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93 lines
13 KiB
Markdown
293 lines
13 KiB
Markdown
|
||
끝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간이 지났다.
|
||
|
||
마도구의 선별을 끝낸 캐서린은 지친 카렘과 부루퉁한 메리를 이끌고 보관고를 떠나 다시 탑의 최상층. 자신의 연구실로 복귀했다.
|
||
|
||
그리고 거기서 카렘은 매우, 뭐라고 할까.
|
||
|
||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
||
|
||
"저, 아타니타스 님?"
|
||
|
||
"씁, 가만히."
|
||
|
||
주춤거렸던 카렘은 캐서린이 경고하자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지를 속으로 고민하며 밭에 설치된 허수아비처럼 가만히 서서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
||
|
||
처음엔 소름이 다 끼쳤다.
|
||
|
||
설마 냅다 마법이라도 쏴갈기는 건가?
|
||
|
||
아니라고 하기에 캐서린은 스스로도 실전파라고 말했으며 그동안 종종 목격한 올리비에와의 작지만 격렬한 마법 대전은 카렘에게 여러모로 인상이 깊을 수 밖에 없었다.
|
||
|
||
하지만 캐서린이 하는 일은 카렘이 보기엔 과연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무척 간단했다.
|
||
|
||
연구실의 중앙에 카렘이 허수아비처럼 서 있으면, 캐서린이 카렘을 향해 손을 뻗은 상태로 뭔가 중얼거렸다.
|
||
|
||
그리고 메리는 캐서린이 말하면 그때마다 카렘이 착용한 마도구를 교체했다.
|
||
|
||
그것이 전부인 간단한 일.
|
||
|
||
그렇지만, 뭔가 시각적인 변화라도 있다면 모를까.
|
||
|
||
"흠, 이것도 아닌가. 메리."
|
||
|
||
"다음 마도구로 교체하겠습니다."
|
||
|
||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도통 알 수 없던 카렘은 결국 인내심이 다했다.
|
||
|
||
"아니, 아타니타스 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
||
|
||
"응? 뭐냐니. 마도구의 효과를 확인하는 중이다만."
|
||
|
||
"하다못해 마법이라도 쏴갈기시는 것도 아니시고. 저한테 손을 뻗고 뭐라고 중얼거리시는 게 전부인데 확인하는 중이고요?"
|
||
|
||
"그래. 네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말이다."
|
||
|
||
종자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준 캐서린은 다시 카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
||
|
||
주변의 마력이 캐서린의 마력과 동조해 술식에 이끌려 관찰 마법과 분석 마법을 형성.
|
||
|
||
캐서린은 마력으로 카렘을 지속적으로 자극해 나타나는 마도구의 반응을 모두 확인하고 있었다.
|
||
|
||
"화염 마법 방어 효과가 확실하지만, 효과가 약한데. 메리."
|
||
|
||
"알겠습니다. 계약자."
|
||
|
||
마찬가지로 마력을 다룰 수 있는 메리는 아무런 불만 없이 캐서린의 명령에 따라 주머니에서 호신용 마도구, 은으로 장식된 금목걸이를 들고 카렘에게 다가갔다.
|
||
|
||
"뭐, 불만이시라면 마력을 다룰 수 있으시면 됩니다."
|
||
|
||
"아니, 마력을 다루는 건 재능이라면서요."
|
||
|
||
"종족을 타고나는 부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재능이지요."
|
||
|
||
"저는 그냥 쌩으로 마력을 못 다루는 사람인데요?"
|
||
|
||
"그렇다면 다음 인생을 기대해보셔야겠습니다."
|
||
|
||
"이거 마력 못 다루는 사람은 억울해서 살겠나."
|
||
|
||
"글쎄요. 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
||
|
||
메리는 집요정인 덕분에 집요정 마법으로 제한되었기는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
||
|
||
즉, 마탑에서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오직 한 명.
