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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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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은 오래 살았다.

아무렴 그녀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만 현자에 다다라 불로를 이룬 천재 대마법사였다.

그런 만큼 그녀가 에우로파에서 방문하지 않은 지역은 손에 꼽으며 자연스럽게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것이 당연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는 세르비아누스 요리.

물론 지금은 심사숙고하는 중이지만.

사시사철 온화한 계절.

아도비스 신왕국과 가장 가까운 위치.

그리고 삼면이 바다인 반도라는 특징은 고대 팔라티노 제국 시절 마왕군 본대에 의해 초토화되어 한 번 단절되었다고 해도 맨땅에서 요리 문화를 다시 발달시키기에 충분했다.

비록 에우로파 전역에서 꺼리는 ‘특정 해산물’을 자기들만 즐겨 먹는 탓에 보는 사람을 괴롭게 만들 때가 있지만, 어떤 것이든 오점이 없을 수는 없는 법.

이미 세르비아누스에는 수많은 먹거리가 있었으니 '특정 해산물'을 제외하더라도 보편적인 에우로파 사람이 먹을 요리는 차고 넘쳤다.

피자가 그 대표적인 하나.

아마 아이스랜드에서 가장 많이 피자를 먹어보았을 캐서린은 집무실의 테이블에 놓인 접시 위의 칼조네 언덕을 흘끗 응시했다.

"일단 겉보기에는 피자가 아니라 파이인데."

"그렇죠? 후배. 그렇다고 하십니다."

판결을 기다리고 있던 메리가 이거 보라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카렘은 그 판결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 봤자 고작 두 명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피자가 뭔지도 모를 사람들이 더 많을 아이스랜드에서 말입니까? 맨날 파이만 봤을 사람들이 속에 내용물이 들어있는 손에 들고 먹는 빵을?"

카렘의 항변은 무참히 침몰했다.

메리가 승리의 기분을 무표정으로 만끽하는 가운데, 캐서린은 의자에 축 늘어진 카렘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그래서 난데없이 웬 빵이냐. 듣자 하니 네가 직접 구운 것 같은데."

"빵 반죽이 있었고, 토마토 페이스트 남은 게 있어서 있는 재료 다 써서 피자를 구웠을 뿐입니다. 토마토랑 치즈는 서로 잘 어울리니까요."

"그러니까 이거 파이 같다니까."

"타협해서 칼조네라고 합시다."

"칼조네? 바지 주머니?"

캐서린은 접시에 담긴 칼조네로 고개를 다시 돌렸다.

어렴풋한 반달 모양과 소가 새지 않도록 맞닿은 반죽을 접어놓은 모양새가 비슷하게 보이기도 했다.

"뭐, 꼬마. 너 치고는 상당히 신경 쓴 이름이구나."

"제 작명 센스에 유감이라도 있으신지?"

"오, 따져보면 한두 개가 아닐 텐데."

카렘을 다시 한번 가볍게 침묵시킨 캐서린은 기지개를 가볍게 피고는 턱짓으로 칼조네를 가리켰다.

명령대로 칼조네를 앞접시에 옮긴 메리가 포크와 칼을 집었다.

"아아. 그거 칼로 잘라먹는 거 아닙니다."

"카렘 후배.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그거 손에 들고 먹는 거예요."

"흐음?"

"일단 반으로 잡아 뜯어요."

메리가 눈썹을 기이하게 일그러트렸다.

그게 무슨 대수라고. 요리한 장본인이 먹는 방법이 그렇다고 하는데 메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식기를 내리고 칼조네를 집어 들었다.

아그작-

그리고 캐서린과 메리는 카렘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반달 모양의 빵이 빠삭한 소리를 내며 두 쪽으로 금이 가며 벌어진 틈을 벌리자 속에 갇혀있던 소스와 기름이 배어 나왔다.

코끝을 자극하는 새콤한 냄새와 고소한 냄새.

캐서린은 금세 두 냄새의 주인공을 알 수 있었다.

새빨간 토마토소스가 뜨겁게 녹은 치즈에 묻어서 제힘을 못 이겨 거미줄처럼 주욱 늘어지고 있었다.

그 매혹적인 냄새와 모습이 간만의 밤샘 업무로 사막같이 메마른 입에 침을 돌게 했다.

메리 또한 그 유혹적인 모습에 매혹된 것은 마찬가지.

허나 지금 이것은 캐서린의 아침 식사였다.

그리고 그녀의 몫은 따로 있었다.

자기 몫을 기억해낸 메리는 쉽게 매혹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재빨리 늘어지다 못해 접시에 떨어지려는 치즈를 칼조네 조각을 움직여 쌓고는 조심스럽게 캐서린을 향해 내밀었다.

