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313 lines
13 KiB
Markdown
313 lines
13 KiB
Markdown
|
||
단니엘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익숙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
||
|
||
같은 대학생들로 빼곡히 늘어선 줄은 건물 내부를 요리조리 돌다가 출입구 밖까지 튀어나왔다.
|
||
|
||
단니엘은 밝은 햇빛을 손으로 가려서 카드잔액이 6410원밖에 안 남은 걸 확인했다.
|
||
|
||
‘내일까지는 어찌저찌 버틸 수 있겠다.’
|
||
|
||
그녀는 오늘도 한 끼에 천 원을 하는 학식을 먹기 위해 빨리 달려가서 줄을 섰다.
|
||
|
||
반찬이 괜찮게라도 나오는 날이면 20분, 30분씩이고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매일 뙤약볕 아래를 달리는 게 죽을 맛이었다.
|
||
|
||
‘이래서야 급식충 시절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네.’
|
||
|
||
급식이 학식이 되었을 뿐이다.
|
||
|
||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 않는다.
|
||
|
||
그녀의 동기들은 지금쯤 과방이나 동아리실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다함께 악기 연주를 하다가, 배달음식이 도착하면 바닥에 오손도손 둘러앉아 점심을 먹을 것이다.
|
||
|
||
그들이 마지막으로 좁혀진 선택지인 족발과 초밥 중에 무얼 선택했는지 니엘은 결국 알지 못했다.
|
||
|
||
길고 길었던 줄에 끝이 보이고, 이제 막 식권을 끊으려는 참에 ‘바크’ 단톡방에서 전체공지 메시지가 날아왔다.
|
||
|
||
[1학년 예비 PD님들 집합! 자하연에 노나메님이 오셨대요! 당장 고고고!]
|
||
|
||
“그래, 한 끼 정도는 굶어도 되잖아.”
|
||
|
||
[결제를 취소합니다.]
|
||
|
||
나메의 귀여운 실물을 본다면 자신의 위장도 분명 이해해주리라 믿었다.
|
||
|
||
* * *
|
||
|
||
“니엘아 저기 정문 앞에 가서 타코야끼 하나 사와줄래?”
|
||
|
||
“네? 저요?”
|
||
|
||
“나메한테 빈 손으로 갈 수는 없잖아. 니엘이 네가 그래도 우리 중에는 첫인상이 제일 좋으니까. 나메 잘 데려와 줄 수 있지? 꼭 좀 부탁해!”
|
||
|
||
“네...”
|
||
|
||
나메를 바크 스튜디오까지 유인해달라는 선배의 요구에 니엘은 거절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
||
|
||
“5천원입니다.”
|
||
|
||
“5천원이요? 겨우 이거 6알에?”
|
||
|
||
“네에.”
|
||
|
||
포장마차의 폭리에 5끼니만큼의 재산이 날아가버렸다.
|
||
|
||
“언니도 먹을래요?”
|
||
|
||
“아냐! 난 치즈 별로 안 좋아해서! 나메 많이 먹어!”
|
||
|
||
이건 투자다.
|
||
|
||
니엘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
||
|
||
연못에서 나메가 보여주었던 믿을 수 없는 연주라면 브이튜브의 조회수도 꽤 잘 나올 것이다.
|
||
|
||
노나메라는 조회수 치트키가 등장하는 영상을 하나 더 뽑아내면 정산금도 더 두둑히 받을 수 있을 터.
|
||
|
||
중간에 나메가 마에스트로를 하러 가버려서 결국 끝까지는 지켜볼 수 없었지만 아마도 좋은 컨텐츠가 나왔을 게 틀림없었다.
|
||
|
||
하지만 예기치 못한 행운 뒤에는 언제나 불운이 따라오는 걸 간과했다.
|
||
|
||
“정산을 바로 못해준다고요?”
|
||
|
||
“원래 우리는 두달에 한번씩 하거든. 저번에 6월 말에 했으니까 아마 다음은 8월 마지막주에 하겠네. 근데 왜?”
|
||
|
||
“아, 아니에요...”
|
||
|
||
기업형 동아리에 든 이유도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
||
|
||
‘바크’에만 들어가면 떼돈을 벌 수 있다더라 하는 소문에 쟁쟁한 경쟁률을 뚫고 예비 PD가 되었다.
