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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갑자기 목이 마르네... 저 잠깐만 화장실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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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민은 점점 숨이 조여오는 분위기에 빨리 이 자리에서 떠야겠다는 생각으로만 가득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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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가 맞지 않는 말에도 굳이 지적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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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민이 잠시 극에서 퇴장하고 그 자리를 나메가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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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다리로 높은 의자에 올라타는 모습이 능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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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의자를 앞으로 끌어당긴 뒤, 식탁 위에 놓인 우편물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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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말해야하지? 애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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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차근차근 범위를 좁혀나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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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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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다만, 뭐가 뭔지 잘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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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것이다. 애초에 이건 통지서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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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나메와 세민은 어떻게 아는 사이이고, 서울중대범죄수사청에 재수사요청을 신청한 이유는 또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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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을 촉구하는 천교수의 눈빛이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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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나메의 입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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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해요. 방화대교 폭파사건에 대한 재수사 요청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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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교수의 주름진 눈이 커졌다. 그걸 왜 네가? 라는 속마음이 말하지 않아도 노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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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많은 유족분들이 재수사 요청을 했음에도 아무런 목적도 없었던 과시용 테러로 결론이 났죠. 아니 사실 결론조차 나지 않았어요. 그랬으면 이런 반송 우편 따위 날아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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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의 말에는 여전히 공백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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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천교수는 계속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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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그날 UN군이 한국에서 합동훈련을 하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고, 어떻게 그렇게 테러 참사 현장에 빨리 도착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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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 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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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가 손가락으로 식탁을 계속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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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천교수를 한번, 화장실에서 반쯤 문을 열고 엿보는 세민을 한번씩 번갈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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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과 UN군은 즉시 테러를 주도한 범인들을 잡아내, 숨겨진 본거지까지 소탕했다고 알려져있지만 사실 전 반대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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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희미해졌을 법한 사건이 재차 천교수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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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퍼즐조각을 제대로 짜 맞추는 것은 어려운 게 아니라는 듯이, 나메의 손가락이 비로소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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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탕작전은 이미 한참 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었어요. UN군은 발푸르기스 소탕작전에 실패했고, 잔당들이 도망친 결과로 방화대교는 무너져버린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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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순이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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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도 간간이 넷상에 떠돌던 음모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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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UN군과의 완벽한 대처로 테러단체를 대한민국에서 완벽하게 척결해버렸다는 뉴스가 확산되면서 그 주장은 힘을 잃고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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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제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가신다는 눈빛이네요. 사실 한마디면 다 설명이 가능한데... 천교수님께는 언젠가는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막상 입을 열려니까 조금 어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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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단다. 계속 기다리고 있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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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맛자락을 움겨잡은 나메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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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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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태어나고서부터 발푸르기스에 납치되었고, 그 소탕 작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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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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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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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나메의 폭로는 거침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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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저는 7년 동안 어느 외딴 캡슐에 갇혀있었어요. 세민 오빠는 절 거기서 구해준 사람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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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민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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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자주 챙겨보시니 아실 수도 있겠네요. 길고 긴 인질 구출작전 동안 사람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캡슐 속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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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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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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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7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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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시대에는 AI의 도움과 함께라면 한 사람이 특정 분야에 대성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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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7년만에 겨우 세상에 나왔는데... 저는 인질 같은 게 아니었나봐요. 한국인조차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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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교수도 나메를 입양 서류를 작성했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요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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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당시 무국적자인 상태였고, 천교수는 신분이 신분이다보니 자동화된 행정절차 덕분에 그녀에게 곧바로 한국 국적을 취득시켜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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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교수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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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는 20년도부터 자국으로 쏟아지는 전쟁 난민들을 배척하는 정책을 펼쳤고, 이는 수많은 불법체류자들을 양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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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전히 한국 곳곳에는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것이 자녀에게까지 대몰림 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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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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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교수는 말문이 막혔다. 막힐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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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머리가 복잡해 터질 것 같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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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모든 질문과 답변이 행해지며 최후에 다다른 결론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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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진작 말하지 않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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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무의식적으로 꺼내버린 천교수조차도 방금 한 말이 얼마나 나메에게 잔인하고도 책임감 없는 말인지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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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가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하려는 것보다 나메의 말이 더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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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묻지 않으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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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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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제 딴에는 배려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렇게 돌아올 줄 천교수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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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가 담담히 내뱉는 말에 돋친 가시가 너무나 아파서, 그의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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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하면 천교수님 오늘 밤에 잠 못 드시겠죠? 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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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곱 살 소녀는 이조차도 웃음으로 무마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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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교수가 다시금 고개를 들자, 나메가 한쪽 팔을 식탁에 올려놓고 턱을 괴었다. 