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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야 조금 갑작스럽지만 이렇게 가족이 된 것도 인연인데... 다시 한번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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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민이 오른손을 어색하게 내 앞으로 뻗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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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재밌었겠어요? 그렇게 좋은 관람석에서 드라마 한 편 즐기시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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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고의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어떻게 나와야 하는데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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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세민 오빠 생각이고. 아니 세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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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섭섭하다...! 이왕 불러준 거 계속 오빠라고 불러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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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서로 이름으로 부르는 문화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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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문화는 서로 받아들여야 하는 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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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거 봐서. 근데 안 바빠요? 시험기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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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이고 아닐 때가 어딨어. 그냥... 설마 이거 나보고 축객령 내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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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가 아예 없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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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에서만 계속 만나봤지 우리 이렇게 대면으로 만난 건 사실 처음인데 너무 박하다 나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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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재수사요청서 저 대신 제출해주신 점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도와주겠다는 게 꼭 빈말만은 아니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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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아프다. 냉동실에서 얼음을 가져와 비닐봉투에 잘 싸매서 이마 위에 얹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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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타고 전해져오는 냉기가 달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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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전: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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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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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티솔 수치 확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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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티솔을 알아? 와... 넌 진짜 뭐든지 알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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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아는 건 아니에요. 아는 것만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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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정상수치네 이 정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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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방금 울었던 건 내 신체를 정상상태로 되돌리기 위함이었다고 간주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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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천교수님은 어디 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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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교수는 내가 잠시 세수를 하러 화장실에 갔을 때, 세민과 뭐라뭐라 얘기를 나누더니 급히 집을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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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우리 아빠 만나러 갔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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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교수님이 댁네 아버지를 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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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우리 아빠가 아마 발푸르기스 사건을 담당하신 검사셨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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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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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에 찬 나머지 내 사고회로가 돌아가는 속도보다 손이 먼저 뻗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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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나는 청년의 멱살을 잡고 소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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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왜 지금 말해요! 하, 악역이 여기 있었네...! 어쩐지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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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마치 전생에서 데뷔탕트 나이의 영애들이 즐겨본다는 소설 ‘원수의 아들과 결혼했습니다’ 플롯과 똑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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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쩌나? 나는 나를 구해준 은인의 부모라도 언제든지 죽일 각오가 되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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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야! 우리 아빠는 그때 제주도에서 사건 맡고 계셨거든? 애초에 제주지검에 계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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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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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제주지검 차장검사셨어 아마도... 한번 찾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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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옷깃을 살며시 놓아주었다. 셔츠 깃이 구겨져있길래 오러로 살짝 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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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려는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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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완전 뻔뻔...! 흠 아무튼 전국적으로 크게 일어났던 일이니까 지금 서울중앙지검장 하고 계신 아빠한테 찾아 가보시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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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검장... 그것도 서울지검장까지 하실 분이면 전혀 연관이 없다고는 말 못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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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우리 아빠를 악역으로 몰아세우지는 말아줄래...? 인간적으로는 정말로 나도 싫어하지만 적어도 도덕적이고 청렴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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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교수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것까지는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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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앞에서 말하는 소리가 현관문을 뚫고 들어올 정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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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로 귀를 기울여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만두었다.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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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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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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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고 말이 없는 형국이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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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봤으면 이제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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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하다 정말. 너희 아버지 전화로 연락 받고 PK(poly-klinic) 도중에 뛰쳐나온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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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 문맥상 페널티킥은 아니겠지? 아니 페널티킥이라도 문제는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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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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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지 당연. 그러니까 나랑 조금만 놀아줘. 큰아버지한테 부탁받았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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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가면서도 내 걱정 안 할 인간이 아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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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세민한테 나를 봐달라고 신신당부 했었나보다. 그래서 여지껏 시간을 질질 끌었던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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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 영상 찍는 거나 좀 도와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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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영상? 아 뭐 대회 나가서 폭로하겠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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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그러니까 누워있지만 말고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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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민의 팔을 잡아당겨 일으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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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책장 높은 곳에 놓여있는 카메라를 가리키며 꺼내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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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데까지 오러를 쓸 필요는 없었으니까. 노동력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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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전원이 들어와 있는지 확인하는 동안 세민은 소파에 앉아 나를 계속 관찰하듯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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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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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왜요. 계속 귀찮게 굴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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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보고 있자니 신기해서 말이야. 너도 스스로 널 천재라고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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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성숙한 것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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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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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마나 포션의 부작용이든 뭐든 알아서 생각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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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으면 완전 학계에 보고될 일인데 말이야. 아카데미는 다닐만 해? 거기에도 너같은 천재들 본 적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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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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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부회장 하던 귀여운 후배가 나한테 물어본 질문이었거든. 문득 궁금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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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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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에 내가 학생회장이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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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학교 수준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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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설정하던 손이 잠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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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번이라도 천재를 보았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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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에우프라시아 테라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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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탑의 마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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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카이젠 제국에서 가장 내로라하는 인재였으며, 학문의 근간이 되는 마법학은 물론이고 경제학, 정치학, 통계학, 천문학, 논리학, 대수학, 물리학, 의학에 모두 통달한 비인간적인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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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동안 삶을 영위해 단순히 아는 지식이 많을 뿐인 파랑 도마뱀의 경우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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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인간의 몸으로 50년 만에 쌓아 올린 지식의 상아탑은 가히 범접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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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상대성이론이니, 양자역학이니 첫 번째 생애에서 얄팍하게 배운 지식들로 그녀에게 대들려고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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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자기 기억력 좀 좋다며 꺼드럭대는 애가 왔다고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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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 천재론은 틀렸다는 사실을 절실히 체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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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나 병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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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신은 공평하게도 그녀에게 인격파탄자와 알코올 중독자라는 특성을 내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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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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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카데미에는 없고. 