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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꿈이라고 생각하면 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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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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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알케미스트는 소망을 저장하고 실체화하는 마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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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메는 꿈속에서 꿈을 실현하는 마법을 썼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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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유나의 머리가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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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때마다 이슬을 머금은 풀이 잘박거렸고, 그녀의 폐부로 드나드는 차가운 공기는 도저히 거짓된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실감이 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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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야 그럼 저기 있는 사람들은 뭐야? 저 사람들도 마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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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금발머리 남매들에 대해 궁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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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마법이라면 마법이지. 한편으로는 내가 그리워했던 사람들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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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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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우리들이랑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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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바라보면 하늘과 초원이 하나가 되어 끝없이 이어져 가는 듯한 느낌을 주며, 이곳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한 평온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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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이 있던 곳에서 언덕까지의 거리는 분명 한참 되어 보였지만,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돗자리가 펴진 자리까지 도달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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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꿈이라고 한 걸까, 하루가 나지막이 중얼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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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애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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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에 찬 눈빛으로 나메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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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휘날려 자꾸만 움직이는 돗자리를 고정시키려고 하던 남매들은 행동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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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황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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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에샤다 에샤! 드디어 방 밖으로 나올 기분이 든 거야? 옆에는 누구야? 혹시 친구들? 나도 소개시켜주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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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에게 나메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조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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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놀이 할 줄 알지? 이제부터 넌 유나 공주고, 넌 하루 공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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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엑 소꿉놀이?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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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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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살짝 질색하는 반면에, 유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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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가 되는 건 유나의 오랜 소원이었으므로. 설마 나메도 이런 취향을 공유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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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으로 소개할게. 차례대로 유나와 하루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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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음... 안녕 유나, 그리고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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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정말 반가워! 이름도 너무 예쁘다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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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이번에 순서를 바꿔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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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남자애는 히아센이고, 동생쪽은 니오베라고 부르면 돼. 이 정도 이름은 어렵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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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녕 히아센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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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오베 언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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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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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그녀들은 두 금발머리 남매가 어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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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같은 반 한서리보다도 훨씬 더 이국적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는 게 이질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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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그들은 한 미모를 했기에, 더욱 거리감이 느껴졌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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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소녀를 훑은 히아센의 길게 내려앉은 속눈썹이 희미하게 경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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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타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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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히아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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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변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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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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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모두 끝마칠 때까지 안 온다면서. 네 꿈은 이제 다 이룬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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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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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끝에는 나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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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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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야... 바깥의 내가 널 혼자 내버려두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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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의 말은 반만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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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타샤 황녀의 마지막 목숨을 취한 이는 다름아닌 히아센 황제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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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나메는 괜히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은 심정에 이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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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도 참! 왜 갑자기 이상한 얘기를 해서 텐션을 낮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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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오베 정신 사나우니까 가만히 좀 있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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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래서 어쩔 건데! 난 오빠랑 안 놀고 에샤랑만 놀거지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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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오베가 쪼르르 달려와 나메와 팔짱을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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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와서 앉아! 마침 피크닉 준비도 다 해놨어. 유나와 하루도 모두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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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겁결에 둘에서 다섯이 되어버린 모임이라 돗자리의 면적이 부족한 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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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만큼 히아센과 나메가 풀밭에 반쯤 걸터앉아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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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너희들은 원래 나메랑 아는 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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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질문했다. 이에 답해준 건 헤실거리는 웃음을 달고 사는 니오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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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쥐! 에샤는 우리의 영원한 동생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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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 때마다 방정맞은 입가를 가리는 백금발과, 애굣살에 당장이라도 파묻힐 것 같은 금안을 가진 소녀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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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나메를 향해 동생이라고 하는 것도 웃긴 일이었지만 나메가 미리 말했던 것처럼 일단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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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가 무너진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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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내가 너희들에게 묻고 싶은데. 너희들은 에스타샤와 어떻게 알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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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아카데미 같은 반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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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센의 물음에 유나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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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절친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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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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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에샤, 넌 아카데미를 자퇴한 게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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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입학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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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넌 예전부터 언제나 친구들을 만들고 싶어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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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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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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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센, 헛소리를 하는 건 여전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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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언제나 진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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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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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익숙하고, 때문에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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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오베의 장난, 히아센의 빈정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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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는 만나볼 수 없는 인연들에 나메는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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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샤야 자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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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메를 포착한 니오베가 슈크림이 가득한 에클레어 하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의 입에 쑤셔넣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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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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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에이 먹어도 괜찮아! 