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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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가장 최초의 기억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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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이 영상을 보고 있을 사람들은 몇 살 때를 떠올릴까? 세 살? 네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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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에게 매를 맞아 울었던 기억, 혹은 미아가 되어 혼잡한 거리를 헤맸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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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기억일수록 최초의 기억이 될 확률이 높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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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첫 기억은 게임 속 세상이었습니다. 그 게임의 이름은 레거시 오브 레전드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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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아는 거의 1년간을 마나 포션을 구매하기 위해 나를 프라이빗 룸에 두고 하루도 빠짐없이 게임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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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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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호작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누구나 쉬이 떠올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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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슐마다 캡슐을 담보로 하여 소액을 대출하는 시스템이 있었고, 아마 그 금액은 100만원을 넘지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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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물 대신 마나포션으로 삶을 연장하고, 점점 짧아지는 폭탄의 심지를 지켜보는 설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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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잇대의 소녀가 경험하기에는 끔찍한 경험이었을 거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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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저라도 살리기 위해서 다시는 가상현실에 접속하지 않으셨고, 저는 어머니가 알려준 대로 계속해서 게임을 해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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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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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호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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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호를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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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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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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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게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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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겨우리만치 오랫동안 반복된 끔찍한 일상은 무려 7년동안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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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4년 3917판, 2045년 8392판, 2046년 8505판, 2047년 8469판, 2048년 8538판, 2049년 8150판, 그리고 2050년에도 최소 4000판 이상을 했습니다. 그게 제가 유일하게 살 길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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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네 이름을 불러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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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이름을 모르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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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내가 이제 지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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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게 그녀와의 마지막 순간임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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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라는 엄청 예쁜 이름이 이렇게 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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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따뜻한 말에 덜컥 겁부터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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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메는 꼭 살아줘. 끝까지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엄마 몫까지 살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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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살아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왜 설아는 계속 함께 할 수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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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웠을 어린 아이는 계속해서 설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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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기억해줘 너의 엄마는 노설아 한 명뿐이라는 걸. 자랑스러운 우리 딸 나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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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의 이름은... 제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닉네임이 먼저였고, 이름이 그 다음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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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웃기지도 않은 신파극이다. 그 뒤로 나는 한동안 여운에 잠겨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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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설아가 살 수 있었던 방법은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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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금이라도 정신을 더 일찍 차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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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금이라도 이 상황을 빠르게 인지하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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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아가 혼자 그 고민을 떠안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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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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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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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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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카메라 삼각대 너머로 설아의 모습이 환상처럼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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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있을 결승에 힘내라는 듯이 양 주먹을 불끈 쥐고 웃어보이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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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렇게 환각으로나마 볼 수 있으니까 너무 반갑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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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함으로만 따지자면 마법보다 뇌쪽이 한발 앞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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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이렇게 진짜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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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한번 가볍게 감았다 뜨니 그녀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다는 양 사라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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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일요일에 보러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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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상촬영에 집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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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한 생각이지만 구출에 도움을 준 세민과 마범일 형사님의 언급은 최대한 자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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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떤 불똥이 튈지 모르기 때문에 최소한 피해는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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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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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나라가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관심과 배척.