아는 사람 중에는 한 명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자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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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은 그만하고 세민에게 카메라를 쥐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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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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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찍지 말고... 아니다 일단 찍어서 구도 한번 봐주세요. 어떻게 나오는지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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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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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찰칵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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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찍고 있는 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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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마이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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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찍은 사진들을 되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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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정상적인 사진들 사이에서 내 콧구멍이 화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잔뜩 클로즈업된 사진을 발견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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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치지 말고 똑바로 해요. 지금 진지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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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알겠어! 근데 대사는 어떻게 하게? 생각해둔 거라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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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고민 중이에요. 아이디어라도 좀 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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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말주변이 없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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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써 생긴 오해가 정말 끊임없이 많았고, 때로는 말을 안 해서 벌어진 문제들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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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수학 공식을 가지고 마법진을 짜는 것도 하나의 재능이듯이, 언어를 조합해 대중들을 설득할 문장을 구성하는 것 또한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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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언변이 화려하기까지 했다면 난 전생에서 히틀러가 될 수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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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다구리 맞고 죽는 결말은 똑같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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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과라서 글쓰는 데에는 재주가 꽝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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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도움이 되는 게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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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한테 그 말을 들으니까 오빠 가슴이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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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슬쩍 찔러봐도 오빠라고 안 불러요. 결국은 시작이 중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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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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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뒷부분이 망했어도 처음만 어떻게든 잘 만들어보면 괜찮은 영상이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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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인터뷰를 하게 되면, 미리 준비해둔 영상을 틀어주었을 때 대중들은 어떤 모습을 가장 먼저 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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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를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을 먼저 떠올리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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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함? 신기함이라 함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지? 적어도 동물원의 기린을 보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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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지금 열네살이라 해도 믿지 못 하겠다하는 사람이 허다한데 대뜸 아바타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대중들이 쉽게 납득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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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벗어난 일이 벌어지면 일단 부정하고 보는 게 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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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평소의 모습을 그대로 현실에서 그대로 구현하는 게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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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첫인상이 어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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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민에게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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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나를 객관적으로 봐줄 사람이다. 천교수는 신뢰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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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서 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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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에서 말고요. 그냥 제가 일곱살인 걸 알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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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한테 사기치는 줄 알았지. 보육원에 가서 네 이름까지 확인했을 때 간신히 납득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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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렇게 다들 느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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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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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부터 7년동안 캡슐에 갇혔는데도 생존했다는 사실은 대중들이 받아들이기에 너무 비현실적인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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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감정에 호소하는 건 항상 좋은 방법이었지. 오늘 큰아버지께 했던대로만 하면 딱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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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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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미안...! 그러기는 싫구나 그럼 어쩌지 으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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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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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제 두 번 다시는 울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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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아를 만날 때를 제외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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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거실은 조금 이상하니까 이왕 네 방에서 찍는 게 어때? 그 편이 더 자연스럽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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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차이가 있겠냐만은...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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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민을 내 방으로 인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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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아직 정리를 하지 않아 종이뭉치들이 너저분하게 어질러져 있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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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디딜 공간은 충분하니까 뭐 크게 상관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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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뭐야? 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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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민이 노란 포스트잇을 가리키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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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1049하고 1051. 두 숫자의 공통점이 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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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둘 다 소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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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민의 대답이 바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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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이처럼 두 값의 차이가 2인 소수들을 쌍둥이 소수라고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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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학이나 물리에 이런 이름들이 붙어있는 걸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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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가 2이면 쌍둥이 소수, 4면 사촌 소수, 6이면 섹시 소수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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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걸 물어보는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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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민이 다시 내게서 멀찍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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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벽에는 낙서를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포스트잇을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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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퀴를 천천히 돌아 벽면 전체를 감상하고는 입을 천천히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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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벽면 전체에 써 있는 거... 다 무슨 내용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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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소수가 무한히 많을 것이다라는 증명을 담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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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혼자 인터넷에서 보고 배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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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증명이 된 문제를 왜 풀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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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그저 퍼즐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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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1000 피스 퍼즐을 사서 맞추어볼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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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을 처음 맞추려고 했을 때 느껴지는 짜릿함과 생동감. 그 경험은 두 번째 이후에서는 다시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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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풀렸으니까 제가 푼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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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닌 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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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들은 세민은 심호흡을 크게 한 뒤 무릎을 굽혀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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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야... 방금 난 엄청난 진실을 하나 깨닫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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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하도 진지한 얼굴을 내게 들이밀길래 내 몸이 저절로 뒤쪽으로 기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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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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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힘들게 대중들을 설득하려고 할 필요가 없어. 그냥 네가 이 대한민국에 다시는 없을 보물이라는 걸 보여주기만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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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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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민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두 팔을 하늘 향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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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너를 지켜내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만들어버리면 그만이잖아? 그럼 대중들이 알아서 증명해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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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같이 왜 그래요. 뭐 잘못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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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민이 내게 귓속말로 자신의 계획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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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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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잘못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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