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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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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부러질 기세의 사죄와 그동안의 공로.

덕분에 카렘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카렘이 쉴 틈은 없었다.

소년은 계획과 레시피를 전달하기 위해 주방으로 급하게 달렸다.

여유롭게 걸어갈 시간이 없었다.

안 그래도 수여식과 임명식을 겸하는 연회가 코 앞이었다.

최대한 빨리 이를 전달해야 했다.

평상시에는 감탄만 나오던 거대한 윈터홈의 규모를 오늘만큼은 욕하며 카렘은 먹이를 발견한 굶주린 오우거처럼 달린 끝에 사실상 전쟁통이나 다름없는 주방에 도착.

당연하게도 요리사들은 이를 반기지 않았다.

카렘이 뭐라 하던 어화둥둥 하던 지그메서조차도.

메뉴 선정은 진작에 끝났고 한창 밑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메뉴를 더 추가하라고?

일 위에 또다시 일이 쌓인다는 의미였다.

누구도 일이 늘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집요정 같은 극소수의 예외는 제외하고.

하지만 카렘이 집무실에서 펠윈터 공작 부부 사이에 오간 말을 적절히 전달하자 그들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요리사였다.

그리고 요리는 먹는 사람이 기뻐해야 했다.

엘리자베스가 짠 고드윈의 식단을 누가 조리했을까?

그들도 다이어트를 명목으로 제한된 식단에 고드윈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보고, 또 그 고통에 일조하는 행위는 처음부터 탐탁지 않았다.

윗사람의 명령이 아니었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렴 먹는 사람이 전혀 기뻐하지 않는데 요리사가 무슨 재미와 보람을 가지고 요리를 한다고.

특히 그걸 손수 준비하는 지그메서는 더더욱.

총주방장의 의지와 스스로의 긍지에 따른 요리사들은 입으로는 투덜거려도 카렘이 적은 레시피를 받아들고, 곧바로 기함을 토했다.

"아니,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뭐? 토마토? 새로운 식재료? 붉은 마녀의 손가락을 개량해?"

"이 간장이란 건 또 뭔데!? 정신 나갔-아 매운 물건은 아니야? 그러면 조금- 아니, 그렇다고 해도!"

"하 씨 진짜 이걸 안 할 수도."

새로운 식재료라니! 새로운 식재료라니!

하지만 이미 지엄하신 주군의 명령은 내려졌고, 그들은 해내야만 했다.

그래도 장점 하나는 확실했다.

그나마 기존에 준비하던 요리들과는 다르게 카렘의 레시피는 크게 복잡하지는 않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라고 할까.

그래도 손이 많이 가는 단순 반복 작업이 필요한 데다 극히 일부를 제외한 듣도보도 못한 레시피가 섞여있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러는 사이 카렘은 메리를 통해 토마토와 토마토 페이스트, 완성된 간장을 주방으로 옮겨왔다.

"이런 미친! 사기치지마라 이 슬라임 뇌야! 이게 어떻게 붉은 마녀의 손가락인데!? 뭐? 토마토? 그건 또 무슨 근본 없는 이름?"

"카렘! 대체 무슨 지랄을 하면 콩으로 이런 맛을-"

"발효! 그래, 이 쿰쿰한 맛은 발효의 맛이다!"

당연히 주방은 뒤집혔다.

지그메서와 부하들은 카렘이 또 일을 저질렀다며 소리쳤다.

환호와 절규가 번갈아 오가며 쌓이는 일에 요리사들이 고통과 희열을 느끼는 동안 해가 저물었지만, 주방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아이스랜드의 유력자 누구에게나 이번 연도를 짧게 축약해보라 한다면 모두 다 똑같이 미식의 해라고 답할 것이었다.

유행이란 본래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고.

위에서 아래로도 내려오기도 하는 것.

하지만 후자가 더 빨랐다.

작년 겨울부터 시작해 이번 여름이 되는 동안 드워프가 실패한 맥주를 바닥에 쏟아 버리듯이 쏟아지는 새로운 요리, 유행의 홍수. 유력자들을 기대하지도 않았던 미식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게 했다.

덕분에 재산 좀 있다 하는 사람들도 식비 뒤에 붙는 0이 한 개씩 더 늘어나는 아찔한 상황. 그렇다고 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사람은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존재.

특히 대륙에서 요리사를 초빙해서까지 미식을 즐기고자 하는 귀족, 상인, 부자, 족장들은 더더욱.

요만큼의 권력이라도 가진 이들이라면 그 변화의 중심에 누가 있는지 누구나 알았다.

비교적 신분의 이동이 자유로운 아이스랜드.

당연히 벼락출세한 농노도 다른 국가에 비해서 흔했다.

하지만 거기에 요리사, 대마법사, 미성년이란 조건을 붙이면?

그 대상은 아이스랜드 전체에서 단 한 명으로 좁혀졌다.

