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337 lines
12 KiB
Markdown
337 lines
12 KiB
Markdown
|
||
가르친다는 것은 배우는 것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행위였다.
|
||
|
||
배운다는 게 단순히 남이 물어다주는 지식을 입만 뻐끔뻐끔 벌리고 받아먹는 것이라면,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날것의 지식을 소화하기 쉽도록 씹고, 뜯고, 베어물고, 목으로 넘기기 직전에 전달해야만 했다.
|
||
|
||
굉장히 더러운 비유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동일했다.
|
||
|
||
하지만 나는 가르치는 데에는 재능이 없었는지 도저히 음식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
||
|
||
“이제는 진짜 한계야... 못 하겠다구...!”
|
||
|
||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델라가 불평불만을 토해냈다.
|
||
|
||
발럼을 쓰러뜨리는 것까지 보면 재능은 꽤나 출중해보였는데, 오히려 의지쪽이 박약한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
||
|
||
-이게 맞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
-재주는 고양이가 부리고 돈은 깐프가 버네
|
||
|
||
-아 츄르 주잖아ㅋㅋㅋㅋㅋㅋㅋ
|
||
|
||
-ㄴ정정해라 츄르도 아니고 츄르‘맛’이다
|
||
|
||
-ㅋㅋㅋㅋㅋㅋ
|
||
|
||
-악덕사장 물러가라!
|
||
|
||
아델라의 안 좋은 습관을 교정하기 위해 츄르와 당근 전략을 쓴 건 반쯤 성공적이었다.
|
||
|
||
다시 말해, 나머지 반은 실패라고 볼 수 있었다.
|
||
|
||
츄르를 정적 강화의 수단으로, 당근을 정적 처벌의 수단으로 도구적 조건형성을 설계한 것에 문제가 있었나 되짚어보았다.
|
||
|
||
예전에 클라우스에게 검술을 가르쳐줄 때는 아예 진짜 채찍을 들고 했었는데 어쩌면 처벌의 강도가 너무 약했을 지도 모른다.
|
||
|
||
하지만 이제 와서 방법을 돌리기에는 늦었다.
|
||
|
||
진짜 조금씩이지만 그녀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명확히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므로.
|
||
|
||
“힘들어? 못하겠어?”
|
||
|
||
“하아... 힘들다니까!”
|
||
|
||
“진짜 힘들어? 일어설 힘도 없는 거야?”
|
||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
-훈련소 생각나서 PTSD 도진다
|
||
|
||
-145121번 훈련생 다리 더 높이 들어! 유격체조 8번 실시!
|
||
|
||
-캬아아아아아악!
|
||
|
||
-이건 아델라가 노네임 깨물어도 무죄다ㅋㅋㅋㅋ
|
||
|
||
침울해진 기색을 온몸으로 표출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더 이상 건들면 안 될 것 같았다.
|
||
|
||
마리아 스승님께서는 나를 언제나 냉혈한으로 치부했지만 내가 이렇게나 정 많고 속이 따뜻한 사람이다.
|
||
|
||
-아델라 버리고 가자ㅠㅠㅠ
|
||
|
||
-안 돼 아델라 지켜!
|
||
|
||
-세지고 있는 거 맞음?
|
||
|
||
-이대로 가면 결국 크로니클한테는 개쳐발릴듯
|
||
|
||
-지금 가르치는 방식은 너무 쓸데없는 것 같음
|
||
|
||
아델라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채팅창으로 눈길을 돌렸다. 내가 읽고 있다는 걸 눈치챈 것인지 속도가 두 배, 세 배로 빨라졌다.
|
||
|
||
“이렇게 가르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
||
|
||
인간이라는 존재는 복잡하지만 그게 어디까지나 완벽성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
||
|
||
‘모형 손’을 팔에 부착하고, 본래 있던 손을 안 보이는 곳에 숨기면 모형 손에 충격을 가하는 것을 감지하기만 해도 우리의 뇌는 통증을 느낀다. 일종의 환상통이다.
