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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만 말하자면 결국 나는 니오베를 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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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사랑했던 아이의 죽음을 지켜볼 수 있었던 건 나 혼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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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센 앞에 찾아가 몇 날 며칠을 빌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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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센은 그때마다 내게 잘못이 없다고 다독여줬지만, 그가 실상을 알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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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니오베를 한때 ‘질투’했었고, 그녀를 죽인 독사는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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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의 잘못으로 그녀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너무나도 두려워서, 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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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오베가 모두와 이별할 시간조차도 빼앗아버린 나는, 그녀의 시신을 안고 돌아왔을 때 황실 그 누구에게도 고운 시선을 받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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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황녀가 3황녀를 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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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자신이 너무 혐오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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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시, 어느 마법을 사용해야할지 고민을 하던 나는 애써 생각해낸 근거가 겨우 기댓값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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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오베가 앞으로 살아갈 나날들이 아직도 훨씬 많이 남았기에, 그녀를 살릴 수 있을 확률이 아무리 적었어도 1개월의 가치보다는 높다는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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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수학적으로는 옳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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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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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면 1이고 실패하면 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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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을 선택해버린 나 자신이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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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생을 겨우 숫자로 판단해버린 내가 너무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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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오베가 응당 받았어야 할 행복, 위로, 격려 전부를 나 자신을 정당화시키는데에 사용한 내가 증오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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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욱 지식에 집착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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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는 죄악이고, 질투는 나의 곱씹을 원죄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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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창처럼 파편나버린 자아를 붙들고 있는 건 결국은 다시 마법을 향한 집착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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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질투를 하기 싫었고, 아니 질투를 하지 말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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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것에 스스로를 가두고, 고립시키고, 구속시키고, 사정없이 구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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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히 빛나는 존재들에게는 시기보다는 경외의 감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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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말하면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낮추어, 바닥을 기어다니는 개미의 배때기가 보일 때까지 낮추면 질투심이 사라지는 게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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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검술을 포기하고, 사교계를 포기하고, 외모를 가꾸는 것조차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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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맘때쯤 새로운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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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황녀의 배후에는 마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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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속죄의 방법을 몰랐던 나로서는 어리석게도 두 귀를 막아버리는 선택을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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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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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뭐, 얼추 다 정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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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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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같은 상황에서 이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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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내 판단을 옹호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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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포시 올라가는 눈꺼풀에, 희뿌연 세상에서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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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왜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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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참가자들은 모두 큰 마법진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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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오베를 살리기 위해 썼지만, 하지만 도리어 그녀의 인생에 종지부를 찍은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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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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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창 아저씨가 가장 먼저 목소리를 다듬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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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지른 잘못에는, 내 스스로 책임져야 하지 않겠어요?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그게 남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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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단순한 대답에 나는 벙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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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면서 이유를 말하는 분위기네? 으음... 확실히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도 안 했다면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았을까요? 살아있는 한 달이라는 기간을 지켜보는 것도 너무 가혹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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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써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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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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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씩, 하나씩. 제각기 다른 이유였지만 결론은 언제나 동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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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마지막은 저네요. 저는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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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살려’가 턱을 쓰다듬으며 답변의 시간을 벌었다. 나도 닉네임을 아는 방송 초창기부터 있었던 시청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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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더 오래 보고 싶으니까 골랐어요. 솔직히 저희들 입장에서 노네임님이 한 달만 딱 방송하고 그만둔다하면 누가 보러 오겠어요. 이렇게 가끔이라도 계속 저희들 잊지 않고 찾아와주니까 다들 좋아라 하는 거지. 아 비유가 조금 이상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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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심탄회하게 마음에 품은 생각을 보인 대살이 머리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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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괜찮은 비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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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방송 좀 자주 켜주세요. 월오아 한판 띡 해버리고 그렇게 가버리는 게 어딨어? 감질나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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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정답은 뭡니까 노네임님? 설마 우리들 다 떨어뜨리려는 속셈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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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매니저 달기 빡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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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전형까지 패스해야함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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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다들 왜 이렇게 말을 잘함? 밖에 나가면 말도 못 붙이는 히키코모리 아싸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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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밖이 아니잖아 정신 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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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창행님은 여친도 있으시네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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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핑일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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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현실 반영 아바타 썼다고 인증 엠블럼까지 박혀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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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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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고르든 결국 니오베는 돌아오지 않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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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의 답변을 듣고, 마음 속에 풀리지 않은 응어리가 물에 빠진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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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니스 벨룸이면 어떻고 글라키스 아스타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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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의미없는 서열질이었을 뿐이었다. 