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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치고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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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까지만 해도 섭씨 30도가 넘어갔는데 지금은 16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 또한 지구 온난화의 영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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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는 정말 마법같은 말이었다. 대충 이상 기후가 일어났을 때 이를 범인으로 지목하면 아예 틀린 말은 아니게 되어버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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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기온이 내려간 까닭은 사실 지구 온난화라기보다는 제주도와 일본쪽을 스쳐 지나가는 태풍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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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전역에는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칙칙한 검은색 우산을 펴들고 등굣길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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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론 아카데미까지 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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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만으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후문쪽으로 나와서 버스를 타면 세 정거장만에 세피론 아카데미 정문 바로 앞에서 내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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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이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우산을 써도 비가 바람을 타고 횡으로 날아와 옷을 불쾌하게 적셨기 때문에 최소도보 경로를 선택하는 게 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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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분에 유나와도 조금 일찍 만날 수 있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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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마루: 너 오늘 유나랑 같이 등교한다고 했다면서? 제정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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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의 첫째오빠이자 현재 내 브이튜브 편집자 서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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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와 합방이 끝나고 그로부터 수십개의 메시지가 날아왔지만, 그때는 너무 눈이 감겨와서 차마 그에게까지 답장할 겨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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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대회 우승을 축하한다는 내용, 대충 내가 테러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눈물을 흘리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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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최신 메시지까지 스크롤을 하니 다소 의아한 말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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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마루: 나메야 너 지금 톡 보고 있는 거지? 우리 지금 유나랑 같이 버스 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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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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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문은 금방 해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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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거리 반대편에서 기다란 이중굴절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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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는 게 마치 도심 한복판에 전철이 다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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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이 꽤 많은 편인데도 출근길이라 그런지 서서 가는 사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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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파를 정성스럽게 뚫고 지나가니 남들보다 머리 하나가 툭 튀어나온 남성이 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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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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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력, 아니 키 190cm에 양아치같은 인상을 가진 사내, 유나의 둘째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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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서 있는 곳 바로 옆 좌석에는 유나와 그녀의 첫째오빠 서마루가 앉아 있었다. 둘이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느라 아직 내쪽은 보지 못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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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노을의 무서운 인상 때문에 누가 보면 순진한 남매들을 괴롭히고 있는 줄만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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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다시 경적을 울리고 출발할 때 쯤, 내가 온 걸 가장 먼저 눈치챈 이는 서노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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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일찍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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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노나메! 너 진짜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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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깨에 손을 올리는 서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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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무슨 80cm씩 차이가 나니까 올려다보기도 힘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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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문득 반가운 마음에 장난기가 들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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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만지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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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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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치한같이 생겼다고 골려주고픈 마음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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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있는 모든 승객들의 시선이 갑자기 우리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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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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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시간에 이목이 집중된 현상에 서노을도, 나도 정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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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난 그... 그런 사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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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이렇게까지 떨리는 목소리는 처음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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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아저씨, 지팡이를 슬그머니 올려든 할아버지, 품에 있던 우산에 손을 가져간 고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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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서노을을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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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들 알았나. 설마 이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다 들어버릴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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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이 상황을 무마시키기 위해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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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변명을 5초 안에 생각해내지 않으면 서노을의 두개골이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시민들에 의해 절반으로 쪼개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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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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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가 한국을 뒤흔들 인터뷰를 했던 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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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르고 코까지 골며 쿨쿨 자고 있는 유나의 옆에서 마루와 노을 형제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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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주일간 나메가 보여준 활약들을 떠올려보면 거짓말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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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에는 나메가 자기 나이답지 않게 대단하다고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 그녀가 대체 얼마나 뛰어난지 그 정도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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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마법같은 경우는 소수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으므로 더욱 그러한 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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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그녀는 전 세계 인류를 놓고 보아도 이레귤러, 혹은 아웃라이어인 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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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러면 모든 아침 뉴스 채널이 내내 나메에 대한 토픽으로만 도배될 리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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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7년간 캡슐에 갇혀있었다는 사연을 듣고서는, 숙연해지는 마음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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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웅... 오빠야들 둘 다 일찍 일어났네... 응? 우와 나메한테 톡이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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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눈으로 폰을 확인한 유나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오빠들에게 쪼르르 달려가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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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메가 나랑 같이 아카데미 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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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은 소리까지 지르며 방방 뛰는 유나를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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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오늘? 게다가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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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얼마나 주목을 받는줄도 모르고 겁 없이 길거리를 막 걸어다니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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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의 모습 때문에 자꾸만 그녀가 어른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긴 했지만 노나메는 엄연한 7세 꼬마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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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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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야 오늘 오빠들이랑 같이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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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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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뭐... 나메가 유명해졌으니까 보디가드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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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나메 지금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이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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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꼴딱 새운 형제들이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외출할 채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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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가에 웃음기가 떠나지 않는 붉은 머리 소녀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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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가 그렇게 좋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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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는 아직 나메의 과거를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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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되는 건 정말 시간문제겠지. 분명 아카데미에서도 아침 뉴스를 통해 그 소식을 전해받은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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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심경으로 버스에 몸을 실은 형제들은 서로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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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똑같이 대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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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맞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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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라면 분명 그쪽을 더 선호할 거야. 정말 어른스러운 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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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나중에 따로 개인적으로 만나서 해주어도 늦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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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평범한 일상을 지켜주기 위해 등굣길에 따라 나서준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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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유나와 함께 평범한 초등학생으로서의 삶을 살게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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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티를 내지 말고 평소처럼 밝고 따뜻하게 대해주자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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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연한 다짐이 무색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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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만지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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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자신을 치한으로 몰아가는 노나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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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위기를 겪은 서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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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정말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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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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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이면 머리도 같이 쓰다듬어주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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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훌륭한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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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의 큼지막한 손바닥이 내 정수리를 휙휙 휘젓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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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와아 나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너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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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이렇게 될 줄 알았나. 