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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대변인의 언급 이후로, 나메가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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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한 익명의 제보자에 의해, 나메가 구급차 들것에 실려 급히 병원으로 이송된 영상이 공개되면서 사회는 또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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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ㅠㅠㅠㅠㅠ 노네임 대회 할 때까지만 해도 건강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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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방송도 버킷 리스트 같은 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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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길한 소리 하지 마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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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진짜 에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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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있다면 진짜 원망스럽다. 저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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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의 재능을 가졌지만 단명하는 것까지... 앗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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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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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나메 세상이 억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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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지 마라 제바류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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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실려갔는지 아는 사람 있음? 제발 한명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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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라시긴 한데 지금 시니어 교수님들까지 다 병원에 호출된 걸로 알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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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수술까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일일까? 영상에서는 멀쩡하게 앉아 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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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서울병원 동OO 교수 수술 일정 바뀌었음 <- 오러하트이식 전문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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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너 내부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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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나메가 이 폭로 한번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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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세계에 다시는 없을 재능을 가진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은 사람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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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인터뷰에서 보았던 모습이 정말 아이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되어버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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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노나메’양 오러하트 수술 동진수 의료팀 20시 30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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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나메야ㅠㅠㅠㅠㅠ 삼촌이모들이 이렇게 빌게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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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80만 구독자 버릴 거야...? 꼭 돌아올거지? ㅠㅠㅠㅠㅠ 제발제발제발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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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네임 대신 아파줄 수만 있으면 좋겠다 진짜루ㅜ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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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러하트면 무조건 대수술이잖아 말이 되냐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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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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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메를린 보육원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기자들 때문에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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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하게 들이미는 카메라 장비들은 한눈에 척 보기에도 비싸 보였고, 성인 남녀들은 하나같이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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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미덕으로 삼는 기독교 계열의 보육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러한 소란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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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노나메’라는 아이에 대한 인터뷰, 그리고 그녀가 살았던 206호의 방문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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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근데 206호는 귀신 나오는 방 아니야...? 예전에 거기에 사람이 살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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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모두가 기피하게 된 2층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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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많은 어린 원생의 물음에 중학생들 또래 사이에서는 대장격 노릇을 하던 재환이 팔짱을 끼고 회상에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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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호는 진짜 귀신 나오는 방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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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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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러하트에 문제가 있었다는 건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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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서는 레스타카야 증후군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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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서는 금단의 9서클 마법을 인간의 몸으로 억지로 시전하려고 했을 때만 발현되는 매우 희귀한 증상이었지만, 의외로 현대 사회에서는 천만 명 중 한두 명꼴로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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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소나 8서클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세상은 다행히도 아니었고, 오히려 세계적으로 마나 농도가 지나치게 낮았던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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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성한계 이상으로 팽창되어버린 오러하트는 다시 본래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고 변형된 상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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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동맥벽이 얇아지듯 오러와 마나를 경계 짓는 벽이 점점 허물어지고, 최후에는 파열로 인해 신경성 쇼크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실로 무시무시한 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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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임시방편으로 고안해낸 방법은 바로 오러하트를 7개로 쪼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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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인 의미로 쪼갠다기보다는 댐의 입구를 막는다는 표현이 적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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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인 상황에서 댐의 수문을 전부 열어버리면 금방 바닥을 보이게 되지만, 한쪽만 열게 되면 마나가 모두 그쪽으로 흘러들어가서 적절한 수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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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마나가 오러로 제대로 변환이 되는지, 그리고 그 오러가 체내에서 잘 순환될 수 있는지가 중요했기 때문에 오러하트의 일부만을 쓰게 된다고 하더라도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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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마지막이야 아린아, 잘 잡고 있어. 놓치면 안 돼. 눈 뜨지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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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으으...! 내 심장이 아까 전부터 쿵쾅쿵쾅, 막 화가 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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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만 버텨 할 수 있어. 야 백아린 손 떨지 마! 집중해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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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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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로 엮어낸 철심을 체내에 직접 찔러 넣는 작업이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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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시 나의 작은 수술을 책임져준 조수는 백아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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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도 모르는 초등학생 1학년이 오러를 다루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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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길이 15cm, 직경 0.7mm의 오러 구조물을 최대한 손가락으로 붙들고 있어 달라는 부탁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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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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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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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에 찔린 건 나인데 아린의 열 발가락이 오므려졌다. 눈을 얼마나 세게 찡그렸는지 그녀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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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뛰어난 상상력은 타인의 고통마저도 공감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랐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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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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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추? 조금만 더 쑤셔 넣어야 할 것 같은데.