
안 그래도 수분감이 없어 뻑뻑한 미트 소스.
뒤섞인 치즈가 순수함을 타락시킨 복수라는 듯이 안 그래도 없는 수분을 소스로부터 빼앗아가기 시작했다.
"음, 상당히 뻑뻑한데. 이렇게 만든 이유가 있습니까?"
"수분을 한계까지 날려 맛을 극한으로 응축시켰거든요."
"음,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만."
그런데도 이게 섞이기는 할까 싶었던 파스타는 쉬지 않고 비비기 시작하자 치즈를 매개로 소스와 면이 엉기자 비로소 캐서린이 보기에도 그럭저럭 볼만한 모습이 되었다.
캐서린은 곧바로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파스타의 냄새가 변했다.
응축된 토마토 특유의 진한 산미와 짙은 육향.
그 사이로 미미하지만 쿰쿰하면서 고소한 치즈의 향기.
캐서린이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냄새만으로 텅 빈 위장을 가득 채웠다.
그릇의 안쪽에 포크 사이에 엉긴 미트 소스와 치즈를 긁어낸 메리는 깔끔해진 포크로 파스타를 집어 돌돌 말았다.
소스와 치즈 때문에 파스타 면은 빛을 잃은 지 오래.
게다가 파파델레 특유의 두꺼움 때문에 포크에 엉긴 면발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파스타에선 찾아볼 수 없는 넓은 면은 수분이 사라져 따로 놀기 시작한 미트 소스를 빠져나갈 수 없도록 휘감았다.
"과연. 소스의 수분을 날리고, 가장 넓은 파파델레 면을 사용한 이유가 이래서였나."
"아무래도 소스가 뻑뻑해서 면발이랑 섞이기 힘드니까요."
"소스를 최대한 감아 먹고, 부족한 점성은 치즈로 보충하는데. 그냥 수분을 조금 덜 날리면 되는 일 아니냐?"
"오, 일단 먹어보시죠."
카렘은 자신 있는 표정으로 고개 세워 웃었다.
"제가 지금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는 중인데 그냥 빨리 드시면 안 되겠습니까?"
고든은 그 몫의 갈린 치즈가 수북하게 담긴 미트 소스 스파게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초조하게 말했다.
"왠지 모르게 그 말을 들으니 조금 더 오래 감상하고 싶어졌다."
"전 일단 손님인데 주인이 그렇게 행패를 부리기가 있습니까?"
"설마 주인이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먼저 먹으려는 거냐? 설마?"
"제기랄! 뭐라 말을 못 하겠네!"
고든은 입이 바싹 마르며 희미하지만 부들거릴 정도였다.
그런데도 결코 먼저 먹지 않겠다는 듯이 굳은 표정으로 테이블이 뚫릴 것처럼 파스타를 노려보았다.
손님이 진짜 무례를 저지르기 전에 끝내야겠다 생각한 캐서린은 비로소 메리에게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보냈다.
캐서린은 입을 벌려 사라져 떨어질 것 같으면서도 치즈와 미트 소스를 완전히 붙잡은 파스타를 넣었다.
***자료첨부***
-라구 파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