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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서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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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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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1교시는 언제나 마법의 주입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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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은 저번 주에 진행한 수행평가 점수 확인을 위해 시간을 할애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뜻밖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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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반에서 여섯 번째로 성적 확인을 마쳤기 때문에 일찍 자리로 돌아와 집에서 가져온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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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설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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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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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는 교탁에서 곧바로 자리로 가지 않고 일부러 크게 돌아 내 자리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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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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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가지 최고의 나이프 파이팅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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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는 왜 읽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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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데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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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간 곧바로 하교를 하지 않고 발품을 팔아본 결과 이 근처에는 마땅히 단검술에 대해 배울 장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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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차선책으로나마 나는 해외 서점에서 책을 주문해 단검술의 달인 ‘새미 프랑코’씨의 비법을 전수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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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까지 읽은 뒤에야 깨달은 거지만 여기 있는 내용들은 게임에서 도통 써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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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윤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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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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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후가 자리를 비우자 마자 유나가 쌩하고 달려와 내 옆자리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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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미없는 책을 덮어버리고 책상에 엎드려 유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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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도 나를 따라하겠답시고 똑같이 책상에 얼굴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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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스터처럼 늘어진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 진짜 말랑말랑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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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 넌 다른 애들이랑 안 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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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얘기하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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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다 게임 얘기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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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링가이즈’나 ‘브롤스타’에서 1등을 했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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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스트리머가 방송 중 ‘블록크래프트’를 하다가 버튼을 잘못 눌러 TNT로 자신의 성을 폭파시켰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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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블럭스’ 타워 디펜스 에디션 스토리모드에서 제갈량이 여포와 일기토를 벌여서 당당하게 승리를 쟁취했다는 얘기... 마지막은 뭔데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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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이나 캡슐이 없는 유나로서는 따라갈 수 없는 주제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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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하는 애들은 다 유치해. 난 그럴 시간에 공부나 더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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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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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너도 게임한다고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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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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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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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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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후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지만 유나는 그를 본체만체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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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비켜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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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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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자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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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 자리에 가서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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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보이는 서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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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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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평가 잘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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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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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점 깎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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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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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들으면 기만질이 아니냐 오해할 수 있겠지만 으레 기준이 높은 아이들은 작은 실수에도 일희일비하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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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면서 이 삐순이의 마음을 어떻게 달래줄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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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같이 재미있는 거 하고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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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할 기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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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밌는 건데? 그럼 나 서리랑 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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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진짜 안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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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예 의자에서 일어나버리자 그제서야 유나가 내 옷깃을 잡으며 만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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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욕심쟁이야 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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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생들이 반 곳곳에 무리를 지어 이야기꽃을 피울 동안, 우리는 조용하게 반 뒤편 마룻바닥에 마주보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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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뭐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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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놀이라고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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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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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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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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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등학생들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를 모를 수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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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녀가 아싸라고 해도 모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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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가 않아 혹시나 해서 폰으로 검색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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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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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둘러싼 대기 하층을 구성하는 무색 투명한 기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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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디에도 공기알을 사용해서 노는 놀이라는 서술은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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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근본 없는 세계에 떨어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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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세계를 올바르게 바꿔나가기 위한 내 첫 번째 노력에 유나가 그 타겟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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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볍게 공깃돌부터 만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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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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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다양한 색상의 적당한 플라스틱 껍데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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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면 안에 철구슬을 생성해서 넣어야하지만 어차피 무게를 맞추는 용도이므로, 대충 마나를 질량형태로 응집해서 반영구 보존 방법으로 플라스틱 안에 흘려보내면 완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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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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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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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봐 어떻게 하는지 알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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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하는 놀이는 모든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자극을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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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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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젠 황실이 놀라고, 알펜하임 성국이 경악하고, 마왕이 직접 수배령까지 내린 마약과도 같은 공기놀이를 이제부터 