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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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내 방송을 왜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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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켜고 나면, 이따금씩 이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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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저 낭비되는 시간이 아까워 소소하게 포션값이나 벌자고 시작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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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동안의 내 방송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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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채팅창을 꺼버리고 모든 소통을 차단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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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월오아에서만 그랬던 게 아니었다. 이미 훨씬 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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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에서의 자그마한 3평짜리 공간. 예전에는 침대 하나와 테이블 하나, 그리고 의자 하나가 전부였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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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구조적으로는 크게는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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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혼자 방송을 하다 보면 수식을 적을 일이 많아 칠판 같은 물건들을 유료 상점에서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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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 사이사이로 카페트에 난 복슬복슬한 동물털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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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설아가 판 카페트와 해시값이 동일한 제품을 서버복구비용이라는 명목으로 시세의 100배를 주고 구매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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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제품명의 다른 카페트와 원자 구조까지 똑같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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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의미가 없다는 걸 알지만... 때로는 이성이 항복을 외치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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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방송에서 내가 아는 여러 마법학 지식을 끄적거리고 중얼거리는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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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지식이라고 완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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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꿈을 꾸고 일어났을 때, 다시 그 내용을 필사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까먹어버리는 것처럼, 나는 전생의 퍼즐을 차근차근 하나씩 짜 맞추고 있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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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 무의식에 잠든 마법적 지식들을 깨우고 나면, 남은 건 언제나 후회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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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만약 내가 이때 이런 마법을 사용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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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때 만약 마나를 아낄 수 있는 수단을 알고 있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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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의 늪에 빠진 전생의 혼을 달래주기 위해 연구하고 설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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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 성대에서 터져나오는 울분은, 대체 누구를 향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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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강의를 빙자한 혼잣말을 할 때 채팅창을 모조리 꺼버리는 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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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 받기 싫으니까. 나 말고도 다른 이가 내 선택이 틀렸다고 하는 순간 버티지 못할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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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진다. 특히 오늘같은 날은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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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메이노 이타즈라데모~ (운명의 장난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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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오늘은 평소처럼 피아노나 바이올린 클래식 곡이 아닌 다소 정신 사나운 곡이 재생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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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구리아에타 코토가~ (우리가 만났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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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열정적으로 외국노래를 부르는 벌꿀오소리 소녀의 미성이 메아리처럼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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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와세 나노~ (행복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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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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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을 걸러내겠다는 의도였지만 문제는 정작 나도 이 노래를 들어야하는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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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내 목소리랑 비슷해서 틀어주면 제격이겠다 했는데 상상 이상으로 나도 듣고 있기 거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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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튜버가 노래도 부르는 게 요즘 대세인가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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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서큘레이션 (Cover – 카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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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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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을 지원하는 캡슐이 보급화되면서 버튜버와 버튜버가 아닌 자에 대한 경계가 많이 허물어지는 추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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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튜버를 어떻게 정의내리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갑론을박이 있는 것 같았지만 몇 가지 확실한 명제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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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버튜버는 스스로 ‘안의 사람’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고, 설령 공개되더라도 그게 공식적인 방법이 아니어야 했다. 물론 그 역은 성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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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안의 사람’을 숨기는 이들이 모두 버튜버라는 의미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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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애매한 정의 속에서 ‘버튜버’들은 엄연히 존재했을뿐더러,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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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90만 구독자 버튜버 ‘카리리’는, 전혀 상관없는 내 브이튜브 추천채널에 뜰 정도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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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 문화에 대해선 나는 문외한이었지만, 그래도 이 벌꿀오소리 코스튬을 장착한 아이 덕분에 방송 시청자들이 조금 순둥순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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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와후와루~♡ 후와후와리~♡ (ふわふわる ふわふわ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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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그만해!!!!!!!!! 이러다 다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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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강 제대로 잡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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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안 나가? 이래도 안 나가? 이래도 안 나가? 이래도 안 나가? 이래도 안 나가? 이래도 안 나가? 이래도 안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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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네가 선택한 스트리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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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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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링~어서오소리~카리링~어서오소리~카리링~어서오소리~카리링~어서오소리~카리링~어서오소리~카리링~어서오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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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벌써 허니비 새끼들 출몰지역 다 됐네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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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컨셉이 벌꿀오소리인데 왜 팬네임은 허니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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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영어로 하면 HONEY Badger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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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밭 점심 나가서 먹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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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00킬 실화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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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이다 돔황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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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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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튜브 창을 전부 꺼버리고 다시 카메라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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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원래의 차분한 분위기로 시작해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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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밝지만은 않은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나는 