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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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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러 박사는 강단 위 의자를 발로 빙그르르 돌리면서 머리를 쥐어짜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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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야에 1초에 한번씩 에밀리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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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러 박사님. 어떠셨어요? 진짜 제대로 된 증명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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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ㅊㄱㅈㄹ’가 ‘WLOG’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고도, 로버트 퓰러는 미리 외워두었던 질문들을 추가로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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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마다 나메는 막힘없이 대답했기에, 퓰러 박사도 해석하느라 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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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줄곧 설명해왔던 ‘프록시마 논’은 ‘디리클레 L-함수의 영점’이라는 사실을 그녀가 떠난 뒤에나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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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아세파이트 알파군’, ‘카이젠 K 함수’ 등 미지의 고유명사들은 인터넷에 쳐봐도 나오지 않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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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과 형태를 보아하니 존재하지도 않을 것 같은 이론들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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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페르마가 정말로 17세기 수학만을 가지고 마지막 정리를 증명했다면 이런 형태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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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타원곡선과 모듈러성 정리라는 현대 수학이 정립되고 나서야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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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외의 방법으로도 풀릴 수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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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탕에는 분명 상상도 못 한 획기적인 이론들이 숨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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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퓰러 박사는 손가락을 경쾌하게 튕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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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고민 끝에 가닥이 잡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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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증명이 참이든 거짓이든 결과는 중요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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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의 증명에 담긴 내용 자체만으로도 수학계를 뒤흔들 미래가 훤히 그려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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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자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인내심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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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다양한 분야를 아는 사람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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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발달 이후로 사회에서는 지식인들에게 다시 전문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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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에서는 코끼리를 배우고, 석사에서는 코끼리 발을 배운다면, 박사에서는 코끼리 발톱 때를 연구한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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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시간은 유한하고, 전문적 지식에는 끝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분야를 계속 좁혀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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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같은 코끼리 전문가라도 다른 이들이 연구하는 분야를 전혀 모를 수 있는 폐단이 생겨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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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폰 노이만이나 테렌스 타오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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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돌아가셨잖아요. 그리고 노이만은 수학자도 아니고 100년 전 이론마법학자인데 왜 여기서 찾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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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라는 분야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인 존재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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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만 나메의 이론이 이미 나와있는 것인지 아예 새로운 이론인지 교차검증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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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퓰러 박사는 다른 방안을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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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건 집단지성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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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도 100명이 모인다면 코끼리 형상 정도는 대충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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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님 말씀대로 대형 강의실을 빌리기를 참 잘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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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다음에는 먹을 거라도 가져와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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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교수는 나메가 좋아할만한 간식이 뭐가 있을지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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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흘끔 쳐다보던 에밀리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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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코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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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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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죄송합니다. 어디서 타코야끼 냄새가 나서. 절대로 박사님 머리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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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탈모가 아니라 머리를 민 거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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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잘 알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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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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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어려운 난제들도 풀렸는데 탈모약은 2051년이 될 때까지 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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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은은하게 풍겨오는 타코야끼 냄새를 맡으며 퓰러 박사는 맨들맨들한 머리를 괜히 한번 쓰다듬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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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돌아서 그런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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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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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야! 우리 그간의 정은 다 잊은 거야? 직업체험박람회, 아니 최근에도 너희 교수님 연구실에서 만났었잖아. 우리 정말 좋았잖아! 제발 다시 돌아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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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연의 절규는 애써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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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맛 타코야끼 6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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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거의 우정보다는 현재의 행복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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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성의를 보이는 사람에게 더 끌리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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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크’ 채널이 처음 탄생한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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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끝까지 따라온 우다연은 건물 앞에서 입구컷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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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 언니랑 아는 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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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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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강의실 나오기 전부터 조금 험한 대화를 나누고 계시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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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들었어? 나메는 귀가 진짜 밝다! 자 여기 한입 더 들어간다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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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암. 음. 고마워요 단니엘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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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 음대 1학년에 재학 중인 ‘단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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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부끄러우니까 이따 선배님들 앞에서는 니엘이나 다니엘이라고 불러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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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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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래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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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코야끼 맛있네요. 위에 치즈가루를 뿌린 게 참신해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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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다행이다 좋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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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왜 예쁘기만 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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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언니, 이번 교양 과목 나랑 같은 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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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서 서로 아는 사이였구나. 접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았는데 교양 과목으로 엮인 사이라면 말이 달라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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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목 이름도 ‘인간관계의 심리학’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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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나는 귀가 솔깃해져서 수업에서 어떤 걸 배우는지, 실습으로는 무얼 하는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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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가 파탄났을 때 어떤 심리기제가 발생하는지 가르쳐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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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하는 대상이 생겼을 때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알려주면 나도 직접 참관해서 들을 의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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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그런 수업 아니야! 그냥 솔직히 수업에서는 뭐 배우는지 잘 모르겠구... 그냥 팀원들끼리 만나서 노는 거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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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아요? 수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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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막 볼링장도 가고, VR게임도 하고, 술도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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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끝이에요? 