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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243 lines
12 KiB
Markdown

"후, 피곤하군."
이거 사기당한 거 같은데.
아니, 사기당한 거 맞잖아.
장소는 휴게실, 지금은 간식 시간.
즉 휴식시간이라는 말이었다.
원래라면 원활한 오후 활동을 위해 피로를 푸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캐서린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간식을 기다리는 그 잠깐의 시간에도 짬을 내어 각종 서적과 두루마리를 읽고 기록하며 재료들을 조합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피곤함이 진하게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야 일주일을 넘게 철야로 근무하고 있다면 당연하지.
각종 마법 도구를 제작/보수하고, 포션을 만들고, 서적과 문서를 확인하며 필요한 내용을 복기, 창고에 남은 재료의 현황을 조사하고 그에 맞춰서 추가 발주를 넣어야 하는 등 할 일은 차고 넘쳤다.
아니, 예시로 든 앞의 세 일은 그렇다고 쳐도 나머지는 그녀 정도의 대마법사가 할 일은 결코 아니었다. 급수, 실력이 딸리는 다른 마법사들을 부리면 되는 일이었고 그게 당연했다.
그런데 왜 안 해도 되는 일을 하고 있느냐?
이유는 간단했다.
"제길. 마법사가 부족하다고는 했지만, 없다는 말은!"
캐서린은 순간 터져 나오는 울분에 읽고 있던 책을 내려쳤다.
그렇다. 목적 이외의 이유로 방문하기 꺼리는 아이스랜드는 마찬가지로 마법사들도 어지간해서는 방문하기를 꺼리는 땅, 이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무려 공작에게 고용되는 일이었다.
페이는 빵빵하다 못해 넘치며, 대우도 당연히 최상급.
인데 사람이 없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사실. 문제는 이미 발생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쩐지 대우가 너무 좋다는 것에 의심부터 해야 했는데."
지원 요청을 받아서 출장 갔다가 그대로 산화해버렸다던가.
그리하여 지금 전속 마법사는 딱 한 명.
캐서린 혼자였고 그녀는 지금 수면 시간이 정말로 절실했다.
현자의 경지에 다다라 불로를 이룩하면 뭐하나.
피로가 사라지는 건 아닌데.
"후, 그나저나 메리 이것은 간식을 가지러 간다고 해놓고서 대체 언제 오는 거지?"
간식 생각을 하자 캐서린은 그동안 쌓인 피로 때문에 생긴 편두통이 스르륵 가시는 것을 느꼈다.
그래, 간식. 그녀가 고용한 카렘이라는 전직 농노 꼬마는 처음 시작은 얼떨결에 무심코 고용했지만, 지금은 그녀의 생활에 결코 빠트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업무 때문에 마법사의 탑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
밤을 새워가며 각종 문서와 마법 재료 더미에 파묻혀 언제 끝날지 모를 업무에 치이는 나날에 그녀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은 오직 맛있는 요리와 달콤한 간식들뿐.
익숙하게 먹어온 바삭하고 부드러운 타르트와 팬케이크부터 시작해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카스텔란 같은 디저트들까지.
이렇게라도 스트레스를 못 풀었으면 진작에 뒤엎었다.
진짜로.
똑똑똑.
그리고 휴게실의 문을 두드리는 일정한 간격의 노크가 세 번.
소리가 들리자마자 캐서린의 피로에 찌들었던 표정은 순식간에 산더미 같은 과자를 발견한 어린아이같이 변했다가 얼른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며 냉정함을 유지했다.
추태를 보일 수는 없지.
"그래, 얼른 들어와라!"
철컥.
"아타니타스님. 오늘도 고생이 많으십니다."
"계약자. 간식을 대령했습니다."
그녀가 직접 고용한 전속 요리사와 브라우니가 들어왔다.
"키티. 내가 왔다!"
그리고 그 뒤에 투실투실한 볼살이 무척 탐스러운 금발의 여자아이가 빵빵한 모피를 둘둘 두른-
"응? 아니, 잠깐. 알리시아 공녀!?"