현자

한파의 대정령

대마법사

현 펠윈터 가문 최고 마법 고문.

캐서린 메리골드 아타니타스

의 전속 요리사 카렘.

처음엔 나이가 어려서 깔봤다고 해도 지금 와서까지 그런 태도를 고수하는 이는 귀족으로서 안목이 부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흐음, 이번에도 접촉하는 데는 실패했나."

"이쯤 되면 최고 마법 고문께서 차단하고 있으신 거 아니겠나?"

"아무래도 그런 모양일세."

"쯧, 어린 나이에 바깥에라도 좀 돌아다니면 뭐 계기라도 만들 수 있을 텐데."

수여식과 임명식에 초대받아 저녁 시간보다 이르게 윈터홈에 도착해 이야기를 담소를 나누는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그저 권력자와 선을 만들어볼까 해서 가볍게 연락을 시도했을 뿐이지만, 지금까지 오는데 그 모든 다양한 빌미의 연락은 번번이 차단되기 일수였다.

"이거 아무리 아끼는 요리사라고 하지만 아껴도 너무 아끼시는 거 아닐까?"

"뭐, 어린 나이에 버릇이 잘못 드는 것을 경계하시는 것 아니겠나?"

"아니, 대체 누가 최고 마법 고문의 부하를 빼내 간다고."

"이미 답은 나오지 않았나?"

"뭐, 버릇이 잘못 들 수 있다는 거?"

"양녀를 들여서 가문에 끌어들이려는 누군가가 있지 않은가? 아니, 누군가들이던가?"

그 말에 일부 손님들이 속으로 혀를 찼다.

그래 봤자 농노 출신 요리사라고 깔본 이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들도 귀족이니만큼 알았다.

‘맛있는’ 요리를 ‘새로’ 개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물며 그게 유행을 선도하는 것은 더더욱 요원한 일.

하지만 윈터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레시피를 선보이자 깔보던 이들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다. 아무렴 일단 혀가 즐거운데 유행이기까지 하니 올라타는 게 당연하지.

다만 결정타는 따로 있었다.

"그 아도비스의 콧대 높은 다크엘프와 사인(沙人)들이 애원할 정도의 실력이면 오히려 부족한 게 아닌가."

세오폰 왕국은 안 그래도 대륙에서 떨어진 섬이었다.

그것도 에우로파 대륙의 가장 바깥에 자리한 섬.

거기에 본토보다 척박한 환경은 자연히 그곳에 살아가는 이들이 알게 모르게 자격지심을 가지게 했고 이는 그 섬에서 더욱 외곽인 아이스랜드에서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아이스랜드에게 아도비스란 선망과 질투, 경외의 대상이다.

당장 나이 좀 있다는 유력자 대다수가 어렸을 적 아이스랜드의 끝 모를 기근을 겪었다.

그런 기근을 단번에 몰아낸 아도비스의 풍요를 경험한 그들은 자연스럽게 마음의 한쪽에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이 당연했다.

아도비스의 사람들은 아이스랜드에서 시종일관 오만했다.

짜증은 나지만 거기에 뭐라 할 말은 없었다.

객관적으로, 은인적으로도 그들은 오만할 자격이 있었다.

그런 오만하기 그지없는 아도비스의 요리사들.

심지어 진미란 진미는 다 먹어봤을 신왕의 금고지기가 일개 요리사의 바지 끄덩이를 붙잡고 애원했다고?

그야말로 아이스랜드 귀족들의 심금을 울리는 말이었다.

세간에서는 그걸 '뽕'이라고 한다.

"양녀라는 게 문제일세. 친딸도 아니고."

"제길, 어째서 내 자식은 하나같이 덜렁거리는 놈들밖에 없지?!"

"...자네는 여성인데도 그런 말을 하는 건가?"

"그렇다고 덜렁이를 들이밀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아이스랜드의 귀족에게는 혈통이나 성별보다 능력 우선주의.

능력 없는 남자보다 능력 있는 여자를 더욱 선호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후계로는 남아를 선호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여성의 몸은 여러모로 제약이 많았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여아가 능력이 더 뛰어나다면 상관없었다.

그래서 반드시가 아닌, 되도록 이었다.

때문에 어느 정도 급이 있는 이들이라면 자기 딸이라도 망설임 없이 밑밥을 깔기 위한 만남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다.

공작은 무리여도 그 밑 수준은 되는 귀족이나 대족장들조차도 양녀를 들여서라도 이러한 서신을 보내기는 마찬가지.

물론 그러한 서신이 카렘에게 도달하는 일은 없었다.

캐서린은 선 입찰한 요리사에게 닿는 검은(?) 손길을 모조리 차단하고 있었고 이에 흔쾌히 동의하는 메리는 매일 아침 수많은 고급스러운 서신을 불태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앞으로도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그들의 시도는 모두 무산될 터였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자 고드윈은 왁자지껄한 대회관의 사람들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드디어 그 날이 되었다.