에이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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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인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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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가 생각하는 대학 수업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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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는 전생의 쓰레기같은 아카데미와도 별 차이점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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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은 허울일 뿐이고 귀족들의 친목의 장으로 변질되어버린 카이젠 중앙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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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약자들을 짓밟으면서 어떻게라도 귀족들과 연을 맺으려고 애썼고, 귀족 자제들은 수업에까지 와인을 가져와 술파티를 벌이는, 그야말로 교육기관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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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잘 놀고 학점만 잘 따면 그만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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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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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나메도 수업 들으러 와볼래? 교수님께서도 분명 좋아하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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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트라우마가 재현되며 눈앞이 아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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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니엘이 이런 사람일 줄 알았으면 차라리 아까 우다연을 따라가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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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엎질러진 물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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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크 스튜디오에는 그녀가 말해주었던 것처럼 여러 명의 대학생들과, 훨씬 나이 많은 여성분이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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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교수와 비슷한 아우라를 풍기는 거 보니 딱 봐도 이 사람은 대학 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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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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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메야 너 너무 귀엽다! 그래 안녕 만나서 정말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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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목소리 끝이 한 옥타브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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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들에게 말을 걸면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진다는데, 막상 당해보는 입장이 되어보니까 심히 부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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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바크 부원들과도 한 명씩 인사를 차례대로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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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다들 개성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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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하나 따지자면 손가락이 길고 곱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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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우리 바크 알아요 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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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예전에 추천영상으로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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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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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봐 아까 나메가 우리 안다고 말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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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진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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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시에도 100만 구독자나 되는 대형 브이튜브 채널이면 한 번도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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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클래식 음악을 자주 검색하는 나로서는 피드에 종종 뜨는 채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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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들떠서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봤다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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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봤어요? 어떤 영상인지 알려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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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은 꽤 여러 개 봤었고. 거의 다 재작년에 봤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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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렇구나! 우와 재작년이면 나메가 완전 쪼꼬미였을 때네! 여섯 살이면 진짜 어리긴 어리... 다... 잠시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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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급히 자기 입을 막아보는 여자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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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으...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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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썹이 팔자로 휘며 눈동자는 또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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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힘이 풀린 건지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풀썩 주저앉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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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 난 또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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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슐에 갇혀있을 때만 본 거 아니에요. 구출되고 나서도 가끔씩은 생각나서 찾아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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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에 갇혀있을 때 즐길 거리가 너무 없었던 나머지 억지로 본 거라고 착각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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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아니었다. 보니까 천만 조회수 동영상도 있을 정도로 인기도 많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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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하는 의미로 그녀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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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이번에는 뒤에 있던 단니엘이 눈에 흰자위를 보이더니 그대로 옆으로 고꾸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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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들 단체로 왜 이러는데? 이것도 몰카 같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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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니엘은 생각했다. 세상에 이런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둘이나 있을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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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 에브리타임에도 아이의 얼굴만 절묘하게 잘린 사진들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초상권 문제 때문에 다들 알아서 자중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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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나메가 연주를 끝내고 헤어지고 나서도, 니엘은 한번 더 그녀를 만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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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엘은 학교 정문까지 내려가서 타꼬야끼를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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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땡볕이 내리쬐는 날씨에 다시 자연대 건물까지 뛰어서 온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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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귀여운 아이와 손도 잡아보고, 무엇보다 경쟁자였던 힉스 스튜디오까지 물리칠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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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도 다들 들뜬 기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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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와는 달리 ‘바크’는 PD들의 현생문제와 컨텐츠 제작 의무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겪고 있는 칙칙하고 우울한 집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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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나메가 가져오는 활기는 차원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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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너무 들뜬 나머지 한 선배가 말실수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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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일관 미소가 떠나지 않았던 단니엘이 정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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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슐에 갇혀있을 때만 본 거 아니에요. 구출되고 나서도 가끔씩은 생각나서 찾아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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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아이가 난처해하지 말라고 애써 웃어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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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구비 뚜렷하고 귀여운 외모에 가려져 다들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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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메라는 아이는 자그마치 7년동안이나 캡슐에 갇혀있던 사람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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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도 자기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바로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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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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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니엘은 갑자기 숨이 턱 막혀오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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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가 7년동안 캡슐에 갇혀 있으면서 얼마나 큰 고통을 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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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트라우마’를 맞닥뜨렸을 때 어쩜 이리 초연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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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이런 곳에 불러서 미안한 감정이 우선적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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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들어 머리가 어지러워질 찰나, 단니엘은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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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스튜디오 매트리스에서 다시 깨어난 단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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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엘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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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 나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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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엘은 자신보다도 나메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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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교수님이랑 같이 ‘마에스트로’ 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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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설마 가상현실 그거? 나메가 캡슐 안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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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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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겠어 나도 직접 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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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무리하지마 니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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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엘이 옆방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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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점점 무거워졌지만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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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노나메의 경우처럼 어린 시절 캡슐에 갇히다시피 살아온 단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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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해 또 정신을 잃을 지라도 나메가 괜찮은지 확인하는 게 급선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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