언제나 마법 그 자체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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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순간 선택한 마법이 정답이 되도록, 우리는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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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타샤는 니오베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었고, 나는 비로소 그녀의 결정을 옹호해주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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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정답이에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매니저 여러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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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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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의 방송을 마치고 다섯명의 매니저들과 계속 버츄얼 스페이스에 남아 앞으로의 방송계획에 대해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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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제가 조금 바쁘고, 일요일 이른 오후에 월오아 방송을 시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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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마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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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님 근데 진짜 아델라 살릴 때까지 1부 클리어 안 하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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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2부로 넘어가서 2서클 마법 쓰는 것도 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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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죠. 여러분들이 그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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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마리가 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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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방법도 얼추 계획해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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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라가 죽지 않는 세계선이 존재할지는 지켜봐야하는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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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 열심히 해주세요. 타 스트리머 언급 금지고요, 친목도 안 되고, 방송과 상관없는 내용이나 도배도 당연히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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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는 저희도 다 압니다! 우리가 트위시 경력만 몇 년인데 척이면 척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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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선별된 매니저들을 한 명씩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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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남성 아바타를 한 대살을 비롯해서, 헬창 아저씨, 사이버펑크 코스프레녀, 가오나시, 그리고 고양이 퍼리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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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갈수록 다들 개성이 흘러넘치다 못해 과한 이들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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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모인 김에 내일 우리 집에 방문할 애들 동물잠옷이나 추천받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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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각자 좋아하는 동물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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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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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살이 먼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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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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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좋아하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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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이 독특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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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이 술렁거리자 대살이 어깨를 으쓱이며 의문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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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럼 다들 소고기 좋아해요? 한국인인데 돼지고기 좋아할 수도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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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트가 안 맞는 말에 내가 질문을 정정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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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말고... 그냥 좋아하는 동물이요. 개나 고양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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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고기 사주는 거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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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기를 왜 사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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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뒤풀이 그런 느낌으로 물어보는 줄 알아서... 매니저로 뽑힌 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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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질문의 기회가 넘어가버린 대살은 뒤로 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의견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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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고양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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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고양이가 제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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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펑녀와 퍼리녀가 각각 대답했다. 후자는 굳이 안 물어봐도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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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꿀오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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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곰이 제일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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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가오나시와 헬창남의 답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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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꿀오소리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곰 모양의 동물잠옷은 팔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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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네임님 브이튜브는 하실 생각은 없어요? 다른 채널에서 조회수 빨리는 거 보면 마음이 다 아프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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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대살은 내 활약상을 편집해 인기를 끌고 있는 영상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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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채널을 개설해서 영상을 올렸다면 이미 유명해지고도 남았을 거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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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시에서는 방송 하나만으로 유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요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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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에서 새로운 어플을 까는 빈도가 적은 것처럼, 생각보다 사람들은 다른 스트리머의 방송을 탐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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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방송을 꾸준히 할 생각이라면, 꼭 브이튜브도 병행하는 걸 추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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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그렇게 커지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도 있었지만, 돈을 갚지 못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측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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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영상을 올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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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편집자를 어떻게 구해야할지, 구한다면 누구로 해야할 지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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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이면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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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랑 달리 편집자랑은 연락할 일이 방송 외적으로도 적지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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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모두 수고하셨어요. 오늘 내로 매니저 권한 드릴 테니까 이제 가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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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수고하셨습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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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노네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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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수인이 수줍게 손을 올려 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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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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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악수 한 번만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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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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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잖아요! 어떻게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악수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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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 정도야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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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슬복슬한 털뭉치에 가려진 분홍색 젤리의 감촉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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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면서 한시라도 내 손을 더 잡고 있으려는 의지가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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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례가 안 된다면 이런 아바타는 얼마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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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특이 취향의 아바타였다. 고양이 동공부터 시작해서 육구와 발톱, 그리고 털의 재질과 패턴까지 묘하게 구체적인 게 가내 수공업으로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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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그으 메타크래프트 아바타숍에서 나름 할인해서 샀어요! 한 파... 팔백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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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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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리들이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은 건 정설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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