|
||
|
||
마찬가지로 아델라와 나는 ‘미각’이라는 가장 단순하고 전투 시에 쓸모없는 감각을 연결해 그녀가 감각에 개입할 여지를 최소화시켰다.
|
||
|
||
그리고 맛있다, 맛없다 같은 일차원적 피드백을 그녀에게 주입시킴으로써 내가 하는 판단들이 마치 그녀가 스스로 내린 판단이라고 착각시키는 것이다.
|
||
|
||
전투에서의 ‘습관’들은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게 않는다.
|
||
|
||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위급 상황이 발발할 때 당장 실행에 옮기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
||
|
||
[‘월r못’님이 1,000원 후원!]
|
||
|
||
-솔직히 별 효과 없어보이면 개추ㅋㅋ
|
||
|
||
“잠깐 당신 나와봐요.”
|
||
|
||
훈수를 두는 것까지는 참아줄 만 했다.
|
||
|
||
그런데 아예 내 의견에 반대하는 동조자를 모으는 건 용납할 수 있는 지점을 분명히 넘어섰다.
|
||
|
||
일시정지. 게임이 흑백세상으로 변하고, 고민할 것도 없이 방금 후원을 한 사람의 계정을 눌렀다.
|
||
|
||
[월r못(실시간 관전 중)]
|
||
|
||
실시간 관전이라 함은 직접 캡슐에 들어가 월오아를 실행 중이라는 상태를 의미했다.
|
||
|
||
허허벌판의 전장을 생성하고 그의 아이디를 곧바로 입력했다.
|
||
|
||
[초대 중: 월r못]
|
||
|
||
-와 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
|
||
|
||
-개부럽네ㅋㅋㅋㅋㅋㅋㅋ
|
||
|
||
-이걸 일대일을!!!
|
||
|
||
절대 좋은 게 아닌데 다들 왜 그렇게 설레할까.
|
||
|
||
본보기를 보여줘야 할 때였다.
|
||
|
||
* * *
|
||
|
||
나메가 시청자 ‘월r못’의 닉네임을 기억하는 건 그녀가 기억력이 뛰어난 덕택도 있었지만, 그가 방송을 시청하는 태도가 워낙 불량했기 때문이었다.
|
||
|
||
잦은 천원짜리 후원으로 평소에 나메의 속을 긁는 것은 물론이고, 채팅으로는 도를 넘은 성희롱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
||
|
||
그는 운좋게 매니저들에게 걸리지 않은 케이스였다.
|
||
|
||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과연 그가 진정으로 운이 좋은 것일지에는 판단을 보류해야했다.
|
||
|
||
[월r못님이 사용자 설정 게임에 입장하였습니다.]
|
||
|
||
“와 뭐임?”
|
||
|
||
-실버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
-아니 이런 애가 훈수를 두고 있었다고?
|
||
|
||
-레게노다 참ㅋㅋㅋ
|
||
|
||
나메는 아델라가 쓰던 것과 똑같은 검을 그에게 던졌다.
|
||
|
||
“받으세요.”
|
||
|
||
“아 네넵!”
|
||
|
||
-급정중해지네ㅋㅋㅋㅋㅋ
|
||
|
||
-까고보니 방구석 여포였죠?
|
||
|
||
-얘 채팅 ㅈㄴ 더럽네 걍 블랙해라;;
|
||
|
||
-ㄴ어떻게 아직까지 밴 안 됐냐
|
||
|
||
-ㄴ진짜 가관이네ㅋㅋ
|
||
|
||
반면 나메는 계속 빈손이었다.
|
||
|
||
초대받은 시청자가 뭐라 의문을 제기하기도 전에 나메의 입이 먼저 열렸다.
|
||
|
||
“절 이기면 블랙리스트, 지면 화이트리스트예요.”
|
||
|
||
“반대 아니에요...?”
|
||
|
||
“아뇨, 맞아요.”
|
||
|
||
“제가 지면 왜 화이트리스트인지?”
