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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안이 벙벙한 것은 카렘도 마찬가지였다.
자식에게 다이어트를 강권한 엘리자베스는 그렇다고 치자.
설마 알프레드까지 흔쾌히 수긍할 줄이야.
하지만 알프레드는 이 또한 고드윈에게 경험이 되어줄 것이라 확신했다.
극단적이면 이 세상에는 일평생 영지민의 생각이나 사정을 고려하기는커녕 당장 먹을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보다 못하다 생각하는 귀족들이 많았다.
물론 극단적인 만큼 그 수는 적었지만, 많은 귀족이 혈통과 명예, 권력을 장벽을 올리고 백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딜 천것이 귀족을 가르치려 드느냐며.
이에 동의하지 않고 영지에 선정을 배푸는 지배자도 에우로파에는 충분히 많았다. 알프레드가 이러했다.
알프레드가 처음으로 가졌던 아이스랜드에 관한 관심사는 백성들의 식량 사정이었으며 이는 오래전 후계자로 확정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얼마나 관심이 많았냐면, 윈터홈을 몰래 빠져나와 지금은 내성이라고 불리는 외성에 찾아가 평민들의 주식을 직접 먹었을 정도로.
알프레드가 귀리를 접한 것도 그때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충격을 받았다.
대체 어떻게 이런 물건을 먹을 수 있는 거지?
그때까지만 해도 알프레드는 귀리를 본 적조차 없었다.
아무리 척박한 아이스랜드라고 해도 그는 귀족이었다.
그것도 일반 귀족이 아닌, 대귀족.
심지어 공작가의 직계이자, 장남.
흑빵, 보리빵을 뜯어 먹고 그마저 부족해 사냥을 나갔다.
설령 먹을 게 없어 굶을지언정 귀리는 먹은 적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귀족이었으니까.
그렇게 교육받았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지나치기엔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귀리조차 먹지 못해 나무와 풀뿌리를 뜯어먹고 있었다. 아니, 굶는 이들이 넘쳤다.
그가 있는 곳은 콜던이었다.
아이스랜드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
그런 콜던에서조차 그러한데,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변방의 도시와 마을은?
그때부터였다.
알프레드가 귀리를 먹어가며 아이스랜드의 귀족들을 모조리 뒤집어버리고 물산에 집중했던 것은.
후계자가 되기 전에도, 후에도, 공작에 즉위한 이후에도 이어졌다.
그리고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아이스랜드 공작 위를 계승한 통치의 초창기.
젊은 알프레드를 만나기 위해 거금을 들였던 상인.
상인은 귀족의 사생아도, 피가 흐려진 몰락 귀족도 아닌 일개 평민 출신이었다.
일반적인 귀족이었다면 세금을 명목으로 이것저것을 갈취하며 간을 보았겠지만, 알프레드는 그 용감한 상인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
다행히 그 결실은 아이스랜드의 운명을 뒤바꿨다.
그리고 그 모든 계기는 하나였다.
가축 먹이나 다름없던, 풀뿌리와 나무껍질, 귀리로 끓인 죽 한 그릇.
물론 더 이상 귀리를 먹지는 않았다.
아무렴 그걸 먹기에는 아무리 그래도 맛이 좀.
아무튼, 알프레드는 고드윈이 자신과 같은 깨달음은 아니라도 나름의 생각이 전환되는 계기를 원했다.
반면에 엘리자베스의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소파에 앉은 엘리자베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어색하게 예의를 차리는 카렘을 내려다봤다.
"주식을 귀리로 바꾸는 것만으로 그렇게까지 효과가 나타난다는 말이니?"
"아, 물론 마요네즈는 당연하고 각종 디저트랑 기름진 요리도 금지해야 합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그런데 설마하니 귀리만 먹는 건 아니겠지?"
"적절히 조리한 요리를 함께 대령할 예정입니다."
"으음, 그러면 귀리 없이 요리에만 집중하게 되는 거 아니겠니?"
"그래서 옆에서 고드윈 공자님의 수발을 들며 상황을 통제할 분이 필요하-"
"빅토르면 충분하겠구나. 원래도 그 애의 수행원이기도 했고-"
(그녀 기준에서) 살이 쪄도 너무 쪘으니까.
그것도 짧은 기간에 너무 과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이해하지 못했다.
엘리자베스도 굳이 그들을 이해 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녀가 타국인 이 섬으로 시집왔을 때도 그녀를 이해하는 사람은 적었다.