알려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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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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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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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론 아카데미 2학년 A반에는 여러 무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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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합해서 20명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마음에 맞는 친구들끼리 어울리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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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김한결을 필두로 하는 남자 무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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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때도 인기가 많았던 한결은 2학년에 올라와서도 자연스럽게 반 분위기를 주도하는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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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반에서 그를 싫어하는 여자아이는 많았어도 싫어하는 남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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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는, 이하루와 전누리를 중심으로 하는 여자 무리들도 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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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그녀들이 대화를 시작하면 여러 아이들이 모여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무리가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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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온갖 이상한 주제들로 오늘은 어떤 장난을 칠까 고민하는 ‘한서리’ 무리나, 시험기간만 되면 급작스럽게 세력을 불려나가는 ‘윤시후-고경원’ 무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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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가 한참 먼 3월 말에 주어진 자유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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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학생들은 자신의 선호에 따라 같이 놀 무리를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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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유나의 옆자리 아이 배요한은 조용히 책만 읽는 시후나, 중얼중얼거리는 유나 옆에 있기보다는 차라리 쉴 새 없이 깔깔대는 한결의 무리에 속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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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그롤 버프한 거 에바야. 안 그래도 지금 1티어인데 일반 공격 피해량이랑 탄속까지 또 버프 때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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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는 대체 언제쯤이나 리그에서 써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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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남자 애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하나도 모르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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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브롤스타의 패치 내역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이 게임을 하지 않는 입장에서는 외계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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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함에 결국 반을 어슬렁거리다가 교실 한구석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며 머리를 쥐어뜯는 유나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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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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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깝다. 5년 각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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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마지막. 진짜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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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2학년 중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폭풍의 전학생 노나메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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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유나가 저렇게 감정이 풍부한 아이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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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학기 초, 하필 자신의 옆자리에 서유나가 앉았을 때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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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성격이 나쁘다는 소문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는지 수업 중에 자신보고 다리를 떨지 말라는 등, 책상 선도 넘지 말라는 등 눈을 부라리는 모습에 겁을 먹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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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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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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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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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구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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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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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또 하나 차이였네. 아까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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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바닥에 누워 온몸을 비트는 동안, 나메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서 요한의 발밑으로 굴러간 공깃돌을 주우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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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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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놀이. 너도 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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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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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놀이? 요한의 인생에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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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사양하지 말라는 듯 그의 팔을 잡아끌어 차가운 교실 바닥에 생으로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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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기가 엉덩이를 타고 머리까지 찌르르 울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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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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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이지. 유나야 네가 룰 좀 소개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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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해야 돼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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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사람이 많을수록 재밌는 게임이야. 나만 믿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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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그럼 배요한 잘 들어 딱 한 번만 설명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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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무서운 표정으로 검지 손가락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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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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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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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부터 주기적으로 들려오던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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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다섯 개의 돌조각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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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씨익 웃더니 요한을 흘깃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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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1단계야. 잘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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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놀이는 초심자가 봐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전반적인 규칙 자체는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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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에서는 하나를 던지고 하나씩 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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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2단계에서는 하나씩 던져서 둘씩 집고, 3단계에서는 셋과 하나로 쪼개서 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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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가 어렵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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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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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있던 공깃돌을 하나 던져서 나머지 것들을 모두 내려놓았다. 그리고 똑같이 던져서 흩어진 공깃돌이 잽싸게 유나의 손에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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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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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비장한 표정이야 유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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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야 잠깐만 말 시키지 말아봐. 나 엄청 집중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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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을 설명하라니까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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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조각이 유나의 손을 떠나 허공에서 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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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조각들이 서로 충돌하고 회전하여 자유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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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력의 이끌림에 의해 다시 땅으로 떨어지는 것들을, 유나가 손등으로 잽싸게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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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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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룰은 잘 몰랐지만, 요한의 눈에도 방금 상황은 묘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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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나도 빠짐없이 돌조각들이 모두 그녀의 작은 손등에 안착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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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나는 여전히 마지막 과정을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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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이 절정으로 치솟는 순간, 호흡마저 멈춰버린 유나가 손등을 들어올려 운명에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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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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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묵직한 기운이 손바닥으로부터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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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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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공기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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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의 눈빛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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