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곧바로 떠오르는 단어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무관심 속에서 하찮은 삶을 이어나갔고, 여러분들의 배척 속에서 마음씨 좋은 분께 입양되기 전까지는 무국적자로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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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어린 아이는 무국적자로 살아도 큰 손해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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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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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값을 혼자 벌기 위해 트위시에 가입하여 수익창출 신청을 할 때도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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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모르게 대한민국에서는 무국적자와 난민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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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보육원의 아이들은 하도 영악하여 누가 부모님이 있고 없고, 출생이 어떻고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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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에서 나와 끝까지 함께해주었던 건 오로지 아린이 뿐이었고, 내가 인간혐오에 걸리지 않았던 것도 그녀의 공이 정말 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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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제 얘기를 꺼내왔던 건 비단 저의 불행을 자랑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이 기회에 여러분들이 이웃, 친구, 혹은 부모, 자녀에게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기울여주셨으면 좋겠어서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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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아카데미에서 왕따를 당했던 것도, 그녀가 처한 상황을 알아보려는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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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리가 그 모진 시선을 받았던 것도, 애써 진실을 외면하려는 대중들의 탓이 적지 않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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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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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이 옛날부터 너무나도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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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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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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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피해자는 혼자 과거의 고통 속에서 헤매고, 아물지 않는 상처를 평생 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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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가 되기 싫다면 최소한 방관자라도 자처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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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을 보고 계실 여러분들은 모두 똑똑한 사람들일 겁니다. 그 많은 레거시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들을 기억하고, 그 복잡한 월드 오브 아르세리아의 검술과 마법 스킬들을 외우고 계시니까요. 그러니까 제가 앞으로 할 부탁들도 정말 간단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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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다시 한번 사람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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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어나가는 것도 결국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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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은 이걸로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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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종료 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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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이 조금 안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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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만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누구에게 보이는 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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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아무런 생각도 하기가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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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내일의 내가 알아서 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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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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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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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지독한 권태감은 나를 영 가만히 놔두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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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가상현실에 접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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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밍을 시작합니다: 0:01:31 – No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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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날씨가 좋길래 브이로그를 한편 찍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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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조금 덥긴 했어도 오늘 날씨가 썩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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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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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웅성거림과 소란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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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타디움을 꽉 채운 사람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데시벨이 결코 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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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이런 반응은 충분히 예상했었고,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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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를 들고, 캐스터보다 한 두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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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제가 일곱 살이라는 사실은 다들 머리에서 지워주시고 제 부탁을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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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터님에게는 잠시 양해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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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체되어 인터뷰 시간의 끝이 다가왔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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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되도록 간단하고 빠르게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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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전에 방화대교 폭파사건에 대한 재수사 요청을 신청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저의 실명 ‘노나메’로 국민제안을 신청하였으며, 그 내용은 발푸르기스 소탕 작전의 재조사 요청입니다. 제가 어머니와 함께 캡슐에 갇혀 외딴 폐가로 옮겨졌던 시점은 분명 방화대교 폭파 사건 이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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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 파이시로 분명히 그 아수라장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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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라의 본체가 남긴 기억에는 그녀와 동기화되지 않은 캡슐 두 대가 남아있었고, 하나는 설아,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분명 나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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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첫째, 사건의 전후관계를 명확히 파악해주십시오. 정말 방화대교 폭파 사건이 먼저 있었는지, 아니면 그 전부터 인질 구출에 대한 작전이 선행되어 있었는지. 만약 후자로 밝혀진다면 진실을 숨긴 이유와 그 책임자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시청자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꼭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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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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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런 인사를 하는 것도 처음이라 굉장히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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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머리를 숙이고 있으면 저들 한명이라도 더 간청을 들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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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상 느껴지는 압박 때문에 10초 이상은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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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 거의 다 왔어 노나메. 힘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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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부탁은 그냥 정말 간단하고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부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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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지금 봉안당에 계신 우리 불쌍한... 엄마의 처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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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아는 그런 낡고 쓰러져가는 봉안당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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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 중 그 어떤 사람보다도 위대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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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 읍... 흐으... 해... 주셨으면...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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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앞을 가린다는 표현은 진짜 식상해서 안 쓰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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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애써 미리부터 영상을 찍은 의미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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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눈물까지 흘러내리지는 않았으니까 울지는 않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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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인터뷰를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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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주셔서 다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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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수고했어! 우리 나메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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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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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들려온 보드라운 목소리에 흠칫하여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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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보고싶었다고 말하려던 참에 설아는 또 잽싸게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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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자주 보이면 좋겠는데, 꼭 이렇게 내 생일 직전에만 온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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