|
||
|
||
소문만큼의 대단한 금액은 아니었지만 니엘에게 한해서는 적지도 않은 금액.
|
||
|
||
한달 반 뒤에나 정산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망연자실에 빠졌다.
|
||
|
||
‘과외 월급날까지는 조금 남았는데...’
|
||
|
||
앞으로 사흘을 버틸 수 있을까?
|
||
|
||
아까 나메 입으로 들어간 타코야끼가 눈 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
||
|
||
* * *
|
||
|
||
인간은 호르몬의 노예라는 걸 절실히 체감하는 니엘이었다.
|
||
|
||
사흘 동안 공복이 지속되니 단순히 배고픈 것을 넘어 매사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
||
|
||
평소에 꾹 참아왔던 동기들의 생각없는 말들도 예민하게 들렸다.
|
||
|
||
“세리야 나 이번에 장학금 떨어짐! 흐에에엥. 이거 받으면 용돈으로 해외여행 가려고 계획까지 다 짜놓았는데... 남들 다 가는데 나만 못 가고 이게 뭐냐.”
|
||
|
||
“전액등록금 축하. 소득구간 높게 나와서 그런 거 아냐?”
|
||
|
||
“아니 우리 집이 9분위래! 말이 돼? 엄마는 가정주부고 아빠도 평범한 공무원이고. 서울에 집 하나도 제대로 없는데 9분위라는 거야!”
|
||
|
||
“너 서울에서 통학하는 거 아니었어?”
|
||
|
||
“그건 전세고... 우리 집 아닌데도 재산으로 잡히더라.”
|
||
|
||
“산정기준이 조금 이상하네.”
|
||
|
||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아는 친구는 아빠가 사업 크게 하시는데 소득분위 3분위 나와서 전액장학금에, 추가로 50만원 지원금까지 용돈처럼 받고 산다더라. 너무 부러운 거 있지...? 소득분위 낮으면 대체 아낄 수 있는 돈이 얼마야.”
|
||
|
||
“니엘이 넌? 여름방학 때 어디 해외여행 계획 있어?”
|
||
|
||
과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단니엘에게 동기들이 물었다.
|
||
|
||
누구는 해외여행을 가니 마니 고민하고 있을 때, 그녀는 오늘 밥을 굶니 마니 하고 있었다.
|
||
|
||
한국대학교가 등록금이 싼 국립학교라서 상대적으로 부자들이 적을 것이라는 생각은 순전히 편견이다.
|
||
|
||
최고소득층 10분위 학생이 60%에 달할 정도로 전국에서 제일 고소득층이 많은 대학이었다.
|
||
|
||
니엘은 부글부글 끓는 화를 간신히 식히며 과방을 떠났다.
|
||
|
||
“바빠서. 여행 갈 시간이 어딨어.”
|
||
|
||
니엘은 친구 둘을 잃었다.
|
||
|
||
물론 지금 당장 잃는 것은 아닐 것이다.
|
||
|
||
하지만 이렇게 어울리지 못하고 주위만 겉돌다가 언젠가는 서로 남이 될 사이라는 걸 그녀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
||
|
||
“니엘이가 오늘 기분 별로 안 좋아보이네... 어디 아픈가?”
|
||
|
||
받기만 하고 무언가를 내어줄 수 없는 친구 관계는 결코 오래갈 수 없었다.
|
||
|
||
* * *
|
||
|
||
“죄송해요. 오늘은 진짜 꼭 바쁜 일이 있어서 참석 못할 것 같은데.”
|
||
|
||
“아니 또...? 그냥 와서 사진만 찍고 가는 것도 안 돼요?”
|
||
|
||
“네... 오늘 일정이 좀...”
|
||
|
||
“알겠어요. 일단 저희 5시까지는 계속 있어볼 테니까 그 전에는 한번 들리실 수 있는 거죠?”
|
||
|
||
“노력해볼게요.”
|
||
|
||
몇 시간 뒤면 바로 들통날 거짓말을 하고 니엘은 조모임에 불참했다.