|
||
|
||
“고소장 색깔.”
|
||
|
||
“아...”
|
||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
-캬
|
||
|
||
-캬
|
||
|
||
-이겨도 본전 지면 법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
-이게 참교육이지 77ㅓ억~~~~~
|
||
|
||
-인생은 실전이야
|
||
|
||
-노네임이 인생교육 제대로 해주네ㅋㅋㅋㅋㅋ
|
||
|
||
-ㅋㅋ화이트리스트 어감 개무섭고
|
||
|
||
-차라리 블랙이 백배 낫다
|
||
|
||
“참고로 고소는 모욕죄가 아니라 아청법으로 신고할 테니까 꼭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라요.”
|
||
|
||
-인실ㅈ 드가자
|
||
|
||
-그 많은 여캠방 싹 다 거르고 하필 노네임한테 해서 걸리냐
|
||
|
||
-진짜 미성년자였나 보네ㅋㅋ
|
||
|
||
-나만 아니면 돼~~~~~~~!!!!
|
||
|
||
-진짜 이러면 안 되는데 왜 이렇게 웃기냐ㅋㅋㅋㅋㅋㅋㅋ
|
||
|
||
-ㄴ나도 요즘 힘든 일 많았는데 덕분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
||
|
||
-월r못 당신의 희생은 꼭 언젠가 잊겠소...
|
||
|
||
-ㄴㅋㅋㅋㅋㅋㅋㅋ
|
||
|
||
특별할 것 없는 아바타를 가진 남성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얼굴은 창백해지다 못해 핏기를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
||
|
||
“정말 죄송합니다... 저 한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
||
|
||
“아니에요 지금 죄송할 것 없어요. 그런 말은 그때 가서 하시면 돼요.”
|
||
|
||
“진짜 딱 한번만 봐주시면 다시는 이 방송 안 들어오겠습니다. 아니 제 월오아랑 트위시 계정 모두 다 삭제할게요! 진짜요 꼭...!”
|
||
|
||
-절대 봐주지 마!
|
||
|
||
-참 교 육! 참 교 육!
|
||
|
||
-실버인데 지워서 뭐하냐ㅋ
|
||
|
||
“그냥 간단해요. 전 그냥 월r못님의 심장을 찌를 거예요. 공격도 딱 한번밖에 안 할거고요. 당신은 그냥 그 한번의 공격만 막으시면 돼요. 그럼 블랙리스트에 올려드리죠.”
|
||
|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
|
||
-아니, 이걸 봐준다고?
|
||
|
||
-다 알려주고 하면 누가 못 막아;;
|
||
|
||
-고소엔딩 볼 뻔 했는데 ㄲㅂ
|
||
|
||
-걍 본사에 제출하면 트위시 계정도 영정당할 듯?
|
||
|
||
고소를 피하기 위한 사용자 설정 매치가 시작되었다.
|
||
|
||
나메는 결국 무기를 들지 않았다.
|
||
|
||
맨손으로 전투에 임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
||
|
||
월r못은 전장 반대편에서 가공할 속도로 달려오는 노네임을 보고 한숨을 돌렸다.
|
||
|
||
분명 겉으로만 겁을 준 거겠지. 실제로도 이 매치는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
||
|
||
그녀가 무기를 들지 않은 점, 일대일에서 강한 쌍검을 쥐어준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격 경로와 횟수까지 모두 스스로 제한한 점이 있었다.
|
||
|
||
아무리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치더라도, 노네임은 스토리 모드 외에는 그 무엇도 경험 하나 없는 뉴비나 마찬가지였다.
|
||
|
||
누구는 그녀의 재능을 챌린저 수준이라 칭송하기도 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
||
|
||
‘운 좋게 히든 루트 뚫은 거 가지고...!’
|
||
|
||
그는 심호흡을 하며 자세를 다잡았다.
|
||
|
||
간단한 일이다. 굳이 이쪽에서 공격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분명 자신의 심장만을 향해 공격할 것이라 선언했으므로 두 검을 교차해서 방어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
||
|
||
칼을 휘두르면 닿는 거리까지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졌을 때.