그것도 잠시, 머리가 스르륵 내려가 식탁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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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선은 과일바구니에 고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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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인머스캣 한 알을 집어 요리조리 만지작거리다가 입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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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기도 하고, 테러리스트들은 전부 고국으로 송환돼 사형이라는 합당한 벌을 받았고, 무엇보다도 저는 이 집이 좋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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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버둥치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그저 주어지는 삶이 이제는 감개무량한 나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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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종을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 껍질이 얇고, 씨가 없으며, 당도도 높은 이 과일처럼, 입에 넣기만 해도 안락한 삶이 주어지는 상황이 싫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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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게 나메의 본심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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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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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을 치고 벌떡 일어선 나메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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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솔직히 화나잖아요! 7년 동안 캡슐에 갇혀서 제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고 다녔는지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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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을 회상하면 어이가 없어서 이제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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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못 먹고, 아무것도 마시지 못하고... 배에서는 맨날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 어떻게든 살려고 포션이라도 사서 마셨어요...! 마나는 인터넷이랑 연결만 되어 있으면 언제든지 전달이 가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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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가 의도적으로 말하기 꺼려했던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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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교수에게도 숨기고 넘어갈까 싶었지만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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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마나 살 돈을 벌기 위해... 기억에도 거의 없는 우리 엄마랑 게임을 하고... 엄마는 흡... 돌아가셨는데... 그래도 나라도 엄마 몫까지 살아야하니까 계속 게임을 해서 돈을 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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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나메의 눈이 눈물로 글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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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칠치 못한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해 소매로 닦아보지만, 어린아이의 몸으로는 한번 터진 울음보를 되돌리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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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는데...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면... 이건 뭔가 잘못된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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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자신에게 전생의 기억이라도 없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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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두 모녀는 사이좋게 죽어버릴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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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돌이 겨우 지난 아기에게 게임을 한다는 기초적인 지식이 있는 게 더 이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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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그녀들을 기억해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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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메의 갈 곳 없는 분노는 대상을 찾느라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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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제 마음에서 곪아 터져서 문드러지기 전에, 이를 표출할 대상을 찾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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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를 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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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을 은폐한 이들은 마땅한 벌이야 받을 수 있겠지만 피해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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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메는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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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윽... 나라도 안 하면... 히끅... 불쌍한 우리 엄마는... 뭐가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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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녀로 환생했을 때부터 주어진 완전기억능력은 저주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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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저주는 대를 이어 여기까지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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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조차 제대로 형성되지 않을 시점의 기억이 이따금씩 떠오를 때마다 사무치게 슬퍼져서 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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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나메를 향한 설아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모든 생애를 통틀어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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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누군가가 나서서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잖아요! 흐끅... 거짓말을...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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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눈물이 앞을 가려 시야가 어지러운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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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조명을 가리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눈을 닦으려는 찰나에, 그녀를 안아 달래주는 사람이 있었다. 천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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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몰라줘서 정말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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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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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참혹한 일을 겪었는데도 이렇게 씩씩하게 잘 자라줘서 대견하구나... 앞으로는 나메가 힘든 일은 하나도 없게 만들어줄 거라고 꼭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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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안 물어봐서 서운한 건 맞아요... 조금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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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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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둘도 없을 고난을 겪은 소녀를 위로하는 자의 대사는 투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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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때로는 그런 직설적인 감정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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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눈을 감고 지금은 일곱 살짜리 어린이의 감정을 계속 만끽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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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전생의 기억이 없었더라면 더 편하게 울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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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무슨 바람이라도 나셨습니까? 병호 형님이 나한테 먼저 전화를 다 걸고. 목소리 듣는 것도 몇 년 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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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장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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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호 검사가 자신의 전화통화를 만류하려는 비서에게 물러나라는 손짓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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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도 못하고 꼬리를 내려버리는 여성은 안중에도 없듯, 그는 자신의 형이 먼저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에 짙은 호기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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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 일이 있었지. 하하 왜, 교수 되더니 뒤늦게 정치에라도 관심이 생겼나? 곧 있을 추모식에 리본 달고 참여라도 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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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석에서조차 웃음 하나 없는 사람이 대뜸 웃어대는 모습에 비서는 어리둥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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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천정호 검사의 눈썹이 기이하게 올라가고, 표정마저 심각하게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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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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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렇게까지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아주 큰 일이 벌어질 징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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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 사례로는 원일영 전 서울시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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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조용한 사람이 화내면 더 무섭다고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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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천검사의 비서는 새벽 내내 쏟아지는 폭언을 듣고서 오전 일곱시가 돼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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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앞으로 펼쳐질 고된 나날들을 떠올려보며, 마음속에만 묻어놓았던 사직서를 조용히 꺼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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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같이 화를 내기는커녕, 침착하게 폰을 내려놓은 천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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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말은 더 가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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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비서... 지금 당장 경비업체 13층으로 불러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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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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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큐리티 몰라 시큐리티? 등에 에스원인지 ADT캡스인지 달고 있는... 아무튼 여기 1층에서 놀고 자빠진 어린 애들 싹 다 불러 모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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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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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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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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