|
||
|
||
그 한 명인 비 마력 사용자 카렘은 부루퉁했다.
|
||
|
||
부루퉁한 것은 메리 또한 마찬가지.
|
||
|
||
보관고에 대해 알게 된 그 날부터 청소하는 그 순간을 고대했건만, 결국 눈앞에서 그 시도가 저지되고 말았다.
|
||
|
||
그렇지만 부루퉁한 건 부루퉁한 거고 명령은 명령.
|
||
|
||
충실한 집요정인 메리는 카렘의 손목에 채워진 팔찌를 빼고 목걸이를 걸어준 다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
||
|
||
촤르륵 팔찌를 손에 쥐자 팔찌가 반짝.
|
||
|
||
어느새 떠오른 햇빛이 반사되어 메리의 눈을 스쳤다.
|
||
|
||
'슬슬 간식을 준비할 시간인데.'
|
||
|
||
그리고 탑의 마법사들이 아침을 먹은 식기를 정리할 시간이었다.
|
||
|
||
메리는 한창 집중하는 두 주종을 부르려다가 멈칫.
|
||
|
||
눈을 가늘게 떴다.
|
||
|
||
'이건, 기회다.'
|
||
|
||
카렘을 대신해 캐서린의 간식을 만들 흔치 않은.
|
||
|
||
사실상 처음이나 다름없는 기회.
|
||
|
||
어떻게든 주방의 주도권은 탈환할 수 있었지만, 카렘은 여전히 캐서린의 전속 요리사라는 명목으로 캐서린과 카렘 본인이 먹는 대부분의 음식을 조리하고 있었다. 덤으로 메리가 먹을 것도.
|
||
|
||
물론 카렘의 요리는 맛있기는 했다.
|
||
|
||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
||
|
||
감히 집에 집요정이 있는데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집요정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계약은 지엄한 법. 캐서린이 허락했으니 메리는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
||
|
||
물론 카렘은 메리에게 머랭 치기나 설거지, 뒷정리 등등의 (메리로서는 대환영인) 귀찮은 일들을 떠맡기기는 했지만, 고작 그것뿐이었다.
|
||
|
||
메리는 불만족스러웠다.
|
||
|
||
그래서 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
||
|
||
그리고 오늘.
|
||
|
||
드디어 그 기회가 찾아왔다.
|
||
|
||
거기까지 걸린 시간이 0.2초.
|
||
|
||
그래 봐야 변했던 건 눈초리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시간이 짧았지만, 마도구의 효과와 마법에 집중하는 캐서린과 지친 카렘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
|
||
메리는 평소처럼 자연스러운 표정과 태도로 돌아왔다.
|
||
|
||
"계약자. 바쁘신 와중에 실례합니다. 잠시 자리를 비워도 되겠습니까?"
|
||
|
||
"응? 난데없이 말이냐?"
|
||
|
||
"예. 슬슬 아침 식사를 마치신 분들의 식기를 정리할 때가 되어서 말입니다."
|
||
|
||
"아아, 깜빡하고 있었군. 갔다 와라."
|
||
|
||
"예. 그럼. 카렘 후배. 수고하십시오."
|
||
|
||
자연스럽게.
|
||
|
||
어색하지 않게.
|
||
|
||
꾸벅.
|
||
|
||
종종종.
|
||
|
||
인사와 함께 등을 보이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연구실을 나온 메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연구실의 문을 닫았다.
|
||
|
||
딸깍.
|
||
|
||
"...아자."
|
||
|
||
메리는 작게 환호했다.
|
||
|
||
*
|
||
|
||
*
|
||
|
||
*
|
||
|
||
집안일이란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끝이 없었다.
|
||
|
||
단순히 먼지를 쓸고 닦는 것이 아닌, 벽지과 가구, 장식물에 눌어붙은 먼지를 닦고 얼룩은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방법으로 제거.
|
||
|
||
옷감의 재질에 따라 각기 다른 방법과 세제를 사용하여 빨래.
