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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보기만 해도 엄청 달다. 그거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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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쪼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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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가게 옮긴 거 깜빡하고 있었어! 헤매게 해서 미안해 그러니까 삐진 거 풀어주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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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섭게 노려보는 나메의 눈초리에 서마루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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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자바칩이 빨대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동안, 마루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담긴 얼음들을 빙빙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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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대에서 떼어져 나온 앵두같은 입술이 우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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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진 건 아니고, 시간 약속을 안 지킨 쪽에 대해 조금 생각해보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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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장님이 오늘은 빨리 안 끝내주셔가지고... 그래도 최대한 빨리 뛰어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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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의 말마따나 그의 머리는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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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가 옷도 갈아입지 않고 흙 묻은 작업복 그대로 카페에 들어왔을 때, 나메는 어느 정도 마루의 사정을 이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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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금 다니는 직장. 때려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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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갑자기? 아무리 그래도 여기만큼 버는 데가 얼마나 있다고. 반장님도 엄하시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은 좋은 분이야. 너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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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를 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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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의 말이 채 끝맺기도 전에 나메는 종이 한 장을 180도 돌려 마루쪽으로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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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튜브 공동 사업 계약서? 우리 유나가 말했던 게 이거였구나. 지인이 방송을 한다고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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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시 스트리머 ‘노나메’(이하 ‘갑’이라 한다)는 브이튜브 편집자 ‘ ’(이하 ‘을’이라 한다)와 브이튜브 공동 운영 중 발생되는 수익배분을 목적으로 다음과 같이 공동사업에 관한 계약을 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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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종이를 찬찬히 훑어보는 도중 나메가 잘못된 사실을 정정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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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제가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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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와 어린 나이에도 대단하네! 요즘 초등학생들은 꿈이 다 인터넷 방송인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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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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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내가 나메한테 빚진 게 있는데 굳이 이렇게 계약서까지 써가면서 거창하게 안 해도 돼. 돈 같은 건 안 받고도 간단한 편집 정도는 해줄 수 있으니까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와 근데 이거 계약서는 대체 어디서 뽑아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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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신기하다는 듯이 카페 조명에 종이를 비추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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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의 눈이 순간 가늘어졌다. 시간도 안 지켜, 진지함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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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어른스러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진짜 믿고 맡겨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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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유나와 유나네 가족을 위한 일이다 생각하고 나메는 가방에서 두툼한 봉투를 마루에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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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받아요. 이거 받고 오늘부로 일 그만뒀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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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뭔데 이거는? 흐음... 으아아아아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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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를 열자마자 반겨주는 노란 지폐 다발에 마루의 의자가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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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당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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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아니꼽게 쳐다보던 점원의 안색이 더욱 안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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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가 대신 고개를 숙여 사과해주며 마루를 일으켜 세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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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는 짓이에요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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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돈이... 너 이 돈 들고 여기까지 혼자 찾아온 거야? 아니 그러다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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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에는 도저히 어린 아이가 갖고 다닐만한 액수의 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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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짜리 지폐도 저렇게 많으면 뷔페를 가고도 남을 금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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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선금 500만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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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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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컴퓨터를 사든 캡슐을 하나 더 사든지 하세요. 유나랑 가서 외식해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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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알기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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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의 표정이 뻣뻣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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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해도 서너장을 만지는 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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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아무렇지 않게 건네주는 나메의 의도를 마루로서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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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요. 그러니까 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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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의 천진한 표정에 마루는 이마를 탁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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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이 돈은 받을 수 없어. 신경 써 준 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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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오해가 있나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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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말하다 말고 프라푸치노 컵을 입에 가져다 대 홀짝였다. 그리고 다시 뗀 그녀의 입술 주위로 하얀 크림이 작게 묻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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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진지하게 마루 오빠를 제 편집자로 고용하려는 거예요. 그냥 기부나 자원봉사 차원에서 돈을 막 주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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냅킨으로 입가를 닦아낸다. 그 사소한 행동에서도 마치 유럽의 귀족을 보는 것처럼 기품이 흘러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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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달인만큼 영상을 올려도 수익이 없을 수 있어요. 그래서 드리기로 한 거예요 5백만원. 이후에 나오는 수익은 한 달에 5백만원까지는 전부 오빠가 가져가세요. 그 이상은 계약서 보시면 알겠지만 5대5로 정하기로 했어요. 5할은 나중에 유나를 위해서 제가 맡아놓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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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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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의 한껏 진지해진 말을 듣고 다시 찬찬히 계약서를 읽어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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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장난으로 하는 말은 아니었는지 계약서에는 수익 배분뿐만 아니라 이미 세세한 조항까지 전부 다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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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내리자 여덟 살 꼬마 어린이의 얼굴이 빼꼼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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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할 마음이 이제는 생기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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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윽한 미소를 흘리는 나메에게 마루는 머뭇거리다가 답변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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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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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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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거절하리라는 예상까지는 하지 못 했는지 나메가 곤란하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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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짱을 끼며 완고한 기색을 내비치는 모습에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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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마루의 요지는 결국 단순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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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투잡을 뛰었으면 뛰었지 현재 생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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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얼마나 버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하는 일로도 충분히 먹고 살만하고, 불확실한 곳에 투자할 여유도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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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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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메는 재차 봉투를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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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그거 알아요? 