아니, 오히려 고드윈의 다이어트는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늦은 감이 있었다. 그간 알프레드가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마저도 여름이 되고 한 달 만에 고드윈의 복식을 교체하는 비용에 알프레드의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았으면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흠, 공작부인. 그런데 시기를 조금 늦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타니타스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꼬마. 아니, 얼마 뒤면 대회관의 저녁 연회에서 포상 수여식을 겸한 임명식이 진행될 텐데. 잊은 거냐?"
"어, 임명식이요?"
"아이오나, 구출대, 고든?"
잊었냐는 듯이 하나하나 언급하는 단어에 카렘도 그제야 고든의 임명식이 이제 코앞이라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확실히."
알프레드도 잠깐 잊었었던 사실을 떠올리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귀리라는 충격적인 말이 오간 탓이었다.
무려 공작가의 시종장을 성공적으로 구해낸 것에 대한 1차 포상 수여식.
(2차는 토벌대가 복귀하면 진행될 예정이다.)
거기에 무려 소드마스터의 임명식인데.
물론 이를 위한 연회의 규모는 윈터센드만큼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공작이란 이름이 있는데 그에 걸맞게 크고 화려해야 했다.
당연히 참석자의 숫자 또한 그에 비례하는 것은 당연했고.
그리고 당연히 그만큼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요리.
특히 디저트가 그 자리를 뽐내야 하겠지.
아무렴 알프레드 자신이 구상하는 붉은 마녀의 손가락과 뒤늦게 추가된 바닐라 사업 및 유통의 안정적인 확립을 위해서라도 이는 반드시 추진되어야 했다.
"부인. 아무래도 일정을 위해서라도 고드윈의 식단은-"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알프레드는 엘리자베스를 돌아보고 슬쩍 운을 뗐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욱 식단을 할 필요가 있어요."
"다행히 부인도 알아주으응? 부인?"
"프레드. 이런 중요한 일은 질질 끌지 않고 뒤엉킨 밧줄을 한 번에 자르듯이 빠르게 결정해야 해요."
그랬다가는 오만가지 부작용이 단번에 흘러넘칠 텐데?
그러나 알프레드가 뭐라 반박할 틈도 없이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획 돌려 카렘을 바라보았다.
"카렘.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내가 주방에 요구한 고드윈의 볼품없는 식단보다는 저녁 연회에 걸맞은 품격을 갖출 수 있다는 말이겠지?"
"어, 귀리 자체는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같이 나올 요리라면-"
"그러면 문제는 없겠네."
"어, 공작부인? 그래도 되는 겁니까?"
"그야 당연하지!"
엘리자베스는 굳건한 의지를 담아 무겁게 끄덕였다.
"지금은 고드윈이 식단을 잘 따라주고 있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다른 생각이 피어오르는 일은 본능이라는 걸 프레드. 당신도 알 거예요."
"그야 대부분은 그러는 거 아니겠소?"
"그런데 식단을 시작한 지 시간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타협을 하면 어떠하겠어요? 오늘은 수여식과 임명식, 다음에는 안식일, 다다음에는 휴가가 빌미가 되지 않을까요?"
"으, 으음?"
그렇게까지? 알프레드는 떨떠름했다.
물론 고드윈이 작년보다 살이 찌기는 했다.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사랑하는 부인 엘리자베스의 생각은 다른 모양.
뭐 저녁 연회에 나올 다른 요리들에 빛이 가려질 정도만 아니라면 상관없나? 하긴 마요네즈를 너무 많이 먹기도 했지. 무엇보다 부인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주장한 적도 없으니-
"확실히 나중이면 몰라도 처음부터 타협하는 건 그리 모양새가 좋지 않군."
"그러면 각하. 어떻게, 준비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카렘. 자네의 실력은 나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으니. 그런데 도움은 주지 못할 것 같구나. 오히려 네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는데. 말 그대로 연회가 바로 앞 인지라."
윈터센드만큼은 아니더라도 온갖 권력자가 다양한 목적을 위해 참석할 예정이고 그 지위와 숫자만큼 요리를 준비해야 했다.
즉, 한참 전부터 윈터홈 본성의 모든 주방은 기존의 업무에 더해서 쉴 새 없이 연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조금 힘든 수준에 그쳤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시하지 못할 숫자의 인원이 출장을 나간 상태라 지금도 간당간당했다.