|
||
|
||
수업은 30분만에 일찍 끝내고 나머지 시간을 조모임으로 대체하는 수업은 니엘에게 딱이었다.
|
||
|
||
최소한으로 학점을 챙길 수 있으면서 과외까지 하러 갈 수 있으니 시간을 아끼는 셈이었다.
|
||
|
||
안 그래도 조모임 때 식사니 카페니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
||
|
||
매번 조모임에 가서 아무것도 안 먹고 옆에서 멀뚱멀뚱 눈치만 보고 있을 바에야 아예 참석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
||
|
||
그래도 같은 조원들에게 폐는 안 끼치기 위해 참석하는 시늉을 해왔지만 그녀의 계획에 사소한 변수가 생겼다.
|
||
|
||
[47학번 피아노과 박준용]
|
||
|
||
[니엘아 이제 와서 이런 말 하기는 그런데. 너 과외하러 간다고 내가 빌려준 오토바이 있잖아. 그거 내가 다시 좀 써야 할 것 같아서 돌려줄 수 있을까?]
|
||
|
||
평소 동아리 선후배 관계로 친하게 지내다가, 니엘이 계속 겉도는 것 같아서 챙겨준 4년 위 선배였다.
|
||
|
||
박준용은 그녀의 가정사가 딱한 점을 생각해 자신의 오토바이를 흔쾌히 빌려주었다.
|
||
|
||
하지만 박준용은 단니엘에게 고백을 했고, 단니엘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
|
||
그 결과는 오토바이 압수라는 최악의 형태로 나타나버렸다.
|
||
|
||
니엘도 알고 있었다.
|
||
|
||
그의 감정을 어느 정도 이용하였다는 사실을.
|
||
|
||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사람다운 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었다.
|
||
|
||
대중교통을 타면 최소한 30분은 일찍 나와야 했다. 조모임 참석은 꿈도 꿀 수 없다.
|
||
|
||
그녀는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창가에 지친 몸을 기대었다.
|
||
|
||
한번 찾아온 불행은 연이은 파도처럼 끊이지 않고 몰려왔다.
|
||
|
||
[과외 어머님]
|
||
|
||
“네 여보세요.”
|
||
|
||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 현승이가 수영을 하고 와가지고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아서요. 오늘 수업 내일로 미루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
||
|
||
또, 또, 또!
|
||
|
||
휴대폰을 쥐는 니엘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
||
|
||
평소라면 하지 않았던 말들이 거침없이 나왔다.
|
||
|
||
“그럼 수업 1회분은 차감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
||
|
||
[아니 선생님 그런 게 어딨어요? 수업 공짜로 더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뒤로 미뤄달라는 건데?]
|
||
|
||
“미리 연락 주신 것도 아니고 과외 시간 30분 전에 말하면 저도 입장이 난처해져서요.”
|
||
|
||
[선생님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 돈만 밝히시는 거 아니에요? 정당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월급을 타갈 생각을 해야지! 그리고 우리 현승이도 똑바로 가르치는 거 맞아요? 한국대 음대라서 뽑아놨더니만...]
|
||
|
||
조모임도 터지고 과외도 터졌다.
|
||
|
||
‘그래도 입금일자는 빨라서 좋은 건가...’
|
||
|
||
원래같았으면 2주 뒤에 받았을 돈을 과외가 끊어지면서 내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
||
|
||
그렇게 니엘은 남은 전재산 1410원을 모두 삼각김밥에 탕진하기로 결심했다.
|
||
|
||
“어서오세요! CU입니다!”
|
||
|
||
* * *
|
||
|
||
한여름의 해는 길었다.
|
||
|
||
이 위태롭기만 한 감정이 자칫 잘못하여 폭발할까봐, 우다연과 노나메에게서 도망치듯 달려온 곳은 어느 한적한 공원이었다.
|
||
|
||
니엘의 닳아질 대로 닳아진 마음에 최후의 비수를 꽂은 건 그녀의 어머니였다.
|
||
|
||
[돈 다 떨어졌어. 50만원만 보내 단니엘.]
|
||
|
||
푸르른 잎이 무성하게 우거진 단풍나무 아래, 그늘이 진 벤치까지 터덜터덜 걸어가 그 위에 누웠다.