스스로 저주에서 벗어나는 듯한 그 모습에 캐서린은 뜻밖이라는 듯이 메리를 쳐다보았다.

"흠, 의외인데. 메리 네가 이 유혹에서 벗어났을 줄이야."

"아무렴 저는 집요정입니다. 언제까지고 제가 유혹에 굴복하리라고만 생각하시면 섭섭합니다."

"사실 이따가 메리가 먹을 칼-"

"크흠, 흠! 흠! 흠!!!"

숨겨진 진실이 드러났다.

네가 그러면 그렇지.

메리를 보고 피식 웃은 캐서린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고개를 내밀어 칼조네를 물었다.

아그작.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갓 구워진 고소한 빵의 냄새.

칼조네의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빵의 촉감이 입안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그다음 빵의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조금 전 입에 침을 돌게 만든 새콤달콤한 맛과 함께 곱게 다져진 소고기의 감칠맛이 듬뿍 들어간 독특한 풍미를 지닌 토마토소스.

다양한 향신료에 의해 풋내가 사라진 강렬한 소스의 향은 순식간에 캐서린의 입안에 퍼졌고 그 뒤를 이어 미끈하면서도 부드럽고 쫄깃한 치즈의 감촉이 밀려 들어왔다.

씹으면 씹을수록 배어 나오는 치즈의 진한 풍미.

가열된 치즈가 뿜어내는 풍미는 새콤한 토마토소스와 만나 또 다른 색다른 맛의 향연을 펼쳤다.

아무래도 밀의 품종이 달라 그녀가 기억하는 피자의 맛과는 조금 차이점이 있었지만 아는 음식의 완전히 새로운 면모.

카프레제 샐러드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설마 붉은 마녀의 손가락의 변종의 변종이 치즈와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

각종 향신료를 제한다면 칼조네의 재료는 단순했다.

칼조네의 겉인 도우와 간 소고기 듬뿍 토마토소스, 치즈의 세 가지.

하지만 스테이크와 붉은 와인, 소시지와 맥주와 비슷하게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렸다.

무엇보다도.

주우우우우우욱-

칼조네의 단면부터 캐서린의 입으로 늘어나는.

반대편이 어렴풋이 비쳐 보이는 하얀 치즈.

"잠시 정리해드리-"

"음음음."

캐서린은 고개를 저어 메리를 멈춰 세우고 실을 빨아들이는 방직기처럼 늘어진 치즈를 입술로 잡고 혀로 당겨 소리 없이 당기다가 끊었다.

하얀색으로 얇고 반투명하게 늘어난 치즈. 그렇지만 촉촉하면서 쫄깃한 감촉은 확실히 그녀가 세르비아누스에서 먹었던 그 느낌이 맞았다.

"이거 정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계약자. 무엇을-"

"보기에는 파이 같아도, 이건 확실히 피자에 가까운 물건이야."

순식간에 뒤바뀐 판결에 카렘과 메리의 희비가 교차했다.

"메리. 심판께서 그러시다는 데요."

"크읏. 그래 봤자 그쪽을 포함해서 고작 두 명입니다. 다른 사람. 아차!"

"제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습니까?"

"설마 이 메리가 스스로가 한 말이 걸림돌이 될 줄은...!"

그 시답지 않은 유치한 말다툼에 다음 한 입을 먹기 위해 목을 길게 빼던 캐서린은 메리를 불렀다.

"너희 둘의 말싸움엔 관심 없으니 얼른 그 칼조네 조각이나 이리로 가져와라."

"알겠습니다. 계약자. 그런데 조금 전의 말을 정정해주실 수는-"

"뭐가 됐든 간에 일단 식사가 끝난 다음에."

작게 항변하던 메리는 어쩔 수 없이 칼조네를 내밀었다.

그 모습에 조금 전의 패배감을 말끔히 집어던진 카렘은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우리 아타니타스님은 먹방에 소질이 있으시다니까.'

먹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주얼.

외모도 물론 중요하지만 여기서 뜻하는 것은 얼마나 먹음직스럽게 먹느냐를 말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먹방에 캐서린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윈터홈의 독보적인 1위.

알리시아 만큼은 아니더라도.

꼬르륵-

진작에 아침을 먹은 한창때 소년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괜스레 보면 배가 고파졌기에 입맛을 다시던 카렘은 눈앞의 광경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제야 집무실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도 하루가 지나면 각종 재료와 양피지, 책이 사방에 널려있던 방은 밤새도록 연구에 집중한 덕분인지 캐서린의 생활 능력이 고스란히 보였다.

다른 말로는, 평소보다도 훨씬 더러웠다는 의미.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책과 양피지.

뒷정리하지 않고 사용한 그대로 놓여있는 각종 재료와 기구들.