|
||
|
||
노네임은 폴짝 뛰어 그의 키를 단숨에 뛰어넘었다.
|
||
|
||
월r못의 자세가 일그러졌다.
|
||
|
||
순진하게 정면에서 공격이 들어올 거라고만 생각한 것이다.
|
||
|
||
심장을 찌른다는 게 꼭 앞에서만 한다는 말은 아니었으므로.
|
||
|
||
하지만 스스로 반응속도는 나쁘지 않다고 자부하는만큼 그는 몸을 180도 회전시켜 다시금 몸을 웅크렸다.
|
||
|
||
두 팔 너머로 나메의 섬뜩한 안광이 번뜩였다.
|
||
|
||
일순 그녀의 팔에 오러가 담겼다. 어깨가 먼저 돌아가고, 몸통이 뒤따라 움직인다.
|
||
|
||
그러나 무게중심이 확연히 높았다. 심장이 아니라 머리 쪽. 더 정확히는 그녀의 반대쪽 팔이 자신의 목을 향해 날라들었다.
|
||
|
||
‘함정...!’
|
||
|
||
방송을 쭉 시청한 그였기에 낯익은 공격이었다.
|
||
|
||
한시간 전 아델라가 거의 퍼펙트하게 발럼을 격파했을 때 보여준 기가 막힌 움직임.
|
||
|
||
그리고 아델라가 발럼의 경동맥을 무자비하게 꿰뚫었을 때처럼 노네임도 똑같이 자신의 머리를 깨부실 심산이었다.
|
||
|
||
“이런 약속도 안 지키는...!”
|
||
|
||
그 순간,
|
||
|
||
무의식적으로 올라간 팔의 빈틈 사이로 나메의 손끝이 정확하게 남성의 심장을 꿰뚫었다.
|
||
|
||
-????
|
||
|
||
-이걸 머리를 막아?
|
||
|
||
-넌 잘가라
|
||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
-알려줘도 못 막냐ㅋㅋㅋㅋㅋ
|
||
|
||
-이게 실버 수준...?
|
||
|
||
-월오아의 미래가 어둡다
|
||
|
||
심장에 정확히 내리꽂힌 일격.
|
||
|
||
분명 노네임의 공격은 목을 잘라내버릴 기세로 날라왔는데 어째서 자신의 심장이 관통되었는지 그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
||
|
||
“아니... 이게...”
|
||
|
||
나메는 손을 거두고 프라이빗 스페이스에서 파일철 하나와 볼펜을 꺼냈다.
|
||
|
||
“봐봐요. 사람의 습관을 바꾸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까.”
|
||
|
||
인간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목숨을 위협하는 공격을 막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
||
|
||
설령 그것이 역으로 자신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들지라도.
|
||
|
||
가설을 실험으로써 검증한 나메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났다.
|
||
|
||
-데스노트 ㄷㄷㄷㄷ
|
||
|
||
-진짜 있었네
|
||
|
||
-헉...!
|
||
|
||
-고소엔딩 끼얏호우!
|
||
|
||
“수고하셨습니다.”
|
||
|
||
* * *
|
||
|
||
-(매니저5): 저기 노네임님?
|
||
|
||
“무슨 일이시죠 ‘고양이교미가제일좋아’님?”
|
||
|
||
-(매니저5): 그냥 매니저라고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그게 아니라 블랙, 아니 그 화이트리스트에 그 인간 말고도 다른 이름도 적혀있던 것 같은데 설마 제 이름도 들어있는 건 아니죠?
|
||
|
||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고양이교미가제일좋아님.”
|
||
|
||
-(매니저5): 글쎄요는 또 뭔데요!!! 설마 진짜 써 있어요? 저 고소하는 거 아니죠?
|
||
|
||
화이트리스트의 등장으로 갑자기 불안해진 고양이 퍼리녀가 질문을 던진 건 여담의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