|
||
|
||
낙엽을 쓸고 텃밭을 관리, 식사 준비와 식기 정리 및 세척 등등.
|
||
|
||
하물며 거주자가 수십 명을 넘는다면 그만큼 집안일도 문자 의미 그대로 산더미였다.
|
||
|
||
현실적으로 혼자서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
||
|
||
그 혼자가 집요정이 아니었더라면.
|
||
|
||
계약을 통해 계약자의 '집'에 한해서 집안일에 한해서는 그 누구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메리는 마법사의 탑을 혼자서 떠받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
||
|
||
식기 회수와 빨랫감 수거 및 정리한 빨래 배분.
|
||
|
||
옷감의 종류에 따라 빨래할 준비를 끝마치고 식기를 깨끗하게 정리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
||
|
||
"후, 후후후후후후."
|
||
|
||
메리는 자기 딴에는 음산하게 웃으며 캐서린은 창고에서 식재료를 꺼내와 주방에 늘어놓았다.
|
||
|
||
시간은 충분했다.
|
||
|
||
앞서 해치운 일들은 좀 더 널널하게 해도 되었다.
|
||
|
||
하지만, 메리는 오로지 이 순간을 위해 순식간에 해치웠다.
|
||
|
||
다른 마법사들의 간식은 냉장실에서 하루 숙성시킨 에그 타르트.
|
||
|
||
달콤한 휘핑크림을 곁들여서 배분하면 끝이었다.
|
||
|
||
즉, 메리는 캐서린의 간식 준비를 탈환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
||
|
||
아무렴 그녀는 제과제빵에 한해서는 카렘보다 뛰어났으니까.
|
||
|
||
이는 카렘과 지그메서 둘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
||
|
||
열정적으로 반죽을 완성한 메리는 잠시 반죽이 담긴 그릇을 치우고 아래쪽 선반에서 나무배를, 풍요의 떡갈나무 통을 꺼냈다.
|
||
|
||
"카렘 후배.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
|
||
|
||
카렘이 알았다면 이건 배신이라며 소리쳤을 터.
|
||
|
||
하지만 메리의 마음에는 단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
||
|
||
그야 100배 마법통의 주인인 카렘 본인이 그녀에게 언제든지 사용해도 된다고 직접 말하면서 주방에다가 보관하고 있었다. 즉, 주인에게 이미 사전에 허락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
||
|
||
불만이 있었으면 독소 조항 정도는 허락한 장본인이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고로 메리는 즐겁게 반죽 그릇을 풍요의 떡갈나무 통에 집어넣었다가 곧바로 빼냈다.
|
||
|
||
"반죽의 숙성은 완벽하군요."
|
||
|
||
밀가루를 뿌린 테이블에 반죽을 꺼내 치대고는 넓고 판판하게 굳힌 버터를 넣은 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접기를 반복한 후 일정한 크기로 잘라 오븐에 투입.
|
||
|
||
지금 메리가 만드는 것은 그녀가 생각하기에 에우로파에서 유례없는, 오로지 그녀가 파이에 깔 때 쓰거나 그대로 나오는 페이스트리에서 착안한 물건이었다.
|
||
|
||
이름 붙이기를 퍼프 페이스트리(puff pastry).
|
||
|
||
시험 삼아 모두가 잠든 늦은 새벽에 몰래 실험했을 때는 가히 구름을 굳힌 후 공기와 함께 버터에 튀긴 것 같은 부드러우면서 바삭한 층의 연속을 느낄 수 있었다.
|
||
|
||
물론 메리는 이 한번 만으로 카렘이 1년도 안 돼서 쌓은 아성을 무너트릴 수 있을 거라 생각지는 않았다.
|
||
|
||
과욕을 부리기엔 카렘이 그간 보인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각종 요리와 디저트가 너무 대단했으니까.
|
||
|
||
제과제빵에 자신 없다는 것도 빈말인 거 아닌가?
