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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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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맹랑한....!"

캐서린은 당황스러웠던 만큼 더욱 분노했다.

아무렴 당장 카렘은 벌을 받고 있었다.

벌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함부로 자기 멋대로 일어나다니!

결코, 결코 달콤한 디저트를 기대하던 캐서린을 배신하고 이상한 이스트로 썩히는 콩 반죽을 집중한 것에 분노한 것이 아니었다.

결코! 디저트! 때문에! 분노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캐서린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방 안에 가득했던 구리구리한 냄새 사이로 통로 쪽의 공기가 밀려 들어오면서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농밀한 냄새가 캐서린의 코끝을 스쳤다.

난생처음 맡는 종류의 약한 주정 냄새.

그 뒤로 이어지는 달콤짭짤한 향기가 치고 들어와 냄새만으로 혀에 진한 감칠맛을 남겼다.

캐서린은 들어 올렸던 팔을 내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머리에 떠올랐던 분노의 감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빈자리에는 호기심이 가득 떠올랐다.

"이게, 대체 무슨 냄새?"

"냄새는 제법 좋지요?"

"아니, 저런 고약한 냄새 덩어리라서 결과물도 비슷할 줄 알았다만. 가름같은 냄새가 날 줄 알았지."

"에? 고약한? 아. 아아."

"아? 뭐가 아. 냐."

"실패한 메주에서 나던 냄새가 남은 거 같은데. 잠시만요."

"아니, 창문을 열 필요는 없다."

카렘이 제지한 캐서린은 손짓으로 가벼운 정화 마법을 펼치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장벽이 방 전체를 휩쓸었다.

방 안에 가득했던 끔찍한 냄새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풍요의 떡갈나무 통에서 피어오르는 냄새는 물꼬가 트인 지하수처럼 폭발적으로 번져 순식간에 방 전체를 점령했다.

"와, 어지간히도 냄새가 끔찍했네요."

들어올 때 잠깐 이후로 코가 완전히 마비되어 버렸던 카렘은 그제야 이 방 안에서 나는 냄새가 얼마나 끔찍했던 줄 다시금 깨달았다.

하긴 난데없이 이런 냄새를 맡아버리시면 화를 내시는 것도 당연하겠지.

하지만 정작 캐서린은 더 화를 낼 생각이 없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캐서린이 숨을 깊이 들이마시자 처음 들어왔을 때 맡은 불규칙한 끔찍한 냄새에 끊임없이 고통받던 코가 생기를 되찾았다.

독한 증류주의 냄새가 약간.

그 뒤로 바닷바람이 잠깐 찾아와 손짓.

달짝지근한 진한 과일 향.

그리고 혀 전체를 감싸듯이 끌어안은 냄새를 통해 느껴지는 은은한 감칠맛까지.

뒤에서 따라 들어오는 냄새도 마찬가지였다.

달달한 향은 조금 났지만, 앞서 맡은 감칠맛 가득한 냄새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은은하게 느껴지는 고소한 냄새는 오븐에 들어가기만을 기다리는 발효된 빵 반죽 같기도, 맥주를 빚기 위해 쪄지는 맥아보리의 향기 같기도 한 고소한 냄새.

은은하면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고소한 향기는 짧은 시간에 너무 과다한 정보를 받아들인 캐서린의 코를 안정시켰다.

"그래. 이 고소한 냄새가 요 몇 개 없는 소위 네가 말한 성공작의 냄새라는 거냐?"

"네. 수십. 아니 수백 개는 갈아치운 것 같은데요."

지난 며칠간의 고약하기 짝이 없었던 나날.

머릿속에 되새기기만 해도 카렘은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만 같았다.

완두콩 삶기, 그거의 껍질 벗기기, 골고루 으깨서 밀가루와 이스트를 섞기, 벽돌 모양으로 빚기, 밀짚으로 묶기, 밀짚에 둘둘 말아서 100배 마법 통에 넣었다가 빼기, 실패하면 폐기하고 앞의 과정으로 돌아가고 성공해도 앞의 과정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한 지 수백 번.

마도구가 있다고 편히 생각했건만 그건 착각이었다.

새벽에 몰래 완두콩을 포대 단위로 삶는 것도, 껍질을 벗기는 것도 으깨고 빚는 것에 통에 넣었다 빼기를 수백 번 반복하는 하나같이 중노동!

하지만 그 결실은 찬란하기 그지없었다.

봐라! 갈채하라! 이 영롱하고 향긋한 검은 액체를!

"꼬마. 왜 혼자 감격스러워하는 표정인 거냐?"

"아뇨. 지난 며칠간의 고생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 버려서."

"흐음. 그래서 그 액체? 조미료? 술? 여튼 이름이 뭐냐."