"이히. 그렇다. 알리시아다."
캐서린이 당황하자 메리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녀들의 눈길을 피해 숨어드신 모양입니다.”
“....일단 자리를 준비하도록.”
*
*
*
오븐에서 전부 구워진 것으로 커스터드 푸딩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타지 않게 구운 것만큼이나 식히는 과정 또한 매우 중요했다.
분명 완성되기는 했지만, 아직 푸딩이 따뜻뜨거운 상태로 엎었다간 그대로 죽이 되어 흐를 위험성이 높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냉각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차가운 기온에 피부가 오그라드는 것처럼, 영하의 기온에 물이 얼어붙는 것처럼.
그 과정에서 용기에 담겨있던 푸딩은 팽창하고.
컵 안쪽에 발라놓았던 버터의 기름기에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밀어내며.
접시 위에 그대로 엎어 부드럽게 흔들어주면-
퐁-
"자, 이것으로 커스터드 푸딩. 완성입니다."
탱글탱글한 연노랑 빛의 푸딩의 위에 일체화되듯이 섞여 얹어진 진한 캐러멜 소스.
미처 섞이지 않은 소스는 그대로 새벽 안개처럼 푸딩의 매끄러운 표면을 타고 새하얀 접시에 스르르 고여 푸딩의 밑에 또 하나의 층을 만들었다.
"오오오, 이제 먹어도 되는 건가!?"
"예. 공녀님. 완성입니다."
"어, 어떻게 먹어야 하지!?"
"여기 작은 숟가락으로-"
라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알리시아는 행동했다.
먹잇감을 낚아채는 맹수처럼 재빨리 작은 숟가락을 낚아채고는 크게 한 귀퉁이를 퍼 올려 입으로 가져갔다.
진한 캐러멜 소스가 얹어진 푸딩이 공녀의 입으로 땅에 스며드는 물처럼 미끄러지듯이 들어가는 순간까지 카렘과 메리, 그리고 푸딩을 냉각시키는 캐서린까지 모두 공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고용주를 아무렇지도 않게 부려 먹는다고 투덜거리던 마법사는 어디로 갔는지.
그러거나 말거나 눈을 감고 신중히 맛을 보던 아이스랜드 공작의 장녀 알리시아는 충격이라도 받은 듯 몸을 굳히며 눈을 떴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감정이 희열과 함께 두 눈에 담겨있었다.
"맙소사! 대체 어떻게 이런, 이런 불가능한 촉감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알리시아 공녀. 맛은 어떻지?"
냉정한 표정에 미처 숨기지 못한 긴장감과 기대감이 서린 눈빛으로 캐서린은 얼른 먹고 싶다는 듯 푸딩이 담긴 구리컵에 냉각 마법을 펼치는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알리시아는 도저히 지금 느낀 맛과 감촉을 믿기 힘들다는 듯 다시 한번 푸딩을 한 귀퉁이 잘라 먹었다.
"입술에 닿는 첫 번째 감촉은 커스터드 타르트의 가장 부드러운 필링과 비교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지."
"시작에 불과했다니. 대체 무슨 말을-"
"마치 엄마님이 읽어주시는 동화에 나오는 마녀의 과자가 분명 이런 맛일 거야. 맙소사. 비교할만한 음식이 고작 케이크와 타르트, 잼뿐이라는 것이 한탄스러울 지경이다!"
나이가 어린 카렘의 가슴팍에도 안 닿을 것 같은 작은 여자아이가 귀여운 예시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자신의 부족한 어휘력을 한탄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것은 늦봄의 햇살을 받은 눈보다도 빠르고, 탄탄하기는 마마의 피부보다도 부드럽다. 이, 이건. 맙소사. 키티!"
"키티가 아니라 캐서린."
"그동안 혼자 이런 고귀한 것을 먹었단 말인가!?"
"후후후. 내 전속 요리사는 무척 실력이 뛰어나지. 덕분에 하루하루를 버틸 수가 있어."