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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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야 그럼 이제 나 눈 떠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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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뜨고 싶으면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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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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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의 두 눈이 끔뻑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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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복부를 관통하고 있는 7개의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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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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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각도를 조절해가며 손가락으로 툭툭 밀어넣는 모습을 목격하고선, 아린이는 그 자리에서 거품까지 물고 혼절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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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차가운 바닥에 쓰러진 아이를 바로 돌봐줄 여력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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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훨씬 고되고 지루한 작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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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처럼 얇은 철심에 방을 만들고, 각각의 방에 구심점이 되어줄 고유마도를 봉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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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뛰어봤자 결국 내 몸 안이니 정밀한 회로감옥을 설계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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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추후 마법을 다룸에 있어서 좌표계가 변동되기라도 하면 계산이 까다로워지니 대충 그럴싸한 ‘집’이라도 지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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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메두사, 그 옆에는 에리시톤, 마지막으로 샤덴프로이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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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마도를 이루는 회로술식은 오러하트의 입출구를 봉인하는 훌륭한 문지기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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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이가 다시 깨어난 건 그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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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배에서 튀어나온 가시들을 손톱깎이로 정성스럽게 잘라내는 게 신기한 모양인지 계속 힐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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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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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진짜 철심도 아니니까. 대충 모양만 잡히면 다시 몸으로 흡수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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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긍... 그래두 아플 것 같은데... 내가 도와줄 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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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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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은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며 나를 더 도와주고 싶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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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이 손톱깎이로 깎은 철심을 한데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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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손바닥 대봐. 이렇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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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으로 공손하게 손바닥을 펴든 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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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나 찔리지 않도록 손바닥에 오러로 된 코팅막을 입혀주고 여남은 철심조각들을 올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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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내 방에 쓰레기통 있지? 저기에 갖다가 버려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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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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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쓰레기 셔틀을 맡게 된 아린이는 부탁을 받은 게 그리도 기쁜지 오도도도 방문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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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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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백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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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당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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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그녀의 발밑에 오래된 바닥장판이 조금 튀어나와 있었고, 아린의 발이 거기에 제대로 걸려 넘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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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이가 들고 있던 철심들은 사방으로 날아가 벽과 바닥에 박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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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윽... 으아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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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못 살아. 괜찮아 아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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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것도 똑바로 못해서... 흐끅... 미안해 흐에에에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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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은 무릎에 난 시퍼런 멍을 부여잡고 세상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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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네 잘못이 아닌걸. 수녀님께 장판 바꿔달라고 해야겠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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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흐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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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다니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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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달래는데에는 썩 재주가 좋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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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이 울음을 멈춘 건 그로부터 10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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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다가 지친 아이는 뒤로 발라당 넘어져 바닥에 누워버렸고, 갑자기 몸을 흠칫 떨더니 내게 달려와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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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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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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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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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귀신소리가 들렸어! 뭐야...? 나 진짜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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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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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안 들려... 근데 진짜 들었어! 거짓말 아니야 나메야! 진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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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겠어 믿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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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짠뎅... 우으으... 흐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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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뇌리에 스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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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이가 뒤로 넘어지면서 손을 짚은 곳은 아까 철심이 날아가 바닥에 박힌 지점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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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서 손을 이리저리 훑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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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청을 찢을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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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증스러운 새끼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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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그냥 죽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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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도 쉬지 마! 