선반에 놓인 다양한 색상의 액체가 담긴 유리병과 주머니.

그나마 먼지가 굴러다니지 않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음? 으음. 이 냄새는?"

오래된 책과 각종 마법 재료의 냄새 사이로 카렘은 희미하게 코를 자극하는 매콤한 냄새를 맡았다.

근원지는 연구용 테이블. 그 위에 놓인 불이 완전히 꺼진 작은 냄비와 진한 붉은색 유리병이 눈에 들어왔다.

"뭘 봤는데 그렇게. 아, 저거로군."

"혹시 밤새도록 일하셨다는 게 저 포션인가요?"

"그래."

캐서린은 메리가 내미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지난 만찬에서 네놈의 그 거인의 장미 수프 덕분에 드디어 완성할 수 있었지."

"...방한 포션? 드디어 완성하신 겁니까?"

"완성 자체는 지난 초여름에 끝났다."

캐서린이 흘긋 방한 포션을 응시하자 메리는 칼조네를 잠시 내려놓고 재빨리 가져와 캐서린의 손에 쥐었다.

"다만 나머지는 양산과 폭넓은 고객층 확보를 위해 가격을 낮추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을 뿐이지."

"아, 저번에 까딱 재료를 수정했다가는 귀족 전용이 되어버린다고 하셨었죠? 원래 가격이 얼마였는데-"

"평균 1 크라운."

"오, 금화 한 장."

"상황에 따라 더 가격의 변동은 있겠지."

"가격이 좀 세네요."

역시 포션이라고 해야 하나.

금화 수십 장에 해당하는 최상급 포션 만큼은 아니라고 하지만 금화의 영역이면 사실상 일반인은 손대는 것조차 힘든 가격이었다.

"뭐, 그걸 시가로 평균 10실링. 은화 열 장까지 낮출 수 있었지. 후, 역시 이 몸의 실력이란."

"거 가격 차이가 너무 나는 거 아닙니까?"

"사실 유리병에 넣지만 않았어도 가격은 낮출 수 있었을걸."

캐서린은 한 번 살펴보라는 듯 카렘에게 방한 포션을 건넸다.

손에 닿자마자 은은하게 느껴지는 열기.

복용하지 않아도 이 자체만으로 손난로보다 살짝 약하게 따뜻했다.

"아, 맞다. 그 말을 깜빡했네."

"뭐 잊어버린 거라도 있습니까?"

"아뇨. 별건 아니고."

카렘은 포션병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 뭐냐. 감사합니다. 아타니타스님."

"응. 뭐라?"

칼조네의 치즈가 주욱 늘어지는 와중에도 캐서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카렘을 쳐다보았다.

"메리가 말했습니다. 아타니타스님이 스태미나 포션을 전달하라고 하셨다고요. 그-"

"감사는 됐다. 그냥 내 수중에 스태미나 포션이 있었고, 때마침 네가 피로에 시달릴게. 훤해서 건넸을 뿐이야. 나한텐 별일 아니다."

캐서린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휘휘 젓다가 아차 하고는 늘어진 치즈를 재빨리 입으로 당겨 먹었다.

"그런 것 치고는 카렘 후배가 나이에 맞지 않게 행동한다며 걱정하시면서 연구도 내팽개치신 채 직접 스태미나 포션을 그 자리에서 제조하-"

그만! 캐서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얼굴이 홧홧해진 캐서린의 눈동자가 와들와들 흔들리고 있었다.

"쓸데없이 뭘 주절주절 다 떠벌리는 거냐!"

"주절주절이라니. 아랫사람을 생각하는 윗사람의 마음을 이대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신경 쓰시는 것 같아서."

"누가 신경 썼다고!"

"아, 아앗! 계, 계약자. 카렘 후배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머, 머리가아앗."

"네놈이 쓸데없는 소릴- 크흠."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악력으로 메리의 머리를 빠드득 소리가 나도록 조이던 캐서린은 그제야 자신을 묘하게 쳐다보는 카렘을 눈치챘다.

캐서린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앉아있던 의자에 착석했다.

"아무튼, 꼬마. 네 나이가 나이이니 고생도 적당히 해라. 키 안 큰다."

"음...감사합니다."

"음, 그래. 너희 둘의 아침 식사가 끝나면 호신용 마도구나 좀 찾아보지."

"오, 드디어."

주제를 돌리려는 뜻이 노골적으로 느껴졌지만, 아무렴 주인님이 부끄러우시다니 카렘은 그 뜻에 충실히 따랐다.

아무렴 그는 배려심 깊은 종자였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메리가 전방위적으로 압박받아 아픈 머리를 괜히 쓰다듬는 가운데 캐서린이 칼조네를 다 먹을 때까지 집무실에는 바삭거리는 칼조네 소리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