저 이거 하루만에 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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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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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하루도 아니지. 출금한도가 일일 500이 최대라서 이것보다도 더 많이 벌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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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진짜? 도대체 무슨 방송을 하길래? 키즈채널이 그렇게나 돈을 많이 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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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방송 시장을 너무 얕본 것인가. 상상도 못한 진실에 마루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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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거면 유나에게 짜왕이나 먹여 볼걸... 라며 영문 모를 말을 해대는 서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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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즈채널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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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잠깐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녹화 메모리를 테이블 옆에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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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을 띠던 홀로그램이 점차 하얀색 배경으로 바뀌면서 바로 어제 플레이했던 게임 화면들이 정신없이 휙휙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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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오아는 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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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옛날에는 한창 많이 했었어. 안 한 지는 꽤 됐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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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 분량의 영상을 전부 보지는 않았고 대충 5분 내외의 시청 끝에 영상을 일시정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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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방송 시청자가 2만명이면 엄청 많은 거 아니야?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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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적다고는 볼 수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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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네가 대단한 애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점점 알아갈수록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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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다는 거예요 만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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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짜증을 불러 일으키는 단계까지 오자 나메가 버럭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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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게. 아니 오히려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너한테 내가 고마워해야지. 그런데 나로도 정말 괜찮은 거야? 실력 좋은 편집자라면 얼마든지 더 구할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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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말해줬어요. 자기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그림을 잘 그린다고. 영상이야 뭐 적당히 잘라서 올리면 되고, 편집실력은 자연스럽게 늘 테니까요. 제가 중점적으로 부탁하는 건 썸네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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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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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브이튜브 앱을 켜서 실시간 인기 동영상 목록을 쭉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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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인게임 화면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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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지 말고, 각 영상에 걸맞은 썸네일을 오빠가 직접 그려주세요. 저는 편집 작업이 마루 오빠한테 단순한 반복 노동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나중에 유나한테도 오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림을 보여주면서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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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럼 나를 부른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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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떨리는 눈빛으로 홀로그램과 계약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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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전에 품에서 떠나보낸 꿈이라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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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는 아직도 오빠가 멋진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를 바라고 있던데. 그 꿈을 지금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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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있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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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마루는 순간 울컥 치미는 감정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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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희생시켜야만 했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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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기회는 정말 뜻밖의 곳에서 찾아온다는 걸 절실히 느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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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예술은 감각 가능한 현상의 모방에서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현상이나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고 충분한 고찰을 거쳐 자신만의 것으로 재해석할 때 비로소 가치를 드러내니까요. 저는 오빠가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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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말을 그렇게 잘해버리면... 대체 누가 널 어린애라고 믿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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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 웃음을 터뜨린 마루는 눈 앞의 소녀를 대견하게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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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마워...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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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쑥스럽다는 듯이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며 그에게 볼펜을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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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그럼 맡아주실 거죠? 자세한 요구사항은 톡으로 다시 알려드릴 테니 오빠는 여기 싸인만 해주시면 돼요. 이거 부탁드리려고 오늘 부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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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부터 일하면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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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예요. 오늘 일은 이미 끝내고 왔잖아요. 빨리 집 들어가서 유나 맛있는 거나 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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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래도 돈을 이렇게나 받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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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돈을 드린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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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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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가져온 파일철과 영상장치를 가방에 차례대로 넣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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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억만금을 주더라도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시간을 준 거지. 그럼 가족들하고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랄게요. 어머님께 제 안부도 전해드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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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아니라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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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뒤따라오는 우정, 사랑, 추억, 행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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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기 전에 부디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를 바라면서 나메는 짐을 챙기고 카페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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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푸른 하늘에 걸린 대형 홀로그램에는 월오아 이용자들의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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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잘못 나왔다며 클레임을 걸러 간다고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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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진상손님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다짐한 나메는 다시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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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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