나이에 맞지 않게 자랑하던 캐서린이 갑자기 현실로 선회해 철야와 초월근무로 인한 암흑을 내뿜기 시작했다.
카렘과 알리시아는 순간 움찔했지만, 메리는 브라우니 경력이 어디 가지 않는다는 듯 익숙하다는 듯이 식기를 세팅하고 카렘을 바라보았다.
"카렘 후배. 어서 계약자를 위한 푸딩을."
"아, 잠시만요.“
사회인의 암흑에 스턴당했던 카렘은 그 말에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재빨리 캐서린이 식힌 차가운 구리컵을 새하얀 접시에 엎어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그렇게 하나, 둘, 셋. 퐁! 소리와 함께 푸딩이 컵에서 빠져나왔다.
접시를 받아든 메리가 푸딩을 한 숟가락 퍼서 초과근무에서 비롯된 어둠을 내뿜는 캐서린의 입에 넣었다.
"흠, 이 맛은!?"
혀에 푸딩이 닿자마자 반사적으로 입을 닫은 순간, 그 찰나의 압력만으로 푸딩은 형체가 있는 듯 없는 듯 부서지며 미끄러졌다.
졸인 캐러멜과 함께 느껴지는 은은한 단맛이 목 너머로 미끄러지며 넘어가는 순간 올라오는 진한 우유 향에 피로와 스트레스로 과열되던 캐서린의 머리는 진정했다.
당분이 보급되어 편두통이 가시며, 메리가 다시 한번 한 숟가락을 내밀었다.
"알리시아 공녀의 말이 정확해. 여태까지 이런 물건을 먹어본 적은 단연코 없다."
"키티! 그대도 내 말의 뜻을 아는구나!"
"키티가 아니라 캐서린. 휴, 정말이지 내가 이것 때문에 버티는 거지 아니었으면 이놈의 망할 것들을 죄다-"
순간 캐서린은 아직도 산더미처럼 남은 업무들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식사와 간식은 맛있고 늘 새로웠지만 그렇다고 인력 부족과 초과업무에서 오는 원한, 반쯤 사기당했다는 심정에서 오는 원한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카렘은 메리의 손짓에 재차 과열하려는 캐서린을 진정시키며 걱정했다.
"자아, 자. 간식은 아직 충분히 있으니 마음껏 드시죠."
"오, 그래! 하나 더!"
"알리시아 공녀. 초대받지도 않았으면서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푸딩은 많으니까 부족할 일은 없겠네요."
카스테라를 처음 선보였을 때 캐서린이 폭주해 다섯 통과 머랭 한 그릇을 모조리 먹어치웠던 것을 생각해 카렘이 준비한 푸딩의 양은 상당했다. 메리가 옮긴 쟁반의 밑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니지, 지금 저 심통은 혼자서 다 먹으려고 했는데 거부할 수 없는 손님이라는 이름의 불청객이 뺏어 먹어서 그런 것에 가까운 것 같은데....
알리시아는 준비해주는 시간을 기다릴 수 없었다는 듯 스스로 푸딩을 솜씨 좋게 접시에 담아 음미하기 시작했다.
"우으으응! 맨날 이런 것을 먹을 수 있다니. 부럽구나."
"하, 그렇게 말해도 내 요리사는 안 넘긴다."
"키티!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내가 선고용 한 요리사를 탐내지 마라!"
캐서린은 어림도 없다는 듯이 알리시아의 요구를 단칼에 뭉개버렸다.
그동안 카렘은 조심스럽게 푸딩을 준비해 한술 떴다.
"키티. 돈! 재료! 원하는 것을 말하여라!"
"키티가 아니라 캐서린. 후후, 그리고 당장 마법사를 추가로 고용해준다고 해도 안 넘긴다."
음, 안심되는데. 갑자기 업무 지역이 바뀔 일은 없겠어.
조금 전까지 피로에 찌들었던 모습은 어디 갔냐는 듯이 열불을 터트리며 알리시아의 협상 시도를 모조리 쳐내는 모습을 보자 카렘은 안심하며 푸딩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