죽여버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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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이가 말했던 귀신의 정체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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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감정으로 빚어낸 고유마도 ‘세크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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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의 아주 작은 파편이 철심을 타고 흘러나온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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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성 사인펜을 가져와 바닥에 X자 표시를 새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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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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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비슷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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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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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별로 위험한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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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철심이 박혔던 6곳의 위치에도 X 표시를 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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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여기는 만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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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면 어떻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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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처럼 귀신 소리가 들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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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진짜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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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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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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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긴 샤덴프로이데 회로의 반감기가 2주니까 얼추 2달만 지나면 이런 현상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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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아린에게는 표식을 찍어놓은 곳을 만지지 않도록 신신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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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어려서부터 욕을 배워버리면 좋을 건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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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충고가 무색하게, 아린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점잖은 신사 아저씨에게 입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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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까지 숨 막히는 보육원에서 뛰쳐나와버리면서, 순식간에 공실로 변해버린 206호는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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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이 MRI 사진은 이제 옆에서 찍은 건데, 왼쪽 사진 상에서 보이는 부분들은 우선 오러하트를 감싸고 있는 신경다발이고요. 여기 보시는 것처럼 커다란 신경다발뭉치가 있는데 이게 오러하트의 경계면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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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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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성인 주먹만 하죠? 보시면 동나이대 어린이들의 열 배 정도는 큰 오러하트를 가지고 있어요. 원래부터 컸던 탓도 있겠지만 주위 장기가 짓눌린 거 보면 후천적으로 확장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밝게 보이는 관이 보이시나요? 이게 이제 주신경인데 다행히 외벽이 두꺼워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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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의사는 장장 12시간에 걸친 대수술의 과정과 결과를 보호자인 천교수에게 낱낱이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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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플러에 찍힌 것처럼 찌그러진 모양의 오러하트를 펴주고, 대신 주신경을 제외한 나머지 통로는 매듭을 만들어 마나가 흡수되는 양을 정상수치로 되돌려주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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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러하트가 스스로 구역을 나누는 건 정말 의사생활 30년 하면서도 처음보는 사례인 것 같은데, 혹시 환자분과 보호자분이 동의만 해주신다면 학계에 보고해도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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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교수는 대차게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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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또한 크게 아쉬워하는 마음은 없어보였다. 어쨌거나 대수술이 성공한 것만으로도 만족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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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방을 떠나고 나니, 천교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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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야, 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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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막한 소리로 호명된 내 이름에 나는 반사적으로 눈이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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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아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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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그렇게 쫑긋거리면 모른 척 하기도 쉽지 않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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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제가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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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에는 링거가, 코에 꽂는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나잘 캐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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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지금 나는 현대의학의 정수를 온몸으로 만끽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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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은 잘 됐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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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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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기운이 없으세요 교수님. 이런 분 아니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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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야 지금도 많이 아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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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입원하게 된 게 자기의 탓이라고 생각하시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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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슬픈 표정을 지을 수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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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왼팔을 들어서, 침대 난간을 잡고 있던 그의 손을 맞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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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꼭 아프다고 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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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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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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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을 쥔 손에서 새끼 손가락만을 펴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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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둥그레 커진 눈을 한 천교수는 웃는건지 우는건지 모를 표정으로 똑같이 내 새끼 손가락을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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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교수님 저기 뒤에 큰 나무, 아 화환이구나 저건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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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메 학생의 쾌유를 기원합니다’라고 적힌 알록달록한 화환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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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조원 대통령이 잠깐 왔다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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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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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문 앞까지 얼굴만 비추고 가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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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의 수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이렇게 쉽게 만나러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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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한민국에서는 그렇게 특별할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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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절대왕정 시절을 생각하게 되니 뭔가 왕이 직접 행차한 것 같은 착각이 드는데, 따지고 보면 그냥 퇴근한 평범한 직장인 1이 사적으로 궁금해서 들린 것밖에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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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테러리스트에 대해서는 별 언급 안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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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마디 인사만 하고 헤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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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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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정말 내가 걱정돼서 보러 온 건지, 단순히 궁금해서 온 건지, 아니면 이미지메이킹으로 온 건지 내가 어떻게 구분지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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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보러 안 와도 되니까 그냥 내가 했던 부탁들만 뒤에서 잘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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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이 너무 좁은데 화환은 복도 밖에다가 내놓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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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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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른 환자분들께 민폐려나. 그냥 대충 1층 밖에다가 내놓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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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거면 그냥 버려버리는 게 낫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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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뭐 마음만 받으면 됐지. 불필요하게 공간만 차지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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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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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식의 인테리어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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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날, 정말 황당한 기사가 티비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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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저버린 비운의 천재, 대통령의 뒤늦은 회유에도 등 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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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이 직접 보낸 쾌유기원화환. 병원 뒤편 쓰레기장에서 발견돼... 외국으로의 이민 가능성 암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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