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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매무새까지 정리를 끝낸 히아센이 한껏 진지해진 어투로 나메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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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타샤... 솔직히 네가 다시는 우리를 보러 안 왔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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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일단 이유나 들어보자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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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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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항상 언제나 벼랑 끝에 몰릴 때에만... 여기에 찾아오잖아... 네가 원하는 일도 모두 끝냈다면서. 대체 뭘 더 하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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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또 뭐라고. 언제나 히아센이 뻐꾸기같이 읊조리던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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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히아센의 눈빛이 너무나 슬퍼 보여서 대충 얼버무리려고 했던 말은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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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로 온 게 아니야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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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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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언덕 위에서 니오베가 건네주는 카이젠 제국 산 디저트를 받아먹는 친구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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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건 딱히 없어. 밥도 잘 먹고 있고, 잠도 잘 자고. 좀 손이 많이 가지만 귀여운 친구들도 많고. 그냥 요즘 들어 진짜로 너희들이 한번 보고 싶어져서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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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짜들이 아니야. 더 이상 너를 과거에 묶어두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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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알지... 그래도 계속 생각나는 걸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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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도 모르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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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미스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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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추억 속으로 들어가 행복했던 기분을 잠시 느껴볼 수는 있어도,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허무함도 뒤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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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알케미스트로 구현된 인물들이 스스로의 처지를 자각할수록, 구현율은 점차 떨어지고 다시는 만나볼 수 없을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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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의 히아센은 알지만, 열 살의 니오베는 이 사실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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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는 거짓 세계에서 히아센은 진심으로 자신의 배다른 동생을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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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오늘은 우리 친구들 기분 풀어주려고 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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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믿어도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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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꼬대로 라울-시스트 마법을 쓰는 걸 애들이 들었나봐. 그래서 걱정 끼친 게 미안해서 재밌는 경험 한번 해보라고 보여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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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주최한 파자마 파티인데 그게 자신의 잘못 때문에 허투루 돌아가는 것을 나메는 용납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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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이야기가 이쪽으로 샌 김에 나메는 새로운 생의 이야기나 꺼내보자고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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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내가 지금 사는 세상 말이야, 마법에도 돈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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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말이야 마법에 돈이 든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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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에 세금을 부과하는 세상에 살고 있어. 어때 정말 신기하지 않아? 그래서 자주 들리고 싶어도 못 들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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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히아센의 등을 두어번 세게 때려서 축 처진 분위기를 다시 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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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갚기에도 버거운데 그냥 뒤도 생각 안 하고 너희들 보러 온 거니까 고맙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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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아카식 레코드에 대한 금액도 갚아야 할 마당에 알케미스트까지 쓴 실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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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든지 돈을 당장 지불해줄 수 있는 천교수가 있는 이상, 나메를 제어하는 자본이라는 이름의 제약조건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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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샤 너 아직도 돈 함부로 쓰는 성격 못 고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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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평생 못 고쳐. 쓴 만큼 벌 생각을 해야지 왜 아낄 생각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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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아껴도 결국 남는 것은 없다는 걸 여러 생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결과, 나메의 낭비벽은 심하다고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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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돌아온 피크닉 자리, 유나와 하루는 니오베와 머리를 맞대고 저들끼리 속닥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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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니오베의 어깨가 막 들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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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저런 경우는 짓궂은 장난을 준비하는 전조 증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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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보려고 나메는 까치발로 조용히 접근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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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킥. 진짜 알려줄까? 에샤가 제일 좋아하는 팬티 색깔이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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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오베 너 맞을래? 나 없는 사이에 애들한테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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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이이이이이익! 에... 에에... 에샤? 언제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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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에게 꿀밤을 먹은 니오베가 가위를 들고 허공에서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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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머리 한쪽이 얼얼한지 몇 번이나 맞은 부위를 싹싹 문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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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구두구두구!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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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오베는 사과의 의미로 나메의 헝클어진 머리를 잘라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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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구 거절하는 나메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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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샤는 누가 자신의 머리를 함부로 만지는 걸 정말 싫어하니까. 몇 가지 절차가 있어. 너희들도 잘 외워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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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아이들 앞에서 멋진 척을 하는 니오베를 보고 실없는 웃음을 슬쩍 흘리며 눈을 살포시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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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유나의 눈이 한껏 진중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누가 자신의 머리를 만지는 걸 극도로 싫어했던 나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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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들어보면 미용실도 절대로 가지 않고 머리도 혼자 자르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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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오베는 다 방법이 있다면서 나메를 간이의자에 앉히고 실크로 된 하얀 천을 그녀의 목에 둘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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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이렇게 뒤에서 안아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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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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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꼬옥 안아줘! 에샤는 목에 간지럼을 안 타니까 이렇게 껴안아줘도 상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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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를 새끼손가락에 걸어놓고 니오베는 두 팔로 나메의 몸을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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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에 들어갔던 긴장이 조금 풀어지는 것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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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샤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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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숨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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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잘 들었지? 