안락의자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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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창의 열기는 그대로였지만 불길의 방향이 반대로 향했기에 조금은 뿌듯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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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긋 시청자 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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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수 – 1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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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비하면 시청자는 반토막이 나버렸지만 나와 그들간의 내적 친밀감은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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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고, 썩은 사과 하나가 한 통의 사과를 망치는 법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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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로와 반감있는 시청자들을 도려낸 방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썩 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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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쾌마운틴’님이 1,000원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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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네임님 진짜 호감이네요 저도 카리리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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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이 바닥에 굴러 떨어지는 경쾌한 후원음과 함께 방금 노래를 불렀던 소녀와 동일한 목소리가 후원메시지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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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카리리라는 사람은 자기 목소리까지도 자본주의 사회에 맡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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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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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스러운 시청자들은 이제 무얼 하느냐고 한입으로 내게 답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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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바로 방종을 해버리면 분위기가 험악해지리라는 사실은 너무 뻔하니까, 안락의자를 앞뒤로 흔들거리며 고민에 고민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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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내가 아는 마법 지식들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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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과의 상호작용을 후원 메시지 외적으로는 일절 하지 않았던 터라 이런 상황이 매우 난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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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은 끝났는데 모두가 자리에 앉아 교수를 일제히 기다리는 상황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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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열심히 기다려준 아이들에게는 달콤한 마시멜로 하나쯤은 쥐여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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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종은 1시간 뒤에 하겠습니다. 그동안은 여러분이 원하시는 컨텐츠 같은 게 있다면 한번 고려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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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텐련 뭐라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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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방송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방종선언은 진짜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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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제 없는 게 진짜 컨텐츠도 없는 거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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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들어올 때 처음으로 하는 짓이 개미털기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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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내키지 않나 보네요. 그럼 방송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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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같은 거 하죠 방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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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위키 읽기 어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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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튜브 탄 거 감상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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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이 채팅창 봐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해야지,,, 에잉,,, 쯧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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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테스트 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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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형 월드컵 해요 노네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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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형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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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fshsdfjdfs’님이 5,000원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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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시 여성 스트리머 이상형 월드컵 한 접시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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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형과 월드컵이 공존할 수 있는 단어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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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형은 단어 그대로 개인이 추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유형일 텐데 이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부터 모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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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방장이 여성인데 왜 여성 스트리머로 함?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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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보고 한 시간 내내 남캠만 보고 있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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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차라리 카리리 노래를 1시간 듣고 있는 게 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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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ㄹㅇ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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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의 호기심과, 반쯤의 불신으로 들어간 링크 속에서는 다양한 카테고리의 월드컵이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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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상형을 찾는 월드컵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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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이상형을 정해놓지 않고, 여러 예시로 나온 선택지를 고르고 골라 최종적으로 하나를 선별하는 그런 식의 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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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상형이라는 말을 빼도 무방할 정도인 게, 사람뿐만 아니라 음식 월드컵, 인생영화 월드컵, 포x몬 월드컵도 제법 인기 순위에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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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VS 놀이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아마도 토너먼트 형식이라서 월드컵이라는 명칭이 붙은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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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도 원하는 부문이 제각기 달랐기에 잠잠했던 채팅창이 비교적 날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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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순으로 정렬한 다양한 월드컵을 쓰윽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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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로 타인을 평가하는 행위는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혐오하는 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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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여자 아이돌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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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여자 캐릭터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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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 배우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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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x몬 의인화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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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스크롤을 내리는 게 무의미하다고 느껴졌을 때, 하나의 단어가 홀린 듯이 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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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마법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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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시에 하나의 마법만 사용할 수 있다면? / World Magic Culture Forum에서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자주 사용된 전투 마법 128개 포함 / 6서클 이상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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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라운드를 선택하세요: 32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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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28개의 후보 중 무작위 32개가 대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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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 같은 인기없는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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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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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컨텐츠는 시참입니다. 저와 똑같은 선택을 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세분께는 제 방의 매니저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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