살 하나도 안 쪄!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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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치도 아닌 앞니로 베어서 간신히 빵조각을 입에서 떨어뜨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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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처음 알았어. 나메 너 외국에서 살다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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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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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알케미스트가 꿈을 실체화시키는 마법이라면 대화로 보아하건대 이들은 필시 나메의 지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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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멋지고 예쁜 사람들이 나메의 언니 오빠를 자처하는 게 유나는 신기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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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가 에클레어를 전부 입에 털어놓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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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네. 사는 세상이 다르고, 내 몸도 전부 달라졌는데 라울-시스트의 저장이 유지되는 게 말이야. 별자리가 같아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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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나메의 전생이 하룻밤의 꿈 따위가 아니라는 걸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증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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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센과 니오베는 명백히 존재하는 사람들이었고, 자신의 전생은 에스타샤 황녀와 동일한 인물이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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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시전한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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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마다 꺼내왔던 마법은, 자살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그녀를 여기까지 지탱해주었던 마법은, 그녀의 기억 속의 것과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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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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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 세상 사람들이 알케미스트를 단순히 별을 볼 수 있는 마법이라고 착각하는 건 무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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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마법이 시전되었을 때, 그들이 마주할 수 있는 건 광활한 우주뿐이었으므로 정확한 쓰임새를 찾아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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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전생에서 처음으로 마법을 발견했던 라울 루미노스라던가, 나에게 이 마법을 전수해준 히아센이라던가 모두 별을 볼 수 있는 마법이라고만 생각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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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미스트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재조합해 실체화시키는 환상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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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도달했던 성광(星光)의 파장을 토대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환상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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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이는 개인의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별빛에 저장된 세계의 정보를 토대로 환상세계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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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시에 양날의 검과 같은 마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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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전자는 힘든 현실에서 도피하여 달콤한 휴식을 누릴 수 있지만, 동시에 현실로 돌아왔을 때의 그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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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즉슨, 현실은 언제나 이보다 암울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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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어진 과업을 모두 포기하고 싶을 때만, 알케미스트(라울-시스트)를 사용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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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약과도 같은 마법을 가장 많이 썼을 때가 아마 나태 토벌전 때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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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내에 심은 나태의 씨앗을 폭주시키기 위해선, 잠을 자면 안 된다는 괴랄하고 몰상식한 방법밖에 없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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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무식하게 버티고, 또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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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으로 뇌척수액의 역할을 대신하여 아데노신과 아밀로이드 베타를 비롯한 뇌 안에 쌓인 독소를 억지로 제거하고, 근육을 최대한으로 이완시켜 몸의 피로도를 덜어내는 과정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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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숙면을 인위적으로 대체하는 행위였을 뿐이었지 수면욕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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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고문보다도 끔찍했던 짓을 1년이나 반복하는 동안,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알케미스트는 필수불가결한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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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면서까지 이 마법을 읊조렸다니, 친구들에게 괜한 걱정을 끼친 게 아닌가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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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여기 있는 가짜 히아센과 가짜 니오베는, 내 몸이 바뀐 걸 신기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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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도 그럴 것이 알케미스트를 시전한 게 횟수로만 열 번을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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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마법으로 직조된 가짜 인격이라도 내가 출입했던 기억은 그들에게도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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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이 나메라고 했나? 이제 샤샤라고 부르지 못해서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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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적 별명이야... 그리고 이렇게나 모습이 달라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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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놀랐어. 이번엔 또 무슨 독거미를 잘못 삼켰나 싶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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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센이 입꼬리를 올리며 넌지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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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 내가 어린 애도 아니고 무슨. 이제 네 인생의 네 배는 넘게 살아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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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검게 만드는 독거미가 세상에 존재할리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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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있다면 그 독의 성분은 염색약으로 노년층에게 잘 팔리기야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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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하는 동안 아무런 실속없는 대화가 나와 히아센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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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페이란을 검술로 이겼다는 이야기, 조세핀의 약혼자가 어느 변방 남작가의 딸과 바람이 난 게 들켜 가문이 초토화되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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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어제 일어난 것처럼 생생하게 들려줬지만 사실 이십년도 더 된 사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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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가 이곳에 올 때마다 똑같은 말들을 되풀이했고, 나는 언제나 그의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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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이 마법인 탓에 히아센이 열세 살이라는 나이로 고정된 채로 만날 수밖에 없었지만, 워낙 애가 어른스러웠던 탓인지 이렇게 내려놓고 대화를 해도 진짜 친구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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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익숙함의 감정에 젖는 기분도 썩 나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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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네. 역시 너랑 대화하는 게 제일 편해 히아센. 말투가 건방지긴 해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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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난 어리잖아! 넌 밖에서 몇 년을 더 살다 왔으니까 당연하지. 그런데 그거 알아? 나는 너랑 대화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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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그럼 그동안 억지로 어울려줬다는 소리라도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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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훅 들어오는 자백에 마음의 상처를 입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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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약간 그런 건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애가 알고보니 같이 다닐 애가 없어서 그나마 나랑 같이 어울려준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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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런 뜻이 아니야 에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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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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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한텐 절대로 안 알려줄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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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 어이가 없어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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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센이 혀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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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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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 혀를 깨무는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터져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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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젠 건국 이래 최고로 잘생긴 남성이라는 타이틀로 사교계를 뒤흔든 인물이, 알고보면 이렇게나 허당이었다는 걸 상사병 걸린 수많은 영애들은 과연 알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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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반전매력이라며 좋아하려나? 하여간 이놈의 외모지상주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얘가 똥을 싸도 좋아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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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찡그리니까 진짜 못생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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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마디 거들자 히아센이 얼굴을 붉히며 반대편으로 휙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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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 못생겼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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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도 잘생긴 걸 아는지 내가 이렇게 못생겼다고 할 때마다 분개해서 말을 철회하라고 쪼아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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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랑거리는 곱슬머리를 몇 번이나 매만지는 저 나르시시스트를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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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거울이 그의 손에 들려있었다면 아마 하루종일 머리만 만져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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