이 정도로 세게 안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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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분이 지났을까 싶을 정도로 나메를 오래 싸메고 있었던 팔이 스르륵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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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나메의 머리카락을 비집고 어깨를 움켜잡은 뒤 주물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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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마사지도 충분히 해야지 에샤가 나중에 안 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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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주물대는 게 과연 저게 효과가 있나 싶었지만 표정만 보아서는 누구보다도 열성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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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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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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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직도 하나 남았는걸? 너희들도 한번 이렇게 손을 집게모양으로 만들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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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오베가 먼저 시범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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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두 손을 나메의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귓불을 집어 비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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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간질간질- 자 너희도 해봐. 간질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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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해도 되나 싶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손가락만 살짝 갖다 대보자 나메의 두 귀가 계속 쫑긋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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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부드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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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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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바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 엄청 예민하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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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에게 희롱당한 그녀의 귓불이 살짝 빨개지며 열감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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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눈을 감고 있는 소녀의 표정은 여전히 차분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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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했으면 이제 허락을 구하면 돼. 에샤, 이제 네 머리카락을 잘라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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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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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럼 성공한 거야! 오빠 와서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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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맨날 자르는 건 내가 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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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잘 못 자르니까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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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센이 니오베에게서 가위를 넘겨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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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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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센은 나메가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머리카락을 다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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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가 교차하는 소리와 함께 그동안 아무렇게나 삐뚤삐뚤 자라왔던 머리털들이 점차 제 자리를 되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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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에 새까만 머리카락이 비처럼 쏟아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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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질은 너희들이 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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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와 하루가 양쪽에서 빗질을 통해 머리에 남은 잔털들을 정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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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했어. 이제 눈 떠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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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목소리가 흘러들어오자 나메는 눈을 살포시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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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는 유나와 하루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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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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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이 없어서 제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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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확신이 없는 목소리로 소녀들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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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메 짱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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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안 자를 거야? 아직도 긴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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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너무 많이 잘라버리면 다음에 또 못 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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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또 볼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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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자신의 머리가 마음에 든 다는 듯이 한참 동안이나 매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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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그들과 작별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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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미스트가 유지될 시간은 조금 더 남았지만, 이제는 유나와 하루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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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너희들 차례야. 유나부터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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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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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봐. 그럼 지금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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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어? 나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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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귀시전: 알케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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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풍경이 눈 앞에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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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론 아카데미 2학년 A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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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무척이나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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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 우상단에는 3월 28일이라는 날짜가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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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있었던 날짜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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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와서 공기놀이 안 하고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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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뒤편에 자리 잡은 아이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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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소녀를 향해 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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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부끄러운 듯 나메의 등에 얼굴을 파묻으며 작아지는 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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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안 봐도 괜찮으니까...! 하루한테 넘겨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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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공기놀이가 재밌었어? 알려준 보람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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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다같이 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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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유나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나날이 갱신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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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많이 부끄러웠는지 영 맥을 못추는 유나의 머리를 나메가 잔뜩 쓰다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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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야, 넌 준비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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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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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하루의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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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미스트는 어떤 장면을 보여줄지 예측하기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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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이 정하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현재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차이가 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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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눈을 꾹 감고 계속해서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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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살아계시는 순간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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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을 포함해서 못 다한 말들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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