|
||
|
||
꿉꿉한 여름의 습기를 제대로 먹은 나무판자의 촉감이 얇은 흰색 면티 너머로 느껴진다.
|
||
|
||
그녀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추욱 늘어지고, 지저분한 흙바닥에 머리카락의 끝이 닿았다.
|
||
|
||
감정이 복받치려는 걸 꾹 참고 어머니에게 전화통화를 걸었다.
|
||
|
||
“나 돈 없어.”
|
||
|
||
당연하게도 욕지거리가 쏟아져나왔다.
|
||
|
||
너를 위해 희생한 게 다 합쳐서 얼마나 되냐는 등, 한국대 음대씩이나 나와서 이 정도도 못해주냐는 등, 이럴 거면 부모 자식 사이의 연을 끊어버리자는 등의 소리가 대부분이었다.
|
||
|
||
어머니의 행패는 아버지가 전화를 뺏어 말릴 때까지 끊이지 않았다.
|
||
|
||
[잘 살고 있냐?]
|
||
|
||
“힘들어. 힘들어 죽을 것 같아.”
|
||
|
||
[우리 예쁜 딸이 힘들다고 해서 어쩌나. 아빠가 용돈이라도 줄까?]
|
||
|
||
“돈 없잖아. 비참하게 그런 소리 좀 하지마.”
|
||
|
||
[그래... 미안해...]
|
||
|
||
“그러니까 자꾸 아빠가... 콜록콜록!”
|
||
|
||
[응? 아빠가 왜?]
|
||
|
||
“아니야. 신경 꺼 제발.”
|
||
|
||
니엘은 굳이 말을 끝맺지 않았다.
|
||
|
||
스트레스는 남들에게서 받아놓고 괜히 아버지에게 화풀이하는 격이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
||
|
||
가장으로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그녀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
||
|
||
‘이해’만이다.
|
||
|
||
니엘은 자신을 이 길로 인도해준 어머니와,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
||
|
||
길게 이어지지 않는 전화를 끊고 다시 우뚝 몸을 일으켜 세웠다.
|
||
|
||
기지개를 쭉 켜니 온몸에서 우두둑거리는 관절소리가 들렸다.
|
||
|
||
하늘에 걸린 옥외광고물에는 여러 뉴스화면이 자막과 함께 송출되고 있었다.
|
||
|
||
억단위의 뇌물수수혐의, 조단위의 주가조작.
|
||
|
||
심지어 성년조차 되지 못한 어린 인재들을 영입하기 위해 스위스에서는 인당 몇십억씩 내준단다.
|
||
|
||
당장은 비현실적으로밖에 다가오지 않는 금액이다.
|
||
|
||
저런 것보다는 로또 3등에 당첨되어 수중에 200만원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니엘은 소박한 꿈을 꾸었다.
|
||
|
||
오늘 내내 불행밖에 없었는데 어디 행운 하나 안 떨어지나.
|
||
|
||
하지만 니엘의 지갑에는 로또용지 살 돈조차 없었다.
|
||
|
||
“배고프다...”
|
||
|
||
뱃가죽이 등에 붙을 지경이다.
|
||
|
||
단니엘이 깊은 체념의 한숨과 함께 기숙사로 발걸음을 돌릴 무렵이었다.
|
||
|
||
“배고파요?”
|
||
|
||
앞, 그보다 조금 아래쪽에서 들려온 목소리.
|
||
|
||
바스락거리는 검은 비닐봉지와 함께 나타난 노나메는 고개를 들어올려 니엘을 쳐다보았다.
|
||
|
||
“낙곱새 1인분 포장해왔어요. 먹을래요?”
|
||
|
||
곧이어 나메는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
||
|
||
니엘은 당황에 휩싸인 얼굴로 큰 눈을 계속 깜빡였다.
|
||
|
||
“어쩐지 오늘 운수가 나쁘더니만...”
|
||
|
||
“...?”
|
||
|
||
나메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
“아무것도 아니야. 고마워, 정말로...”
|
||
|
||
니엘은 여태까지 잘 참아왔던 울음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
||
|
||
그녀가 단단히 쌓아 올린 마음의 성벽은 순수한 선의 앞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려버린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