"어..."

간장에 정신이 팔리느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카렘은 순간 머리가 꽝꽝 굳어버리는 것을 느꼈다.

랄까 간장의 로컬라이징은 어떻게 하지? 그냥 한국식으로 간장이라고 하면 뜻이 뭔진 모르겠고 발음도 이상하다며 타박을 듣겠고. 역시 익숙한 쪽으로 가야 하나?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카렘은 머리를 부르르 털며 정신을 차렸다.

"일단 조미료이고, 이름은...어....간장(Soy sauce)이요."

"뭐? 간장?"

"넵. 간장."

캐서린은 무심코 이마를 찌푸렸다.

그건 또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지 모를 근본 없는 이름인데?

하지만, 그간 카렘이 내놓았던 (에우로파 기준으로) 끔찍하기 짝이 없던 작명 센스에 비한다면 나쁘지 않았다.

이름이 간결하면서 뭔가 있어 보이는 발음도 그렇고 뜻이 뭔진 몰라도 어감 자체는 괜찮았으니까.

"이거 네가 처음 개발한 거냐?"

"어, 네. 아마도요? 혹시 이렇게 콩을 발효시킨 벽돌로 소스를 만드는 물건을 어디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싸구려 생선으로 담근 저급 가름이나 아이젠발트에서 맥주 만들고 남은 찌꺼기와 이스트로 페이스트를 만든다는 건 먹어봤어도 콩은 처음 들어보는구나."

"기왕 이렇게 되신 거. 맛이나 조금 보시죠."

카렘은 그렇게 말하면서 맛보기용으로 미리 준비해뒀던 작은 스푼으로 간장을 뜨고는 캐서린에게 다가갔다.

멀리서는 그저 검게만 보였던 소스였지만, 가까워지자 캐서린의 눈은 금속 스푼에 검게 고인 간장의 바깥쪽으로 갈수록 연해지는 갈색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냄새.

소금기가 느껴지지만 달콤짭짤한 냄새.

처음엔 무슨 가름이라도 만드냐고 생각했던 것이 미안해질 정도로 간장의 냄새는 중독적이었다.

"설마 냄새만 이렇고 가름처럼 맛이 저승으로 떨어진 건 아니겠지?"

"허허, 아직도 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십니다."

"네놈은 꼭 잊을만하면 사건을 저지르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냐? 그런데 고작 이것 뿐이냐?"

"그냥 먹기엔 엄청 짜니까요."

"흠, 짠 내가 나기는 하는데."

카렘을 흘겨본 캐서린은 조심스럽게 작은 스푼에 고인 간장을 빨아먹었다.

호로록.

"큽!?"

"어, 사레들리셨습니까? 손수건이-"

"큼, 크흠! 아니니까 넣어 둬라."

캐서린은 입안을 후려치는 듯한 강렬한 짠맛에 놀랐을 뿐이었다.

카렘의 호들갑을 진정시키며 캐서린은 작게 콜록거리면서도 혀를 입천장에 굴리면서 음미했다.

고작 디저트용 숟가락만 한 작은 것의 반밖에 안 담겼는데.

고작 몇 방울이 이만큼이나 짜다니.

대체 소금을 얼마나 넣은 거냐고 투덜거리려던 찰나.

혀 전체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감칠맛이 그녀의 입을 다물게 했다.

이걸 콩으로 만들었다고?

냄새에서는 미약하지만 고소함이 느껴졌지만, 맛은 전혀 달랐다.

강렬한 짠 기가 익숙해지자 뭐라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과일향이 은은하게 그녀의 입안을 가득 휘감았다.

가름의 감칠맛 위로 발사믹 식초의 가벼운 향기에 섞인 다양한 과일의 향기를 하나하나 따지려던 찰나, 혀 전체를 휘감은 맛 사이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감칠맛이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당연히 안 그래도 혀를 자극하는 소금기가 있는데 감칠맛이 올라오면 침이 홍수처럼 흐르기 마련.

자연스럽게 잔여물을 삼켰지만, 그런데도 존재감이 또렷했다.

아니, 도리어 짠맛이 침과 함께 사라지자 남아있던 향기가 사라지지 않은 감칠맛과 만나 잠깐 잊었던 디저트를 생각하던 캐서린의 식욕을 맹렬하게 자극했다.

꼬르르륵

때아닌 허기.

캐서린은 불쾌하지 않은 공허함을 느꼈다.

"가름의 감칠맛. 발사믹 식초의 풍부한 향기. 그레이비 소스보다 농밀한데 가름보다 향긋하고, 발사믹 식초보다 깔끔하며 그레이비 소스보다 가볍다니. 고작 콩일 뿐인데?"