|
||
|
||
이내 메리는 스스로의 생각을 부정했다.
|
||
|
||
생각해보면 카렘은 디저트를 만들려고 할 때면 반죽은 보통 그녀나 다른 사람에게 꼭 맡겼다.
|
||
|
||
그마저도 직접 만든다고 할 땐 크레이프나 팬케이크 같은.
|
||
|
||
도저히 실패하기 어려운 물건들을 만들었으니.
|
||
|
||
뜨거운 오븐의 열기 사이로 피어난 진한 버터향.
|
||
|
||
메리는 고개를 숙여 오븐 속을 들여다보았다.
|
||
|
||
트레이에 납작하게 놓여있던 반죽들은 조금씩 부풀어(Puff) 올라 어느새 성인 주먹보다 조금 작은 수준으로 커져 있었다.
|
||
|
||
그리고 부풀어 오르다 못해 터져나가기 일보 직전-
|
||
|
||
"아차차. 흐읍!"
|
||
|
||
족히 수백 도는 될 오븐 속에서 뜨겁게 달궈졌을 트레이를 맨손으로 꺼낸 메리는 곧바로 깨끗한 테이블의 한쪽에 놓고 곧바로 뒷정리를 시작했다.
|
||
|
||
흩날린 밀가루와 눌어붙은 반죽 파편.
|
||
|
||
겸사겸사 반죽에 사용한 그릇과 조리기구, 풍요의 떡갈나무 통까지 말끔하게 청소하고 닦은 메리는 비로소 어느 정도 식은 퍼프 페이스트리의 앞에 섰다.
|
||
|
||
우선 겉모습. 성인 주먹보다 조금 작은 크기.
|
||
|
||
울퉁불퉁한 동그란 원형으로 펑하고 부풀어 올라 진하고 연한 베이지색의 조화는 메리가 간신히 참을 수 있는 그것이었다.
|
||
|
||
하지만 냄새.
|
||
|
||
은은한 버터의 향기가 올라오는 따뜻한 퍼프 페이스트리.
|
||
|
||
분명 입에 넣으면 내부에 갇혀있던 버터향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머리 전체를 뒤덮은 것이 분명했다.
|
||
|
||
메리는 장담할 수 있었다.
|
||
|
||
왜냐하면, 일전에 한 번 먹어봤었으니까.
|
||
|
||
‘...핫. 위험했다.’
|
||
|
||
메리는 퍼프 페이스트리로 향하려던 손을 간신히 거둬들였다. 하마터면 계약자가 먹을 간식에 먼저 손을 대는 불상사를 일으킬 뻔했다.
|
||
|
||
숨을 참아가면서까지 유혹에 저항한 메리는 간신히 퍼프 페이스트리가 담긴 트레이를 냉장실에 넣고 하루 숙성시킨 에그 타르트와 크림을 꺼내왔다.
|
||
|
||
그래. 차라리 이쪽이 참는 건 더 쉬운 편이었다.
|
||
|
||
차갑게 식은 에그 타르트는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았다.
|
||
|
||
'얼른 끝내고 준비를 하면 되겠지.'
|
||
|
||
메리는 버터의 유혹에서 해방되었다.
|
||
|
||
아니, 사실 유혹 자체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었다.
|
||
|
||
이번에는 에그타르트와 생크림.
|
||
|
||
부드럽고 달콤하며 바삭한 조합.
|
||
|
||
상상만 해도 느껴지는 맛이 그녀를 유혹했다.
|
||
|
||
하지만, 갓 구운 버터 향이 가득한 페이스트리 냄새에 비한다면야 뭐.
|
||
|
||
메리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에그 타르트에 곁들이고, 퍼프 페이스트리 속에도 한가득 들어갈 크림에 설탕을 넣고 힘차게 거품 쳤다.
|
||
|
||
'한입이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 크읏. 참아라. 내 안의 본능. 유혹에서 벗어난 게 아까 전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