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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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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개의 불씨가 모두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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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병실 전등을 켜기 위해 일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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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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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의 시끌벅적했던 분위기가 전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싸늘한 침묵이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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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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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나는 살짝 당황하여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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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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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아 나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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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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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도 안 불렀는데 벌써 꺼버리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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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케이크가 빨리 먹고 싶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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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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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팔린 마음에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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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생일 축하한다길래 난 당연히 노래까지 이미 다 부른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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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그렇게 무아지경이 될 때까지 회상에 잠겨있던 것도 아닌데 노래소리가 안 들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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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항상 성냥이 두 개씩 있는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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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아버지가 케이크 박스에 남아있던 성냥 한 개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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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불면 안 돼 노나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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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는 실수였다니까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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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손바닥을 들고 박수를 치려는 찰나에 방문이 드르륵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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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좀 어둡긴 했지만 저 거대한 실루엣만 봐도 박실장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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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잠시 일이 있다며 나가보았던 경호원의 재등장에, 하루가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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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케이크에 촛농 떨어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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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노래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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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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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박수소리에 맞추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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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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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큰 목청의 주인은 유나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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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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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천교수의 낮은 목소리도 섞여 들어갔다. 그 와중에 매니저 저 녀석은 입만 뻥긋하고 있던 게 나한테 딱 걸렸다. 나중에 두고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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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나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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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앉아있던 윤슬이 고개를 불쑥 내밀어 작은 불빛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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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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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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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냐고 눈짓으로 물었지만 그녀는 미소만 짓고 다시 노래에 전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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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합니다! 와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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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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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한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이제는 오해할 수 없는 타이밍이었기에 안심하고 촛불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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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와 달리 사람들의 동작은 신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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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팅의 역순으로 케이크에서 초를 뽑고, 창문 커튼을 활짝 걷고, 하얀 LED 전등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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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뿌연 연기가 천장 조명을 타고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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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밝아진 환경에 적응하려고 눈을 비비고 있었는데, 옆에서 하루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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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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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맞은편 구석에 앉아있는 인물에게 삿대질을 했다. 박실장?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옆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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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손가락을 따라서 시선을 옮겨보니, 윤슬이와 비슷한 또래의 소녀가 한쪽 다리를 꼬고 새초롬하게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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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오프숄더 블라우스와 시원한 하늘색의 청반바지. 그리고 가슴팍쪽에 있는 프릴을 짓누르는 구찌 체인백과 이마에 꽂은 선글래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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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꾸민 것은 없지만 옷차림 하나하나에 귀티가 흘러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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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기가 잘 돌지 않는 체질인지 뭔지는 몰라도 피부가 나름 하얀 편인 윤슬보다도 더욱 하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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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갸우뚱하는 것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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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씩씩대며 테이블 맞은편으로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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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여길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 설마 박실장님이 데리고 왔어? 왜 내가 친구 생일파티 하는 곳까지 따라온 건데, 왜 그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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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악을 질러보지만 효과는 하나도 없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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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건조한 눈이 움직여 나와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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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 딸이 조금 오해하는 게 있나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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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작은 체인백을 열고 직사각형 모양의 편지지를 꺼내 씩씩대는 하루의 얼굴 앞에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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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여기 초대받아서 온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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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장을 받든 하루의 손이 사정없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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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있다가 갈 거니까 신경 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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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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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카데미 학생들의 출신을 간과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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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이가 나이인 게 가장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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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진짜 부자들일수록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경제관념을 확실하게 심어주기 위해 평범하게 키운다는 얘기를 어디서 주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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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꼭 부족하게 키운다는 말은 또 아니었지만, 아무튼 아카데미에서의 생활만 놓고 보자면 꽤나 동감하는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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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서열 16위 삼연그룹 부회장의 손녀딸 이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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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첫 자기소개 때 그녀의 친구들로부터 알 수 있었던 정보였지만, 이하루가 다른 반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모습에서 그런 이미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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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그녀의 언니 이보름은 처음부터 ‘나 재벌이오’라는 분위기를 팍팍 풍기고 있으니까 어찌보면 신기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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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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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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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교 읍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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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아 쉬잇! 뭐하는 거야...! 아직 사람들 다 가지도 않았는데 여기서 그 닉네임을 말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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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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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 만난 뒤부터 이보름의 시선은 나에게로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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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내가 닉네임을 떠벌리고 다닐까봐 두려워서 그랬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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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 잘 있어! 빨리 나아서 아카데미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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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기말 열심히 공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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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번에는 꼭 나메 이기고 말 거야! 한 과목이라도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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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파티가 끝나고도 친구들과 긴 잡담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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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교에 결석했을 동안 재클린 선생님이 어떤 상태였는지, 이번 기말고사는 어디가 어려운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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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형사가 저녁까지 있으면 환자를 너무 오래 붙들어 놓는 것 같다면서 지혜와 서리를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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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필두로 다른 아이들과도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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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이미 종료된지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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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병실에 남아있던 이들은 내 방송 매니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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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살 오빠는 왜 안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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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름이 핀잔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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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 가야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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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궁금해서 그런데 오늘 나메 보려고 대전에서부터 기차타고 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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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기차타고 오지 걸어서 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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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쒸불... 