안녕, 유나야 오랜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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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메나메나메나메! 내가 얼마나 나메가 보고 싶었는데...! 흐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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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먹거리는 목소리로 환영해준 유나는 눈물까지 찔끔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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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의 말랑말랑한 볼을 살짝 꼬집어주고 마루와 노을에게도 다시 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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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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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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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네요. 아니 근데 유나 맛있는 거 제대로 사 먹인 거 맞아요? 애가 살이 조금 빠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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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볼을 쭈욱 늘여뜨려본다. 촉감이 미세하게 달라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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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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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몰라도 소고기는 매번 투쁠로 사주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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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알겠어요 이번만 넘어가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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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키는 큰데 항상 너무 마른 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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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다리를 보면 살집이 거의 안 붙어 있어서 언제나 걱정이 되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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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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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들려오는 소심한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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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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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네임... 맞죠...? 그 뉴스에 나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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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묻는 듯한 어조, 중학생 내지는 고등학생으로 추정되는 승객은 내 얼굴을 쓱 훑더니 확신에 찬 눈초리로 차츰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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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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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실화냐... 어떻게 이런 우연이... 같은 버스에서...? 아 죄송해요 너무 신기해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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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계세요 서 있으면 위험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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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와 대박 말하는 것도 똑같아...! 개신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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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리에 앉은 학생은 폰을 꺼내들더니 무언가 굉장한 기세로 손가락을 바쁘게 놀려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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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꽤나 따가운 시선이 여럿 느껴지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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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니까. 그 말 하려던 참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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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넌지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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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단순히 인방과 비교해서 보면 공중파 방송이라는 게 얼마나 파급력이 큰지 체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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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천교수님에게 데려다 달라고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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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생각이 들던 와중에도 또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수군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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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과 자신들의 폰을 번갈아보았고, 그 중에는 입이 떡 벌어져 있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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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서보다 훨씬 작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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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애 듣겠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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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그냥 애기인데 노네임이랑 동일인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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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근데 애들아 오늘 아침 뉴스 봤어? 8년 전 발푸르기스 생존자가 발견되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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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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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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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지금 저기 앉아 있는 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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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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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간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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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나는 천교수의 집이라는 태풍의 눈 속에만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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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한발자국 밖으로 나가니 이렇게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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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아카데미에 짱박혀 있다가 하교할 때는 천교수님을 부르든 이하루의 차를 얻어타든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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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사람이 많았기에 다른 사람들이 내릴 때까지 천천히 자리에서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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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거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자 유나와 손을 맞잡고 뒷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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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우리 앞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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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다 내린 거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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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까 정문으로 들어온 건 입학식 때 말고는 한 번도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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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문이 있는데 구태여 큰 아카데미 부지를 따라 반 바퀴 돌아갈 이유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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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람이 바글바글 모여있는 게 그냥 원래도 그런 장소라고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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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오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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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있는 사람들은 다 우비를 입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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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도 아니고 우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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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의 손짓을 보고 나도 고개가 저쪽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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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중 한명과 눈이 마주치자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른 모두의 목이 기괴스럽게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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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자들이 사방에 쫙 깔렸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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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노을이 우산을 펴서 유나와 내 쪽을 가려주었지만 불행히도 어그로가 제대로 끌려버린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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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야 유나야, 어디서부터 아카데미 정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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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급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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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여기서 조금 많이 걸어가야 하는데. 한 백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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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리가 거기까지 빨리 데려다줄게! 업어줄 테니까 우산 들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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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업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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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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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시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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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먼저 노을에게 폴짝 달려가 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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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마지못해 서마루의 어깨에 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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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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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탈것1(서마루)과 탈것2(서노을)를 얻게 된 우리들은 단숨에 높은 시야를 경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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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것 같은데? 저기 노나메씨! 노나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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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앞에 길 막아봐! 빨리 아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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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메씨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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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명 정도로만 생각했던 기자들은 그 수가 훨씬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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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뿐만 아니라 육교, 횡단보도, 지하철입구, 버스 정류장 등등 사방에서 포진 중이었던 카메라맨들이 고가의 카메라를 지고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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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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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잡고 있어 뛰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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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아! 달려 달려! 다 비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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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나, 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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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업히는 게 좋을 나이인 아이는 재밌는 놀이기구를 타는 마냥 소리를 마구 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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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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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빽으로 들어온 게 맞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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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성 실장이 씩씩거리며 교장실의 문을 세게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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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선생님! 구온유 선생님! 교장 선생님 거기 계신 거 다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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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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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저절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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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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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션을 지나 들어온 교장실에는, 말없이 찻잔을 홀짝이는 나이 지긋한 여성만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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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슬거리는 백발의 머리를 통해 그녀가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해왔는지 어렴풋이 추측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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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규진, 아니 천병호... 그 자식을 구온유 선생님께서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낙하산이라는 말이라도 나오면 어쩌려고 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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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성 실장이 목에 핏대를 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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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은 찻잔을 잠시 내려두고 손에 깍지를 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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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실장을 지그시 쏘아보는 눈이 제법 매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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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이라니요 김실장. 그건 노나메 학생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말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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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 학생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압니다만... 지금 핀트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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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낙하산은 어감이 조금 그렇고... 그래. 공수부대쯤으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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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온유 교장은 능청스럽게 웃어보이며 소란스러워진 아카데미 정문으로 다시 시선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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