단점이라고 해봐야 마지막 혀에 남은 텁텁함이겠지만, 따로 뭐에 곁들이지도, 재료를 첨가하지도 않은 오리지널 소스를 먹었는데 단점이 고작 끝 맛 하나 뿐인 게 오히려 대단했다.

"허, 이렇게까지 거창한 물건을 개발하다니. 대체 왜."

"뭐, 토마토로도 소스를 만들었는데. 콩이라고 안될 이유가 없는 것도 있겠고. 무엇보다도 고드윈 공자님을 위해서죠."

"뭐? 고드윈 공자?"

"아무래도 귀리는 버터랑 영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카렘은 간장으로 가득한 풍요의 떡갈나무 통을 다시 밀봉했다.

"공자님은 살을 빼셔야 하는데 버터를 마음껏 쓸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간장이었다.

한 덩어리씩 넣어야 하는 버터와는 달리 간장은 단 한 숟갈로도 풍미를 돋구는 데 충분했으니까.

태워서 볶는다면 어지간한 조미료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맛과 향이 진해지는 것은 물론 샐러드, 수프, 탕 같은 입가심에 구이 따위의 메인은 당연하고 소스까지 그 활용도는 무궁무진.

살을 빼려고 생채소와 그냥 삶은 고기만을 먹는 것은 하수 중의 하수.

진정한 고수의 다이어트라면 맛있게 먹으면서 살을 뺄 수야 있었다.

물론 스스로 구현한 토마토 페이스트에 경쟁심 반, 향수병 반이 뒤섞인 약간 바보 같은 이유기도 했으나 아무렴 어떤가.

카렘은 버터와 간장의 조화를 생각하며 실실 웃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해결하지 않은 것 같은데?"

"예? 무슨 문제 말입니까?"

"귀리 말이다. 귀리. 결국, 공자한테 먹일 물건 아니냐."

"그으...렇죠? 그게 왜요?"

"아니, 장본인은 동의했다고 쳐도. 가장 큰 장벽이 남아있을 텐데?"

"장벽이요?"

"그래.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무려 둘. 아니, 잘 못하면 셋으로 늘겠는데."

카렘은 눈만 끔뻑였다.

아니, 대체 펠윈터 가문의 장남이 먹겠다는데 대놓고 태클을 걸만..한...사..람....

떠오르는 사람이 두 명, 아니 세 명 있었다.

"펠윈터 공작 내외분과 그리고 아이오나님...?"

캐서린은 이제야 눈치챘냐는 듯 한쪽 눈을 치켜떴다.

"요리만 관련되면 눈이 돌아갔지. 가축 사료를 귀중한 장남한테 먹이겠다는데 잘도 고운 소리가 나오겠구나."

"음...불경죄로 갇히지는 않겠죠?"

"글쎄다?"

캐서린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카렘은 초조함을 느끼며 입술을 물어뜯었다.

당당하게 다이어트식을 언급한 지 이만큼이나 시간이 지났는데 지금 와서 다른 대체품을 주문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다른 대체품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뭐. 그래서 꼬마. 어떻게 할 테냐?"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 아니겠습니까."

"그래 너도 딱히 방법이 하아아아아?"

"바로 공작님과 공작부인에게 허락을 맡는 수밖에요."

"뭐, 뭣!?"

"두 분이 허락하신다면. 아니, 한 분이 허락하기라도 하신다면 가능성은 있습니다. 특히 고드윈 공자님에게 살을 빼라고 한 당사자이신 공작부인이시라면."

"....뭐, 벌을 받을지언정 감옥엔 안 들어가게 도와주마."

캐서린은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젊은 나이에 성공 가도를 걷다 보니 오만함이 생긴 것일지도. 그렇다면 여기서 미리 실패의 경험을 겪게 해서 나중을 위한 토대를 쌓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캐서린은 뜨뜻미지근한 눈빛으로 현장을 정리하는 카렘의 정수리를 응시했다.

'하 씨. 저기에 따로 몰래 된장도 담그고 있었는데. 그것도 꺼내면 이번만큼은 뒤집어지겠지?'

정작 그 장본인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중이었지만.

캐서린의 배려로 카렘이 알현 신청을 했을 때.

마침 펠윈터 공작 부부는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신청은 바로 접수되어 알현할 수 있었다.

"귀리? 고작 그게 정말로 우리 고드윈의 살을 빼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니? 음, 그렇게까지 장담한다면 어디 한번 해보렴."

"귀리라. 하긴 고드윈도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겠지."

아니 이걸 허락한다고?

캐서린은 카렘의 제안에 분노하기는커녕 오히려 흔쾌히 허락하는 공작 부부를 보며 아연실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