아싸식 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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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보단 친구 10배는 많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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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것보다 100배 더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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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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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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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골플렉스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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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대수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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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구골플렉스가 훨씬 커 멍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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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둘 다 유치하게 그 나이 먹고 그러고 싶어요? 내 친구들도 안 그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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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차은우라는 이름으로 자기소개 시간마다 웃음타율 100%를 보여준 대살까지 떠나보내고 이보름씨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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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은 뭔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면서도 긴장했는지 계속 머뭇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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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생일파티에 왔는데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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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줄곧 구석 자리에 몇 시간 동안이나 앉아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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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천교수가 테이블을 치울 때 조금 손을 거들어준 게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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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내 질문에 대답할 기미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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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를 바꾸어 여러 각도에서 내 얼굴을 스캔하듯이 쳐다본 이보름은 다시 침대 옆 의자로 돌아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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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씨는 동생이랑 사이가 별로 안 좋아보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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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그렇게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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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보이겠지가 아니라 그냥 완전 앙숙처럼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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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나 쟤 싫어해. 쟨 나를 더 싫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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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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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엔 또 불쌍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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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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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싫어하는 거야 아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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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미묘한 표정과 표현을 섞어 써버리니 머리 위에 물음표가 자동으로 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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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사연이라도 들려줄래요? 이야기 정도는 잘 들어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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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우리 방장님 그런 식으로 하루를 꼬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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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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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그리고 반말 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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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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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권해주니까 훨씬 편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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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랗게 어린 애들한테 일일이 존댓말을 붙이는 것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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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원래 이런 얘기는 담배 없이는 꺼내기 힘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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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은 의자에 걸터 앉아 다리를 내쪽 침대 위로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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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신고 있던 양말에는 고양이 캐릭터가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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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게 꽤나 민망했는지 발을 꼼지락거리며 이불 밑으로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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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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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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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말이야. 만들어주면 필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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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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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약간 한국어를 잘 못 알아듣는 타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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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와는 다르게 조금 맹한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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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담배를 원한다고 하니까 주위의 마나를 끌어오기 위해 눈을 감고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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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했던 것처럼 사과향이면 대충 만족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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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잠깐! 뭐하는 거야! 노네임, 아니 나메 네가 마법을 쓰니까 진짜 뭐라도 만들어낼 것 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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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달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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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고등학교 2학년이거든! 애초에 담배 피면 안 되는 나이야! 심지어 여긴 병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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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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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뭔가 이상해. 내가 줄곧 상상해왔던 방장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어린 꼬마라고 하니까 너무 혼란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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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카리리도 겪었고 다른 사람들도 똑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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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름이 나에게 친숙해질 때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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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각자 날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듣는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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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살려’ 차은우는 처음에 나를 공립대학의 젊은 부교수쯤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카리리의 동생 ‘호야무야호’ 설태양은 백수 대학생이라고 생각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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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보름의 머릿 속 세계관은 독특하다 못해 파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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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가 여자인 사실조차 뒤늦게 알아차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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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오아 방송 유입이었기에 사실상 내 플레이만을 보고 팬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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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매니저에 뽑힌 것도 정말 약삭빠른 눈치와 기막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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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마범일 형사님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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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래 UFC를 조금 좋아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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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나를 느와르 영화에 나오는 40대 아저씨처럼 생각했다는게 사람이 참 편견없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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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페널티 때문에 검을 쓸 수가 없어 육탄전 위주의 전투가 정말 많긴 했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여성 아바타가 주는 분위기라는 게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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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진짜 담배는 안 펴! 펴본 적은... 그래 두세 번 있지만 그 뒤로는 정말 한번도 안 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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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설태양이 남중딩 양아치처럼 생겼다면, 이보름은 전형적인 틱톡에 나올법한 고딩 양아치라는 수식어가 걸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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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까 담배는 그냥 장난으로 하는 말이었던 거지 나메야?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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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보름의 말은 허언에 가까운, ‘센 척’, 혹은 ‘중2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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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적으로 말해주면 너무 상처받을까봐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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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보름 언니. 나 지금 나가봐야하는데 혹시 계속 대화하고 싶으면 같이 가면서 얘기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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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래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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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안 심심하고 좋아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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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시간이 다 되었지만 여름의 해는 아직도 하늘에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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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을 유심히 바라보니 태양이 쏘아내린 활기가 가시지 않은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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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생긴 동행자와 함께, 오늘의 마지막 일정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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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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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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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퇴근 시간이었기에 대로변 한가운데에서 천교수의 차가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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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교수는 재즈 음악을 들으며 먼 산을 감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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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메의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이보름이 그녀에게 조용히 다가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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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우리 어디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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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은 나메로부터 행선지를 전해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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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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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어머니 뵈러 가는구나... 엄마...? 잠시만 그걸 왜 지금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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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은 이 순간이 지옥 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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