즉, 안 그래도 과부하가 걸리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그 부분은 카렘도 알고 있었다.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래. 믿음직스럽군.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고드윈이 먹을 요리의 레시피는 주방에 공유하거라"
"어, 물론입니다. 그래 봐야 레시피일 뿐인데요."
"고드윈의 앞에만 놓여 있으면 연회의 그림이 부자연스러워 말이 나올 테니 최대한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각하. 본성의 주방에 가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음? 주방을 말이냐?"
"예. 아무래도 레시피만 덜렁 드리면 안 그래도 바쁜 와중에 혼잡함이 더해질 것 같아서 부득이하지만 견본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 점을 잠시 잊고 있었군. 그런데, 또 새로운 레시피를 선보일 예정인가?"
"아무래도 고드윈 공자님이 살을 빼고 계신 와중에 기존의 요리들 대부분은 드시면 안 되시겠죠. 공자님에게 맞춘 새로운 요리를 내놓아야겠습니다."
알프레드는 감탄했다.
카렘의 불타오르는 눈동자를 보건대, 진심이었다.
"허, 그런 수고스러운 일을 스스로 하겠다니."
"아닙니다. 요리사가 하는 일일뿐더러, 새로 만드는 요리들도 있겠으나. 총주방장님에게서 배운 물건들도 몇 가지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카렘을 뜨뜻미지근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던 캐서린은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면서도 내심 기뻐했다.
아무렴 신메뉴는 언제나 환영이었으니까.
다만 걸리는 점이 있다면.
"그런데 꼬마야."
"음, 네?"
"고드윈 공자는 그렇다고 치자. 다른 테이블에도 설마 그걸 내올 생각은 아니겠지?"
"어, 그거라면요?"
"앞으로 고드윈 공자의 주식이 될 예정인 그거 말이다."
"아, 귀리밥이요? 글쎄요."
그것만큼은 누구누구 분들이 허락하지 않을 텐데?
그런 의미를 담아 카렘은 시선을 캐서린에게서 공작 내외에게로 돌렸다.
알프레드는 단번에 손사래를 쳤다.
"아니, 그건 허락할 수 없다. 아무렴 연회 자리에 어떻게 조리를 했는지는 몰라도 귀리를 내올 수는 없지."
"아무리 그래도 펠윈터 가문의 품격이 있지. 가족들만 있는 상석이라면 모를까. 손님들로 가득한 회관의 식탁에 그런게 올라가면 대체 무슨 말을 들을지 상상하기도 힘들구나."
이번만큼은 엘리자베스도 손사래를 치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대회관의 식탁에서는 상석에 놓일 귀리를 보지 못할 테니 상관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공작가의 귀중한 손님들인데 귀리를 대접할 수는 없었다.
"뭐, 꼬마는 아쉽게 됐구나.."
"네? 뭐가 아쉽다는 겁니까?"
"네놈의 귀리를 만인한테 먹이겠다는 사악한 계획 말이다. 으으으, 듣기만 해도 끔찍하군."
"예? 제가 언제 그런 생각을 했다고요? 그리고 사악하다는 소리까지 나올 말입니까?"
"그럼 아니라고? 귀리인데? 주군 내외가 너그러우셔서 허락하신 거지 일반적인 귀족한테 그리 말했다면 최악의 경우 목이 잘릴 수도 있는 건 알고 있겠지?"
"귀리를 먹는 방식이 글러서 그런 겁니다."
"이미 틀에 박힌 인식은 굳어진 지 오래다."
"아, 하긴 알리시아님은-"
잠자코 두 주종의 만담을 듣고 있던 알프레드는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알리시아? 왜 거기서 알리시아가 나오는 것이지?"
뎃.
그러니까 우리 씹어먹어도 모자랄 귀엽고 깜찍한 알리시아가 갑자기 왜 나온다는 말인가. 잠깐, 설마 그걸 알리시아한테 먹인 것은 아니겠지?
알프레드는 그 모든 것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귀염둥이 막내딸에게 좋은 것만 먹여주고 싶었던 무서운 아버지(眞)는 표정으로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곁에 앉은 엘리자베스 또한 같은 심정이었다.
카렘의 행동은 재빨랐다.
"변명할 여지 없이 사죄드리겠습니다!"
어디 변명이나 해보라는 눈빛에 카렘은 설마 진짜 저지른 거냐는 캐서린의 경악한 시선을 받아가며 최대한 있는 사실 그대로 당시의 상황을 묘사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공로 덕분인지 간신히 용서 받을 수 있었다.
경고를 받았기는 했지만, 용서 받은 게 어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