고드윈은 슬쩍 시선을 내려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돌아다니던 중 합류한 카렘이 조금 피곤한 모습으로 하품을 하고 있었다.

"카렘. 일은 확실하게 처리한 거겠지?"

"아무렴요. 고드윈 공자님."

카렘은 시간이 지나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적어도 드레싱 없는 채소랑 삶아서 소금만 친 고깃덩어리를 드실 필요는 없겠죠."

"그런데 조금 빨리 먹을 수는 없었을까?"

"바뀔 예정인 식단이요?"

"그래. 익숙하지 않은 단순한 요리를 먹으려니 여간 영-"

고드윈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상상만 해도 파릇파릇하고 퍽퍽한 냄새가 느껴졌다.

"확실히 공작부인도 좀 심하셨죠."

카렘은 고드윈에게 공감하며 고드윈의 전생에 하드코어 트레이너들이나 먹었을 법한 하드코어한 식단을 떠올렸다.

버터와 설탕없이 구운 빵과 과일 조금.

드레싱 없는 샐러드와 삶은 고기 많이.

사람이 먹을 수 있겠지만, 그저 먹을 수 있을 뿐인 재미와 자극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밋밋하기 그지없는 식단이라니.

무려 공작부인이 직접 선정했던 끔찍하기 그지없는 결과물에 카렘은 진저리를 쳤다.

"일단 오늘 저녁 연회에서 고드윈 공자님이 드실 음식은-"

"그래, 그래. 몇 번이나 말했지. 내 앞에 놓인 요리들만을 먹어야 하고, 과식은 절대 금물이라고."

"하나 빼먹으셨습니다. 디저트도 절대 금지입니다."

"그런데 카렘. 하나만 물어보자."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정말 디저트는 한 개라도 안 되는 거냐?"

고드윈은 절실함을 담아 물었다.

카렘은 고드윈과 눈을 직접 마주치고 다시 한번 말했다.

"안 됩니다. 한 개라도 드시면 입맛이 돌아서 둘, 셋이 될 게 눈앞에 훤한데요. 그 유혹을 참으실 수 있으십니까?"

"아니, 식사 도중에 나오면 그건 나도 못 참을 것 같은데."

하물며 대체 그동안 디저트는 입에 대지도 못했는데, 그걸 어떻게 참겠어? 하지만,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어 고드윈은 어깨에 힘이 빠졌다.

하지만 고드윈은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었다.

대회관에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인사해오는 손님들이 많아졌다.

수여식과 임명식을 위해 손님들을 초대한 공작의 후계자로서 고드윈은 시무룩함을 더는 드러내지 않고 그들을 응대하기 시작했다.

카렘은 잽싸게 고드윈의 곁을 빠져나와 먼저 대회관에 도착했다.

대회관은 손님들로 인해 평소보다 테이블이 더욱 많았다.

벽과 천장은 지난겨울의 윈터센드를 떠오르게 할 만큼 각종 화려한 장식물로 잔뜩 장식되어 있었다.

눈앞은 화려하고 귀는 시끄러운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캐서린을 찾아야 하나 카렘이 넋을 놓고 있을 때, 시야의 한쪽에서 누군가가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아직 빈자리가 드문드문 있는 상석.

바깥쪽에 캐서린이 메리를 대동한 채 앉아 그를 향해 이리로 오라는 듯 손을 흔들고 있었다.

사람의 해일을 피해 대회관의 벽에 붙어 한참을 빙 돌아온 카렘은 상석에 도착하고서 땀을 훔쳤다.

"주인보다 늦게 도착하는 종자라니."

"죄송합니다. 마지막까지 주방일을 좀 돕느라. 게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요."

"쯧, 그래서 내가 더 뭐라 하지는 않는 거다."

"그나저나 이번 연회의 주인공은 안 보이네요?"

"말 그대로 이번 연회의 주인공이니까. 사람들한테 붙잡혀서 시달리고 있는 것이겠지."

"오우"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허공에서 뿅 하고 갑자기 나타난 것이나 다름없는 소드마스터의 존재는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레이더나 다름없었다.

보나 마나 공작가의 후계자 만큼은 아니어도 고역을 치르고 있을 것은 분명했다.

"오우거도 제 말을 하면 온다더니."

"네? 오우거요?"

"저길 봐라."

캐서린은 턱으로 대회관의 출입구를 가리켰다.

"자아 자! 오늘 연회의 주인공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배려해주게."

"후우, 감사합니다. 공작님. 사람들이 하도 모여들어서."

"작위를 받고, 여기저기 초대받기 시작하면 자네도 금방 익숙해질걸세. 고든. 아니, 스타크 경."

알프레드가 고든을 이끌고 군중과 함께 들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